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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방의 단호한 말에 모든 시선은 다시 아운에게 모아졌다. 아운은 두 손을 번쩍 들어 기지개를 폈다. 그리고 씨익 웃는다. 그것을 본 금룡단의 인물들은 기분이 아주 나빴다. 그리고 그 기분은 아주 신기하게 잘 맞아 떨어진 셈이었다. 아운의 신형이 바람처럼 그들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칠보둔형의 묘에 이은 아운의 주먹과 발은 사정이 없었다. 십여 명은 무기 한 번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머지 금룡단이 놀라서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심방과 몽진, 문형기와 남궁단을 뺀 열 명 중 나머지 여섯과 육삼, 북궁명, 그리고 소혼명은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이건 완전히 일방적인 구타였다. 아운의 손과 발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마구 짓밟고 치기 시작하는데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았다. 금룡단의 인원은 현재 팔십이 명이었다. 그중 열 명을 배면 칠십이 명이다. 그들은 모두 명문의 제자들이다. 무공이 약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무공은 지금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제대로 공격할 기회도 없었고, 공격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운의 신형은 보이지도 않는다. 몇몇 겁을 집어 먹은 인물이 도망가려 했으나 그것도 소용없었다. 아운의 신법은 과히 천하제일이 아니던가. 일권, 일퇴에 어김없이 한 명씩 쓰러진다.
뒤이어 야한의 도끼 자루가 사정없이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이미 쓰러진 금룡단의 젊은 고수들을 인정사정없이 두들긴다. 야한의 도끼 자루는 얼굴이고 다리고 가리지 않았다. 물론 신분도 가리지 않는다. 보기만 해도 살 떨리는 광경이었다. 이미 아운에게 한 방 맞고 땅바닥에서 파닥거리는 싱싱한 먹잇감을 야한은 결코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끔찍한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보고 있던 흑칠랑은 손을 꼼지락 거리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쭈욱 폈다. 그리고 그 손가락으로 쓰러진 자들의 코구멍을 돌아가며 한 번씩 찔러대기 시작했다. 모조리 코피가 터지는데, 그 중에서 얄미운 놈은 한 번 더 찌르고 있었다. 특히 운몽은 모두 합해서 다섯 번이나 찔리고 기절한다. 그것도 해보니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오금이 저리고 식은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이심방과 몽진 등의 행동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무당의 운현검 우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저 사람, 아니 저 분이 누구시기에…….”
이심방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권왕일세.”
그 말을 들은 추운과 우영은 물론이고 삼충의 얼굴마저 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들은 그저 놀란 시선으로 아운을 본다. 설마 권왕이라니……? 약 이각이 지났을까? 금룡단의 연무장엔 시체 아닌 시체들이 즐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은 어김없이 도끼 자루에 맞은 상처가 있었으며, 코 구멍 한 곳이나 두 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흑칠랑은 자신의 중지 손가락을 보면서 아주 만족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개발한 구타 방법은 아주 획기적이고 기발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운은 쓰러져 있는 자들을 둘러보고 천천히 돌아온 다음 서 있는 십여 명을 보았다. 순간 십여 명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완벽한 차려 자세를 취한다. 그 뿐이 아니라 북궁명을 비롯한 육자명이나 육삼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불만 있는 자식은 앞으로 나오시게.”
흑칠랑이 뒤에서 중지를 들어 보인다. 열 명의 안색은 노랗게 굳어졌다. 불만……. 절대 있을 수 없었다.
“그럼, 가서 물을 떠다 저 쓰레기들에게 끼얹고 깨우도록…….”
아운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열 명의 신형이 섬광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아운은 북궁명과 육자명 그리고 육삼을 보면서 말했다.
“너흰 금룡단이 아닌가?”
세 명의 신형도 날아갔다. 그들은 그들 생애에 지금처럼 전력으로 신법을 펼친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여기저기 널려 있던 금룡단의 인원들이 한 곳에 던져졌다. 그리고 물을 끼얹자 그들은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어나는 족족, 다시 두들겨 맞기 시작했다. 이번엔 어떻게 차고 때리는지 기절하지도 않았다. 아운이 차고 때리고, 야한이 도끼자루로 패는데 그렇게 맞고도 기절하지 않은 게 신기하기만 했다.
