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소설로 읽었고, 드라마로 보았지만 강의는 처음 들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동의보감은 선조가 허준에게 만들게 했다고 합니다. 허준은 왕의 명을 받들어 동의보감을 집필했고,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의학서적은 병에 대해서 다루지만 동의보감은 생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동의보감의 목록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내경은 신체의 내부를 이야기합니다. 오장육부와 음성, 꿈도 내경에 속한다고 합니다. 외형은 신체의 외부를 이야기합니다. 눈, 코, 귀, 입으로 드러나는 얼굴과 다른 부분입니다. 자연을 이야기합니다. 섭생과 생활습관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한다고 합니다. 호흡, 운동, 명상을 이야기합니다. 동의보감은 몸의 내부와 외부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를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조화가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으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동의보감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조화로운 삶을 통해서 건강하게 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합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도, 권력을 가진 사람도 건강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약, 도박, 술에 의존해서 살기도 합니다. 연애는 좋아하지만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몸의 내부와 외부는 건강하지만 삶의 방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쇠는 잘 다루면 농사를 짓는 유용한 도구가 되지만, 잘못 다루면 생명을 죽이는 무기가 됩니다. 우리의 몸도 그렇습니다. 건강한 정신과 굳은 신념이 있으면 몸과 마음을 다스리게 되고, 가정을 평온케 하며, 나라의 기둥이 됩니다. 분노와 욕망이 있으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악한 기운이 다스리게 됩니다. 열등감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교만 때문에 이웃의 아픔과 고통에 귀를 기울이지 못합니다. 원망 때문에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수도자와 성직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자신을 성찰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수도복과 사제복이 건강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의 위선과 가식을 비판하셨듯이, 위선과 가식으로 본인은 물론이고 공동체에 커다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연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것은 바람이 있어서이지만, 연줄에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가졌고, 재물을 가졌고, 한 나라의 왕이었던 솔로몬은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왕은 자신이 자유롭게 날 수 있었던 ‘연줄’을 끊어버렸습니다. 지혜와 재물과 권력은 드러나는 표상일 뿐입니다. 마음과 정신의 건강을 잃어버린 솔로몬 왕은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페니키아의 여인은 아픈 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혜와 재물과 권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이라는 ‘연줄’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어떤 사람이 건강한 사람일까요? 오늘 성서는 이야기합니다. “행복하여라, 공정하게 사는 이들, 언제나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시고, 저를 찾아오시어 구원을 베푸소서.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조재형신부)
내가 하는 말이 신기하게도 그대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말이 씨가 된다고 농담으로라도 나쁜 말은 쓰지 않도록 교육합니다.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축적된 인류의 유산이요 인류의 지식이 된 것은 말하는 대로 어찌 그리되는지 몰라도 말하는 것은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아라비안나이트와 50인의 도적’이야기에서 장정 수십 명이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던 바위문이 “열려라, 참깨!”라는 한 마디에 열립니다. 또 수많은 가수들의 80%정도는 자신의 히트곡과 같은 운명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흥하는 말씨, 망하는 말투’의 저자 이상헌씨는 심지어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인 이유와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겠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과 연관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별명이 ‘백수’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취업이 되지 않는다고 한탄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백수라고 받아들이면 어떻게 취직이 되겠습니까?
드봉 주교님의 피정강의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는데, 드봉 주교님이 갓 서품 받은 신부에게 어떻게 살 것이냐 물었더니, 한 신부는 행복하게 살 것이라 했고, 다른 신부는 가시밭길을 갈 것이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는 것을 보니 한 신부는 행복하게 살고 다른 신부에게는 힘든 일만 벌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믿고 그 말한 것을 증명하며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 한 마디 잘해서 딸의 병을 고친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우선 그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만약 여기에서 이 여인이 무너졌다면 믿음이 없음이 증명되고 그러면 딸을 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의 믿음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이 말은 어떤 믿음에서 온 것일까요? 바로 확고한 자기정체성에서 옵니다. 자기정체성은 자신이 누구냐는 믿음이고 그 믿음에서 모든 말들이 나옵니다. 그 여인은 하느님의 자녀는 안 될지라도 하느님 집의 강아지 정도는 된다고 확신한 것이고 그 확신대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만큼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마치 어부가 던지는 그물과 같습니다.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물고기들이 잡히느냐가 결정됩니다. 세상 사람들을 비판하면 세상으로부터 좋은 것이 올 수 없습니다. 하느님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이든 하느님이든 믿음대로 갚아주십니다. 왜냐하면 그 믿음이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발산하는 믿음이 자신을 무엇으로 채울지 결정합니다.
오늘 시로 페니키아 여인은 자신을 하느님 집의 강아지처럼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그 믿음대로 여인을 채워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자녀로 여기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은총을 주시겠습니까?
문제는 내가 하느님의 자녀라 말하고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실제로는 그 자녀다운 은총을 받아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면 자신도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시도하고 있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면 베드로처럼 자신도 걷겠다고 뛰어내려야 합니다. 원수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 나도 그 원수를 용서할 수 있다고 믿어야합니다. 이런 믿음에 도달했다면 믿음의 말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모든 은총을 우리도 다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전삼용신부)
2020년 02월 13일 목요일
[녹]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입당송
시편 95(94),6-7 참조
어서 와 하느님께 경배드리세. 우리를 내신 주님 앞에 무릎 꿇으세. 그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네.
