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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데이빗리목사(DavidLee) 원문보기 글쓴이: David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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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Lee 저 | 도서출판 GOD 2013.3.30 |페이지 264 ISBN 9788996834007 홈페이지 www.sodbib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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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읽기
복음이 전파되는 일을 위하여 "chapter9. 네 대신 내가 죽어도 좋으니" 전체 내용을 나눕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님들에게 부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Chapter 9
네 대신 내가 죽어도 좋으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요한일서 1:1,2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6‑8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요 1:1). 요한일서는 태초부터 계셨던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에 대한 선포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태초에 이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사도 요한이 살던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선포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계셨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분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이 말합니다. “우리가 태초부터 계셨던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고, 눈으로 그분을 보았다. 그리고 그분의 삶과 사역을 지켜보았다. 그분은 이 땅을 지으신 하나님이신데 그분이 우리와 이 땅에 함께 계셨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또한 내가 그분의 삶을 지켜보았으며 내 손으로 직접 만져보았다.”
사도 요한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드러나신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습니다(요 1:1‑5). 당시에 이 복음은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나와 동일한 인간으로 계십니다. 예수님이 내 옆에 계십니다. 인간들의 삶 속에 예수님이 함께 사십니다.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걸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같은 인간의 목소리로 직접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내 손으로 만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사람들과 함께 사시는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믿기엔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지금이 사도들이 살았던 시대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사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와 함께 예배드리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설교하십니다. 내 눈으로 예수님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옆에 기댈 수도 있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질 수도 있습니다. 정말 실제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육의 눈으로 예수님을 볼 때에는 분명히 우리와 같은 인간인데 이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내 옆에 계신 이분이 태초에 계셨던 이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볼 때는 나와 똑같은 인간인데 이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살고 있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내 눈 앞에 계신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인데 이분이 태초부터 계셨다고 합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분이 인간으로 오신 것이라고 합니다. 영으로, 신으로 존재하셨던 분이 지금 이 땅에 나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내 눈에는 나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는데, 이분 안에 영생이 있다고 합니다. 이분을 믿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이 사실을 믿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서 성령님의 역사하심 없이는 예수님을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리 예수님을 믿으려고 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역사하실 때 믿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기 때문에 이 진리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갑니다. “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구나. 그랬나보다.”하는 것이 우리 믿음의 수준입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분께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셨고, 그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구나.” 이렇게 지식적으로만 압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도들의 시대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시대라고 생각해볼 때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으로 계시는 예수님을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그것이 내 힘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구원은 내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구원은 철저히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당시에 예수님을 손가락질 했던 자들을 정죄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보면 뭔가 특별하고, 하나님의 모습도 가지고 계신 것 같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기대하고 기다렸던 메시야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실 메시야를 기다릴 때 천지를 창조하신 위대하신 분, 태초부터 계셨던 분, 말씀으로 온 세계를 지으신 분, 나와는 다른 신다운 모습의 메시야를 기다리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메시야께서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데 그분은 나와 똑같은 인간입니다. 그분은 신이라고 하시는데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내 귀로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시라고 하면 무언가 신비한 방식으로 말씀을 하셔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야는 정말 신다운 신의 모습. 그분의 음성을 들을 때 심장이 요동하고 엄청난 광선이 발하는, 그야말로 신의 형상을 가진 메시야였습니다. 그런데 메시야라고 오신 분이 내 귀에 들리는 음성을 가지고 있고 내 눈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고 내 집에 초대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만질 수도 있고 함께 걸어 다닐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의 나약함을 뛰어넘는 신의 존재,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신다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데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계신 분이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인간의 나약함을 뛰어넘는 왕권을 가진 신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던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아니고서는 이들이 예수님을 신으로 믿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너무나 가볍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믿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깊은 말씀의 계시로 들어가 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신으로 인정할만한 성경 속의 예수님을 믿기 때문이지, 여러분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여러분도 동일한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분이 무슨 신이시냐. 나와 똑같은 인간이지. 왜 저 분은 본인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가. 저건 마술사들도 하는 기적인데. 왜 저분은 알 수 없는 말들만 하는 것일까. 오히려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면 내가 믿을 수 있을 텐데.” 여러분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이것이 여러분의 고백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수준을 너무 높게 보지 마십시오. 성경을 보면서 너무 쉽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어떻게 예수님께 저렇게 할 수 있지?”라고 정죄하지 마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가진 믿음을 가지고 그 시대로 들어간다면 여러분도 그들과 동일하게 행동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문제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성경 전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하나님은 참된 하나님이시고 정말 위대한 신성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고 어마어마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분이십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슈퍼스타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을 가지신 예수님. 우리가 아는 예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마치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과거에만 일어났던 이야기처럼.
