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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How can I give you up, Ephraim?
How can I hand you over, Israel? How can I treat you like Admah? How can I make
you like Zeboiim? My heart is changed within me; all my compassion is
aroused.
나는 보통 묵상을 할 때 성경 한장을 읽고 그 한장 안에서 내게 마음에 와 닿는 구절 하나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한 구절이 왜 내 마음에 와 닿았는지.. 그 이유를 쓰면서 하나님과 나에 대한 이야기를 묵상에
기록한다.
물론.. 그 기록 안에는 나의 일기도 들어간다.
묵상을 읽을 때 한장을 읽지만 묵상 하기 이전에 아니면 묵상
이후에 나는 묵상했던 성경 한장을 오디오로 계속 반복해서 듣는다.
나는 어제 호세아 11장 한장을 아마 20번 가량은 들었던 것
같다. 오디오 성경으로 듣고 또 듣고 듣고 또 듣고..
들으면서 오늘 이 구절은 다시 들릴때 마다 울컥
울컥!!
실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울컥 거리는 마음과 함께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데체 그 분은 얼마만큼 우리를 사랑하신단 말인가! 진정 나는 그 분의 사랑을 알고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그 분의 사랑"이 얼마나 제한되어 있고 또한 부족한지..
아마 이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알아 가라고 그렇게 명하신 것이 아닐까!!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주석에서 찾아 보았다. "아드마"와 "스보아"가 무엇인지..
이 두성은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으로 멸망당할 때 같이 멸망한 성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 성들처럼 너희를 멸망하지 않겠다고 하시는
우리 하나님..
그런데 호세아서 이전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그들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에서 그들을 미워하였노라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그들을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그들의 지도자들은 다 반역한 자니라" (호세아 9:15)
분명
하나님은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말씀 하셨다.
그런데 호세아 11장에서 이렇게 애틋하게
하나님의 백성을 버릴 수 없는 그 사랑을 말씀 하시는것이다.
하나님이 당신이 하신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항상 그 분의 말씀을 지키시는 분이라고 배워 왔다.
그리고 그 분은 그 분 하신 말씀을 거의
다 지키신다.
그러나.. 그 분은 그 분이 말씀 하시고도 지키지 않은 부분들이 있으니 그 부분은 바로
사랑에 대한 부분이다.
오늘 내가 위에 쓴 구절 처럼..
하나님은 분명 그들에게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말씀 하신 바가 있으시다.
그러나 또 사랑을 하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당신의 마음을 바꾸기까지...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지난 12월 케냐에 들어갔을 때 일을
기억해 본다.
성탄을 나는 이번에 케냐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었다.
사실 이제는 아이들이 다 성장하고 분가해서 어떤
녀석은 장가도 가고.. 어떤 녀석은 이제 장가 갈 준비도 하고..
다들 사회적으로도 기반을 잡고 있다.
그러나 그
아들들 준 세명은 장가도 가지 않았는데 아이를 낳았고 큰 딸 수정이 역시 시집도 가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는지 모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작정서" 다 지키게 하면서
매일 규티 공책에 쓰게 하면서
작정서 젤 점수 높은 사람 거한 상금을 1, 2, 3등 주면서 그야말로 "그리스도인
자녀"로서 교육을 잘 시켰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녀석들이 집에서 분가하고 나서 얼마 안되어서
고작(?) 했던
일들이.. 결혼도 안하고 잠자리를 해서... 애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내가 들었으니..
그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너희들 정말 이럴 수 있어? 엄마한테!"
그 어느 녀석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성탄절이
다가왔을때 이전에 이 녀석들과 함께 성탄절 파티 한 것이 기억났다.
다들 같이 먹고.. 춤도 추면서 (아프리카는 춤
문화임) 선물교환.. 간증 시간 등 등.. 정말 너무나 즐거웠던 우리 대가족의 성탄파티!!
이번에는 그냥 조촐(?)하게
남편. 나. 수진이.. 이렇게 하자 했더니 수진이가 "엄마 그래도 오빠들 부르자! 언니도 부르고!! 다들 오라고
하자!"
수진이가 간곡히(?) 언니. 오빠들 다시 불러서 성탄 파티 하자 그러기에 내가 수진이 한테..
"너는
정말 마음도 좋다! 넌 정말 그러고 싶니? 나는 아무도 꼴도 보기 싫다!"
수진이가 엄마가 그러면 안 된다고.. ㅋㅋ
(주여..~~ 그래서 알았다 하고..)
오빠들 다 집에 성탄 때 오라고 연락하라 그랬다.
성탄때는 다들
시간을 못 맞추어서 새해 신년예배 드리는 1/1일 집으로 올 수 있다 해서리.. 그럼 그 날 오라고 했다.
그 날은
내가 설교를 한 날이었다. 설교할 때 보니.. 아들 녀석들.. 몇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앴다.
아이들 온다고 그 전날
스파케티소스를 잔뜩 만들어 놓았다. 아침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떡볶기도 만들어 놓았다.
우리 아이들은 아프리카 아이들이지만
내가 한국 음식으로 먹이기도 한지라.. 다들 한국음식을 좋아한다.
