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편 호러 판타지
고스트 슬레이어
Ghost Slayer
붉은 벽돌 무당집
chapter 4
미리는 눈을 떴다.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천장과 벽을 두르고 있는 사방 연속 무늬였다. 낯선 무늬였다.
집이 아니다.
미리는 벌떡 일어났다. 몸을 움직이려니 오른쪽 어깨에 아련한 통증이 밀려왔다.
대체 여긴 어디지?
찬찬히 주위를 살폈다.
자신은 지금 침대에 누워있었고, 바닥에는 붕대와 솜 등의 의료도구들이 늘려 있었다. 벽에 걸린 달력에는 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수영복 모델이 앙증맞게 웃고 있었다.
“여관인가?”
미리는 침대에서 내려와 천천히 걸었다. 걸을 때마다 어깨가 쑤셨다.
뭔가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현재로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고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얬다.
주전자가 놓인 테이블에 메모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이 번호로 연락하길-’
그 밑에는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었다.
“참, 학교는?”
하면서 달력을 보았지만 오늘은 노는 토요일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수영복 모델의 앙증맞은 미소만 한 번 더 봐야 했다.
“말해보세요.”
미리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오후 한 시경, 미리는 검은 양복의 남자와 마주앉아 있었다. 핫초코와 토스트를 주문한 상황이었지만 아직 아무 것도 도착하지 않았다.
“뭘?”
남자는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다 말고 물었다.
“나에게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거 같은데요?”
“아- 있지. 있고말고.”
“그럼 해보세요.”
“그런데 해줄 말들이 너무 많아서 무슨 말부터 해줘야할 지 모르겠어.”
“그럼 내가 물을 테니 답하세요.”
“그거 전설게임 같은 거니?”
“전설게임이 아니라 진실게임이에요.”
“뭐 어찌됐건-.”
“이름이 뭐죠?”
“이름? 원래 이름? 아니면 지금 이름?”
미리는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원래 이름은 뭐고, 지금 이름은 또 뭐죠?”
“원래 이름은 마계에서의 이름을 말하는 거고, 지금 이름은 이 세계에서의 이름을 말하는 거지.”
“마계라 함은 악마세계를 말하는 건가요?”
“악마? 좀 과격한 표현인데,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 어차피 너희가 생각하는 악마와 우리가 생각하는 악마의 의미는 좀 다르니까.”
미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깊이 파고들수록 복잡해져갔다.
“알았어요. 진짜 이름을 말해봐요.”
“AT30859473620216843.”
“그게 이름이에요?”
“왜? 마음에 안 들어?”
“아뇨. 됐어요. 이제부터 그냥 줄여서 에이티(AT)라 불러도 되겠죠?”
“뭐 좋을 대로. 실은 마계에서도 종종 그렇게 줄여서 불리곤 했었어. 하지만 내 이름은 정확히 AT30859473620216843 이라는 걸 잊지 말아줘.”
“벌써 잊었어요.”
“나도 네 이름 잊어버릴 거야.”
그 때 주문한 핫초코와 토스트가 나왔다.
“일단 먹고 하자. 배고파 죽겠어.”
“마계에서도 이런 걸 먹나요?”
“이런 것과는 좀 달라. 하지만 이 세계 음식도 먹을 만하더군. 특히 이 핫초코.”
“악마라면 으레 사람을 잡아먹는 거 아닌가요?”
“…….”
*
“우선 어젠 어떻게 된 건지부터 말해 보세요.”
“어제?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말하며 에이티는 새로 주문한 핫초코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런데 뭘 말하라는 거지? 어제 넌 오른쪽 어깨에 칼을 맞고 쓰러졌잖아. 내가 그걸 치료해줬고. 하지만 넌 아직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안 했고. 그게 다야.”
“내가 왜 여관에 있었던 거죠?”
“네 집을 몰랐으니까. 우선 급한 대로 여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어.”
“좋아요, 그건 그렇다 치고.”
미리는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힐끗 보았다.
“어깨 상처는 어떻게 치료했어요?”
“날 뭐로 보는 거야? 난 마계대왕님을 모신 제 2 호위무사라고. 치료마법 쯤은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마법으로 상처를 치료했다고요?”
“응- 인간들의 의술보다 몇 배는 더 회복이 빠를 거야.”
“대단한 마법사시네요.”
“뭐, 이제라도 알아 모시니 다행이군.”
“그럼 마법으로 다른 것도 할 수 있어요?”
“말만 해봐.”
“돼지 같은 걸로 변신해보세요.”
“그런 건 못해.”
“짚신벌레 같은 것도 괜찮아요.”
