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국 월드컵 진출 티켓 중에 아시아 국가에게 할당된 티켓은 총 4.5장이다. 이번 월드컵에선 우리 대한민국을 포함 일본, 호주, 이란이 네 티켓을 거머쥐었다. 일본의 혼다 게이스케는 호기롭게 우승을 하겠다는 발언도 했고, 자케로니 감독 역시 4강이 목표라고 큰소리치기도 했다. 대한민국 일부 언론 역시 예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8강 열쇠는 세트피스라며 스포츠 뉴스에서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언론의 기대와 선수-감독 사이에서 흘렀던 자신감들과 달리, 예선에서 아시아 4개국 모두 무승(無勝)으로 탈락하고 말았다. 우리의 예상과도 너무나 판이했던 꿈과 현실의 괴리는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가장 간단한 대답은 나와 있다. 실력이 부족했다. 경기력이 다른 팀들에게 밀린 것이다. 그럼 그 실력과 경기력 차이가 어디서 기인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상만사가 그러하듯 세상일이 어찌 하나의 이유만으로 일어날 수가 있을까.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려운 여러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리더의 부재, 정신력의 문제, 선수 개개인의 개인기 부족, 전술의 부재, 체력 문제, 운 등 셀 수 없을 많은 요소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실패를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 참가한 아시아 팀들은 공통적으로 전술적으로 새로운 시도가 없었고 세계적 흐름에 뒤쳐졌다. 우리는 전술적 차원에서 다른 전통적 강호들의 탈락과 비교해 볼 수 있다. 무난히 조별예선 통과가 예상 되었던 스페인, 각각 죽음의 조로 꼽힌 D조와 G조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진 이탈리아, 잉글랜드, 포르투갈이 모두 탈락했다. 한편 객관적인 열세를 극복하고 16강 진출에 성공한 칠레와 코스타리카의 전술에선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게 부족했던 점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전술적 측면에서 아시아의 이번 대회를 평가해보자.
0. 시작하기 전에 – 약팀-강팀의 구분이 사라진 브라질 월드컵
이번 월드컵은 상당히 흥미로운 경기들이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그 분위기조차도 무척 흥미진진하다. 그 이유는 약팀들이 강팀과 대등한 경기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결과 측면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시점인 6월 30일 현재 칠레와 멕시코라는 복병이 브라질과 네덜란드라고 하는 전통의 강호에 밀려 탈락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들의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칠레와 멕시코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그들의 경기는 정말 훌륭했다. 결과는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았으나 전통의 강호들이 조금 더 노련했고, 운이 조금 더 좋았을 뿐이다. 혹은 개인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크랙’이 존재한 팀일 수도 있다.
유난히 이번 월드컵에서는 ‘이변’으로 불릴만한 일들이 많았다. 이탈리아, 잉글랜드, 스페인 등 전통적 강호가 탈락했고 가나, 크로아티아, 포르투갈 등 조 2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팀들 역시 다른 팀들에 밀려 탈락하고 말았다. 단순히 전력이 안 좋았다고 하기엔 상대편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았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수준이란 개개인의 실력의 차원이 아니라 팀의 조직력과 전술 차원의 차이였다.
이러한 경향을 만들어낸 것은 현재 축구계를 주도하고 있는 흐름과 관련이 깊다. 티키타카가 유행하면서 시작된 점유율 축구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등장한 ‘압박’과 ‘역습’이라는 키워드는 쉽게 패하지 않는 팀을 만드는 데 핵심적이었다. 경기의 전체적인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졌다. 브라질을 상대한 멕시코와 크로아티아, 스페인을 상대한 칠레, 이탈리아와 우루과이를 침몰시킨 코스타리카 등 저마다 압박과 역습을 재해석하여 팀을 조직해왔다. 수비진과 2선 미드필더를 긴밀하게 조직하여 중앙을 탄탄히 지킨 후 조직적인 역습으로 공세에 나선 상대에게 순식간에 비수를 꽂았다. 이러한 전술의 결과가 항상 승리였던 것은 아니지만, 객관적 전력 상 약세인 팀이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무기를 갖게 된 것이다.
1. 스페인 그리고 일본&대한민국
스페인은 이른바 일본식 티키타카를 구사한다고 하여 ‘스시타카’라는 귀여운 별명을 얻었다. 스페인이 1번의 월드컵과 2번의 유럽선수권을 우승하였고, 일본 역시 2011년 아시안컵에서 우승하였다. 월드컵 시작 전 일본은 네덜란드, 벨기에 등 현재도 약진하고 있는 유럽 강호와의 경기에서 선전하면서 그 기대감을 높였다. 대한민국의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 당시 졸전을 거듭하고 있던 대한민국보다 일본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베스트 멤버를 가동하였음에도 충분한 공격력을 보이지 못했다. 3경기에서 2골을 기록했을 뿐이며 우리가 늘 부러워하던 짧고 빠른 패스로 상대를 허무는 장면 역시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스페인의 세계 정상 등극과 일본의 성공이 비슷한 궤를 그렸듯이 몰락 역시 그 궤를 같이 한다.