본기도
주님,
주님의 가족을 자애로이 지켜 주시고
천상 은총만을 바라는 저희를 끊임없이 보호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솔로몬이 우상 숭배를 허락하자, 주님께서 진노하시며 나라가 분열될 것이라고 이르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자녀가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말씀으로 이교도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신다(복음).
제1독서
<네가 계약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 나라를 떼어 내겠다. 그러나 다윗을 생각하여 한 지파만은 네 아들에게 주겠다.>
▥ 열왕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1,4-13
솔로몬 임금이 4 늙자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려놓았다.
그의 마음은 아버지 다윗의 마음만큼
주 그의 하느님께 한결같지는 못하였다.
5 솔로몬은 시돈인들의 신 아스타롯과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밀콤을 따랐다.
6 이처럼 솔로몬은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르고,
자기 아버지 다윗만큼 주님을 온전히 추종하지는 않았다.
7 그때에 솔로몬은 예루살렘 동쪽 산 위에
모압의 혐오스러운 우상 크모스를 위하여 산당을 짓고,
암몬인들의 혐오스러운 우상 몰록을 위해서도 산당을 지었다.
8 이렇게 하여 솔로몬은 자신의 모든 외국인 아내를 위하여
그들의 신들에게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쳤다.
9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그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에게서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두 번이나 나타나시어,
10 이런 일, 곧 다른 신들을 따르는 일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는데도,
임금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11 그리하여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뜻을 품고,
내 계약과 내가 너에게 명령한 규정들을 지키지 않았으니,
내가 반드시 이 나라를 너에게서 떼어 내어 너의 신하에게 주겠다.
12 다만 네 아버지 다윗을 보아서 네 생전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
네 아들의 손에서 이 나라를 떼어 내겠다.
13 그러나 이 나라 전체를 떼어 내지는 않고,
나의 종 다윗과 내가 뽑은 예루살렘을 생각하여
한 지파만은 네 아들에게 주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6(105),3-4.35-36.37과 40(◎ 4ㄱ)
◎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 행복하여라, 공정하게 사는 이들, 언제나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시고, 저를 찾아오시어 구원을 베푸소서. ◎
○ 백성들이 이민족들과 어울리면서 그 행실을 따라 배우고, 그 우상들을 섬기니, 제 스스로 덫에 걸렸네. ◎
○ 백성들은 자기네 아들딸을 마귀에게 바쳤네. 주님은 당신 백성을 향하여 분노를 태우시고, 당신 소유를 역겨워하셨네. ◎
복음 환호송
야고 1,21
◎ 알렐루야.
○ 너희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여라. 그 말씀에는 너희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다.
◎ 알렐루야.
복음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4-30
그때에 24 예수님께서 티로 지역으로 가셨다.
그리고 어떤 집으로 들어가셨는데,
아무에게도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으나 결국 숨어 계실 수가 없었다.
25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둔 어떤 부인이 곧바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분 발 앞에 엎드렸다.
26 그 부인은 이교도로서 시리아 페니키아 출신이었는데,
자기 딸에게서 마귀를 쫓아내 주십사고 그분께 청하였다.
27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29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30 그 여자가 집에 가서 보니,
아이는 침상에 누워 있고 마귀는 나가고 없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 기도
주 하느님,
빵과 포도주를 마련하시어
저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주셨으니
이 예물이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사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07(106),8-9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 자애를,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또는>
마태 5,4.6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으리라.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지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저희 모두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기꺼이 인류 구원에 앞장서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대형 마트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에 관한 텔레비전 뉴스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유통 기한이 많이 남아 있는 유제품을 선호하여서 대형 마트는 가장 신선한 상품을 앞에 진열한다고 합니다. 항상 신선한 것을 판매한다는 이미지를 심어 주려는 것입니다. 반면 유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식품들은 어차피 팔리지도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뒤로 밀려났다가 버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쓰레기로 처리되는 빵, 야채, 가공식품들이 엄청납니다.
선진국에서는 가축 사료나 에너지 재활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나라에서는 말 그대로 쓰레기가 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버려지는 것들이 식량이 부족한 나라에서는 너무나 절실한 생존의 음식으로 보이지 않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볼 때 “부스러기”라는 표현은 배고픈 이들에게는 정녕 간절한 단어입니다. 그 부스러기가 생존을 결정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빵을 먹는 이들은 정작 그 빵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이 예수님께 청하였던 “부스러기”에도 이러한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마음에 응답하시어 그녀의 딸에게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어 주십니다. 부스러기의 은총이 이렇게 크다면, 도대체 빵의 은총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우리는 몸소 생명의 빵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는 사람들입니다. 빵이 되어 오시는 그분 안에서 우리는 어떤 간절함을 지니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
첫댓글
자신을 성찰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수도복과 사제복이 건강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의 위선과 가식을 비판하셨듯이, 위선과 가식으로 본인은 물론이고 공동체에 커다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연이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것은 바람이 있어서이지만, 연줄에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면 자신도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시도하고 있어야합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면 베드로처럼 자신도 걷겠다고 뛰어내려야 합니다. 원수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면 나도 그 원수를 용서할 수 있다고 믿어야합니다. 이런 믿음에 도달했다면 믿음의 말이 나올 것이고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모든 은총을 우리도 다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전삼용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