“못한다고 그런 건.”
“이 테이블을 금으로 만들어 봐요.”
“못해, 그것도.”
“할 줄 아는 게 대체 뭐예요?”
“손으로 불을 만들 수 있어.”
“그런 건 나도 할 수 있어요.”
미리는 테이블 위의 라이터를 집어서 찰칵, 하고 불을 켰다. 에이티는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다 훅, 하고 입으로 불어서 껐다.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중요한 질문.”
미리는 얼굴을 슥 앞으로 내밀었다.
“지구에 온 목적이 뭐죠?”
에이티도 얼굴을 슥 앞으로 내밀었다.
“게임이 스타트되었기 때문이야.”
그들은 테이블에 턱을 괴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게임을 하고 싶으면 오락실에 가면 되잖아요. 나랑 무슨 상관이죠?”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어.”
“말해보세요.”
“말해주지, 이 우주와 이 지구와 대마계의 비밀을. 너희 인간들이 잘났다고 떠들어대는 과학이 얼마나 얕은 지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빙수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빙산의 일각이에요.”
태초에 사념이 있었다.
사념이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 사념은 떠오르는 것을 형상화했다. 어떤 것이든 형태가 있는 것들을 무수히 만들어냈다.
사념들이 모여 처음으로 체계적인 구조를 띠었을 때 그것은 사악한 기운의 덩어리였다.
“이해되니? 사념의 체계가 제일 먼저 이루어 낸 구조물이 것이 바로 악이라는 거야.”
에이티는 자못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악은 세력을 키우고 성장해서 보다 거대한 제국을 만들었다.
“그게 바로 내가 사는 곳, 마계야. 알겠어? 제일 먼저 마계가 있었던 거야. 그 후의 창조물들은 모두 마계에 의해 만들어진 하위 개념에 불과해. 놀랍지 않아?”
“나한테 무슨 기대하지 마세요. 전혀 놀랍지 않으니까요.”
“어째서? 이렇게 놀라운 진실을 듣고도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그동안 네가 배워왔던 것들과 전혀 다르잖아. 넌 어떻게 배웠지? 하느님이 천지를 창조했다고? 먼지와 가스가 별과 우주를 만들었다고? 킹콩이 인간이 되었다고?”
“이런 경우엔 킹콩보다 원숭이라고 하는 게 맞아요.”
“어찌됐건, 그런 식으로 배워왔잖아. 하지만 그건 죄다 틀린 소리야. 모든 것은 악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야. 심지어는 선도 악이 만든 거지. 어때 놀랍지?”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도, 그런 식의 허황된 가설쯤은 누구라도 상상해볼 수 있는 거잖아요. 별로 놀랍지도 않고, 신뢰도 가지 않아요.”
“후훗-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모양이군. 가슴으로는 이해가 됐는데 이성이 받아들이질 못하는 건가?”
“뭐예요, 그런 자신만만한 말은? 가슴으로는 이해됐다고 말한 적 없어요! 죄다 엉터리 같으니까요!”
“조금만 생각의 깊이를 달리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문제야. 자 들어봐.”
그러면서 에이티는 핫초코를 하나 더 추가로 주문했다.
“생각해보면 사념의 속성은 ‘악’이야. 때문에 악이 최초가 아니었다면 이 세계는 영원히 무로 남았을 거야.”
“글쎄 그렇게 말해도 별로 감흥이 오지 않는…….”
“선이 뭘까?”
에이티가 미리의 말을 잘랐다.
“선이 궁극적으로 취하고자 하는 게 뭘까?”
그 때 주문한 핫초코가 나왔다. 에이티는 핫초코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미리가 답할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미리는 처음부터 그런 망상적인 질문에 답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무’야!”
에이티가 핫초코 빈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비를 베푸는, 평화스러운 상태. 이런 게 선이라고 한다면- 선은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없으면 되는 거야. 그러면 궁극의 목표에 도달하게 되는 거야. 피해를 주지 않을 대상도, 자비를 베풀 대상도 없다면 처음부터 그 목표에 도달하는 거잖아. 아무 것도 없으면 그거야 말로 평화 그 자체잖아.”
“궤변에 불과해요.”
“놀랍게도 그것 역시 창조주에 의해 계획되어진 것이야. 사실 객관적인 논리성으로는 이 우주의 진실에 절대로 도달할 수 없어. 창조주가 그렇게 수를 써 둔 거지. 궤변적으로 생각해보지 않으면 절대로 그 비밀을 알 수 없었던 거야. 꽤나 사악한 심보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 창조주가 ‘악’이니까.”