지난 몇 년간 계속된 티키타카의 시대는 짧은 패스를 중심으로 점유율을 높이는 축구였다. 섣불리 개인적으로 가하는 압박은 짧은 패스에 의해 무효화 되었으며 무너진 진영을 뚫고 결정적인 패스들이 상대에게 비수를 꽂았다. 수비적으로도 공을 빼앗긴 후 높은 위치에서 동시에 압박을 가하면서 공의 소유권을 되찾아 오는 전략을 폈다. 조광래 감독의 지휘 하에 일본에게 참패했던 2011년 8월(혹자는 참사라고도 부르더라만...) 역시 일본의 짧은 패스와 압박에 혼쭐이 난 경기가 아니었는가. 그것이 벌써 3년 전 일이다. 그에 대한 해법이 등장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강한 압박과 동시에 이어지는 조직적인 역습이 그것이다. 압박의 정도는 ‘개인’ 차원을 넘어서 ‘팀’ 차원에서 가해지면서 더욱 강해졌다. 한 명을 제친다고 해서 쉽게 연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료선수의 커버가 이어지고 제친 그 선수마저 재압박하는 방식으로 점유율 축구에 대한 해법이 나타났다. 공은 위험지역을 제외한 외곽지역에 주로 머무르게 되며 점유율은 높되 실속 없는 축구가 많이 나타난다.
이번 대회에서 일본이 보인 모습은 지난 수년간 보인 전형적인 일본 축구이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의 축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양가 없이 도는 공은 상대에게 전혀 위협을 가하지 못했다. 중앙 공격수에게 연결되는 방식은 측면에서 올라오는 다소 무의미한 크로스가 그 주를 이뤘고, 튼튼한 중앙 수비를 자랑하는 팀들에게는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그리스 전의 일본과 벨기에 전의 대한민국의 움직임을 생각하면 간단할 것이다. 10명이 간격을 좁히고 수비진을 구축하자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는 축구로는 상대의 핵심을 공략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갈 뿐이었다. 역습 시에도 많은 이들이 필요 없이 속도를 살린 역습으로 지속적인 위협도 줄 수 있었다.
한편 역습의 속도가 이전에 비해 훨씬 빠르고 정확해졌으며 정해진 움직임이 있는 듯 물 흐르듯 진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점유율 축구는 기본적으로 수비라인이 높은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순식간에 역습을 가하는 데 성공하면 최종 수비라인의 뒷공간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최종수비 입장에서는 넓은 범위를 커버해야하기 대문에 견고한 수비 라인 구축에 어려움을 겪는다. 과거 무의미한 볼 처리나 역습 시도로 공의 전개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현재는 그러한 시도들이 가다듬어져서 순식간에 반격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역습을 잘 가다듬은 팀들은 현재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콜롬비아, 칠레, 코스타리카, 미국 등 전통적인 강호는 아니지만 16강 진출에 성공한 국가들이 이러한 전술로 좋은 결과를 냈고, 탈락하기는 했지만 크로아티아 역시 환상적인 역습으로 브라질을 위협하기도 했다.
일본의 경기 역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다가 무너져 내린 스페인의 축구와 닮아 있다. 이미 검증되었지만 익숙한 축구를 통해 월드컵과 같은 진검 승부에 나선 것은 이번 월드컵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파훼법이 너무나 명확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벨기에로 이어진 평가전에서의 선전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평가전이다. 한 경기, 한 경기 중요한 월드컵과는 상대편의 전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수비진의 집중력도 분명히 다르고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정신력 역시 다르다. 또한 감독들도 안정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우선 경기에서 지지 않는 전술을 선택하여 진검 승부에 나설 것이 예상 가능했다.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축구를 선보인 일본의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세계적으로 이미 일본의 축구는 그 신선함을 잃고 너무나 익숙해진 축구일 뿐이었다.
