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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광야로 온 사울 26:1~7
1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2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3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산 길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4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5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사울을 살려 준 다윗 26:8~12
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12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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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사울이 3,000명과 함께 다윗을 찾으러 십 광야로 내려가 진을 칩니다. 다윗은 밤중에 아비새와 함께 사울의 진영에 이릅니다. 모두가 깊이 잠든 가운데 아비새가 사울을 죽이려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안 된다고 하며 사울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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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광야로 온 사울 26:1~7
어리석은 자의 약속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다윗을 ‘내 아들’(24:16)이라 부르며 용서를 구하던 사울의 모습은 일시적이었을 뿐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다시 십 광야로 갑니다. 다윗은 정탐꾼을 통해 사울의 동태를 파악하는 등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합니다. 사울의 진을 관찰하던 다윗은 아비새만 데리고 사울의 진영 안으로 들어갑니다. 마치 요나단이 병사 한 명만 데리고 블레셋 진영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유사합니다. 한밤중이라 할지라도 3,000명의 군사와 보초들로 둘러싸인 진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행동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다시 시작된 사울의 추적에 다윗은 어떻게 대응했나요?
내가 담대히 믿음으로 직면해 해결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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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을 살려 준 다윗 26:8~12
사울은 많은 군대와 부하에 둘러싸여 진영 한가운데 잠들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안전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비새는 하나님이 사울을 다윗의 손에 넘기셨다며, 자신이 단번에 죽이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윗은 이번에도 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이는 것은 죄며, 하나님이 친히 사울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나발의 죽음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오는데, 창은 사울의 생명이 다윗의 손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무사히 사울의 진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울과 모든 군대를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다윗이 사울의 창과 물병만 취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수에게 복수하고 싶을 때 내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 말씀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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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이 풀어 주신다
누군가 폭행을 당하거나 사기를 당했다고 하자. 그러면 친구에게 하소연하고 울면 끝나는가? 아니다. 여전히 억울하다. 화가 나는 감정을 쏟아 놓고 한바탕 울면 잠시 위로는 되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소를 하면 된다. 법에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은 공의를 세워 줄 것이라는 신뢰가 종종 배신당하는 경우가 있다. 적합한 증거나 증인이 없을 수 있고, 인간이나 인간이 만든 법은 100% 공의로운 심판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억울함에 대한 기독교적 해결 방식이 존재한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의로운 재판관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억울하고 원통한 일, 격분되는 일이 있으면 공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아뢰면 된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원한을 풀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 탄원한 뒤에 따로 복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억울함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면, 원수를 온전히 하나님의 진노에 맡겨 두는 것이 옳다. 그러고 나서는 격분한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렇게 하나님께 맡길 수만 있다면 상처에 매여 복수심의 노예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이 풀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으로, 평안함 가운데 은혜의 길을 갈 수 있다.
기도하면 응답된다 / 이인호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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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사무엘상 26장 9~10절
자신의 이익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은 바른 신앙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고 왕이 될 두 번째 기회를 포기합니다. 심지어 자기 부하들에게 사울에게 손대는 것은 '죄'라고 말합니다. 두 번이나 사울을 죽이지 않은 데서 다윗의 일관된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성품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삶에서 일관되게 드러나야 합니다.
개인과 교회의 잘못을 주님만이 궁극적으로 판단하시기에, 판단은 주님 손에 맡겨 드림이 합당하다. - 필립 얀시
오늘의 기도
하나님, 자기 잘못을 인정했던 원수가 동일한 모습으로 다시 공격해 올 때, 인간에 대한 실망이나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게 하소서. 반복되는 공격에 감정이 상해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310 아 하나님의 은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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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뜻을 내려놓고, 온전히 당신께 맡겨 드리고, 당신의 뜻과 계획을 믿고 따르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께서 시선을 집중시키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자 / 똑같은 상황, 동일한 선택의 상황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우선되는 선택을 하고, 그분을 굳게 믿으며 나아가자 / 하나님께 우리를 온전히 맡겨 드리고, 당신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이끌어 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그분의 일하심을 기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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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시고 우리의 변화를 확인하십니다. 24장에서 자신을 살려 준 다윗에게 고마워했던 사울은 언제 그랬냐는 듯 3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다시 다윗을 추격했습니다. 다윗은 아비새와 단둘이 용감하게 적진 한복판으로 들어가 사울의 창과 물병을 들고나왔습니다. 나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와 갚아 주심을 경험한 후, 더는 사울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묵상하는 말씀과 경험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며 자라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대하시고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까?
7-12절 :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3천 명의 병사도, 머리맡에 둔 창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잠들게 하시자 다윗은 아무런 충돌 없이 사울의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의 안전을 지켜 준다고 생각하는 '군사와 창'은 무엇입니까?
나의 안전은 그 무엇도 아닌,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삼상 24장에서 자신을 살려 준 다윗에게 고마워했던 사울은 언제 그랬냐는
듯 3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다시 다윗을 추격했습니다.