그런데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대한 계시 없이는 거듭남이 불가능합니다. 모든 것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왜 하필 이 땅에 인간으로 밖에 오실 수 없었는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최고의 아이디어가 왜 하필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이었을까? 여러분은 이 질문에 대하여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알리는데 오히려 좋지 않은 방법 같아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의 형상으로 이 땅에 오셨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더 위대하게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어디 감히 예수님께 침을 뱉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신성만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부활체의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체로 문이 닫힌 곳에 갑자기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예수님께서 이런 신비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예수님을 핍박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활체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신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굳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침뱉음 당하고 모욕당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지신 완전한 신의 형상으로 오시지는 않으시더라도, 부활체의 모습으로만 이 땅에 오셨어도 아무도 예수님을 모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내 앞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영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이 태초부터 계셨다고 하십니다. 그분은 엄청난 능력들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형상은 사람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모습도 아니고 또 인간의 모습이 아닌 것도 아닌 우리가 정말 알 수 없는 모습. 신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등장 하십니다. 그리고 갑자기 없던 곳에 나타나셔서 “나를 믿으라. 나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누가 그분을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두려워 떨며 “저분이 정말 신이시다.”라고 고백하며 엎드러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만 하셨어도 모든 사람은 “저분이 진짜 신이시다. 저분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라고 고백하며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방법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본다면 사도 요한처럼 바들바들 떨면서 땅바닥에 엎드러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아 죽은 자처럼 될 것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계 1:17
우리가 하나님을 그분의 형상 그대로 본다면 그 누구도 하나님께 하나님이 아니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신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볼 때 단 한 사람도 오직 그분안에만 구원이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당신만이 유일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만 대대에 영원토록 찬양받으십시오. 영광 받으십시오.”라고 찬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방식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방식으로 이 땅에 오시는 것을 취하지 않으시고 가장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게다가 가장 낮고 낮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엄청난 왕권을 가진 왕의 자녀로 태어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선포하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을 경청했을 것입니다. 그 당시의 왕은 최고 권력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방식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사탄 위에 계신 분께서, 사탄을 짓밟으신 분께서 날 때부터 죽음의 공격을 당하시면서 가장 낮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나셔서 인간과 동일한 모습으로 유아기를 보내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특별한 신성을 보이실 수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3살 때, 세계 온 나라의 언어를 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상한 신성의 능력을 보이시면서 어린아이 때부터 사람들이 “예수라는 아이는 특별한 자다. 예수라는 아이는 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하도록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충분히 그렇게 하실 수 있는 예수님께서 유아기를 잠잠히 보내셨습니다. 인간이 자라가는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부모님께 순종하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유아기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 사역을 하시기 전에는 목수로 일하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마 13:55상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막 6:3상
그분이 수고롭게 일을 하셔야 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굳이 직업을 가지고 일하지 않으셔도 온 세계의 물질을 다 가질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수고하면서 일하시지 않아도 전 세계의 물질을 다 자신에게 모아서 “내가 하나님이다.”라고 선포하심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방법도 취하지 않으시고, 신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이나 하는 목수의 일을 하셨습니다.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께서, 이 땅을 말씀으로 지으신 하나님께서, “빛!”하셨을 때 빛이 있게 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목수로 일하셨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예수님께서 나무에게 “십자가가 될지어다!”라고 명령하셨다면 나무가 복종하여 십자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는 세상에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드러내실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라고 외쳤는데 십자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환한 대낮에 “흑암!”이라고 선포하니 어두움이 임했습니다. 다시 흑암이 된 세상에 “빛!”이라고 선포하니 빛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다면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와 동일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무를 자르고 다듬어서 손수 물건을 만드셨습니다. 