2. 코스타리카 그리고 이란
코스타리카와 이란의 경우 선수비 후역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경기내용도 경기 결과도 판이했다. 코스타리카는 2승 1무로 죽음의 조를 탈출하여 16강에 안착한 반면 이란의 경우는 재미없는 경기를 보여주었다. 오랜만에 무리뉴 시절의 안티축구를 보는 듯 했다. 수비에 중점을 둔다는 팀의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그 전술의 완성도가 차이가 났다. 이란의 수비진은 지나치게 수비라인을 깊게 내리고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 아르헨티나와의 경기는 단단히 수비를 굳힌 채 몇 차례 괜찮은 역습을 이어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축구의 문제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 무리뉴의 안티풋볼이 비난을 받았던 것 역시 골을 노려 승리를 노리기보다 최소한 무승부를 노리려는 안정지향 축구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깊은 곳까지 수비를 내린 축구는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능력이 떨어지는 팀이 보여주는 전술이다. 1;1에서 이겨낼 자신이 없기 때문에 골대 앞을 단단히 지키는 것인데, 너무 깊은 곳까지 선수들이 물러나 있기 때문에 일단 효과적인 역습으로 연결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C조 예선에서 보인 코스타리카의 압박은 새로운 전술적 가치를 지닌 것 같다. 강한 압박의 정도를 유지하는 것은 똑같지만, 상대가 백패스를 하는 순간 선수들이 일순간 전진하여 점유율을 유지하지 않고도 라인을 깊이 내릴 필요가 없이 연속적인 압박이 가능했다. 당연히 압박에 성공하여 공을 빼앗은 후에는 빠른 시간에 상대편 골대까지 공략이 가능하다는 것은 또다른 장점이었다. 이러한 전술은 강한 체력이 기본이 되어야할 것이고 수비라인의 컨트롤 등을 고려해보면 장기간 선수들이 호흡을 맞췄을 때 가능한 전술로 보인다. 라인을 밀리지 않은 채 효과적인 압박을 가함으로써 수비를 단단히 하는 전술임에도 공격적인 팀이 되었다. 실제로 우루과이 상대로는 3골, 수비가 전통적으로 강한 이탈리아를 상대로도 2골을 넣으면서 승리를 기록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전에서 피를로가 원터치로 공을 수비수의 뒷공간으로 연결했던 것은 이러한 전술적 움직임을 파악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란의 경우도 익숙한 수비 축구로 대회에 나선 가운데 대회에서 안 좋은 성적으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란의 문제는 수비 라인이 너무 낮아서 공격 전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나이지리아 전과 마찬가지로 상대도 적극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다면 지루한 경기가 되기 십상이다. 러시아와 우리나라의 경기도 이와 비슷한 양상으로 두 팀 모두 역습이 날카롭지 못했고, 수비라인을 단단히 지키고 버틴 러시아와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나라 역시 경기 양상은 지루하게 흘러가게 된다. 우리나라의 행운의 득점과 실점 이후 적극적으로 나선 러시아의 득점으로 무득점 경기는 피했지만 내용 자체는 지루한 양상이었다.
사실 코스타리카의 개개인 능력은 그렇게 특출 나지 않다. 우루과이, 이탈리아, 잉글랜드 그 어떤 팀과 비교해도 몸값이 비교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비에 중심을 둔 전술도 공격적인 전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매력적인 팀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란 역시 수준급 선수인 자바드 네쿠남을 비롯하여 역습을 이끌 선수들이 있었으나 이러한 전술적 변화는 일으키지 못했다. 결국 소극적인 경기만 이어져 탈락의 길을 걸었으니 전술적인 새로운 시도가 아쉬운 대회였다.
3. 포르투갈 그리고 대한민국
포르투갈은 이번 대회에서 1승 1무 1패를 기록하긴 했으나 16강 진출에 실패했고 경기력 자체도 상당히 좋지 못했다. 호날두와 나니를 중심으로 한 빠른 역습의 축구를 보여주었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그 모습이 좋지 못했다. 물론 팀의 중심인 호날두가 부상을 입고 있어 최상의 컨디션에서 경기에 임하지 못했다. 또한 첫 경기에서는 페페의 퇴장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어 조별 예선 전체에 걸쳐 어려움을 마주해야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주특기인 역습이 제 역할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주앙 무티뉴라는 수준급 미드필더를 두고도 역습 과정에서 세밀함이 떨어졌다. 나니와 호날두의 개인기에 의존한 역습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번 월드컵은 그 어떤 때보다 강한 압박이 가해진 대회였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선수인 호날두라고 해도 월드컵에 출전할 정도의 수준을 갖춘 수비수 여러 명이 ‘팀’의 차원에서 호날두 봉쇄에 나섰을 경우 쉽사리 뚫어낼 수 없었다.