미리는 대꾸할 만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악’의 속성이 뭘까? 파괴야. 모든 형태 하는 것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파괴되기 위해서야. 따지고 보면 아주 간단한 문제야. 우리가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을 형상화하기 위해서야. 형상화하는 이유는 그것을 허물기 위해서지. 허무는 이유는 다시 생각하기 위해서야. 결국에는 그런 거야. 만들고 부수는 것. 부수기 위해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악이고, 그것이 악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세계가 존재하게 된 거야.”
여기까지 말한 에이티는 손가락을 탁 튕기며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핫초코 하나 더.”
“이제 그만 좀 먹어요. 내장이 다 녹아버리겠어요.”
“그보다, 이제부터가 진짜 중요한 얘기니, 잘 들어봐. 어째서 네가 ‘선택받은 자’인지를 얘기해 줄 테니.”
‘선택받은 자’ 얘기가 나오니 미리는 이제까지와는 달리 조금은 흥미가 생기는 것도 같았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마계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했지. 궁극적으로는 파괴를 위해서겠지만, 우선은- 유희를 위해서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겠지.”
“그러니까, 나중에 파괴하기 위해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건가요?”
“맞아. 너도 어릴 적에 모래성을 쌓았다가 부순 적이 있겠지? 그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쾌감 같은 걸 느끼곤 했잖아?”
“…….”
“재미있는 것은 정교하고 거대하게 만들어진 모래성 일수록 부술 때 쾌감이 더욱 커진다는 거야.”
미리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에이티는 계속 설명했다.
“마계에는 사념의 체계를 형상화 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이들이 몇 있는데 우린 그들을 ‘능력자’ 혹은 ‘마계법사’라 불러. 그들은 시간 날 때마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데 몰두하곤 하지. 그렇게 새롭게 창조된 세계를 우리는 ‘다른 세상’이라 부르지.”
“다른 세상? 엄청 뻔한 이름이네요.”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튼 그들은 지금껏 ‘다른 세상’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파괴하길 즐겼지. 그러던 것이 결국에는 능력자들끼리의 경쟁으로 번졌지. 능력자 한 명이 아주 정교하게 빚어진 ‘다른 세상’을 만들어내면 다른 능력자가 그것을 파괴하는 식이었지. 우리는 그것을 ‘배틀’이라 불러.”
“배틀? 엄청 생각 안 하고 지은 이름이네요.”
“그런 건 우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고- 어쨌든 배틀은 마계 최고의 게임이자 유희며 오락이야. 인기 배틀은 마계 전역에 실시간으로 방송을 내보내기도 하지. 이제껏 그런 식으로 무수한 ‘다른 세상’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전투를 치러야만 했지. 혹은 재앙을 맞거나, 파괴되거나.”
이 대목에서 에이티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알겠지, 이제? 이 우주가, 이 세계가 존재하는 이유를? 별이 탄생했다 사라지는 이유를? 이 세계는 거대한 힘을 가진 능력자들의 놀이터에 불과해.”
새로운 핫초코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에이티가 마시려 했지만 미리가 그것을 빼앗아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야, 너 왜 내 것을 뺏어먹어?”
미리는 빈 컵을 테이블에 소리 나게 내리쳤다.
그리고는 에이티를 노려보았다.
“왜 그래? 갑자기 심각한 얼굴을 하고선? 충격이 너무 컸나?”
“그래서?”
“뭐?”
“그래서 내가 왜 선택받은 자인지, 그거나 말해 봐요.”
“아- 그래. 이제 막 그 얘길 하려 했어. 이 얘길 하려면 우선 마계법사 칼스 님을 등장시켜야 해.”
지구를 만든 능력자는 마계법사 칼스였다. 칼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지구를 완성했고 그것을 배틀에 내놓았다. 이 ‘지구 배틀’은 곧 최고의 인기 게임으로 부상했다. 그 이유는 많은 능력자들이 ‘지구 배틀’에 도전을 했지만 아직 누구도 지구를 파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럴 수도 있나요?”
“뭐가?”
“파괴하자면 금방 파괴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능력자가 ‘사라져라’ 하면 바로 사라지는 거 아닌가? 미리는 그 점이 의아했다.
“아, 실은 이 배틀에는 중요한 룰이 있어. 뭐랄까, 결국은 유희를 극대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겠지만, 아무튼 이 게임에서는 능력자의 직접적인 개입이 불가능해. 마계대왕님의 지시지.”
룰은 이러했다.
