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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브라질 월드컵이 끝났다. 결과는 1무 2패. 참으로 오랜만에 참담한 결과를 손에 들어야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늘 승리를 챙겨가며 기대감을 갖고 대회에 임했던 것을 생각해볼 때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아자르 등 핵심 전력을 제외한, 게다가 전반 말미에 한 명이 퇴장 당한 벨기에를 상대로 한 골도 만들어내지 못한 채 경기에서 패배했다. 10명인 상대는 돌발 상황에 매우 부드럽게 대응했으며 빠르고 효과적인 역습으로 오히려 골을 만들어냈다. 경기 내용 자체는 크게 밀리는 분위기는 아니었으나 벨기에로서는 그렇게 다급할 이유도 없었기에 우리 입장에서 좋은 경기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사실상 진출이 어려웠던 상황에서 벨기에에게 모든 힘을 쏟아 부은 대한민국 팀에게 격려 정도느 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그렇게 힘을 쏟아 붓고 10명인 상대에게 진 이유로 더 화가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쉬움이 남는 벨기에전 경기 리뷰를 시작한다.
1.결과는 물론 내용도 좋은 경기는 아니었다.
경기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아자르 등 주요 선수들이 선발 출장하지 않은 점을 고려해도 벨기에는 ‘해외파’들이 즐비해있다. 특히 EPL에서 실력이 검증된 선수들이 많았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전반의 선전은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일례로 에버튼의 케빈 미랄라스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더구나 선발로 출장한 김신욱은 상대 수비수들에게 지속적으로 부담을 주었으며, 박주영이 출전했던 이전 경기보다 훨씬 나아진 공격 작업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후반에는 이근호 투입으로 더욱 적극적인 공격을 이어나갔고, 수적 우세를 이용해서 좀 더 편안한 상태에서 경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실점 장면에서 이전 알제리 전에서와 같은 특별하고 치명적이며 어이없는 잘못은 보이지 않는다. 실점 장면만 하이라이트로 보면 그저 무난하게 수비하다가 역습으로 전환하는 도중에 차단되어 재역습으로 잘 연결한 상대에게 한 방 얻어맞는 전형적인 장면이었다.
벨기에 전에서 우리나라는 이처럼 내용 상 나쁘지 않은 경기를 펼친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오히려 우리의 부족함을 많이 볼 수 있는 경기였다. 우선 벨기에와의 경기는 스포츠 전반에서 벌어지는 약자와 강자 대결에서 전형적으로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한 채 싸우는 경기였다. 전형적인 시나리오는 이렇다. 객관적인 열세가 예상되는 경기에서 약자는 강자를 상대로 초반부터 있는 힘을 전부 쏟아 붓는다. 강자는 상대의 거센 저항에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대응하며 상대가 지치기를 기다린다. 결국 시간이 흐르고 나면 체력 저하로 이어지고, 체력 저하는 부족한 실력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패턴이 그야말로 전형적으로 드러난 경기였다. 전반 말미 한 명이 퇴장당한 덕분에 후반 말미에 그 차이가 확실하게 들어나지는 않았지만, 벨기에는 수적 열세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차분히 대한민국 팀을 상대했고 수비해냈다.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실점한 시점 이미 우리나라는 체력이 바닥나는 시점이었다. 실점 장면 이전에도 수비 가담 속도가 전반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 이미 지쳐있는 상황에서 역습을 전개하다가 끊긴 장면에서도 빠른 커버로 이어지지 못했고 결국 실점했다. 실점 자체를 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벨기에의 꽉 짜여진 수비를 뚫기란 힘들 것이었다. 단순히 실점, 패배 이런 것들이 문제는 아니었다.