“살려…….”
“부처님, 흑흑…….”
“제발…….”
그들은 이제 감히 아운에게 달려들 생각도 하지 못했다. 특히 그래도 눈을 뜨고 자신의 가문 어쩌고 하던 자들은 흑칠랑의 가공할 손가락에 이어, 아운의 발길질에 이빨이 몽창 날아가는 비운을 감수해야만 했다. 찔린 코 구멍 다시 한 번 찔려봐라! 맞은 곳 골라서 다시 맞아 봐라! 당한 사람은 거의 미치게 마련이었고, 뇌가 근육으로 변하게 마련이었다. 다시는 대들 엄두도 나지 않게 마련이었다. 바닥에서 거의 기절한 시체 비슷한 인간들이 꿈틀거린다. 아운이 다시 단상에 섰다.
“셋이다. 셋을 셀 때까지 모두 도열하도록, 하나…….”
필사적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그들을 그야말로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온전한 상태가 아닌 자들이 제대로 모이겠는가? 셋을 세었지만, 아직도 도열하지 못한 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시 한 번 참혹한 현상으로 이어졌다. 그나마 제대로 섰던 자들은 원망의 시선으로 아운을 본다. 자신들은 왜?
“너만 살자고 동료들을 무시한 놈은 그냥 둘 수 없다. 단 한 명이라도 제대로 도열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불만 있는 놈은 말해.”
흑칠랑이 중지만 쭉 핀 주먹을 들어 올린다. 야한이 도끼 자루를 어깨에 둘러매고 묘한 표정으로 웃는다. 불만.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아운은 다시 연단에 섰다.
“다시 셋을 세겠다.”
셀 필요도 없었다. 거의 죽어가던 자들이 숫자를 세기도 전에 이미 도열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열해 있는 금룡대의 모습을 보면서 아운은 조금 흡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러면 지금부터 기마자세를 취한 후, 나에게 대든 것을 반성하도록……. 시간은 두 시진이다. 물론 내공은 사용하지 못하게 할 생각이다. 혹여 견디지 못하는 자는 그냥 쓰러져도 된다. 결과는 겪어보면 알 것이다. 그리고 책임은 너희들 공동이 진다.”
아운의 말에 칠십이 명의 금룡대는 완전히 기가 죽어 버렸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감히 대꾸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모두 기마자세 시작! 한 명만 견디지 못해도 모든 동료들까지 조금 전 고통을 다시 맛보게 될 것이다.”
아운의 고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이미 기마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금룡대가 생기고 지금처럼 빠르고 일사분란하게 대주의 명령을 이행한 적은 처음이었다. 흑칠랑과 야한은 돌아다니면서 금룡대 대원들의 무릎과 허리 부근의 혈을 눌러 다리 쪽으로 내공을 쓸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때부터 칠십이 명의 금룡대원들은 기마자세와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 했다. 모두 한쪽 코구멍이나 두 코 구멍에서 코피를 질질 흘리며, 팅팅 부은 얼굴로 기마자세를 취한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쟁 난민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실은 그들보다 훨씬 더 불쌍해 보인다. 코피가 흐른다고 감히 그 코피를 닦으려는 간 부은 인간도 없었다. 오히려 코피가 나며 얼얼한 코구멍은 조금 전의 지옥을 떠올리게 만들어 그들에게 행동의 자유를 박탈해 갔다. 아운은 그들을 한 번 훑어보고 뻣뻣하게 서 있는 나머지 금룡대원들에게 다가갔다. 아운이 사라지자, 그 자리를 야한과 흑칠랑이 대신한다. 야한이 도끼자루를 꺼내 휘두르며 아주 신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좀 못 견뎌 다오.”
칠십이 명의 금룡대 대원들의 얼굴이 노랗게 변한다. 이때 야한의 뒤에 서 있던 흑칠랑이 유난히 긴 가운데 손가락을 쫙 펴고 들어 올리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그렇지 않아도 얼얼한 코 구멍이 뻥 뚫리는 뼈아픈 기억이 새로워지면서 그들의 안색은 거의 죽은 시체처럼 변해갔다. 만약, 혹여, 여기서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기마자세를 푸는 인간이 있다면 그건 나머지 금룡대 전원에게 평생 동안 원한을 지는 일이 될 것이다.
