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단기간(38일)에 흥행기록을 다시 쓰며, ‘왕의 남자’를 제치고 역대 한국영화 관중동원율 1위에 올랐다. ‘왕의 남자’를 통해 이준기라는 배우 못지 않은 인지도를 얻은 이준익 감독은 그러나, 전작 ‘황산벌’이 흥행에서 참패한 아픔이 있었기에 들뜨지 않았다. 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를 찍으면서도 차기 연출작을 생각하고 있었고, 당시 함께 일했던 스탭들과 다시 만나 ‘라디오스타’를 만들었다.
스릴러 장르도 여전히 좋아하지만, 요즘 부쩍 사람냄새 나는 영화를 그리워하던 중에 ‘라디오스타’를 만났다. 예고편에도 나오는 ‘모두에게 추억이 될 가슴 뻐근한 이야기’라는 문구에 마음이 끌렸다.
1988년 가수왕 최곤(박중훈 분).
그는 한때 정말 잘나갔다. 하지만 부와 권력처럼 ‘인기’라는 것도 무한정 유지되지는 않는 것. 폭행사건과 대마초로 인해 그의 인생은 얼룩졌고, 이제는 어느 작은 카페에 마련된 무대에 앉아 노래하며 지리한 하루하루를 연명해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마저 성질을 못죽이고 일을 내고마는 최곤. 사고는 가수가 내고, 수습은 매니저인 박민수(안성기 분)가 한다.
박민수는 20년 넘게 최곤의 곁을 지키고 있다. 최곤이 정상가도를 달렸을 때나,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지금도 언제나 한결같다.
아내 우영(신영재 분)은 최곤의 팬클럽 초대 회장이다(당시에는 매니저와 팬클럽 회장이 결혼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집에는 정말 어쩌다가 귀가하니, 어린 딸 민정(손예원 양)이는 그런 아빠의 존재조차 잘 모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리는 그림에 아빠는 쏙 빠져있다.
여전히 자신이 인기가수라고 생각하는 최곤은 자기가 잘나서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담배, 라이터 다 맡겨놓은 듯, 매번 “형, 담배!”, “형, 불!” 하면서 박민수를 매니저로만 대한다. 하지만 그도 결국, 박민수가 없으면 담배 한 값 사러 밖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곤에게는 박민수가 필요하고, 박민수에게도 최곤은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20년 넘게 지내오는동안 그들은 그런 사이가 돼버렸다.
(남자끼리던지, 여자끼리던지, 아니면 이상간이던지... 정말로 정이 들면, 비록 다투고 마음 상했을지라도 곧 서로를 찾게 되는 것이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도록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칭얼대는 전직 인기가수 데리고 영월에 도착한 속 좋은 매니저. 그들은 거기서 역시, 원주에서 라디오 생방송 도중 사고쳐 좌천되어 온 PD 강석영(최정윤 분)과 만난다. 3개월만 있으면 통폐합. 원주로 갈 날만 기다리고 있다 뒤통수를 맞은 지-국장(정규수 분)은 하늘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쫓겨온 PD와 사고뭉치 전직 인기가수가 만들어가는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
첫방송부터 순탄하지는 않지만 최곤의 열혈팬임을 자청하는 영월 유일의 락밴드 ‘이스트리버(East-river: 락밴드 노브레인)’과 청취자들의 관심으로 100회 특집 공개방송을 하게 된다.
꿈꿔오던 완전한 재기는 아니지만, 최곤은 함께 있는 사람들과 방송 청취자들을 통해 비로소 웃음을 찾는다.
‘라디오스타’는 “지금 당신의 곁에 누가 있나?”가 아닌, “당신이 힘들 때 곁에 누가 있었나?” 라고 묻는 영화다.
영화에서 박민수가 최곤에게 이런 말을 한다. “곤아, 별은 말이야, 혼자서 빛을 내는 경우는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야.”
안성기와 박중훈은 ‘칠수와 만수(1988)’,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이후, 7년 만에 ‘라디오스타’에서 다시 뭉쳤다. 가끔은 배우가 연기를 잘해도 캐릭터가 튀어서 영화 자체를 가리기도 하는데, 이 두 배우의 경우 그들만의 실제 끈끈한 우정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안성기는 박민수, 박중훈은 최곤, 각자가 ‘그사람’이 되었다.
이준익 감독은 ‘라디오스타’를 사실상 배우 안성기에 헌사하는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박민수로 분한 배우 안성기 씨. 배우로 살아온지 어느덧 50년이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충무로에 있었던 그는 초창기, 스탭들의 양말과 속옷을 빨아주며 지냈고, 영화 한 편 찍을 때마다 스탭들 이름을 다 외운다고 한다. 또, 한국영화를 지키기 위해 스크린쿼터 사수를 대열의 맨 앞에 서서 외치고 있다.
그는 영화배우로서 영화계에 좋은 영향을 많이 끼쳤고 지금도 끼치고 있다. 단지 인상 좋은 사람에 그치지 않고, 좋을 때나 힘들 때나 변함없이 안팎에서 궂은 일 마다 않는다. 스스로는 당연하다 말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존경 받으며 후배들에게 귀감이 된다.
또 영화 속에는 서로 상충되는 몇 가지 코드가 있다.
서울 대신 영월, TV 대신 라디오, 무수하게 쏟아져나오는 아이돌 스타들의 빠른 템포의 댄스곡 대신 ‘비와 당신(최곤)’, ‘미인(신중현)’ 등의 노래.
이 영화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마음 한구석 소박함을 건드린다. 각박한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한다.
‘라디오스타’는 이렇듯 감동의 요소들을 숨겨두지 않는다. 촬영지와 세트(건물), 그리고 배우들만으로도 충분히 코끗 찡한 감동을 선사한다.
시나리오가 탄탄하다기에 더 기대했지만, 실화가 바탕인지 몰랐던 ‘라디오스타’.
단지 지난날을 추억하게 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게 하는 큰 울림이 있는 영화다. (감동 없이) 오로지 흥행만을 목적으로 하는 상투적인 블록버스터보다, 이런 영화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첫댓글 잔잔하니 참 좋더군요...역시 안성기 박중훈
글 잘 읽엇습니다..정말 좋은영화라는...가슴이 찡해지더군요...
저도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막방송 ㅋㅋㅋ 넘 잼났어요 ㅋ
최정윤 너무 좋아 ㅋㅋ 서인영 다음으로 좋아 ㅎㅎ
전 외부의 악조건으로 집중하지 못하였으나 그래도 재밌게 봤어요ㅋ 웃느라 지쳐버린;; 근데 황산벌은 흥행했어요; 관객 200만이상 들었습니다;
황산벌 290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