배틀에 참여하는 두 능력자들은 ‘다른 세상’ 안에 속해있는 인물을 한 명씩 선택해서 그들에게 자신들이 가진 능력의 일부를 부여해야 했다. 다시 말해 실질적인 전투는 ‘다른 세상’ 안의 선택받은 두 인물이 펼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파괴하고, 한 사람은 그것을 막고!
“단, 게임의 공정성과 함께 좀 더 극적인 재미를 위해 그 ‘선택받은 자’에겐 마계대왕님이 직접 마계의 호위무사를 붙여주지. 그렇게 되면 호위무사는 ‘선택받은 자’를 보호하면서 그에게 룰과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주게 되는 거야.”
“…….”
“이제 감이 오지? 그 선택받은 두 명의 인간 중 한 명이 바로 너야!”
일순간 정적이 감돌았다.
아니 미리의 귀에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깊고 고요한 침묵이 그녀를 감쌌다.
“왜 하필 나야?”
한참 후 미리가 입을 열었다.
“뭐야? 이 세계의 운명이 걸린 엄청난 비밀 얘길 들려줬는데 반응이 고작 그거야? 좀 더 격렬한 감정표현을 해주면 어디가 덧나니? 이를테면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을 한다든지, 벽에 머리를 마구 부딪는 다든지.”
에이티는 재미없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리는 천천히 두 손을 올려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왜 하필 나야?”
“이봐, 그렇게 억지로 충격 받은 척 할 필요는 없어.”
그 말에 미리는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에이티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왜 하필 나야?”
“임의 선택.”
에이티는 짧게 대답했다.
“임의 선택? 그게 내가 선택된 이유?”
에이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그런 이유야?”
“그런 이유야.”
미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 안 할 거야.”
에이티도 따라서 일어섰다.
“이제 와서 믿든 안 믿든 자유지만, 네가 안 할 수는 없어. 이미 너에겐 ‘능력’이 부여되었고 ‘전투’는 막이 올랐어. 네가 안 한다는 것은 게임의 기권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이 세계는 파괴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
그렇게 말하는 에이티를 미리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궁금한 게 있어.”
미리가 말했다.
“악마들은 무조건 거짓말만 하는 거 아냐?”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어. 하지만 진실을 얘기하는 악마도 있어. 인간들하고 같아.”
미리는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눈빛으로 에이티를 직시했다.
“지금까지 한 얘기 모두 진심이야?”
“물론.”
“맹세할 수 있어?”
“마계대왕님의 이름을 걸고.”
“물론.”
“알았어. 그럼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
미리는 이제껏 중에서 제일 진지한 표정으로 에이티를 쳐다보았다.
“어느 정신병원에서 탈출했어?”
“뭐?”
에이티는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웃음을 터뜨렸다.
“잘 보라고.”
그는 오른손을 쫙 펴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파르륵!
테이블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테이블 전체를 태우는 엄청난 불기둥이었다.
카페에 모인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실내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실내온도가 올라가자 천장에 부착되어 있던 스프링클러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
미리와 에이티는 흠뻑 젖은 채로 서로를 응시했다.
“이래도 못 믿겠니?”
에이티가 물었다.
“믿을게- 불이나 꺼.”
미리가 답했다.
에이티는 씩 웃으며 주위를 살폈다.
“아, 마침 저기 구석에 소화제가 있군.”
“소화제가 아니라 소화기야.”
“뭐 어찌됐건.”
에이티는 불기둥을 향해 소화기를 뿌렸다. 불길은 점차 누그러들었다.
“근데 너-.”
에이티가 문득 생각난다는 듯 미리를 보았다.
“왜 갑자기 반말이지?”
“네가 내 호위무사라며? 그럼 내가 주인인거잖아.”
“아니, 아니, 그런 거 아냐.”
에이티는 소화기를 내리며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우린 주종관계가 아냐. 오히려 나는 너에게 여러 가지 길잡이를 해주니까…….”
“안내견 같은 거야?”
“무슨 소리야? 안내견이라니!”
에이티가 불만을 표했다.
“네가 모르는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고 나가야할 방향도 제시해주니까-.”
“내비게이션이네.”
미리의 말에 에이티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비게이션? 그게 뭐야?”
“그런 것도 몰라?”
“지구 문화에 대해서 아직 완전하게 다 파악한 건 아니거든. 뭐, ‘다른 세상’ 자체가 거의 마계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생활양식은 마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아무튼 내비게이션이란 말은 처음 듣는데. 꽤 근사한 말 같은데. 뭐지?”
“말하자면- 기계로 된 안내견이야.”
“뭐?!”
“아무튼- 반말할래.”
미리는 딱 잘라 말했다.
“어째서?”