2. 공격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공격의 완성도가 낮은 것은 월드컵을 준비하는 평가전 단계를 포함하여 이번 대회 전반에 걸친 문제였다. 하지만 앞선 평가전에서 패배의 주원인으로 수비 불안이 지적되었기 때문에 각각 무득점에 그친 튀니지 전, 가나 전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특히 가나 전에서 4골이나 실점한 것이 큰 문제였다. 게다가 앞선 예선 두 경기에선 득점을 만들어냈다는 점 때문에 문제점으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벨기에 전에서 10명인 상대에 대해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했으며 효과적인 공격을 이어가지 못했다. 부정확하고 무의미한 크로스들만 남발하였고 그나마 거리를 두고 시도하는 중거리 슛으로 위협적인 장면을 간헐적으로 만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공격 진영에서의 팀 스피드가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빌드업 과정에서는 팀 스피드가 무조건 높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팀 스피드가 상대 진영 특히 문전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상대편이 밀집되어 있는 공간에서도 팀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원터치 패스나 약속된 움직임이 나오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위협을 주지 못했다. 상대가 퇴장으로 수비라인을 뒤로 내린 상황에서 더 많은 2;1패스, 우리 편의 움직임과 공의 흐름을 예측한 공간 침투, 그에 따른 원터치 패스와 스루패스들이 연결되었어야 하는데(상대의 예측을 벗어나는 데 필수적이다.) 이러한 부분 전술이 충분히 연습되지 않은 듯 거의 보이지 않았다.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들 역시 타이밍이 뻔하고 공의 궤적 역시 수비 선수들이 보고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을 정도였다. 더욱이 우리나라보다 크고 강하며 기술까지 훌륭한 벨기에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수비에 나서는데 개인돌파로 기회를 만들려고 반복적인 시도를 해서 우리 스스로 지치고 말았다. 1:1 돌파를 시도해서 성공한다 해도 이후 이어지는 재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공을 뺏기거나 측면으로 몰리게 되고 말았다. 팀 스피드가 떨어진 상태로는 촘촘히 수비진을 구성한 상대로 골을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골대 앞을 단단히 지킨 상대에게 밀려나 주변으로 돌아갈 수밖엔 없다. 벨기에 전도 중앙에서 공격수들은 별다른 위협을 주지 못한 채 주변에서 열심히 기회만 보다가 경기가 끝나고 말았다. 기성용이 상대방이 10명이 되면서 수비진을 내려 경기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인터뷰를 했는데 이 역시 그 궤를 같이한다.
많은 외신의 평가처럼 우리나라는 견고한 수비력보다는 공격력으로 승부해야 되는 팀이다. 한 골, 두 골 정도의 실점은 공격력을 통해 극복해야 했다. 수비진은 집중력이 떨어져 실점하는 경우가 잦은 편이고 무실점 경기를 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오히려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 빌드업과 손흥민, 구자철, 이청용처럼 기술 좋고 스피드 좋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화끈한 공격력이 중심이 되었어야 했다. 공격진이 무기력해지면서 결국 경기를 승리로 이어가지 못했다.
3. 홍명보 감독의 교체가 아쉬웠다.
김신욱과 김승규가 투입되면서 이전 2경기에 비해 훨씬 좋은 움직임을 보여줬다. 선발진의 변화는 경기 자체에 활력을 주었다. 김신욱은 머리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을 보여줬다. 공을 받기에 좋은 위치로 움직임을 가져가지도 못했을 뿐더러 공을 끌면서 늦은 타이밍에서야 패스를 연결할 수 있었던 박주영과 달리 김신욱은 폭넓은 움직임과 빠른 타이밍에 내주는 리턴 패스로 공격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박주영의 장점이라고 여겨졌던 연계플레이에서도 김신욱이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이근호가 후반에 투입되면서 과거 AFC챔피언스리그를 정복했던 울산의 빅-스몰 조합은 좋은 움직임들을 이어갔다. 김신욱과의 플레이가 익숙한 이근호가 김신욱이 만들어내는 공간들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비교적 이른 시간에 김신욱을 김보경으로 교체하면서 공격의 긍정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말았다.
김보경 교체의 의도를 해석해보자면 상대가 수비진을 깊숙이 내리고 단단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김신욱보다 기술적으로 우월하고 스피드가 빠른 선수를 통해 수비진을 허물려는 의도를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술적인 미스로 보인다. 김신욱은 단순히 머리만 쓰는 선수가 아니다. 큰 키가 주는 이미지와 달리 발밑이 나쁘지 않고, 중앙에서 연계 플레이에도 상당한 강점을 보이는 선수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공을 중앙지역에 투입할 필요가 있었다. 중앙으로 공이 투입되지 않는다면 이번 벨기에전처럼 일본이 그리스를 상대했던 것처럼 외곽만 빙빙 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측면을 공략하려해도 공을 중앙 지역에 투입했다가 다시 측면으로 투입될 때 더욱 큰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중앙 공격수를 빼고 미드필더를 투입한 것은 오히려 악수(惡手)가 되고 말았다. 이어 시간이 부족해진 상황이나 세트피스에서는 김신욱의 부재가 더욱 아쉬웠다.