역습의 속도를 높이는 것은 선수의 빠른 드리블에 있지 않다. 그 어떤 선수보다도 공의 움직임이 빠르다. 역습 시에 공을 갖고 출발하는 선수 뿐 아니라 공을 받기 위해 공간으로 침투하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조직적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수비진의 노쇠화, 선수들의 부상 등도 포르투갈의 부진의 원인이 되었겠지만, 전술적 차원의 문제는 준비되지 않은 역습 전술에 있었다. 콜롬비아나 칠레가 보여준 빠르고 전술적으로 정돈된 역습과는 달리 개인의 역량에 둔 역습의 한계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공격은 답답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공격이 총체적으로 난관이 부딪혔으나, 무엇보다도 이것은 강한 압박을 상대로 결국 공격 전환 속도가 지극히 느렸기 때문이다. 우선 기성용을 중심으로 점유율을 가져가며 공격을 운영했던 시간 동안 거의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한 것은 압박의 수준이 이전보다 높아졌음을 반증한다. 양쪽 측면에 드리블과 스피드라면 자신 있는 손흥민과 이청용을 두고도 효과적인 역습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가장 아쉬운 점은 역설적으로 답답한 경기양상을 보였던 러시아와의 첫 경기 전반전에 구자철과 손흥민 사이에서 훌륭한 역습이 두 차례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좌측면에서 구자철에게 연결된 볼을 손흥민에게 원터치로 연결하면서 손흥민이 스피드를 살려 러시아의 중앙을 흔들며 단독 돌파를 이어간 장면은 이번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보여준 가장 훌륭했던 장면 중 하나였다. 손흥민이나 이청용 같이 빠른 선수에게는 속도를 높여 달릴 공간이 필요하다. 수비라인을 바짝 내린 채 수비에만 몰두한 이란과의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도, 강한 압박을 선보인 가나와의 평가전에서도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한 채 경기에서 패해야 했다. 전술적으로 역습을 가다듬지 못한 대한민국은 손흥민이라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정상급 측면 공격수를 두고도 답답한 경기를 펼쳐야 했다. 호날두를 두고도 답답한 경기를 펼쳐야 했던 포르투갈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동메달을 획득했던 런던 올림픽에서 홍명보 감독은 압박과 더불어 효과적인 역습을 가하는 축구를 이용했다. 기본적으로 객관적인 전력이 밀렸던 영국과의 8강전과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도 물론이고 특히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선 두 골 모두 역습 상황에서 나온 골이었다. 기성용을 중심으로 한 다소 느린 템포의 공격 전개에도 강점을 갖고 있었지만 빠른 역습 상황을 적절히 이용하여 경기에서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압박을 강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그 당시 역습 자체는 현재의 수준에서 보자면 전술적으로 구성된 역습은 아니었다. 상대하는 수비진 역시도 나이 대가 23세 이하로 진정한 의미의 성인 무대는 아니었다. 그렇다곤 해도 역습으로 짭잘한 효과를 봤던 홍명보로서는 현재 갖는 전술상의 위치를 고려하여 공격 전술에서 역습을 가다듬을 필요성이 있었다.
아시아 축구의 발전은 세계 축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축구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갖고 있는 아시아는 중요한 곳일 수밖에 없다. 늘 축구의 변방이던 아시아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부쩍 그 성장세가 눈에 띄었다. 박지성, 알리 카리미, 나카무라 슌스케 등 아시아의 슈퍼스타들이 유럽 무대를 누볐으며, 지난 남아공 월드컵에선 대한민국과 일본이 16강에 올라 남미의 강호들과 훌륭한 경기를 치렀다. 더 이상은 축구 변방이 아니라며 준비했던 월드컵에서 아시아는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하지만 이번 패배는 한일 월드컵 이전의 패배와는 사뭇 다르다. 다른 분야에서처럼 축구도 세계화되어 교류가 활발하고 우리 역시도 유럽이나 남미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전술 등을 습득하고 배울 수 있으며, 좀 더 앞선 축구를 몸으로 직접 경험할 해외파 선수들도 많이 있다. 이전의 경험 부족과 같은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축구의 기본을 이루는 요소들 중 신체적, 기술적 요소는 이제 누구도 무시 못할 수준에 다다랐지만, 이번 월드컵에선 축구 지능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전술과 선수들의 공이 없을 시에 취하는 움직임은 코스타리카처럼 개개인의 능력을 뛰어넘어 강한 상대를 침몰시킬 수 있는 무기이다.
이번 대회의 결과는 실패였다고 받아들이면 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언제나 상승 곡선을 그릴 수만은 없다. 우리에겐 발전해나가는 장기적 추세가 중요하다. 이번 실패는 오히려 반등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이번 월드컵에서의 실패를 계기로 아시아 각국이 더욱 정교하고 잘 조직된 전술을 선보이길 기대해본다. 이제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도 골대 앞만 지키다가 몸이 스치기만 해도 쓰러져 숙면을 취하는 침대축구는 보기 싫다. 객관적 우세인 한국이나 일본을 상대로도 강한 압박을 펼치는 상대도 보고 싶고, 또 우리가 필요하다면 3백이든 5백이든 전술 상의 변화로 상대에게 날선 한방을 날리는 것도 보고 싶다. 세계축구의 흐름은 좇아가면서도 아시아 각국 특유의 특징이 살아있는 전술이 나타날 때 다시 한 번 아시아 축구는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축구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아시아의 축구를 보여줄 수 있는 전술이 새롭게 나타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