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1:18,24절)
기독교가 십자가를 매우 귀중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십자가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나 목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차제에 십자가와 십자가의 도(the message of the cross)를 명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루터가 말한 것처럼 십자가는 천국의 플랫폼입니다. 십자가는 육체의 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넘어가는 관문입니다. 지상과 하늘나라와의 국경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만이 아니고 십자가의 도, 곧 십자가의 말씀입니다. 나무 십자가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십자가가 그만 경배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십자가 자체는 하나의 나무일 뿐입니다. 그리스도가 못 박히신 그 나무 십자가라 할지라도 경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십자가의 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렇게 나오면 귀를 쫑긋하게 듣고 그 진행을 추종해야합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다음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부활체의 모습을 보이시고 하늘로 올라가신지 10일 후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이로써 주의 십자가는 하늘로 올라가는 노정의 한 코스임을 알게 합니다. 물론 거기서 피 흘려 죽으시므로 우리의 죄와 사망에서 속량되었고, 그 놀라운 고통을 이기신 승리의 현장이긴 합니다만 그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베풀고자 하신 은총이 하늘에 가득한 것을 놓치면 가난한 기독교인이 됩니다.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받고 있는 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지혜가 됩니다. 여기서 구원을 받고 있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 대해 잘 생각해 보세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따라 건너 온 사람들입니다. 구원은 육체의 자리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건 표적일 뿐... 부르심 또한 십자가 건너에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롬8:30) 육체를 영화(靈化)시켰으니 영화(榮化)된 것이 아닙니까? 그 자리에 서서 성화니 영화니 제 스스로 힘으로 세워나가려니 영화란 말은 죽은 다음에나 이루어질 것 같이 말하지요. 이 사람들은 천지(天地)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그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통해 깨달은 말씀을 따라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도(道) 곧 길이란 목적지로 가는 과정일 뿐 목적지가 아닙니다. 길 자체가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십자가를 붙드는 이유는 주를 따라가기 위해 육신의 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전환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죄 사함과 영생과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을 획득하고 회복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그리스도가 못 박힌 십자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절대적인 중요성은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그리스도 안으로 옮길 유일무이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성령의 콘퍼런스(conference)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곧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