어떤 신성도 사용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의 방법으로 자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인간과 동일한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분이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드러내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 사역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인간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삶을 생각하면서 무엇을 깨달으십니까? 예수님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인생 전체가 ‘죽어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신으로서 하실 수 있는 그 모든 방법들을 다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와 똑같이 사셨습니다. 인간의 모습과 똑같이 사셨습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와 동일하게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사셨겠습니까? 왜 예수님은 왕의 자녀로 태어나지 않으시고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으며, 왜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서 사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기간은 3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짧은 사역의 시간을 위해서 30년을 인간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하나님으로서 하실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죽이셨습니다. 다 억제하셨습니다. 신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철저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동일한 고난과 어려움들을 예수님께서 모두 겪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만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그 시간보다 열배나 되는 시간을 죽어짐으로 사셨습니다. 그렇게 공생애 사역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8
예수님은 철저하게 죽어지심으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완전히 비우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완전히 비워 가장 낮은 모습으로 30년의 시간을 죽으셨습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는 오히려 자유롭게 사역했던 3년 동안의 시간이 더 행복하셨을 것입니다. 마음껏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분의 능력을 행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30년 동안 죽어지심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계시면서 이 세상의 수많은 병든 자를 보실 때 얼마나 그들을 고쳐주시고 싶으셨겠습니까? “내가 선포하면 즉시 고침 받을 텐데. 내가 선포하면 일어날 텐데. 내가 선포하면 눈을 뜰 텐데. 내가 선포만하면 되는데.” 예수님은 긍휼의 마음조차 다 죽이셨습니다. 철저하게 죽어지심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얼마나 예수님의 마음이 들끓었겠습니까? 죽어가는 영혼들을 보시면서 얼마나 자유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싶으셨겠습니까? 얼마나 복음을 증거하고 싶으셨겠습니까? 마음속에 얼마나 큰 불이 있으셨겠습니까? 우리 인간도 그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30년 동안 죄악에 빠져 있는 영혼들을 보시면서 얼마나 마음이 들끓으셨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며 유소년기를 보내시고 목수의 일을 하면서 청년기를 보내셨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계셨습니다. 인간과 동일한 모습으로 30년을 사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여러분은 이해하십니까? 죽어지지 않으면 하실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인간의 모습으로 30년을 사셨습니다. 완전하게 죽어지셨습니다. 신으로서 사용하실 수 있는 모든 권한과 능력을 죽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는 오히려 영광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유롭게 선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대해 가르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쉬지 않고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쉬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쉬지도 않으시고 그렇게 계속해서 사역을 하실 수가 있으셨겠습니까? 그분은 30년 동안 참으셨습니다. 30년 동안 철저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철저하게 인간이 사는 방식에 참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그분께서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인간의 삶에 완전히 동참하셨습니다. 인간이 사는 방식대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30년 동안 신성을 나타내시며 사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정한 때까지 자기를 완전히 비워 자신을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30년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껏 복음 사역을 해도, 능력을 행해도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때가 왔습니다. 사역이 시작되었을 때 예수님이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긍휼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30년 동안 병든 자, 죽어가는 자들을 보고만 계셔야 했는데 이제는 선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얼마나 즐거우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보고만 계셔야 했는데,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쓰리셨는데, 애통함으로 수많은 밤을 눈물로 기도하셨는데, 드디어 예수님께서 고쳐주실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때가 온 것입니다.
오히려 30년의 시간이 예수님께는 더 힘드셨을 것입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신 시간들. 어떤 능력도 사용할 수 없는 시간들. 그 시간들이 더 힘드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만약에 이 30년 동안 예수님께서 신성을 사용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이 “예수는 어렸을 때부터 뭔가 달랐어. 어렸을 때부터 신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30년 동안 평범하게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사셨습니다. 동네에 함께 살던 예수라는 목수가 갑자기 “나를 따라오라.”고 말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동네 사람이었다면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있었겠습니까? 신 되신 예수님만을 아는 여러분의 현재의 믿음을 가지고 그 시대로 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실 것 같습니까? 나와 한 동네에서 인간으로 사셨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점검해 보십시오.
