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마르크의 ‘개선문’
작가 ; 레마르크(1898-1970)
초판 ; 1946
<개선문>은 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파리에 머무는 피난민들이 사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라비크는 독일인이지만 나치의 횡포에 반대를 하다 강제수용소에서 친구들과 애인을 잃고 파리로 망명한 외과의사이다. 라비크란 이름은 그의 세 번째 이름이며, 무능한 현지 의사들을 대신하여 어려운 수술을 해주지만 신분의 문제로 아주 일부의 대가만을 받는다. 그는 5년 이란 기간을 파리에 머무는 동안, 네 번을 추방 당했고 네 번을 다시 돌아왔다. 국가를 탈출했고 애인마저 죽임을 당했기에 그에게 사랑은 당장의 사치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이런 순간에 사랑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바로 조앙 마두이다. 하지만 피난민과 거주민의 신분상 그들의 사랑은 녹록지 않다. 그를 위로해주는 것은 칼바도스 한 잔과 러시아 친구인 모르소프와의 체스 정도랄까.
그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군인이거나, 망명객들이다. 개선문의 주인공 라비크 역시 망명객이다. 종합병원의 유능한 외과 과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루드히 프레젠부르그는 나치에 반대한다는 한 가지 이유로 애인이 살해 당하고 여권도 없이 조국을 탈출해 파리로 숨어든 불법 입국자로 라비크 라는 가명으로 살아간다. 그는 프랑스 의사에 고용 되 환자가 마취된 사이에 나타나 수술을 하고 사라지는 유령의사이고 창녀를 대신 검진해 주고 몇 푼 받아 칼바도스에 취하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다.
라비크가 묵고 있는 개선문이 내려다 보이는 몽마르트르의 싸구려 호텔 ‘앙테르내쇼날’은 유럽 각지에서 몰려든 망명객, 도망자들이 내일의 희망도 없이 그 날 그 날을 찰나적으로 살아가는 곳이다. 눈사태에 묻히듯 모든 것이 없어지고 의지할 곳 없이 살아가는 그에게 희망이 있다면 그를 고문하고 애인을 학살한 게슈타포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거대한 감옥으로 변한 유럽, 절망이 어둡게 내려 깔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대포소리처럼 공포가 밀려온다. 우연히 세느강 다리에서 만나는 여배우 조앙 마두, 자살하려는 조앙을 만나 같이 칼바도스를 마시고 거처를 구해주고 일자리를 주선해준다. 조앙은 라비크에게 연정을 품으나 과거의 상처와 피해 다니는 처지의 그로서는 사랑을 선뜻 받아 드릴 수 없다.
어느날 밤 라바크는 센 강변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한다. 마치 강물에 뛰어들 것처럼 여인은 불안정해 보인다. 라바크는 그녀를 개선문 근처의 술집으로 데려가서 술을 사준다. 그리고 여인을 호텔로 데려온다. 그녀는 이탈리아계 혼혈로서 조앙 마두였다. 영화배우 지망생이다. 동거남이 죽자 뛰어나온 것이다. 라바크는 뒷 처리를 깨끗하게 해주었다.
그는 파리의 뒷골목에서 불법 시술로 생명을 잃는 일까지 있음을 알고, 나서지만 자신도 불법체류 의시로서 떳떳하게 의료행위를 할 수 없었다.
라바크가 형처럼 따르는 사람은 러시아에서 망명해온 모로조프로 나이트 클럽에서 일했다. 라마크는 그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지냈다.
독일에서 라바크의 애인까지 연행하여 고문으로 죽게 한 자가 하아케였다. 파리의 술집에서 하아케를 보게 된다. 결국에는 그를 살해하여 복수한다.(이런 저런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조앙 마두도 이 남자, 저 남자 사이를 돌아다니다 총을 맞아 죽는다. 라바크가 쫓아가니 ‘진심으로 사랑했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라바크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불법체류 사실이 발각 되 추방 되었다 다시 파리에 나타난 라비크는 다시 조앙을 만난다. 그 사이 마음에도 없는 남자와 동거하고 있던 조앙은 그 남자가 쏜 총에 맞아 죽는다. 죽어가는 조앙을 수술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라비크. 라비크는 게슈타포 하케를 우연히 만나 브로뉴 숲으로 유인해 죽임으로 복수를 한다.