이심방과 북궁명을 비롯한 열세 명의 인물들은 한쪽에 뻣뻣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조금 전 보았던 참혹한 광경을 떠올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명호와 추운 그리고 우영은 이심방이 너무나 고마웠다. 생명을 구해준 것보다도 열 배 이상은 고마웠다. 그들은 추후에 은혜는 반드시 갚으리라고 다짐을 하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아운을 두려움과 존경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약관을 넘은 나이에 강호 무림의 최고 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일한 인물. 그의 한 주먹에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사막의 지배자라는 사라신교와 몽고의 전설, 혹은 사막의 신이라고 칭송을 받는 광풍사를 몰살시킨 전설의 고수. 그들 역시 가슴속으로 가장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바로 아운이었다. 그를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심방은 마른 침을 삼키면서 생각했다.
‘아직 장로들은 권왕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 자칫하면 무림맹 장로들을 최강의 적을 만들 수 있다.’
이심방은 단 한시라도 개방에 이 사실을 알리고 절대로 아운이나 북궁세가와 적대시 하지 말라고 주의를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바로 단절이 되었다. 아운은 서 있는 열세 명의 인물들을 보면서 말했다.
“여긴 나를 아는 인물들이 좀 있군. 만약 내 정체가 혹여라도 내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 원인이 여기 있는 누군가의 입에서 나간 정보라면 최소 여기 있는 사람들이 소속되어 있는 일곱 개 이상의 문파가 나와 적이 될 것이다.”
이심방을 비롯하여 십여 명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변하고 말았다. 그들은 감히 아운의 말을 어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너희들이 어느 문파, 어디 소속이건 묻지 않겠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는 너희는 금룡대의 유일한 대원이다. 그것이 끝이다. 그 외엔 모두 잊도록……. 그러면 나중에 그만한 보상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기면 나 아운과 적이 될 것이다. 난 적이 된 자와 그가 소속된 문파를 그냥 둔 적이 없다. 알겠나?”
아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들은 즉각으로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금룡대가 완전히 부활되었음을 선언하겠다. 그리고 금룡대의 정대원은 여기 열세명과 앞으로 몇 명을 더해서 총 이십여 명으로 구성한다.”
아운은 흑칠랑과 야한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기 두 명은 우리 금룡대의 교관으로 임명한다. 아울러 북궁명은 부대주의 역할을 하고, 여기 우칠은 나의 친위대로 내 호법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너…….”
아운이 왕구를 바라보며 부르자, 왕구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젠 천하제일고수 같은 것 다 필요 없었다. 감히 이런 지옥에 끼어든 것부터가 저주스런 일이었다. 입과 혀가 굳어서 말이 잘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는 세상에서 흑칠랑과 야한이 가장 강하고 무자비한 인간인 줄 알았다. 최소한 고금제일인에게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달랬다. 아주 오래 전 우칠이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아운을 보고 나선, 아니 조금 전 지옥을 보고 나서는 모든 사고 기능이 마비되어 버렸다.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흑칠랑이나 야한이 아운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넌 부호법이다.”
아운은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즉 그는 이제부터 정 호법인 우칠의 수하로 자리를 잡는 순간이었다. 우칠은 드디어 자신에게도 수하가 생겼다는 사실에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이제 제대로 교육을 시켜서 고금제일충복인 자신에게 절대 충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최소 천하제일충복 정도로…….
왕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맞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뭔지 몰라도 일단 우칠은 보기에도 대단해 보이는 덩치였다. 그런 우칠과 함께 고금제일인이 분명한 아운의 수하가 된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왕 자신이 못 될 것 같으면 그런 사람의 수하가 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일 것 같았다. 왕구는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충, 앞으로 고금제…….”
말을 하던 왕구는 도끼눈을 뜨고 째려보는 우칠의 시선을 보고 무엇인가 잘못 말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그 사이에 는 것은 눈치뿐인지라 재빨리 말을 바꾼다.
“고금제이충복이 될 것을 맹세합니다.”