“경어를 쓰게 되면 호칭 문제가 애매해질 것 같단 말이야. 난 그냥 널 에이티라 부르고 싶거든.”
미리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에이티의 외모를 쓱 훑어보았다.
“그럼 아저씨라 부를까?”
“아니-! 그냥 반말해!”
에이티는 정색을 하며 돌아섰다.
chapter 5
미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 두 시간 동안 눈을 감고 있었다.
잠을 자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분명 그녀의 어제와 오늘은 선명한 색깔로 나뉘어졌다.
‘그것’을 몰랐던 어제와, 알게 된 오늘로.
그녀는 갑자기 날아온 축구공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얼떨떨한 자신의 운명을 탄식해보았다.
후-
한숨을 내쉬니 어제 오후부터 바로 조금 전까지의 일들이 뭉게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마계, 능력자, 다른 세상, 요괴, 배틀, 사념, 파괴, 마법, 에이티…… 그리고 선택받은 자…….
오랜 시간 꿈꾸었던 판타지가 이런 식으로 현실화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버겁고 성가신 일이었다.
후-
또 한숨을 내쉬었다.
미리가 그러는 동안 에이티는 나무 그늘 아래서 멜론 맛 아이스크림을 벌써 스무 개째 사먹고 있었다.
*
“그러니까, 내가 파괴를 막는 쪽으로 선택된 거지?”
미리와 에이티는 공원에서 벗어나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왜 말이 없어?”
미리가 다시 물었다.
“으엉?”
에이티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돌아보니 에이티는 지금 막 제과점에서 산 단팥빵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먹어대는 거야?”
에이티는 단팥빵을 꿀꺽 삼킨 후 봉투에서 새로운 단팥빵 하나를 꺼냈다.
“이거 먹을래?”
“됐어! 그렇게 단 걸 먹고 또 먹는 거야?”
“마계엔 이런 게 없거든.”
“뭐? 그럼 마계엔 단 맛 나는 게 하나도 없어?”
에이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단팥빵을 꾸역꾸역 먹었다.
“지구인들은 좋겠어. 이렇게 달콤한 걸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말이야.”
“뭐, 꼭 그런 것도 아냐. 우선 돈이 있어야 그것도 가능하고, 돈이 있다 해도 살찔 염려 때문에 마음 놓고 먹을 수만은 없을 거야.”
“그렇구나.”
에이티는 봉투에서 새 단팥빵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계속 먹기만 하지 말고 묻는 말에 답이나 해줘.”
“응? 뭐라고 물었지? 맞아, 네가 파괴를 막는 쪽으로 선택되었냐고 물었지? 맞아. 넌 파괴를 막는 쪽이야.”
에이티는 봉투에서 마지막 단팥빵을 꺼내 들었다.
“배틀의 성격에 따라서 선택받은 자에게 부여되는 캐릭터가 다른 법인데, 이번 배틀의 경우 넌 ‘어둠의 물질’을 제거하는 캐릭터야.”
“어둠의 물질?”
“응. 마계에서는 그걸 총칭해서 ‘다크’라고 부르지. 다크는 극히 일부 마계법사들만이 부릴 줄 아는 최고의 흑마법이야. 기원을 잠깐 설명하자면, 먼 옛날 위대한 능력자 한 명이 다크라는 ‘다른 세상’을 만들었던 거지. 그런 걸 만든 목적은 단 하나, 파괴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였지. 그 후 많은 마계법사들이 다크에서 어둠의 물질들을 불러내서 ‘배틀’의 공격도구로 사용하곤 했어. 여기까지 이해가 돼?”
“뭐, 대충 알겠어. 그런데 그 어둠의 물질들이란 게 정확히 뭐야?”
“말하자면- 모든 ‘마’의 최초의 형태라고나 할까. 보통은 물처럼 투명하고 젤리처럼 흐느적거리는데, 검은 색이나 붉은 색 등 다른 색을 띠는 것도 일부 있어. 아무튼 그것은 모든 ‘사념체’에 기생할 수 있어. 그리고 기생하는 순간 변이와 성장을 시도해서 ‘악’의 형태와 특성을 지니게 되지.”
“어려운데.”
미리는 미간을 찌푸렸다.
“예를 들어볼게. 어제 네가 본 그 푸른색 괴물 기억나?”
“아, 그 ‘요괴 ETA334’?”
“이야, 그걸 기억해? 역시 대단해.”
“그 요괴가 그럼 ‘어둠의 물질’이 성장한 거란 말야?”
“그래. 그 요괴는 인간의 폭력성에 기생하는 요괴야. 어제 너와 싸운 그 여자에의 사념에 기생해서 그녀를 폭주하게 만든 거지.”
