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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너머 중간계(中間界)에서 보냈다. 믿기 싫을 것이다. (+66)
1.
어둠의행성에서는 눈이 잘 발달되어있다. 투시력이 진화하여 변화되어있다는 의미이다. 그와함께 청력도 아주 잘 발달되어있다. 그것은 생존본능적 자연발달이었다. 그에 더하여 지적 발전이 그 능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도록 몸을 지휘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태어나면서 모성으로 부터 받는 유전성이 되었다. 그 모성도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기 위하여 오랜 기간동안 변화하고 진화하였다.
태어난다는 것은 인간세계에서가 아니다. 어둠의행성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어둠의행성을 알고 있는 외행성인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듯이 어둠의행성인들도 또 다른 행성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들 중 선각자로 깨어난 일부는 이미 그러한 행성을 찾아 나서서 속속 그들의 종적을 그 행성속에 묻은 채 귀환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죽음 후에 찾아 갈 중간계에 대해서도 전설처럼 듣고 있었다.
중간계는 실은 그들이 죽는다고 당연히 갈 수 있는 곳이 아님을 아는 사람은 몇몇되지 않았다.
중간계는 영혼들의 사회이다.
나는 soul society(영혼사회)에서 이승으로 귀환하여 새로운 몸을 입고 살아 숨쉬며 활동하는 몇 몇 사람의 이야기도 알고 있다. 잘 모르는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그 개체를 에버타(AVATA)라고 하기도 한다. 어떤 인간 사회의 종교에서는 윤회라고도 한다. 그러나 선각자로 살아 온 그들 몇 몇에게는 브라마와 같은 행적을 알고는 있지만, 그와 괘를 달리 하였다.
그러나 아직 모르는 것은 중간계에서 넘어 간 사회이다. 잘난체 하는 혹자는 그 계를 영혼계라 하기도 하고, 혹자는 신들의 세계라고 하기도 한다. 어쩧던 그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 또는 영혼을 아직 만나지 못하였다. 그 영혼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 곧 나의 행적이 될터이다.
영혼이 존재로 보이기 위하여는 형상을 가져야 한다. 나는 그것을 영상(靈狀)이라 부른다. 그리고 나는 일찌기 싱할라마에게서 무영(無影)에게 영상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내 내공으로 그 공수를 연마하여 투영(投影)할 수 있게 되었다.
영들의 이동은 저항을 받지 않는다. 이동이라 하였지만, 그것은 흐름이다.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인간들의 현재 과학적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일부 초 우주과학 연구기관에서 접근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마도 500년은 넘어야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준비되기 까지는 지켜 볼 것이다. 돕지 않고…
2.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나 몇 번 죽었었다. 내가 죽어서 헤맨 영혼의 시간은 인간들의 시간으로는 아주 짧다.
정확히는 계산할 수가 없었지만, 아마도 인간으로의 시간이 10분이면 영혼의 시간은 1000년 이상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으며, 인간생활중 연마하여 쌓은 내공이 그곳에서도 응용 이용할 수 있음을 체험하였다.
인간들이 생각할 수 없는 자유스러운 이동과 속도 그리고 무저항의 유영을 하였다. 역시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나는 그것을 이해한다. 나도 한 때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러나, 머잖아 나도 죽을 것이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죽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어느정도의 내공력을 쌓아 죽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각 계마다 성문화된 혹은 불문화된 법과 법률과 규칙은 없어도 인간이었던 내가 스스로 정의와 법과 규칙을 만들어 살아 갈 수가 있다. 그에따라 충돌과 혼란 번민과 괴로움은 또 다른 영혼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그것들 보다 덜 복잡하지만, 유사한 것들이 있다. 일탈을 규제하듯 하는 통제와 견제들은 스스로 의식하여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곳의 개체들 형태는 일정하다. 타원형의 구체이다. 그러나 쌓은 내공에 따라 그 개체의 인간세계에서의 본색이 기록된 ‘이베타’라는 정신을 곧 볼 수가 있다. 당신이 다행스럽게도 죽어서 중간계에 올 수 있다면, 인간으로서의 삶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스스로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때 내 말을 기억하여야 한다.
