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 전남 벌교에 있는 해발 192m 나지막한 산인 부용산에 1947년 목포 항도여중 국어교사였던 박기동씨의 여동생이 결핵으로 꽃다운 24세 때 죽어 부용산에 묻고 내려 오면서 애절한 오라버니의 심정으로 지은 시에 이듬해 같은 항도여중 음악교사였던 안성현씨 제자인 18세 여학생이 죽자 박기동씨의 시 부용산에 곡을 붙인 노래가 바로 부용산인 것입니다.
이런 순수하고 서정적인 이 노래가 여순사건 이후 빨치산이 즐겨 불렀다는 이유에 세월을 잘못 만나 1960~1980년대 사이에 저항가요로 한 시대를 장식한 죄만으로 40여 년 동안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그후 안치환씨가 구전가요를 음반으로 만든 후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작곡가 안성현씨가 무용수 최승희씨와 월북을 하였고요.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에 처음 곡을 붙힌 사람이 바로 안성현씨입니다만 현재의 엄마야 누나야에 곡을 붙인 작곡가는 김광수씨입니다.
지금도 안성현 선생의 행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직 음악 밖에 모르는 로맨티시스트인 그가 빨치산 활동을 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선택했다는 점입니다. 일설에는 6.25때 일시 이남으로 내려온 최승희씨가 이북에는 예술 활동하기 좋은 곳이라고 데리고 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동경에 유학할 때 친하게 지낸 친구 사이라고 합니다. 이 노래는 안치환, 한경애, 이동원 등이 노래하였지만 애절함은 윤선애씨가 으뜸인 것 같습니다. 본래 이 노래는 1절만 있었는데 시인 박기동씨가 죽기 전에 2절을 만들어 안치환씨에게 전화를 해 꼭 2절까지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가사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 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 지고
부용산 봉우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 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병든 장미는 시들어 지고
첫댓글 도올 부용산 https://youtu.be/0QgUKP2NzFw?si=qQpgQl4JLdtvDtc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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