일에서 이로. 왕구의 거창한 말에 열세 명의 금룡대원들은 입이 딱 벌어졌다. 세상에 저런 맹세도 있구나 싶었다. 더군다나 고금제이충복이라니, 그럼 제일도 있다는 말이 아닌가?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우칠을 본다. 우칠은 아주 만족한 표정이었다. 허탈한 기분이 들 정도로……. 반대로 흑칠랑이나 야한은 별로 새롭지도 않았고, 아운은 신경 쓰지도 않았다. 아운은 기마자세를 취하고 있는 금룡대를 바라보다가 다시 열세 명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약속대로 저 자식들은 금룡대의 하인들이다.”
아운의 마지막 말은 단호했다. 누가 끼어들 여지도 없었다. 일다 선언을 한 아운은 이심방을 보면서 말했다.
“야! 거지.”
이심방의 얼굴이 변했다. 아무리 그래도 거지라니……. 그렇지만 얼굴에 추호도 기분 나쁜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는 이미 사막에서 아운의 무자비한 교육을 몸으로 깨우쳤던 자였다.
“부르셨습니까?”
“금룡대는 모두 백이십 명으로 구성된다고 들었다. 나머지는 모두 어디 있는가?”
차가운 아운의 말에 이심방은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그들은 부대주와 함께 비월령주님의 밀명을 받고 그 명령을 수행하러 갔습니다.”
아운의 얼굴에 기이한 빛이 떠올랐다.
“비월령주라면 상아도후 호연란 그 계집에 말인가? 그리고 언제 금룡대에 부대주가 있었나? 내가 듣기로 연 누이는 아직 부대주를 임명한 적이 없다고 들었다.”
이심방은 가슴이 철렁했다. 단언하건데 무림맹 안에서 상아도후 호연란을 계집이라고 큰소리로 말한 것은 아운이 처음이었다. 누가 들었다가 호연란의 귀에라도 들어가면, 누구라도 온전하게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물론 지금의 경우는 좀 다르다. 아운이 아무나 일순 없는 것이다. 아무리 호연란이라고 해도 상대가 권왕이라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심방은 마른침을 삼키고 말했다.
“총사님께서 부대주를 선출하지 않자, 장로원에서 임으로 부대주를 뽑아 임명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로 검각의 소각주인 태을금검 사자명입니다.”
태을금검 사자명은 젊은 고수들 중에서 능히 열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였다. 삼룡사봉을 배고 가장 고강한 무공을 지닌 젊은 고수들 몇 명을 말하라고 하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사자명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아운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이심방의 말을 듣고 난 아운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월권도 모자라 감히 남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단 말이지. 그건 그렇고, 부대주란 자식이 감히 대주인 총사와 의논도 없이 다른 사람의 명령을 이행해. 그것도 자신의 직속상관과 적대적인 계집의 명령을 말이지. 아주 특별한 교육이 필요하겠군.”
아운의 표정을 본 이심방은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금 아운처럼 대놓고 말하진 않는다. 솔직히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수하가 다른 여자의 명령을 듣는다고 하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은근슬쩍 넘어가려 할 것이다. 그런데 아운은 아주 적나라하게 다 펼쳐 놓았다. 더 이상 감출 것도 없이…….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그의 각오가 대단하다는 것이리라. 이심방은 태을금검 사자명을 생각해 보았다. 검각은 사실상 호연세가의 가신이 되다시피 한 곳이었다. 그런 만큼 사자명은 호연란의 말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또한 사자명이 호연란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은 금룡대원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친 호연세가인만큼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 아주 노골적으로 차별 대우를 하며 으스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 불만이 많았던 이심방이었다.
‘너 아주 죽었다고 복창을 해라.’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괜히 가슴이 시원해진다. 이심방은 아주 작성을 하고 나서기로 했다. 이 기회에 아운을 이용해서 확실하게 사자명을 혼내주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이다. 그 동안 당한 것의 몇 백배에 달하는 복수였다. 더군다나 자신은 손도 안 대고 코 푸는 격 아닌가. 이심방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부대주인 사자명은 호연란의 사람입니다.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켁…….”