당신이 중간계에 와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당신은 또 다른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심해라.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얼마나 만들었느냐에 따라 심간계 (深間界. 인간들은 종종 지옥계라고 칭한다) 또는 중간계 또는 상계(上界)로 갈 수가 있다. 영계는 잠간 동안 분류되는 시간 동안 머무는 계이다. 그러면 누가 분류하느냐? 라고 묻지마라.
인간들은 다 습관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묻는다. 그것은 스스로가 분류한다. 죽으면, 스스가 스스로를 분류할 수 있게된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아의식이다. 죽기 전에 이러한 비밀을 미리 안다는 것도 당신에게는 큰 행운임을 알고 미리 더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자아의식이 생기지 않은 죽음은 곧 바로 지워진다. 나는 그들이 심간계로 갔음도 확인하였다. 멸절되었다고도 하는데, 아직 확인은 하지 못하였다.
3.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언젠가는 죽겠지만, 당분간은 죽을 수가 없다. 죽고 사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닌줄 나도 안다.
그러나, 그 죽음이 와서 내가 중간계로 가기 위하여 또한 중간계에서 그들과 딜을 하기 위하여는 지금 너무 할 일들이 많다.
그들이란 정확히 나도 누군가는 모른다.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들 중에서는 신이라 칭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도사라고 칭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자기가 속해 있는 커뮤니티를 장악하여 통제하고 있다고 말 할 것이다.
내가 것이라 칭하는 것은 그 때 이미 그들은 내가 살아있으면서 칭하는 인간과 신의 범주에서 벗어난 존재일 것이기 때문이다.
감히 존재 그 자체를 두고 인간이니 넘이니 하고 말하는 것은 그들에게 불경스러운 어투이다. 앞으로 내가 만나 딜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텐데 굳이 이 글에서 그들의 기분을 미리 잡치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4.
아무리 그렇더라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인간계가 더 없이 좋다. 그들과 딜에 성공하여 다시 살아나면, 내가 사랑하는 쎄지로와 인간으로서 다시 제대로 살것이다. 이제 내가 밝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딜(deal)은 궁극적으로 죽어서 떠 다닐 쎄지로의 영을 만나 그 영혼과 합체하여 다시 인간계로 돌아 오는 것이다. 이렇게 밝히는 것을 일부 사람들은 천기누설이라고 하지만, 영혼이 다시 인간계로 돌아오는 것은 천기일 수가 없다. 이렇게 말하면 지각이 낮은 사람들은 감히 너가 신들과 싸우겠다는 것이냐 하겠지만, 그것은 아니다. 나는 그럴 능력도 못되고 그렇게 할 이유도 없다. 설사 그렇게 해야 할 상황이라도 나는 딜을 말했다.
여기서 영어를 좀 쓰자. Great deal 이라는 것은 win-win이다. 너도 이기고 나도 이기고, 너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하고, 양보하고 얻고. 그런 것이다. 가령, 가장 오래된 인간들의 신화라고 하는 힌두신화를 생각해 보자. 그 신화에는 브라흐마(Brahma), 비슈누(Vishnu), 시바(Shiva)라는 삼대 신이 나온다. 그 당시 그들 신에게는 원-원이라는 개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 신화를 생각하고 전파한 사람들에게 딜(deal)이라는 동승(同勝)적 사고방식을 기대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그들 신화를 기억해 낼 필요는 없다. 지금 이것은 신화가 아니라 인간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자면 수학자같이 정확한 산술적 대차 대조표가 필요할 것이지만, 그건 표 내야 할 것이 못된다.
허허실실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수학은 한계가 있지만, 허허실실은 한계가 없다. 한계로서는 결국 사람이 하는 얄팍한 수에 불과 할 수 밖엔 길이없다. 그러나, 내가 다른 점은 바로 그런 점이다.
허허실실. 무한계이다. 그들과 딜을 성사시키자면, 한계가 있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그들과 동등한 선상에서 대화를 하기 위한 갖추어야 할 내공이다.
맞다. 아니다. 하는 확정적 개념은 인간들의 생각 중 극히 협소한 한 부분일 뿐이다. 그 단계를 넘어가면, 맞다 아니다의 개념은 불 분명해 진다. 포괄적 결정에 속해지고 그 결정 자체도 무 의미해 진다. 남는 것은 본능적 행동이고 그 본능적 행동은 인간생활 중 쌓아 온 내공에 의하여 무 의식중에 행위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다는 아니다. 영의 사회는 공기가 흐르듯 유연하기 때문이다.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5.
