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신응수 대목장 몰락하다
숭례문 복구공사와 광화문 복원공사의 도편수(목공사 총책임자)인 신응수 대목장이 광화문 복구공사에 쓰여야 할 금강송 4주(株·벌목한 온전한 형태의 나무)와 숭례문 공사를 위해 기증된 소나무 154본(本·주를 다듬은 상태의 나무)을 횡령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3월26일 신 대목장을 관급 목재와 기증목 등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신 대목장은 2008년 문화재청이 광화문 복원공사를 위해 강원도 양양 법수치 계곡 등에서 벌채해 공급한 금강송 36주 가운데 4주(감정가 6000만원)를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강원도 강릉시 소재 우림목재에 보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신 대목장은 빼돌린 금강송이 쓰여야 할 자리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일반 소나무를 대신 사용했지만, 감리업체 등에는 모두 금강송을 썼다고 허위로 보고했다.
신 대목장은 또 2012년 5월 숭례문 복구공사를 위해 기증된 충남 태안 지역의 안면도 소나무 338본 가운데 154본(약 4200만원)을 빼돌려 당시 진행 중이던 경복궁 수라간 복원공사에 임의로 사용한 혐의(업무상 횡령)를 받고 있다.
신 대목장, 공사비 부풀려 빼돌린 혐의도
경찰은 이날 기증목 중 일부가 신 대목장이 건립 공사를 맡았던 울산 태화루 복원에 사용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경찰이 감리단을 통해 확보한 자료 사진에는 신 대목장이 운영하는 목재소에서 태화루 공사에 쓰일 목재를 가공하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일부 제재목에 숭례문 기증목 표시가 돼 있었다.
신 대목장은 2012년 1월께에는 경복궁 복원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원청 시공업체인 ㅈ건설에 2500만원을 건네고 문화재수리기술자 자격증을 대여받은 혐의(문화재 수리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 받고 있다. 신 대목장은 ㅈ건설의 하청업체로 들어가 목공사를 맡으면서 ㅈ건설 대표 김 아무개씨와 공모해 공사비를 부풀리기도 했다. ㅈ건설의 김 아무개 대표는 신 대목장과 경복궁 수라간 복원공사를 진행하면서 목공사 대금 10억원을 11억원으로 부풀려 지급한 후 신 대목장에게서 1억원을 되돌려받아 챙겼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광화문과 경복궁 공사의 감리·감독을 담당한 문화재청 공무원의 비리 혐의도 잡았다. 경찰은 문화재청 공무원 6명이 시공업체 ㅈ건설로부터 매월 정기적으로 받은 돈과 명절 선물 명목으로 받은 금품이 총 4200만원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문화재위원 등으로 구성된 광화문·경복궁 복원 자문위원 5명도 업체로부터 회의비나 명절 선물 명목으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총 2730만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문화재청 공무원이 퇴직 후 문화재 수리 시공업체의 현장소장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문화재청) 공무원과 업체 간 뇌물 공여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경찰 수사는 지난해 12월 초 “숭례문 복구공사에 국산 금강송이 아닌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제보가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이는 시사저널이 최초 보도(2013년 12월11일자 “숭례문 기둥에 러시아 소나무 썼다” 기사 참조)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3월26일 경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에는 숭례문 복구공사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과 관련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네 달 가까이 수사를 진행했지만 결국 숭례문 복구공사에 러시아산 소나무가 쓰였다는 의혹을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들 총체적 비리 드러나
그러나 이번 수사를 통해 문화재청의 총체적 비리가 드러나면서 “숭례문 복구공사에 러시아산 소나무는 쓰이지 않았다”고 밝혔던 문화재청 발표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문화재청은 경찰 수사 결과 발표에 앞선 지난 3월 4일 “국립산림과학원이 숭례문 복원에 사용한 소나무에서 채취한 시료 21점에 대한 DNA 분석을 실시한 결과 모두 국산 소나무로 확인됐다는 결과를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이날 숭례문 복구공사에 쓰인 소나무가 금강송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국산 소나무인 것만은 확실하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문화재청 발표에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DNA 분석 결과 숭례문에 쓰인 소나무의 품종이 국산 소나무와 일치한다고 해서 그 소나무가 국내에서 자란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또 소나무는 똑같은 품종이라도 어느 지역에서 자랐느냐에 따라 목재로서의 가치가 천차만별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목재 전문가는 “소나무는 씨를 널리 퍼뜨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숭례문에 들어간 목재의 품종이 한국 소나무로 나왔다고 해도 그것이 러시아에서 자랐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며 “목재 시장에서는 러시아에서 수입된 소나무가 가장 질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는데, 품종이 안 좋아서가 아니라 소나무가 자라는 환경 탓”이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신 대목장은 경찰수사에서 빼돌린 금강송과 기증목이 쓰여야 할 자리에 자신의 목재소에서 가져온 일반 소나무를 사용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아직 그가 사용한 일반 소나무가 어떤 소나무인지를 밝혀내지 못했다. 국보 1호 숭례문에는 여전히 의혹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안면송 기증자 “문화재청 계약 위반” 분노
“문화재청의 계약 위반 사항에 대해 법적 처벌을 요구하겠다.” 숭례문 복구공사에 안면도 소나무 338본을 기증한 송 아무개씨는 3월27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분노를 쏟아냈다. 그는 “소나무를 기증할 당시인 2008년 12월4일 문화재청과 소나무 원목 기증 협약서를 체결하면서 숭례문 복구공사에 한해서 안면송을 쓰겠다는 계약을 맺었다”며 “그런데 기증자에게 단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은 채 결국 (소나무가) 누군가의 잇속을 챙기는 데 쓰였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 결과 신 대목장은 문화재청에 안면송의 상태가 좋지 않아 기둥 등에 쓸 수 없어 폐기 처분한다고 한 후 이를 빼돌려 다른 공사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시사저널이 기증목 횡령 의혹을 제기했을 당시 “일부 기증목이 주요 기둥이나 대들보 등 체목으로 쓰기에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명은 결국 거짓말로 드러났다(시사저널 2014년 2월18일자 “신응수 대목장이 숭례문 기증목 빼돌렸다” 기사 참조).
문화재청은 신 대목장의 숭례문 기증목 횡령 문제와 관련해 현재까지도 기증자에게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상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재 경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단계다. 사법기관의 최종 판결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일일이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 기증목 횡령 문제에 대해서도 사법부 판단에 따라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