이 땅에서 신성을 사용하면서 사셔도 되셨던 예수님께서 왜 30년을 인간의 모습으로 사셔야 했습니까? 왜 그렇게 죽어져서 사셔야 했습니까? 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실 수밖에 없었습니까? 왜 그것이 구원의 최고의 아이디어입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봤을 때 이것이 하나님이 선택하실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빛!”하면 빛이 있게 만드셨던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께서 왜 굳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그렇게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인간에게 모욕당하고 침뱉음을 당하는 삶을 사셔야 했습니까? 왜 그것이 구원의 최고의 방법이겠습니까? 그것에 대해서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 자체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의 방법은 최고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이것이 하나님으로서 선택하실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 아닌 것 같아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우리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고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하실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버리시고 인간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자신을 비우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실 수밖에 없었습니까? 왜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었겠습니까? 다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 죄를 완전히 멸망시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내가 이 땅을 심판할 때, 그때는 죄를 완전히 전멸시킬 것이다. 죄는 완전히 멸망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라면 죄를 가지고 있는 모든 인간은 멸망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죄를 완전히 멸망시키기로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바라보셨습니다. 이 땅을 보시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죄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죄 덩어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죄를 모두 심판하고 멸망시키기로 계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 땅에 살아남을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 땅을 심판할 때는 모든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인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인데 하나님의 손으로 다 죽여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손으로 또 다시 온 인류를 멸망시키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십니다. “내가 직접 인간들의 죄를 해결해야겠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하나님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삯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에는 반드시 대가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망입니다. 온 인류는 죄의 삯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 인류가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직접 해결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삯을 지불하셔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삯을 지불하셔야만 죄를 없앨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시기에 그냥 죄를 없애버릴 수도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신이 말씀하신 것은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그 말씀 아래로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선포한 그 말씀 아래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말씀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래서 직접 죄의 삯을 지불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의 삯인 사망을 다 짊어지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죄의 삯인 사망의 삶을 우리 대신 살아주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죄의 삯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면, 그것은 죄의 삯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신의 모습 자체로는 죄의 삯인 사망을 지불하는 삶이 불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죄의 삯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인생 전체를 사망의 삶으로 사셔야만 했습니다. 그렇기에 신의 형태를 버리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비우사 종의 형태로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삯을 지불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었습니다. 신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창조주께서 피조물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죄의 삯을 지불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하실 수 있는 가장 저주의 삶을 선택하셔야 했습니다.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망의 삶을 선택하셔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온 인류의 죄의 삯이 지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짐승이 사는 말구유로 오셨습니다. 죄의 삯을 지불하셔야 했기 때문에, 온 땅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으로서 태어나기에 가장 수치스러운 곳, 신으로서 태어나기에 가장 수치스러운 곳, 하나님으로서 신의 권한을 완전히 버리시고 태어날 수 있는 장소.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이유는 죄의 삯을 지불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치러야 할 죄의 삯을 지불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일한 신이신, 최고로 높으신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왕이신 하나님께서 낮은 종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대신 죄의 삯을 지불해야 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들이 사망으로 지불해야 할 죄의 삯과 죄로 인한 저주를, 죄로 인한 저주의 삶을 예수님께서 다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삯인 사망의 삶을 사셨습니다. 신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사셨습니다. 자신을 완전히 비우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수님의 삶 전체를 통하여 우리 대신 죄의 삯을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죽어지셔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죄의 삯을 우리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죄 때문에, 여러분의 죄의 삯을 대신 지불하기 위해서 그렇게 죽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죄의 삯을 지불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이 담당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담당해야 할 저주였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죄의 삯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자와 같은 사망의 삶을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이 이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 저주의 삶에서 여러분이 벗어났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의 삯으로 매일 사망의 삶을 살아야 마땅한데 여러분은 어떻게 그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 대신 그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대신 저주의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여러분이 저주의 삶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대신해서 저주의 삶을 살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편안하다고 그 삶을 당연히 여기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 여러분 대신 십자가의 삶을 사셨기 때문에 편안한 삶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이 사망의 삶에서 벗어난 유일한 이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는 핍박이 있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진리를 선포하시는데 어떻게 감히 인간이 핍박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감히 인간이 예수님을 저주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역을 하실 때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왜 이 삶을 사셨겠습니까? 그 수치와 모욕은 여러분이 당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침뱉음과 저주와 모욕들은 여러분이 담당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죄의 삯을 지불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매일의 삶은 저주의 삶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매일 침뱉음 당해야 합니다. 수치당해야 합니다. 조롱당해야 합니다. 저주받아야 합니다.