이심방의 말을 다 들은 아운의 주먹이 이심방의 얼굴을 가격했다. 이심방은 얼굴이 깨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뒤로 삼장이나 날아가 엎어졌다. 이심방이 놀라서 고개를 드는 순간 벌써 눈앞에 나타나 아운의 발이 그의 턱을 올려 찬다. 이유조차 모른 채 구타를 당한 이심방은 금방이라도 맞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잔머리로 유명한 그의 머리가 굳어졌고, 혀가 굳어져서 말도 하지 못한다.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이심방을 보면서 아운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네 복수심에 이용하려 한 대가다. 앞으로 나를 시험하거나 나를 이용하려 하지 말라. 그렇다간 너도 저 놈들처럼 될 것이다.”
아운의 말을 듣고서야 이심방은 자신이 왜 맞았는지 알았다. 아울러 아운이 얼마나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다. 주먹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아운의 지혜와 감각을 본 이심방은 더욱 아운이 두려워졌다. 감히 헛생각을 한 자신의 머리가 미워진다.
“그들은 언제 오기로 되어 있는가?”
아운의 물음에 이심방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제가 듣기로 오늘 안에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주님이 취임했다는 것을 전서구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생각보다 일찍 왔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지금쯤 호연란의 밀명을 이행하고 보고하러 갔을지도 모릅니다.”
“가서 데려와라!”
“옛?”
“거지의 걸음이 빠르다고 들었다. 지금 튀어가서 찾아오란 말이다. 만약 사자명이란 쥐새끼가 호연란에게 먼저 가게 된다면 네 놈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달려!”
“옛!”
이심방은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금룡대 사십여 명이 비밀리에 밀명을 받고 해야 하는 일이라?’
아운은 그 일도 궁금했다.
무림맹의 내성을 달리던 이심방은 얼마 가지 않아서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이유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자명을 비롯한 나머지 금룡대가 마침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향한 방향은 지금 금룡대 본부가 아니라 호연란이 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호연란에게 일의 보고를 하러 가는 것 같았다. 그건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이심방은 다급하게 사자명에게 달려갔다. 사자명은 자신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오는 이심방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부대주께 아룁니다.”
“뭔 일이냐?”
사자명의 냉랭한 하대에 이심방은 울컥하는 기분을 억지로 눌러 참으며 말했다.
“새로 온 대주께서 빨리 금룡대로 오시랍니다.”
“무슨 개 같은 소리냐? 난 지금 밀명을 수행하고 보고하러 가는 중이다. 좀 이따 갈 테니 기다리라고 전해라!”
이심방은 고개를 흔들었다. 만약 여기서 물러섰다가 사자명이 호연란에게 먼저 가게 된다면 그 다음이 너무 두려웠다. 그리고 아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사자명을 데려 가야만 했다. 그러나 사자명의 기색으로 보아 먼저 호연란에게 보고를 하기 전엔 절대로 금룡대로 갈 것 같지가 않았다. 이심방은 급했지만 침착했다. 잔머리라면 금룡대 제일의 인재가 이심방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고함을 질렀다.
“사자명 이 개새끼! 금룡대의 일원이면서 총사의 명도 없이 호연란의 사주를 받고 행동을 해. 당장 오지 않으면 네 놈과 네 수하 놈들을 몽땅 껍데기를 벗겨 나무에 매달아 놓겠다는 대주님의 전갈이다. 그러니 오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라. 이 후레자식아.”
이심방의 말을 들은 사자명을 비롯한 그의 수하들 얼굴이 벌개졌다. 이심방은 그 말을 하고 금룡대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으드득…….”
이를 같아 붙인 사자명이 그대로 이심방의 뒤를 쫓았고 나머지 금룡대의 인원도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는데 그들의 표정엔 살기가 등등했다.
“이놈, 어떤 새끼가 대주인지 몰라도 머리통을 부셔 놓고 보고를 해도 하겠다. 그리고 저 거지 새끼도 사지를 잘라 버리고 말겠다.”
이를 갈며 이심방의 뒤를 쫓는 사자명의 고함 소리였다. 그러나 달리는 이심방의 얼굴에 가득한 회심의 미소를 그는 보지 못했다.
‘너 이 개자식 좀 있으면 지옥이다. 흐흐…….’
이심방이 사자명을 데리러 가자, 아운이 북궁명을 보고 물었다.
“누가 사자명과 그 무리에 대해서 잘 아는가?”