“음- 그렇게 된 거구나.”
미리는 잠깐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은주의 얼굴 위로 파랗게 일렁거리던 악마 같은 형상.
“어둠의 물질은 이미 세상 곳곳에 은밀히 퍼져 있을 거야. 다양한 사념체에 기생하며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겠지. 아- 한 가지 말해 둘 것은 이 지구는 이미 열두 번의 배틀을 경험했고 그동안 다크를 이용한 공격자들도 여럿 있었어. 때문에 그 때 다 제거하지 못한 다크의 잔재들이 아직 지구 곳곳에 널리 번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하지만 다크를 다 제거하지 못했다면 공격을 방어해내지 못했다는 거 아냐?”
“꼭 그렇지도 않아. 너에게 주어진 궁극의 임무는 다크의 잔재들을 모두 제거하는 일 따위가 아냐! 다크를 조종하고, 더욱 강력한 다크로 진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다크 프리쳐’를 쓰러뜨리는 거야.”
“다크 프리쳐는 또 뭐야?”
“일명 ‘어둠의 전도사’라고도 하지. 다크를 컨트롤해서 그 어둠의 힘으로 세상을 공포에 빠뜨리고 궁극적으로 파괴하려는 자. 다시 말해 이번 배틀에서 너 외에, 선택받은 또 다른 한 명! 너의 라이벌이자 숙적!”
“……!”
“그자를 완전히 제거하면 이번 배틀은 너의 승리야!”
“……그래?”
미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왠지 모를 전율이 뼛속까지 침투하는 기분이었다.
“참- 너에게 부여된 공식 캐릭터명은 ‘고스트 슬레이어’야. 일명 ‘악마 사냥꾼’이라고나 할까.”
“고스트 슬레이어? 대체 이런 개성 없는 이름들은 누가 짓는 거야?”
“난들 아니? ‘마계 배틀’ 콘텐츠 개발 관계자들이 짓는 거겠지.”
“마계 배틀 콘텐츠 개발 관계자들? 마계에 그런 것도 있어?”
“지구와 거의 모든 문화생활 패턴이 비슷해. 마계를 모델로 만들어진 게 지구라고 이미 말했을 텐데.”
미리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에이티는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아무튼- 파괴자의 공격성향에 따라 각 배틀의 색깔과 성격이 결정되곤 하는데 예를 들면, 파괴자가 물을 이용해서 세상을 휩쓸어 버리려한다면 저항자는 그에 맞는 대비책을 강구해야겠지? 그렇게 되면 그 배틀은 말 그대로 대규모의 물이 파도치는 물의 전쟁이 되겠지. 혹은 파괴자가 거대한 소혹성을 이용해서 세상을 파괴하려 한다면 역시 저항자는 그에 맞설 수 있는 마법을 준비해야하는 거지. 소혹성을 분쇄시키거나, 소혹성의 위치를 변경시키거나, 뭐 그런 식의 대결이 펼쳐지겠지. 이해되지?”
미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배틀은 다크를 부리는 자와 그것을 막는 자의 대결이라고 볼 수 있어! 다시 말해, 이 세상을 파괴하려는 다크의 무리에 맞서 대항하는 고스트 슬레이어. 뭐 이런 홍보문구도 나올 수 있는 거지.”
에이티는 그렇게 설명하며 단팥빵을 다 먹은 빈 봉투를 아쉽게 들여다보았다.
미리는 훅 하고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보았다.
하루의 임무를 충실히 마친 태양이 서산너머로 지고 있었다.
저 태양도 마계의 능력자가 만든 거겠지.
미리는 그런 생각을 했다.
“꼭 매트릭스 같아.”
미리가 중얼거렸다.
“뭐라고 했어?”
에이티가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미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보다 에이티,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내가 상대해야할 괴물들이 어제 본 그 요괴와 비슷한 것들이야?”
“아니, 다크는 다양해! 요괴 같은 모습일 수도 있고, 거대한 짐승 같은 모습일 수도 있고, 처녀귀신 같은 혼령의 모습일 수도 있지. 말했잖아. 다크는 모든 마의 성질을 다 가지고 있다고.”
“뭐야, 되게 성가시겠구나.”
“걱정마, 이 몸이 도와줄 테니.”
“그런데 정확히 네가 뭘 어떤 식으로 도와준다는 거야?”
“우선은 말이지.”
에이티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동전만한 크기의 구슬이었다.
“이걸 항상 목에 걸고 다녀.”
