[007 영화의 추억을 새기며] 정병경
ㅡ반세기 전의 색바랜 필름ㅡ
20대 중반 쯤부터 영화에 빠져 일상이 된 시절이 있다. 주말만 되면 개봉극장 앞에서 서성인다. 당시에는 암표 장사들이 골목을 메울 정도이다. 개봉을 하면 반년 동안 상영은 보통이고 명절 때 앵콜상영도 자주한다.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 눈익은 배우가 연기를 펼친다. 영국 배우 로저 무어가 스키를 타고 내려오다 절벽에서 낙하산을 펼친다. 미소를 머금고 등장한 첫 장면에서 경이로움을 느낀다. 1977년에 개봉한 첩보 영화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이다. '죽느냐 사느냐'와 '황금총을 가진 사나이'는 73년과 74년도에 각각 개봉했다. 12년 동안 로저무어가 주연을 맡은 7편의 007이 세상을 휩쓸었다. 1960년대 숀 코너리가 007 주연으로 출연할 때부터 블록버스터의 원조였다.
007은 현실이 아닌 이상 세계의 무대이다. 런던에 안개 낀 다리와 베네치아 하늘과 수로가 한폭의 그림이다. 호텔 로비에 매달린 샹들리에가 펼쳐진다. 영화 속 무대 옆에 내가 함께 있는 느낌이다. 주연 못지않게 명 연기를 펼치는 조연이 주연같다. 항상 그림자로 따라다닌 본드걸이 인상적이다.
거리를 스쳐 지나가는 행인과 본드의 주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악역들이 더 기억으로 각인된다. 커피잔 앞에 놓고 신문을 보는 노신사의 모습이 생생하다. 단역이지만 영화의 맥을 이어주는 조연들의 연기에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그들의 모험은 내겐 더욱 실감나는 간접 체험이다. 당시엔 상상만 하던 미래의 과학이 현실로 나타나니 허구가 아닌걸 깨닫게 된다.
대장정의 막이 내리고 밖으로 나오니 도심 밤거리는 초라함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괜스레 지나가는 사람들을 훔쳐본다. 혹시 이들 중에도 비밀 요원이 있는 건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영화 속의 장면이 뇌리를 스치며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반세기가 흘러도 배우의 연기하는 모습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8년 전 인생 90년을 마지막으로 장식하고 떠난 로저무어!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007 뷰 투 어 킬'에서 마지막 연기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의 숨결이 지금도 느껴진다. 무명의 조연들과 배경들은 한밤중 등불처럼 남아 있다. 현실이 또 변해도 은빛 스크린 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아직도 내 가슴 속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2025.08.20.
첫댓글 007 시리즈의 제임스본드 주연역...
로저무어, 숀코네리는 정말 잊지못할 명배우입니다.
시대를 초월한 스파이 이야기가 그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