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을 함께 해 나갈 때 흔히 한 배를 탄 운명이라고 한다. ‘한 배를 타 보아야 속을 안다’란 속담은 특히 역경을 같이 지내봐야 사람 됨됨이를 알 수 있다고 한 말이다. 그런데 의도하지 않았는데 풍랑 속에 원수와 함께 같은 배를 탔다면 어떨까. ‘만경창파에 배 밑 뚫기’ 같은 너 죽고 나 죽는 어리석은 짓을 할 사람은 없다.
이럴 때 바로 떠오르는 성어가 吳越同舟(오월동주)이다. 원수 사이인 吳(오)나라 사람과 越(월)나라 사람이라도 같은 배에서 풍랑을 만나면 서로 돕기를 좌우의 손이 함께 협력하듯이 한다고 병법서인 孫子(손자)서 가르친다.
같은 배(同舟)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共濟)는 이 성어도 출처가 같은 손자라고 한 곳이 많지만 실제 뜻은 같아도 유래는 다르다. 중국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 宋(송)의 역사가 范曄(범엽)이 편찬한 ‘後漢書(후한서)’에 朱穆(주목)이 한 말로 나온다. 자가 公叔(공숙)인 後漢(후한) 말기 학자 주목은 학문을 좋아하고 성품이 강직해 바른 말을 잘해 忠諫者(충간자)의 비유가 되었다.
당시 척신 梁冀(양기)는 여동생인 태후와 함께 황제를 마음대로 폐하고 세우며 안하무인의 횡포를 부려 모두 꺼렸다. 주목은 양기와 함께 환관들의 횡포를 보다 못해 상소를 올려 처벌하기를 권했다. ‘무릇 장군과 재상, 대신은 모두 군주와 한 몸이므로 수레를 함께 타고 달려야 하고 배도 함께 타고 물을 건너야 하니 수레가 기울고 배가 뒤집히는 환난에도 함께 해야 합니다(夫將相大臣 均體元首 共輿而馳 同舟而濟 輿傾舟覆 患實共之/ 부장상대신 균체원수 공여이치 동주이제 여경주복 환실공지).’ 輿는 수레 여, 馳는 달릴 치. 주목은 상소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울분 끝에 종기가 나 죽었다.
방송지원부
방송기술부
말은 하루에 십리 노새(駑)도 열흘이면 또한 십리를 갈수있다.
뜻
둔한 말이 열흘 동안 간 거리. 준마가 하루 동안 간 거리를 노둔한 말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가면 열흘이면 갈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리 재주가 없는 사람이라도 노력하면 재주가 있는 사람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흙이 쌓여 산이 이루어지면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 물이 모여 못을 이루면 교룡이 생기듯이, 선을 쌓아 덕을 이루면 신명(神明)함을 스스로 체득하고 성스런 마음이 갖추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반걸음을 떼지 않고서는 천 리 길에 이르지 못하며, 작은 개울이 모이지 않으면 강이나 바다를 이루지 못한다. 천리마라도 한 번에 열 걸음을 뛸 수는 없지만, 둔한 말이라도 열흘 동안 갈 수 있는 것은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르다가 그만두면 썩은 나무도 자를 수 없지만, 새기기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쇠나 돌에도 새길 수 있다. 지렁이가 손톱이나 이빨의 날카로움이나 힘줄이나 뼈의 강함이 없어도 위에서 진흙을 먹고 아래에서 지하의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은 그 마음가짐이 한결같기 때문이다.(積土成山, 風雨興焉. 積水成淵, 蛟龍生焉. 積善成德, 而神明自得, 聖心備焉. 故不積蹞步, 無以至千里. 不積小流, 無以成江海. 騏驥一躍, 不能十步, 駑馬十駕, 功在不舍. 鍥而舍之, 朽木不折, 鍥而不舍, 金石可鏤. 螾無瓜牙之利, 筋骨之强, 上食埃土, 下飮黃泉, 用心一也.)」
이 이야기는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나오는데, 순자는 ‘노마십가’라는 말을 들어 배움을 이루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된 의지와 실천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노마십가’는 《순자 〈수신(修身)〉》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천리마는 하루 만에 천 리를 달리는데, 둔한 말도 열흘 동안 달리면 이에 미칠 수 있다.(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則亦及之矣.)」
말이 멍에를 지고 하루 동안 수레를 끌고 다닐 수 있는 거리를 일가(一駕)라고 한다.
개인 액자 -죽필-
(방송지원부)
남우충수: 남아도는 악사로 머리수를 채운다
뜻
소리 나지 않는 피리(피리를 불 줄 모르는 악사)로 숫자를 채우다. 가짜 악사로 머릿수를 채우다. 능력이 없는 자가 능력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거나, 실력이 없는 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제(齊)나라 선왕(宣王)은 우(竿, 생황) 합주를 좋아했는데 반드시 3백 명이 함께 불도록 했다. 남곽처사(南郭處士)가 왕을 위하여 우를 불겠다고 청원하였다. 선왕이 이것을 기뻐하여 수백 명 분의 곡식을 주었다. 선왕이 죽고 민왕이 즉위했다. 민왕은 한 사람 한 사람씩 부는 것을 듣기 좋아했다. 처사는 도망쳤다.(齊宣王使人吹竿, 必三百人. 南郭處士請爲王吹竿, 宣王說之, 廩食以數百人. 宣王死, 涽王立. 好一一聽之. 處士逃.)」
이 이야기는 《한비자(韓非子) 〈내저설 상(內儲說上) · 칠술(七術)〉》에 나온다. 한비자는 여기에서 임금이 신하를 다스리는 일곱 가지 방법을 설명했다. 첫째, 여러 가지 일의 발단을 참고하여 볼 것, 둘째, 잘못된 일은 반드시 처벌하여 위엄을 밝힐 것, 셋째, 잘한 일은 상을 주어 능력을 다하게 할 것, 넷째, 매일 신하들의 의견을 들을 것, 다섯째, 의심나는 명령을 내려 보고 일부러 잘못된 일을 시켜 볼 것, 여섯째, 아는 것을 숨기고 물어볼 것, 일곱째, 말을 거꾸로 하여 반대되는 일을 시켜 볼 것 등이다. 한비자는 그 실례로 남곽처사가 피리를 불 줄도 모르면서 연주 때마다 악사들 속에 섞여 흉내만 내는 방법으로 후한 대접을 받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여기에서 ‘남우충수’라는 말이 나왔다. ‘남취(濫吹)’, ‘남곽남취(南郭濫吹)’, ‘남우(濫竿)’라고도 한다.
첫댓글 반주 좋고.....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