“저도 조금은 잘 압니다. 하지만 완전하진 않습니다. 사실 사자명이 금룡대의 부대주인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운은 북궁명의 말을 듣고 그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선 누나의 처지를 생각했을 때 금룡대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을 것이다.
“너!”
아운이 몽진 일행을 돌아보다가 칠보금검 소광을 지목했다.
“넷. 대주님.”
“자네는 사자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 같군.”
소광이 놀라서 아운을 다시 본다.
“아까 사자명의 이름이 나왔을 때, 네 표정 변화가 가장 극심하게 변하더군. 자넨 사자명과 원한 관계가 있지?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도 가장 많이 알고 있겠군. 그 원한 관계가 무엇인진 묻지 않겠다. 대신 그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 보아라.”
“그…그건…….”
소광은 놀라고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아운의 말을 인정한 셈이었다. 모두 놀란 시선으로 아운을 보았다. 설마 아운의 눈치가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언제 다른 사람들의 표정 변화까지 살폈는지, 그들 중에 눈치 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광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윽고 결심을 한듯 말문을 열었다. 소광의 얼굴은 울분으로 인해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사자명, 그 개자식은 나의 약혼녀를 강간하고 죽였습니다. 그것도 내가 보는 앞에서…….”
아운은 어이없단 표정으로 소광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육 개월 전, 사자명과 그의 수하들이 비월령주인 호연란의 명령으로 안휘성 위씨세가를 멸문시킨 적이 있습니다. 당시 위씨세가의 장녀였던 위지연 낭자는 나와 태중 혼약한 사이였습니다. 난 상황도 모르고 사자명의 명령으로 함께 동행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공격하는 문파가 위씨세가인 것을 알고 전 위지연 낭자만이라도 살려 달라고 빌었습니다. 그러자, 그 개자식은 오히려 나를 비웃으며 그랬다가 우리 가문마저 화를 입을 것이라고 협박했습니다. 그리고 위지연 낭자를 사로잡아 내 앞에서……. 나는 죽을힘을 다해 달려들었지만 단 삼초 만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점혈을 당한 채 쓰러져 있는 내 앞에서 지연 낭자는 강간당한 채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위씨세가도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그들은 너무도 잔인했습니다. 난 언제고 내 손으로 복수를 하겠다는 결심으로 여기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듣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설마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위씨세가는 무슨 이로 공격을 당한 것인가?”
“잘은 모르지만 무림맹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위씨세가를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그곳은 그럴만한 베짱도 능력도 없는 곳입니다.”
소광은 울고 있었다. 아운은 하늘을 보았다. 청명한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그의 답답한 가슴을 더듬고 지나간다.
‘위씨세가처럼 보잘 것 없는 곳을 왜 공격했을까? 그 정도의 세가가 멸문까지 당할 정도로 잘못을 할 만한 일이 없을 텐데……. 그렇다면 무엇인가 사연이 있는 것 같다. 뭐 알 기회가 있겠지. 그건 그렇고 호연란이 여우같은 계집의 머리가 제법이구나.’
아운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다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허허, 그런 거군. 위씨세가가 무엇 때문에 멸문 당했는지 그것은 모르겠지만 금룡대가 한 짓이니 욕은 북궁세가가 먹겠군.”
아운의 말을 들은 사람들 표정은 다시 변했다.
“도사!”
갑자기 아운이 운현검 우영을 부른다. 우영은 도사란 말이 자신을 부르는 것인 줄 몰랐다가 곧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는 것을 깨우치곤 기겁을 해서 대답했다.
“옛.”
“사자명과 함께 하는 무리들이 대체적인 심성이 어떤가? 거의 모든 족속들이 잔인하고 여자를 탐하는 하오배 같은 자들이겠지? 그렇지 않은가? 객관적으로 말해보게.”
아운의 말을 들은 우영은 잠시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사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들에 대해서는 워낙 소문이 무성했던 참이었다.
“무량수불.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소문이 아주 안 좋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들 중엔 무공 좀 높고 소문 안 좋고 그저 그런 가문의 인간인데 장로원의 추천으로 들어온 인간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겠지?”
“그걸 어떻게?”