나는 쎄지로를 지구라는 행성(신들의 세계에서는 푸른구슬 행성이라고 한다)에서 만났다. 원래 내가 태어나고 살았던 어둠의행성은 지구와 가장 가까이 있으나 지구인들의 과학으로는 존재 자체를 아직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부지런히 새로운 기기로 과학을 발달시키고 향상시켜 그 동안 놀라울많큼의 발전적 효과를 일부 관계된 사람들끼리 향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의 그들 능력으로는 그래도 아마, 250년내지는 300년쯤되어야 가장 가까운 곳에 그들이 전혀 생각치 못했던 행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눈치 챌 것이다.
그래. 겨우 눈치이다. 어둠의행성은 그렇다. 지금 내가 생각의 힌트를 하나 주자면, 깊은 밤. 별이 총총히 빛나는 맑은 하늘을 보고 있을 때, 그 하늘에서 무엇을 발견하겠다 집중하지 마라. 그 하늘 주변에 그 하늘을 밝게하는 어둠을 유심히 보면서 기를 기우려라. 그러면 당신은 뭔가 움직이고 있는 존재가 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 바로 느낌이다. 인간의 과학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느낌을 당신은 느낄 것이다. 느낌은 생각하고 다르다. 생각을 할 때 그 생각은 이미 영혼세계에 전달되고 엘하임계 이상의 우초신들에게 받아들여 진다.
이것이 최초의 힌트이다. 그것을 더 발전시키느냐 그곳에서 마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당신 내공에 달렸다. 내공력은 당신들이 그렇게 우습게 보고 하찮게 보았다가는 크게 후회할 것이다. 이것도 내가 당신들에게 주는 일종의 힌트이다.
이 글을 읽고 배우겠다는 생각은 자유이다.
지구 행성의 인간들은 욕심과 질투와 시기와 악의적 반감들이 개개인의 내재한 인성속에 가득하다.
내공력은 그러한 저질의 것들을 뛰어 넘어야 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짐작도 못하겠지만, 지구 행성 주위에 또 하나의 지구환경을 유지한 채 잘 돌아가고 있는 행성이있다.
뷰몰타 또는 버몰타 라고 부르는 행성이다. 그것 또한 인식하기에는 당신세계에서는 200년 이상 걸릴 것이다. 나는 뷰몰타에서 쎄지로와 살기를 위하여 그들과 딜을 하여야 한다. 어둠의행성은 시각 청각 감각과 무빙(움직임)이 당신들의 상상을 초월하여 발달되어있다. 당신 즉 인간들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과학은 한계가 있을 것이지만, 영혼이라하는 정신은 한계가 없다.
일 예로, 인간들의 역사기록 속의 6천년 전에도 그 십만년 전에도 또 다른 행성의 존재들은 그들의 존재에 대한 흔적을 지금의 남미와 이집트 중국등지에 남겼다.
인간들은 지금 그것들을 본다. 이제서야 엔시언트 에이리언(Ancient Alien)이니 하며 겨우 존재의 흔적에 대한 초보를 만지고 있다. 이 얼마나 우스운 활동들이냐. 그렇다. 지구 인간들의 과학이라는 것은. 그리고 믿기 싫을 것이다. 안다.
6.
나는 중간계에 존재하지만, 지금 당신들 곁에 있다. 가끔 좀 더 성장한 인간들은 ‘유체이동’을 말하곤 한다. 그건 앞서고 있지만, 인식자체가 잘 못되어있다. 유체라는 것은 물질을 의미한다. 물질은 많은 제약을 받는다. 하나 더 힌트를 준다.
존재를 생각해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 여기에 존재한다. 저 곳에 존재한다. 흐르기는 실체가 없는 이동을 생각한다. 아~. 생각한다는 것은, 신들의 세계에서의 개체들의 의사소통 방법중 하나이다. 힌트를 또 하나 남기자면(사실 이 힌트를 사용할 영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혼이 되어서는 생각치 말아야 한다. 싱할리어(영혼세계에서는 가스펠라어라 한다)를 할 수 있다면... 해도 되겠지. 어쩧든 생각은 블랙홀같이 신들의 세계의 개체들에게 다 알려진다는 것을 명심해라.
