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詠笠(영립)(내 삿갓을 노래함)
浮浮我笠等虛舟(부부아립사허주) 둥둥 떠다니는 내 삿갓은 빈 배와 같은데
一着平生四十秋(일착평생사십추) 한 번 썼다가 사십 평생을 쓰게 되었네
牧童輕裝隨野犢(목동경장수야독) 목동은 가벼운 차림으로 소를 끌고 나가고
漁翁本來伴沙鷗(어옹본래반사구) 어부는 본래 갈매기와 짝이라네
醉來脫掛看花樹(취래탈괴간화수)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醒後携登翫月樓(성후휴등완월루) 술 깨면 들고서 누각에 올라 달구경 하지
俗子依冠皆外飾(속자의관개외식)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레지만
滿天風雨獨無愁(판천풍우독무수) 온 하늘에 비바람 쳐도 나 홀로 걱정 없네
*위 시는 “현대시의 감각으로 풀이한 김갓갓 시집(金笠詩選集)(정민호 역저)”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역저자는 “김립 김병연은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하여 머리에 삿갓을 쓰고 조선 팔도를 방랑하게 되었으니 그에게는 삿갓이 인생이요 운명이었다. 시인과 그가 쓰는 삿갓은 불가분의 관계로 삿갓 하면 김립이요, 김립하면 김삿갓이요, 삿갓은 그의 운명이다, 한 번 썼다 40년을 썼으니 그럴만하지 않은가? 일반인이 쓰는 의관은 예의와 법도와 겉치레지만 시인에게 삿갓은 하늘을 막고 비바람을 막고 세상을 막고서 살아가는 도구인 것이다”라고 감상평을 하였습니다.
*김삿갓[1807 ~ 1863, 본명 김병연(金炳淵),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 속칭 김삿갓 혹은 김립(金笠)이라고 부름, 아버지는 김안근(金安根)으로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은 조선 후기의 시인으로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의 의해 멸족되어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도망가서 살다 그 다음에 집안이 멸족에서 폐족으로 사면되면서 강원도 영월로 옮겨와 살게 되었다.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장원급제하였는데,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조상에 대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머나먼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전국을 방랑하면서 각지에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것이 많아 민중시인으로도 불린다. 아들 익균(翼均)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했으나 계속 방랑하다가 전라도 동복(同福:전남 화순)에서 57세로 객사하였다. 유해는 영월군 태백산 기슭에 있으며, 1978년 그의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우고, 1987년에는 영월에 시비가 세워졌다. 작품으로 “김립시집(金笠詩集)”이 있다.
*정민호(鄭旼浩, 1939~, 본관 迎日, 아호 丁巴,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조부 학강(鶴岡)으로부터 한문 수학, 1966년 ‘思想界’ 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문단 등단, 현역 문단인(시인)으로 활동, 경북문화상, 한국문학상, 한국pen문학상, 한국예총 예술대상 등, 포상으로는 녹조근정훈장(대통령), 예총경주지부장, 경북문인협회장 등 역임, 현재 경주향교 사회교육원 한문지도 강사, 경주문예대학 원장, 시집으로 “꿈의 耕作” 외 15권, 산문집 “시인과 잃어버린 팬티”등, 국역으로 “論語抄”, “鶴岡詩集”, “五言唐音”, “七言唐音”, “唐詩選集”, “교양 明心寶鑑”, “三國史記”, “三國遺事”, “唐詩의 이해와 감상”, “한국인의 한시(漢詩)” 등 다수.
*犢(독) : 송아지 독
伴(반) : 짝 반, 짝, 따르다, 한가한 모양
翫(완) : 가지고 놀 완, 가지고 놀다, 기뻐하다, 가지고 노는 것
滿天(만천) : 온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