오라고 한 시간에 하나씩 둘 씩 아들들이
나타났다. 7명 다 오고 딸 수정이만 오지 않았다.
한국음식 식탁에 얹어 놓으면서 "너희들 한국 음식
그리웠지?" 그랬더니.. 다들 끄덕 끄덕!!
이 녀석들은 김치도 얼마나 잘 먹는지 모른다!
밥 다 먹고 난 다음
한명씩 지나간 시간들 어떻게 지냈는지.. "인생보고" 시간..
결혼한 녀석들은 자기 자식들 이야기도 하고.. 결혼 안
하고 애 낳은 녀석들은 이제 결혼할 거라고.. 말 하고..
그 중에 리틀 존이라고.. 키가 작은 아이 존이라고
있었다. 나에게 선물을 준다.
선물을 보니.. 아주 작은 곰 인형인데 "I love you" 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곤 리틀 존이 말한다. "엄마! 여행 많이 다니시는데 여행가방 안에 꼭 이거 넣고 다니세요! 그리고
우리가 속을 썩힌것은 사실이지만 꼭 기억해 주세요! "저희는 엄마를 사랑해요! 꼭 이거 가는 곳 마다 갖고 다니셔야
해요! 우리가 엄마를 사랑한다니까요!"
참으로 조그만 인형이었다. 값으로 따진다면.. 아마 이 녀석.. 2000원 이나
주었을까? 멋있는 곰 인형도 아니고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그런 조그만 곰 인형..
물끄러미 " I love you"라고
곰 인형 배에 쓰여있는 글자를 보면서 울컥 눈물이 났다.
녀석들... 애미 속을 그렇게 썩혀 놓고도...
그날 우리는 식사 이후 가족예배를 드렸고 남편은 아들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나 역시..
지나간 일들은 잊자고 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너희들 사랑하고.. 그리고 축복한다고..!! 없는 것을 있는 것 처럼
여기는 것도 믿음이지만 있었던 일들을 없는 것 처럼 여기는 것도 믿음이니 새롭게 다시 잘 시작하도록 하자고!!
나는
이들의 친부모가 아니다. 사랑해 본들.. 뭐.. 얼마만큼 하겠는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 보내 주고.. 큐티
가르쳐 주고.. 작정서 지키게 하고..
그닥지.. 거창(?)하게 애들 키운 것도 없다.
아이들이 분가하기까지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회에 기반 잡기까지 기술학교 보내 주고 대학교 간 녀석들 대학교 보내주고..
각자 살 집들
매달 렌트비 대주고 혼자 먹고 살 생활비 다 대주고.. 교통비 대 주고..
이래서 아이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난 다음
3-4년까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렇게 도와 주었어도 돌아온 것은 말씀대로.. 배운대로 살아 주지
못한 자식들에 대한 "배신감"이긴 했으나..
그 배신감과 함께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도와 준 그대로 잘 살았나? 나는
주님을 배신한 적이 없었단 말인가? 생각하면서.. 반성하기도 했다.
내 양아들들을 다시 품을 때의 마음과 오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품겠다고 하시는 그 말씀의 공감대가
감히 비교가 될리가 있겠는가
마라난..
지난 2015년.. 내 개인적인(?)삶에 가장 억장이 무너졌던 경험이 바로 키워 놓은 자식들에게 받은
배신감이었는지라...
주님이 왜 나에게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이래 저래.. 생각도 많이 해 보고 어려운 감정을
눌러도 보고 달래도 보고..
그 가운데 나를 가장 지켜 주었던 것이 바로 "말씀묵상"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 때
기도로 함께 해 주었던 모든 분들의 도움 역시 나를 지켜 주었었고..
오늘 묵상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번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감사를 드린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그의 마음이 패역한
백성들을 향하여 돌이킴을 하시게 한 이유는 바로 그 안에 계신 "그 분의 자녀들을 향한 긍휼한 마음의 불붙음"이라
하시니..
나를 향한 그 분의 긍휼하심이 얼마나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요 또 은혜인지..
글로 다 형용하지
못할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그 분의 사랑!
"내가 나의 맹령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호세아
11:9)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이루 말로 다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주님을
사람들은 왜 믿지 않는것일까요! 이렇게 좋은신 주님이 도데체 왜 싫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좋은 주님의 사랑을 왜 모른다
하는것일까요!
주님이 우리를 향하여 "긍휼이 온전히 불 붙듯하다"는 그 말씀이 저를 울컥 울컥 감격하게
만듭니다.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다시는 사랑하지 않을것이라는 그 말씀까지 번복하면서 다시
사랑해 주시는 그 지극한 긍휼의 마음
평생 기억하면서 살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종일 기쁘시면 좋겠습니다.
누구.. 하나라도.. 주님 속 좀 안
썩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저는 이 기도를 묵상 마칠 때 꼭 합니다.
누구 하나는.. 누구
하나는..
주님 속 좀 안 썩히고.. 주님에게 기쁨과.. 위로가 되어 드리고 싶은 그 마음에 이 기도문을 오늘도
읆조려 봅니다.
누구 하나는.. 누구 하나는..
주님 보실 때 마다.. 기쁨이 되어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주님 아프지 마삼!!
외울 말씀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