4. 분명한 경험이 되었다.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홍명보 감독이 이번 월드컵이 선수들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 문제가 되었다. KBS의 이영표 해설위원이 월드컵은 실력을 보여주기 위한 곳이라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면서 더욱 문제가 커진 것 같다. 사실 둘 모두 맞는 말이다. 이번 월드컵을 전체적으로 평가하면서 경험을 얻었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지난 20여 년 전과 질적으로 달라졌으며 세계적 축구에서도 점하고 있는 위상이 변했다. 축구의 변방이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월드컵을 개최한 전력이 있으며 월드컵 4강을 경험한 아시아의 유일한 팀이다. 차범근 이후로 박지성이라는 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스타를 배출하기도 했다. 팀 엔트리의 절반 정도는 유럽리그를 경험했으며 그들의 일부는 소속팀에서 핵심 선수로 대우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팀이 무기력한 경기력으로 예선에서 탈락한 후에 경험 운운하는 것 자체는 옳지 않다.
하지만 벨기에 전 자체는 우리에게 많은 경험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 우선 대한민국 축구의 현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패배이다. 러시아나 알제리는 정상급 팀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팀으로 우리나라는 비록 1무 1패의 결과를 냈지만 골도 만들어냈고 경기 내용 상 크게 밀리지도 않았다. (물론 모든 것이 엉망이었던 알제리 전의 전반은 제외해야만 한다.) 알제리 전에서의 패배 역시 후반에는 많은 것들을 되찾아왔다는 느낌으로 스스로 다독이며 넘어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벨기에 전은 달랐다. 비록 후보들이 몇 명 엔트리에 포함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훌륭한 전력을 갖춘 벨기에를 상대로 우리는 별다른 위협을 가하지 못했다. 사실 상 양 팀 모두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던 러시아 전, 전반 내내 무너져 내려 정상적인 경기를 못했던 알제리 전과는 달리 객관적으로 우리의 전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세계적인 강팀 상대로 우리의 축구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실력이다. 패배는 아팠지만 세계적인 강팀을 상대로 우리의 축구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다시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도 많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의 브라질 월드컵은 끝났다. 많은 이들이 발암(發癌) 축구라며 답답해 하기도 했다. 월드컵 시작 전 선수 선발부터 시끌시끌했고, 평가전 결과도 꾸준히 나빴다. 대회 첫 경기를 무난하게 끝내기는 했지만, 2차전에서 무너지면서 사실 상 탈락이 확정되었다. 마지막 경기에서까지 희망 고문이 이어졌지만(퇴장 당했을 땐 진심으로 희망을 가졌다.), 결국 패배로 이어졌다. 조별 예선의 흐름 자체가 좋지 못했고 결과는 무척이나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4년 후에는 또다른 월드컵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의 지난 4년은 어떠했는가. 조광래 감독이 아시안컵에서 3위에 오른 것이 3년이 조금 지난 일이다. 나에겐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진다. 그 3년 간 이영표와 박지성이 대표팀을 떠난 후 선수로서 은퇴했고, 막내 손흥민은 국가대표팀의 에이스가 되었으며 박주영은 거의 퇴물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다음 월드컵까진 시간이 길다. 이번 월드컵에 기대가 컸던 만큼 그 실망이 클 수도 있다. 그래서 분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일이 실망스럽다고 해서 미래까지 역시 실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일을 기대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축구 팬으로 살아오며 패배할 때마다 슬퍼할 이유는 없다는 걸 깨달은 걸지도 모른다. 다른 팬들도 나처럼 결과에는 조금 초연해지는 것이 어떨까? 이번 대회에 쏟아지는 비난은 조금 과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난 며칠 간 고생한 선수들에게 경기력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지만 고생했다는 격려를 보내며 앞으론 조금 더 발전하길 바란다는 바람을 전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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