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맛이란 무엇인가.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최낙언 박사가 우리의 인식 시스템의 체계적인 이론을 세운데에는 그의 이력이 한 몫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는 식품회사에서 맛에 대한 연구와 개발을 집중적으로 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에 있어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생명활동이며, 문화활동인 음식에 대한 수수께끼에 대한 의문이 그의 뇌과학의 출발이다.
우리는 매일 음식을 섭취한다.
이는 유기체이면서 생물인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이다.
농업혁명 이전의 수렵 체집 시절부터 인간은 어떻게 몸에 좋은 식량과 몸에 독이되는 식량을 구분했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생존에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우리가 몸에 좋은-필요한-식량과 좋지않은 식량을 구분하기 위해서 맛이라는 특수한 인식 시스템이 진화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요즘처럼 현대화된 과학 지식과 영양지식도 전무한 원시시대에 오로지 이 맛에 의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소와 열량을 구분하였다.
쉽게 이야기 하면, 우리에게 좋은(필요한) 영양소는 맛있게 느껴지도록, 해로운 음식은 맛이 없거나, 역하게 느껴지도록 진화한 것이다.
단맛이 땡기고,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칼로리의 공급을 위해 가장 필요한 진화이다. 그리고, 그냥 먹는 감자보다 소금을 찍어 먹는 감자가 맛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에게 나트륨이라는 필수 미네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화론 얘기가 나왔으니, 진화론에 대한 한가지 오류를 잡고자 한다.
진화론에 대해 일반인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진화론을 연구하는 학자나 일반인이나 할 것 없이 진화를 설명하는 방식에서 기인하는데, 이런 오해 때문에 사실 진화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많은 장애를 발생시킨다.
예를 들면, 앞선 문장, ‘우리에게 나트륨이 필수 미네랄 이기 때문에 우리는 소금찍어 먹는 감자를 맛있게 느끼도록 진화했다.’ , 이 문장은 오류문장이며 비문이다.
진화의 과정의 이해는 원인과 결과가 뒤바뀌어 있다.
진화는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 즉 획득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진화는 아주 우연에 의한 돌연변이의 과정에서 환경에 적합한 돌연변이만 살아남는다는 아주 냉정한 이론이다.
소금찍은 감자가 맛있게 느껴지도록 진화한게 아니라, 여러 돌연변이 중에서 소금찍은 감자가 맛있게 느껴지도록 돌연변이한 어떤 특별한 종만 살아남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종이 바로 현재의 우리인 것이다.
즉 살아남은 종의 결과로서 이러이러한 특별한 형질이 우리에게 진화의 결과로서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수많은 호모종 중에서 오로지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이 하나의 사실 만으로도 우리 사피엔스의 특징의 일부를 잘 말해준다.
예를들어 무당벌레는 종으로만 30만종이 존재한다. 우리 눈에 같아 보이는 무당벌레가 사실은 같은 종이 거의 없을 정도로 상호 교배가 되지않는 서로 다른 생명체인 것이다.
지구상에 개미와 더불어 가장 많은 개체를 만들어 낸 호모 사피엔스는 사실 다른 포유류와 다르게 지구상의 매우 ‘별종’인 것이다.
다시 맛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사과맛을 잘 알고 있다. 사과와 바나나를 눈을 감고 먹어도 어떤것이 사과이고, 어떤것이 바나나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사과맛을 구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뇌에 장착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맛의 메카니즘을 면밀히 들여다 보면, 사실 ‘사과맛’이라는 것은 우리가 직관적으로 알듯, 어떤 특정한 사과맛을 형성하는 맛이 있고, 그 맛을 혀를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사과맛을 결정하는 어떤 특별한 한가지 화학성분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과맛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다양한, 각각의 강도가 다른 여러가지의 화학성분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화학성분들을 감지하는 것은 혀에 있는 미각 수용체가 아니다.
우리가 사과를 입안에서 분쇄할때, 사과안에 있는 여러 특정 성분 분자가 코에 있는 후각 수용체를 자극하면서 우리는 사과맛을 느끼는 것이다.
즉, 우리가 음식을 먹을때 느끼는 맛은 혀가 아닌 주로 코를 통해 맛을 감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몇년전 코로나 사태때 코로나 걸린 환자들의 임상증언으로 일반인들에게 처음 인식된 사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코의 후각 기능이 마비되자, 환자들은 음식을 먹어도 전혀 맛을 느낄 수 없이 마치 아무 맛이 없는 고무를 씹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식사를 하였다고 증언했던것을 기억할 수 있다.
(우리가 혀로 느끼는 맛은 학교다닐때 배운 5가지 맛 뿐이다.