마 12:45.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딴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에 들어가 거기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래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비참하게 되었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
악한 세대가 바로 악한 사울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아닌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여 영적으로 단단히 무장이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이해할 수 없고,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직면 한다 할지라도
내 감정대로 판단하여 행동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6,7절 :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3천 명의 병사가 진 치고 있는 곳에 몰래 들어가는 행동은 위험천만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나와 가겠느냐?"라는 다윗의 물음에 아비새는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라고 대답하며 따랐습니다.
일부러 위험을 자청할 필요는 없지만, 때로는 위험을 무릅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함께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일은 없습니까?
아비새의 용기는 대단하다.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 다윗과 함께 가겠다고 대답했을까?
다윗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무모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기 원한다.
때론 죽음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주께서 원하시는 길에는 용기를 낼 수 있기 원한다.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한다.
8-12절 :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상황이나 환경보다 하나님의 뜻이 우선합니다.
적진 한복판까지 무사히 침투한 아비새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사울을 죽일 절호의 기회를 주셨다고 말했지만,
다윗은 기름 부음 받은 왕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이라며 거부했습니다.
(롬 12:19)고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복은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고,
하나님은 오히려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리한 상황이라고 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금하시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더 우선하는지 확인하는 시험 (test)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보복은 내 자신의 권한을 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분명히 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화가 나고, 억울한 일을 당하였을지라도 보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 5:39)..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너희 왼편도 돌려 대며....
불가능해 보이는 일처럼 여겨지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를 존중해 드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보복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 절대적인 기회라고 여겨지는
그 순간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존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상황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을 이룰 기회와 힘을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지켜 주시지 않으면 3천 명의 병사도, 머리맡에 둔 창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사울을 잠들게 하시자 다윗은 아무런 충돌 없이 사울의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의 안전을 지켜 준다고 생각하는 '군사와 창'은 무엇입니까?
나의 안전은 그 무엇도 아닌,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고향 사람으로부터 배반을 당하는 모습 속에서 고향에서 배척을 당하시고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마13:55)의를 위해 힘쓰는 자는 자기 고향, 친족사람들에게 조차 배척 받는 경우가 많다
55.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57.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척하는 자들에게 하늘에서 심판의 불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악을 선으로 갚는 전정한 모습니다.
갈6: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고 따라가는 성도들은
악을 선으로 갚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삶에서 배반을 당하고 배척을 당하여도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의지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길 소원합니다.
(마 5:44)“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말씀 하시며
복수와 심판은 인생의 몫이 아님을 강조하셨습니다.
날마다 사랑하고 용서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그리스도인의 충성
1. 충성의 이유
예수 안에서 그 이유를 찾게 된다. 예수는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충성했다. 충성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 말씀에 대한 신앙을 삶으로 고백하는 것이다(갈6:17).
2. 충성의 대상
하나님께 충성할 뿐 아니라 세상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은 국가, 가정, 교회, 사업, 삶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전4:2).
3. 충성의 결과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충성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더욱 많은 사역과 상급으로 채워주실 것이다(마25:23).
하나님 아버지,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고 광야에서 길을,
사막 가운데에서도 강을 내시는 그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을 높여드립니다.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하시고 부활의 생명으로 이끄셨으니
그 은혜에 합당한 제자 된 삶, 그 본을 따라 걸어가는 믿음의 삶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권력자의 원수로 지목되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고난의 기간을 살고 있는
같은 지파의 사람을 자신들의 눈에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발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또 다시 어려움을 당하게 하는 일들이 지금 이시대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옵니다.
깊이 잠든 사울을 죽이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다윗의 지혜는
나발의 사건을 통해 얻은 교훈으로 다윗을 더욱 더 성숙한 신앙의 사람으로 만드셨나이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는 진정 우리가 영적인 자유함을 말씀 속에서 누리고 싶습니다.
죄에서 율법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믿음으로 성령을 따라 말씀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싶습니다.
이 일은 개 개인이 주님과의 일대일 말씀 속에 묵상의 단계에 들어가서
깊은 교제를 함으로 주시는 은혜이오니
주의 말씀을 전 인격을 드려 묵상하고 행하는 복된 사람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제는 진정 성도들 스스로 주의 말씀을 묵상하여
성령의 인도 보호하심을 체험하여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를 간구합니다.
개 개인의 인격과 삶에 오셔서
교만하지 않기 위해 ...
죄를 고백하기 위해 ...
주의 뜻대로 기도하기 위해...
주님과 함께 말씀으로 하루 하루 먹고 사는 일을 경흘히 여기지 않기 원하옵니다
성도들의 영성이 깊이 잠들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하옵는 것은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말씀 묵상에 있음을 앎이옵니다.
말씀과 함께 성령을 따라 기도하며
성령을 따라 죄를 알아 고백하고
성령으로 주의 말씀이 죄사함을 주시고 그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심을 믿음으로 알며
성령이 말씀과 함께 몸을 드려 행하게 하시는줄 체험하는 성숙한 성도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성도 개 개인의 삶에 들어오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두드리심을 듣게 하옵소서
주님의 인격을 삶에 모신 자들로 우리의 지도자를 삼아 역사하시옵소서
주의 지혜를 따라 지도하는 성령의 시람을 우리의 지도자로 세워 주시옵소서
오늘도 주의 손에 주의 원수를 맡기는 지혜와 순종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