죄가 없으시기에 그렇게 사실 필요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여러분이 받아야 할 모욕과 수치를 다 당하셨습니다. 죄의 삯을 지불하셨습니다. 전 생애 동안 죄의 삯인 사망의 삶을 사셨습니다. 죽어진 자와 같은 삶, 그 모욕의 삶을 예수님께서 사셨습니다. 여러분의 죄의 삯을 담당하기 위해서, 여러분에게 생명의 길을 내주시기 위해서, 여호와의 날에 한 사람도 멸망당하지 않고 천국에 가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기꺼이 모욕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님 자신이 여러분 대신 죄의 삯을지불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이들을 대신하여 죄의 삯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들을 대신하여 죄의 삯인 사망의 삶을 내가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선포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에 최고의 저주를 받으십니다. 신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저주, 죄의 삯인 사망. 예수님께서 여러분 대신 죄의 삯을 지불해주시기 위하여 그 저주를 담당하시기로 결정하십니다. 죄를 지으면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인간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인간들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인간들의 죄를 모두 다 끌어안으시고 그 죄에 대한 심판을 자신이 받기로 결정하십니다. 최고의 저주를 받기로 결정하십니다. 온 인류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만한 최고의 저주, 신으로서 당할 수 있는 최고의 저주, 신이 인간의 땅에서 당할 수 있는 최고의 저주를 받기로 결정하십니다.
이 저주는 우리가 받아야할 저주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져주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인간에 의해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 인간에 의해서, 자신이 지은 인간의 손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최고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지으신 인간으로부터 모욕과 저주를 당하며 죽는 것, 인간의 손에 죽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최고의 저주였습니다. 그것이 죄의 대가의 완성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이 땅에서 우리가 지은 죄의 삯을 지불하시며 사망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인생 전체가 죽어지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우시지 않고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완전히 죽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그 삶을 사셨습니다. 죄의 삯을 모두 지불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이 지불해야할 죄의 삯을 완벽하게 지불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여러분이 져야할 십자가였습니다. 여러분이 당해야 할 침뱉음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받아야 할 조롱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찔려야 할 창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 53:5
여러분이 십자가에 달려서 “이 사람은 저주받은 자다. 이 사람은 죄로 인해 저주 받은 자다. 이 사람은 죄인이다.”라고 조롱당하며 죽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전체가 사망의 삶이다가, 핍박받고 조롱받는 저주의 삶이다가, 인생의 마지막에 악질의 죄인들만 매달아 죽이는 십자가에서 죽는 것,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이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이 그런 저주의 삶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음의 삶을 사셨습니다. 여러분이 살아야 할 인생을 예수님께서 대신 사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단 한 사람도 죄로 인해서 멸망시키고 싶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네 대신 내가 죽어도 좋으니 내가 이 땅에 다시 올 때 너희들 모두가 나와 같이 천국에 가면 좋겠다. 내가 지은 가장 좋은 집에서 나와 함께 살면 좋겠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마음 하나로 그 저주의 인생을 다 사셨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이 모든 삶은 여러분이 사셔야했던 삶입니다. 여러분은 조금만 수치당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태초부터 계셨던 예수님께서 신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삶을 사시면서도 그 수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던 이유는, 너무나 수치스러워도 그것을 개의치 않으셨던 이유는,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해서, 여러분을 살리고 싶으셔서, 마지막 때 여러분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함께 가고 싶으셔서, 천국잔치에 데려가고 싶으셔서, 그 모든 저주의 삶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오직 여러분을 향한 사랑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그렇게 사셨는데, 여러분이 예수님 때문에 모욕당하고 예수님 때문에 수치당할 때 마음 아파하고 속상해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수치와 부끄러움을 참으셨습니다.
얼마나 수치스러우셨겠습니까?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은 인간에게 모욕당하고 침뱉음 당하면서 얼마나 수치스러우셨겠습니까?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고 괴로우셨겠습니까? 얼마나 모욕적이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참으셨습니다.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수치 당하면서 어떻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개의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습니다. 온 인류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 자신이 당하는 모든 부끄러움을 다 덮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십자가만 지면 나를 통해서 모든 인류가 죄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아버지께로 올 수 있기 때문에,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으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간구하십시오. 이 말씀이 내 영혼에 새겨지도록, 예수님의 사랑을 내가 알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다 버리셨습니다.
여러분을 위해 자신을 버리신 예수님을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버리고 어떤 삶을 드리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자신을 다 비우시고 버리신 예수님께 여러분은 무엇을 드리고 있습니까?