구슬은 목걸이 형식으로 되어 있어 목에 걸 수 있었다.
“이게 뭐야? 마법 도구야?”
“‘사념의 구슬’이야.”
“그렇게 말한들 내가 아니?”
“말하자면 칼스 님이 너에게 부여한 능력을 ‘자각하게 해주는 매개체’라고나 할까. 너에게는 다크에 맞서 싸울 능력이 주어져 있지만 넌 아직 그걸 자각하지도 못하고, 사용할 줄도 모르잖아. 그 구슬이 차차 너를 능력자로 각성시켜 줄 거야.”
“그래?”
미리는 구슬을 만지작거렸다. 파란색을 띠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투명한 느낌이었다.
목에 걸어봤지만, 우선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네가 하는 건 대체 뭐야?”
“뭐라니? 어제만 해도 내가 널 구해줬잖아.”
“그럼 역시- 보디가드?”
“네가 무슨 비욘세냐? 전용 보디가드나 꿰차고 다니게.”
“하지만 나를 호위해준다고 했잖아.”
“물론 그런 역할도 있지만 그건 아주 부수적인 거야. 내 진짜 역할은 네가 하루빨리 능력자로 각성하도록 도와주는 거야. 이를테면 사념을 형상화 시키는 방법, 그 힘을 너의 공격무기로 만드는 방법, 그런 걸 가르쳐주는 거지.”
“그거 어려워?”
“그야, 네 학습능력에 달린 거겠지. 어때? 학교에서 공부는 좀 하는 편이야? 사고력이나 이해력은 높은 편이야? 부디 그래줬으면 좋겠는데.”
“전혀-.”
미리가 당당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한 건 아니잖아.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상대, 즉 다크 프리쳐는 이 지구를 없애기 위해 무시무시한 공격을 펼치고 있다고. 수많은 다크들이 어둠 속 어딘가에 숨어서 너를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을 거라고.”
“그런데 내 능력이란 게 구체적으로 말하면 뭐야? 손에서 불같은 게 나가는 거야?”
미리가 물었다.
“그것도 능력의 하나지.”
“변신 같은 것도 할 수 있는 거야?”
“네가 무슨 ‘세일러 문’이야? 변신을 하고 그러게. 그런 능력은 없어. 너에게 주어진 기본 능력은 마법계열에서 ‘정령마법’과 가장 흡사해.”
“정령마법?”
“원래는 불, 물, 흙, 나무 등에 붙어 있는 정령들에게 그 힘을 빌리는 마법을 말하는 건데- 네 경우에는 조금 달라.”
“어떻게 달라?”
“루트가 다르다는 거야. 네 경우에는 정령들하고는 무관하게, 네 안에 존재하는 사념의 에너지가 곧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줘. 단순하게 말하자면, 네가 불을 생각하고 그 기운을 느끼는 순간, 불은 만들어져.”
“…….”
“아, 물론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지.”
“…….”
“좀 많이-.”
미리는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분간은 에이티만 믿을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의지하려고만-.”
“마계 제 2 호위무사니까, 실력이 엄청나겠지?”
미리는 희미한 웃음을 보이며 에이티를 쳐다보았다. 에이티는 정곡을 찔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어깨를 움찔거렸다.
“아니 뭐, 내 실력을 믿어 준다니 고마운 일이지만- 그러니까, 너도 우선은…….”
“그럼 내일 봐!”
그렇게 말하며 미리는 손을 흔들었다.
“내일 보다니?”
“다 왔어. 우리집. 여기가 우리집이야.”
미리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올려다보니 그곳에 5층짜리 빌라 건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청운빌라’
“꽤 근사한 집이구나.”
“그렇지도 않아. 그럼 이만 난 들어갈게. 너무 피곤해서 쉬어야겠어.”
미리가 발걸음을 돌리려 하자 에이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 지금 나보고 가라는 거야?”
“가지 않으면?”
“나도 같이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
“어딜? 우리집에? 네가 왜?”
“아니 실은 이국호의 집은 엄청 너저분하더라고. 그리고 내가 네 옆에 있어야 널 지켜주든 말든 할 거 아냐?”
“아니! 그건 사양하겠어!”
미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난 혼자 지낼 거야. 설령 내가 잠자는 사이 이 지구가 파괴된다 하더라도 혼자 있을 거야. 알겠어?”
미리의 완강한 반응에 에이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너 내가 같이 있는 게 그렇게 싫은 거야?”
“싫어! 네가 싫다는 게 아니라, 내 집에 다른 누군가가 함께 있는 게 나는 싫어! 그건 프라이버시의 문제거든. 이해하겠지?”