독일이 선전포고를 하고 마침내 전쟁이 시작된다. 불법체류자 일제단속이 시작 되고 라비크도 다른 망명자들과 함께 트럭에 실려간다. 트럭에 실려가는 라비크는 담배를 찾았지만 한 개비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에뜨와르 광장에는 어둠만 깔려 있고 불빛은 하나도 없다. 주위가 너무 어두워서 개선문조차 볼 수 없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담배가 절실히 필요할 때 담배가 없다는 것, 그건 단순히 아쉽다는 걸 넘어 절망, 좌절, 고통, 허탈을 의미한다. 개선문은 그렇게 끝난다.
1946년 발표 된 개선문은 2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 셀러로 2차 대전 직전의 절망적이고 어두운 유럽 분위기를 그린 걸작이다. 개선문이 영화로 나온 것은 1948년이다. 샤를르 브와에(라비크) 와 잉그리드 버그만(조앙 마두)이 나오는 개선문은 흑백영화다. 프랑스 출신의 배우로서 오스카 주연상 후보로 4회 지명된 샤를르 부와에 대표작으로 가스등 이라는 영화를 올드펜들은 기억 할 것이다. 1978년 8월26일, 79회 생일을 이틀 남겨두고, 부인 팻 페터슨이 죽은 지 이틀 만에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스웨덴 출신 배우로 한 세대를 주름잡은 대배우다. 카사블랑카,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가스등을 비롯해 많은 명작에 출연한 전설적인 배우로 ‘가을 소나타’의 피아니스트 역으로 나온 게 마지막 작품일 듯. 험프리 보가드와 열연한 ‘카사블랑카’는 헐리우드 애정영화 100선에서 1위로 꼽히는 영화다.
개선문에는 압상트 와 칼바도스가 나온다. 라비크가 조앙을 처음 만나는 날 술집에 들어 갔을 때 창녀들이 압상트를 마시고 있었다. 압상트는 중독성이 강한 독주로서 원산지는 스위스인데 한때 제조금지 되었다 80년대부터 다시 제조 되고 있다. 로트렉, 고흐, 드가, 랭보 등 예술의 천재들이 압상트 애호가였다. 고흐가 귀를 자른 것도 압상트에 취해서였다 한다.
라비크와 조앙이 마시는 술이 칼바도스다. 칼바도스 지방 사과로 만든 브랜디라 하는데 이것도 독한 술이다. 사과의 달고 시큼한 향이 좋긴 한데 돈 없는 망명객들이 마시는 술이 비싸고 고급 술일 리가 없다.
라비크가 묵고 있는 호텔 앙테르나쇼날은 각 나라에서 망명한 피난민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그 호텔의 식당은 카타콤베라고 불리며 경찰검문이 있는 날이면 여권이 없는 피난민들이 숨어 있는, 종교적 피난처가 아니라 정치적 피난처로 대변되어진다. 20세기 초 극변하는 정치적인 사상과 전쟁속에서 정권을 잡은 자와 정권에서 쫓겨난 자가 극명하게 갈리게 된다. 한때는 망명객들이 다시 정권을 잡으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또 밀려난 정치인들이 다시 망명객으로 몰려오는 현실이다. 망명객들이 떠난 호텔방에는 자신들의 숭배하던 정치인들의 초상들이 걸려있다. 초상들은 주인의 손에 잘 보관되어 진다. 다시 올 그들을 위해서 말이다. 이런 정치적인 격변기에 놓인 파리는 음울하면서도 술렁인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어 <칼바도스>나 <코냑>에 의지하게 된다.
개선문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상 가장 큰 전쟁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의 휴머니즘이 스며들어 있다. 그 불안한 상황에서도 서로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위트가 존재한다. 개선문이 나에게 주는 가치는 이 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 다 사람 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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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을 어느 의사가 쓴 글에서 발췌한 부분도 있다. 그 의사는 라바크가 휴머니티를 가진 의사로서 최선의 길을 택했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