책소개
|머리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1‑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누가복음 13:23‑28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경 가운데 가장 끔찍하고,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교회의 목사로 직분자로 모태신앙으로 교인으로 봉사하면서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당연히 천국에 갈 줄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과 같이 여러분이 죽어서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예수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구나. 행악하는 자야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신다면 이처럼 끔찍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때는 억울함에 소리치며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후회하며 회개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판결이 난 후에는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을 뿐입니다. 사탄에게 속아서 자신이 구원받은 줄로 착각하며 살았다는 것을 밝히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어도 소용없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어도 소용없습니다. 목사와 신학자와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어도 소용없습니다. 모태신앙이었어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합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하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느니라 요 3:5하
이 말씀이 예수님의 기준입니다. 예수님은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거듭나지 않고도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목사로 신학자로 장로로 교인으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끝은 지옥입니다. 거듭나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허락된 이렇게 큰 구원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히 2:3). 거듭남은 이전의 육신의 삶을 버리고 천국의 삶을 시작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는 삶을 살게 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합니다. 핍박과 고난과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영광에 동참하게 합니다. 주의 날에 슬피 울며 이를 갈지 않도록 당신의 구원을 점검하십시오.
이 세상의 신분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사탄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고, 거짓의 아비 사탄을 따라 살면 지옥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대에 사탄이 사용하고 있는 가장 교묘한 계략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구원받은 줄로 착각하게 만들어서 지옥에 보내는 일입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거듭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자신의 구원을 점검하십시오.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거듭났는지 확인하십시오. 전도자의 영접기도를 따라했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전도 집회에서 감동을 받아 입으로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했다고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의 거듭남과 구원을 점검하십시오. 지금 자신이 거듭났는지 점검하고 깨닫는 것이 지옥에 가는 것보다 수천만 배는 더 낫지 않겠습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분들은 자신이 거듭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책을 덮어버리는 사람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어서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사람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탄에게 속은 것 때문에 화가 나는 사람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거듭남을 갈망하며 기도를 시작하는 사람
여러분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그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이 회개의 세례를 받고 거듭나기를 원하십니다. 구원에 이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딤전 2:4, 요 3:16).
당신이 거듭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 깨달음은 당신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책이 지금 당신의 손에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이 책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당신의 손안에 들어오기까지 사탄은 끊임없이 훼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하여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성령님의 말할 수 없는 탄식의 기도로 인해 이 책이 당신의 손에 들려지게 되었습니다. 당신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마십시오.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한 때요.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고후 6:1,2).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
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딛 3:5
저자소개
지은이 David Lee 목사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예수님만 남은 자
사랑과진리교회 담임목사
나의 삶의 마지막 고백이 이러하기를 기도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디모데후서 4:6-8
사랑과진리교회는...
사랑과진리교회는 천막교회입니다. 우리교회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으로 열방의 교회와 목회자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세워졌습니다. 사랑과진리교회는 열방의 교회와 목회자를 세우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위하여 지금도, 앞으로도, 교단에 소속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과진리교회는 오직 예수님만을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저는 평생 교회에서 월급을 받지 않는 목사로 섬기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사랑과진리교회는 앞으로도 성전건축은 하지 않습니다.‑물론 열방을 위해 기도할 기도실과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들어오셔서 안식과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고 하나님께 새 힘을 공급받아 다시 사역지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섬길 수 있는 장소(Revival Center)는 마련할 것입니다. 담임목사의 월급과 건축에 들어갈 모든 비용은 선교와 구제를 통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일도 주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이러한 결정에 모든 성도들이 기쁨으로 찬성하였습니다. (예수 p.262-263. "서신|이 책을 통하여 동역자가 될 열방의 친구들에게" 중에서)
목차
머리말|비참한 당신을 구원 할 단 하나뿐인 진리 예수
1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2 하나님 저는 구원받았습니까
3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4 여러분은 왜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5 여러분은 왜 사십니까
6 여러분은 예수님의 어떤 사랑을 원하십니까
7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는 죄, “이 정도는 괜찮겠지?”
8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9 네 대신 내가 죽어도 좋으니
10 이 보배를 질그릇에
11 땅에서도 천국을 누리는 사람들
서신|이 책을 통하여 동역자가 될 열방의 친구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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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GOD 설립목적
1.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책에 담아 열방에 전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2. 도서출판 GOD에서 출판되는 책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흘러가 닿는 곳마다 새로워지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 생명을 얻도록 돕습니다.
3. 열방의 영혼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혼육에 부요함을 얻도록 돕습니다.
4. 예수님처럼 열방의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들을 말씀과 기도와 재정으로 섬깁니다.
첫댓글 말로 표현할수 없는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