에이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좋아, 그럼 너 고양이는 좋아하니?”
“고양이? 고양이라면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아.”
“그럼 나중에 고양이를 한 마리 보내 줄게. 내가 키우던 고양인데, 마계에서 올 때 가지고 왔어. 이름은 ‘피니’야. 특별히 악마같이 생겼다거나 기이한 마법을 부린다거나- 뭐 그런 건 없어. 그냥 평범한 검은 얼룩무늬의 암고양이야. 다만 나와 텔레파시가 통하거든. 그래서 네가 위험에 처하면 곧바로 나에게 신호를 보내줄 수 있어. 또한 용맹스러워서 너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방패막이는 되어 줄 거야.”
“뭐 그런 거라면 좋아.”
“알았어, 그럼 내일 보자.”
에이티는 조금 침통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잠깐만-.”
미리가 에이티를 불러 세웠다.
에이티는 뭔가를 기대하는 얼굴로 미리를 바라보았다.
“왜? 설마 마음이 바뀌기라도 한 거야? 같이 있어줄까?”
“그런 건 아냐!”
“그럼?”
“아니 그러니까- 당장은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한 에이티.
“우선은 네 안의 능력을 스스로 깨우치려고 노력해봐. ‘비밀’을 모르던 때와는 달리 이제 비밀을 알게 되었으니 사념의 움직임 자체가 전과는 다를 거야. 또한 네 능력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할 거야. 넌 당황하지 말고 그것들을 네 것으로 받아들이면 돼.”
말을 마친 후 에이티는 다시 힘없이 돌아섰다.
“잠깐만-.”
미리가 또 급히 불러 세웠다.
“왜 또? 이제라도 마음이 바뀐 거야? 같이 있어주길 원하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니까.”
에이티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럼 또 뭐야?”
“그러니까- 고맙다고.”
“뭐?”
“어제, 내 목숨을 구해줬는데- 아직 고맙다는 말도 못했잖아.”
미리는 조금 수줍은 듯 얼굴을 붉혔다.
에이티는 빙긋 웃었다. 뭐 그 정도쯤이야, 하는 웃음이었다.
“아, 그리고 어깨의 상처는 내일쯤이면 완쾌될 거야. 그럼 내일 봐.”
에이티는 손을 흔들며 돌아섰다.
미리도 점점 멀어지는 에이티의 뒷모습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고양이는 저녁 8시쯤 미리의 집을 방문했다.
과연 평범한 고양이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게다가 덩치도 아주 작았다. 등을 쓰다듬으니 냐앙, 하고 울었다.
미리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베란다로 나갔다.
바람이 강했고, 마을은 동쪽부터 어둠에 잠기고 있었다.
그 어둠이-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
========================================================================
겨울의 끝을 알리는 눈물같은 비가 계속 내리네요...! 이 비가 끝나면 봄이오고, 죽었던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겠죠...!!
연참대회 참가자가 점점 늘고 있네요... 막연히 긴 글 하나를 써볼까, 하고 생각하셨던 분들 이 기회에 스스로의 의지를 테스트해보세요~!!! 아직 참가자 13명이 다 차지 않았으니... 조금씩 구상을 하고 구성을 잡으면서... 슬슬 준비를 서두르세요~!~
첫댓글 제이슨님 은근히 고냥이 좋아하시는 듯 해요. 고양이가 종종 나타나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넘 재밌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ㅋㅋㅋㅋ 완전 웃고 가요. 특히 에이티 말에 머리를 부여잡는 미리를 상상하자니 왜 이리 귀엽습니까. ^^*
이번 회 정말 웃겼어요ㅋㅋㅋㅋ 근데 앞부분에 미리의 이름이 미라로 오타가 났어요;;
현실세계를 마계의 게임으로 생각하시다니; 상상력이 대단하시네요.
공포소설이지만 아직까지는 상당히 코믹합니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소설의 볶음밥과도 같은 맛입니다
뭔가 에이티의 말이 설득력이 있다는 ㅋㅋ 신이 있다는것보다 훨씬 설득력있어보이는건 생각이 비슷해서 인가.. 하여튼 미리 성격 맘에 들어요 ㅋㅋ
답글주신님들 모두 행복하세요~!~ 아 그리고 제가 고양이를 매우 좋아합니다~ 고양이과 동물은 사자를 비롯해서 다 좋아하는 편이죠. 물론 개도 좋아합니다~!
미리는 랜덤으로 당첨되었다는 건가요? ㅎㅎㅎ 마계의 생소한 용어가 나올 때마다;; 자꾸 유미리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네유~ -0- 너무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