단만, 쓴맛, 짠맛, 신맛, 그리고 감칠맛이다. 혀에 이 다섯가지 맛만 느끼도록 진화한 것은 이 5가지 맛이 생명의 영위에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사과를 먹을때 느끼는 맛이란 사과에 존재하는 몇가지의 특수한 향기 물질이 우리가 음식을 씹을때, 파쇄되면서 (그것도 아주 미량-0.2% 이내의) 그 파쇄된 분자가 코쪽으로 역류하면서 코의 후각수용체 영역으로 이동하고 거기에 있는 향기 수용체와 결합하면서 전기신호를 발생하면서 시작한다.
이 전기신호는 뇌로 전달되고, 시각의 뉴로그래픽과 비슷한 메카니즘으로 뇌에서 발생한 뉴로 후각시스템과 결합하면서 우리가 사과맛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의 후각 수용체는 약 800 여가지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에 400여종은 내부적인 호르몬이나 신체의 변화를 감지하는데 이용되고, 나머지 400여종이 우리가 느끼는 맛과 향을 감지하는데 쓰인다.
우리가 느끼는 맛과 향은 이 400개의, 400가지의 향의 조합으로 볼 수있다.
아직까지는 정확히 그 400가지의 향이 어떤것인지 완전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현재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어느정도 수준에서의 명칭화와 도식화가 이루어진 걸로 알고있다.
미래 어느 시점에 이 400여가지의 향을 정확히 구분하는 수존으로 알아낼 수 있다면, 이 400여가지의 조합을 통해 우리는 어떤 향이든 맛이든 인공적으로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때쯤은 아마 뇌의 전기신호를 직접 주는 방식으로 맛을 느끼게 할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얘기한 뉴로 그래픽에 의한 시각 인식과 맛의 인식은 정확히 같은 메카니즘이다.
우리의 센서에 해당하는 코의 후각 수용체는 사실 부가적인 역할이고, 이미 뇌속에서 스스로 환각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이미 후각 인식 시스템은 돌고있다. 그러다가 우리가 사과를 먹는 순간 그 후각 인식 시스템과 코의 향기 수용체의 데이타가 결합하면서 우리는 맛을 느끼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많은 심리학자들이 행한 여러가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왜 사람들이 그렇게 반응하는가를 알 수 있다.
그중의 하나를 소개한다.
국내의 한 프렌차이즈 커피 회사에서 어떤 실험을 진행하였다.
실험자들에게 두잔의 커피를 제공하는데, 똑같은 컵에 똑같은 커피를 담아놓고, 한 커피잔에는 2000원의 가격표를 붙이고, 다른 커피잔에는 4000원의 가격표를 붙여놓았다.
이 실험자들은 두 커피잔의 가격만 다른 똑같은 커피를 마시게 하고, 맛에 대해 묻는 실험이었다.
그리고, 두가지 커피의 맛에 대해 평가하도록 했다.
이 실험자들의 평가는 이렇다.
“4000원 짜리가 맘에 들어요. 2000원짜리는 신맛이 강하게 나는데, 4000원 짜리는 커피향 자체에서 나는 원두향이 더 깊게 나는 것 같아요.”
“4000원 짜리가 제가 먹기에는 더 편한것 같거든요. 부드럽거나 향이 좀 오래가고, 제가 맛에 좀 민감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쓴맛이 조금 덜해서 보통 시럽이나 설탕을 안섞고 먹어도 될 만큼 딱 알맛은….”
[Beautiful LIFE] 뇌, 현실 그리고 인공지능_김대식 교수에서 발췌, 27:42-29:42
https://www.youtube.com/watch?v=IOm5L3KVqh0
사실 김대식 교수가 이 예시를 든 이유는 우리 뇌의 지각 활동이 “선선택, 후선호”라는 아주 특수한 인식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든 것이다.
이 “선선택, 후선호현상”은 이후에 뉴로미런을 다루면서 다시 나올 예정이지만,
우리의 맛의 인식 메카니즘이 감각기관에 의한것보다 뇌가 만들어 내는 뉴로시스템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인 것이다.
첫댓글 시장이 반찬이란 말이 있다.
산해진미에 파묻혀 살던 선조가 시장할 때 먹은 도루묵이 너무 맛이 있어
은어라 했다 도루묵으로 하여라 했다는 말이 있듯
우리의 모든 감각은 때와 상황에 따라 즉흥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라 본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꾸준하고 쉼없이 환경에 적응하려는 적자 생존이 아닌가 싶다.
물론 우리의 인식 기능 역시도 많은 오류를 범한다.
60명 학생이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수업을 받았어도 60명 각자 인식하는 것이 각각이다.
그래서 순수한 이성은 없다는 의심을 깔고 철학은 출발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