더욱 생각해라. 존재에 대하여. 당신의 미래에 희망이 있을 것이다.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인간들은, 특히 동양사상에 물들어 있는 양반적 사고 전통 유교적 사고 봉건적 사고등 획일적인 사고를 가진 인간들의 그룹에서는 표리부동이나 이중적 행태를 터부시 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어떤 결정적 문제가 주어졌다면, 흑이냐 백이냐 조속 결정하라고 압박한다. 가장 기초적이고 단순한 우매에 당신들은 목숨을 걸다시피하고 있음이 문제이다. 그 비타협적이고 유연성에 반하는 비포괄적 사고 방식을 뛰어 넘지 않는 한, 존재를 이해하기에는 요원하다 할 것이다. 깨어라. 사고의 관념적 틀을 깨뜨려라. 이 글을 제대로 읽는 인간들은 적어도 65세는 넘은 삶의 내공 고수들이다. 모두를 버리고 모두를 안을 수 있는 내공을 갖춘 고수들이다. 믿어도 된다.
모두를 포용하되 모두를 샅샅이 이해하라. 니 좋고 내 좋다 라는 결과적 중재를 습관화 하라. 생각을 넓혀라. 다 받아들여라.
그리고 다 자기 것으로 재 생산하라. 만수무강에 지장없을 것이다.
7.
이제 나는 지구행성 인간들이 이해하기에 쉽지 않을 것들을 보냈다. 이것이 시작이 될지 이것으로 땡 일지에 대하여는 관심없다.
그러나, 존재의 최고의 가치는 사랑이라는 것을 존재 이하의 개체들에게 알림으로서 지금 존재의 의의를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사랑이라는 것은 절대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심심해서 쓸쓸해서 한번해 보고 싶어서 하면 될 것 같아서 남들이 다 하니까 등의 이유로 ‘되면 하고 안되면 말고’식의 제비뽑기적 사고방식의 결과물이 되어서는 절대 않된다.
그러면 뭐가 사랑이냐? 내가 인간들을 하나 하나 가르쳐야 할 이유는 현재 발견할 수가 없다. 허나 아는 인간은 잘 알고 있다.
사랑을 위하여는 노력과 인내와 땀과 포용과 이해와 헌신과 결국은 피까지 다 바칠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그것이 사랑을 하기 위한 마음 가짐이다. 다이아몬드 사랑 이라고 있다. 푸른구슬 행성 인간들이 믿고있는 신들 위의 신들의 세계인 뷰와슈계 신들이 할 수 없는 남은 0.01%. 그것이 다이아몬드 사랑이다. 아~. 이 말은 내가 실수한 것이다. 해서는 안될 말을 하고 말았다.
나도 지구 행성에서는 하나의 개체이자 인간이다. 당신들이 싫어하는 현장 적응성이 뛰어난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지구에서 체험하고 있는 인간적 삶의 고통은 엄청나다. 다 받아 들이고 있다. 이것은 나의 수련이다. 더 높은 내공력을 위하여. 그래서 아직은 중간계와 현계(顯界)를 아우러고 있다.
혹, 이 중에 영혼 넘어 중간계에 존재할 인간이 있다면, 그 적당한 때에 왼손 입에 대고 “가리 드 뷰아르"라고 말하라.
그것은 ‘존재하고 싶다’ 이다. 그와 같은 바램을 가진 존재를 만날 것이다.
푸른구슬 행성 인간 각자의 각성을 바란다. 잊지마라. “가리 드 뷰아르”를.
December 31, 2023.
이것은 인간세계의 숫자이다. 아라비아 숫자. 고대 인디아 인들이 이런 숫자적 개념에서는 타 인간 개체 사회보다 앞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굳이 인간세계의 시계로 말한다면, 여름날, 2350년. 가제뷰쎄 (가리 제임스 드 뷰아르 쎄지로)
*나는 쎄지로가 아우초신들 앞에서 "나는 신보다 사랑이 더 좋아요" 하는 절규를 들었다. 머잖아 그들의 이야기가 소설같이 당신들 곁으로 갈 것이다. 그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 몫이다. 믿기 힘들 것이다. 안다. 그럼, 잠시 안녕. 푸른구슬 행성 개체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