우영이 놀라서 아운을 보고 반문하자 아운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잔머리 굴리는 인간들을 아주 싫어하지. 호연란 그 계집 아주 기가 막히게 금룡대를 이용해 왔군. 자신의 일은 일대로 금룡대가 처리했고 거기에 따른 원성이나 욕은 북궁세가가 다 듣고……. 하하하, 멋지다. 멋져.”
그 말을 하곤 웃는다. 우영은 아운이 하는 말을 듣고 깨우치는 것이 있었다.
‘볼수록 놀라운 사람이다.’
우영이 아운에게 다시 한 번 감탄할 때, 아운은 차가운 표정으로 소광을 바라보며 말했다.
“복수를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강해져라. 내가 그 기회를 줄 것이다.”
소광이 놀라서 아운을 바라본다. 아운은 냉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소광은 묻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더 이상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심방이 숨차게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수십 명의 무리가 쫓아오고 있었다. 아운은 달려오는 이심방과 그 뒤를 쫓아오는 사자명을 보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잔머리 잘 돌아가는 이심방을 보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심방은 아운을 보자 느긋해졌다.
“대주님, 명대로 사자명과 그의 수하들을 데려 왔습니다.”
“수고했다. 한 쪽에 가서 서 있도록…….”
이심방은 후다닥 자기 자리를 찾아가 선 다음 사자명을 바라본다. 아운은 사자명을 바라보았다. 당당한 체격에 약간 각이 진 얼굴. 날카롭게 갈라진 눈은 누가 봐도 만만해 보이지 않은 인상이었다.
‘제법이군.’
아운은 사자명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음식도 맛이 있어야 먹을 맛이 나는 것처럼, 사람도 칠 맛이 나야 치는 재미가 있기 마련이었다. 수많은 금룡대의 수하들이 전부 기마자세를 하고 도열해 있었고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몽진이나 이심방, 그리고 무당의 우영이 반듯하게 서 있었지만 지금 사자명의 눈엔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이심방이 보고를 하는 것을 보고 아우이 바로 새로운 대주란 것을 알게 되자 일단은 허탈했다. 비리비리해서 별로 무공을 익힌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의 일검도 견딜 것 같지 않은 자였다.
‘이제 막다른 곳에 왔다고 총사가 발악을 하는구나. 얼마나 사람이 없었으면…….’
사자명은 북궁연의 처지를 동정하며 혀를 찬다. 사람은 가끔 하나에 집착하면 주변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는 지금 기마자세로 도열해 있는 금룡대 전원의 처참한 몰골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것을 보았다면 최소한 경계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지금 그의 머리는 아운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고민 하나만으로도 꽉 차고 넘쳤던 것이다. 그러니 그의 시선은 아운 외엔 아무 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은 보았어도 그것이 아운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자명은 실실 웃으면서 아운엑 다가와 고개조차 숙이지 않고 인사를 한다.
“사자명이오. 당신이 새로 온 대주외까?”
아운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내가 대주다. 그럼 네가 사자명이란 호연란의 강아지 새끼가 맞나?”
사자명의 안색에 살기가 감돌았다.
“대주라고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모양이군. 그러다 맞아 죽지.”
사자명의 말을 들은 이심방과 추운, 우영은 물론이고 한명옥, 철담 등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들은 그렇지 않아도 사자명에게 원한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표정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랬다.
‘네 놈 이제 죽었다.’
아운은 사자명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호, 네 놈은 대주에게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것이냐?”
“난 네 놈을 대주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그 말을 들은 아운이 이심방을 부른다.
“야! 거지.”
“옛. 말씀하십시오.”
“이거 하극상 맞지?”
“분명히 맞습니다.”
“금룡대에서 하극상은?”
“최고 사형입니다. 아니 대주님 맘 대로입니다.”
첫댓글 오늘도 작품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오후 되세요
즐감~!
즐독
ㅎㅎㅎ
ㅈㄷㄱ~~~~~~~~~``````````````````````
즐감하고 갑니다.
ㅎㅎㅎ 고놈죽었네
군기
즐독 감사드려요^^^
즐감하고 갑니다.
줄
감사합니다
이 소설을 보며.. 책저자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여러번 ㅎㅎ
하여튼 재미있게 잘 보고 잇습니다
즐감
잘보고 갑니다,
ㅈㄷㄳ
즐독...감사...꾸벅....빵끗.
감사합니다 즐독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
즐감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