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봉이 정상이다.
팔공산은 세 개의 산봉이 정상을 이룬다. 그 중에도 가운데에 있는 봉우리가 중봉이며, 산의 정상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정상의 이름을 중봉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하늘이 맑고 푸른 날에는 우리 집 나의 서실의 책상에 앉아서 창 너머로 바라보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팔공산 산봉이 뚜렷하다. 삐죽삐죽 솟아있는 안테나의 탑이 보일 듯 말 듯 하고 그 아래로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흰색 건물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느껴진다. 산이 높으니 공군 레이더 부대가 주둔하는구나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지금은 개방이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도 민간인은 아예 접근도 할 수 없었다. MBC 방송국 차를 타고 한 번 가 본 일은 있었지만 나와는 무관한 산봉이었을 뿐이었다. 일요일에 배낭을 메고 팔공산 정상이라면서 올라 간 곳은 실제로는 정상이 아니었다. 동봉이라고 불렀던 산봉이다. 동봉의 정상에는 표지석도 세워져 있고 산의 높이도 적혀 있다. 나는 으레 여기가 정상인 줄 알았다.
이정웅씨가 쓴 “나의 사랑, 나의 자랑 대구”라는 책을 읽고 나서 공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산봉이 정상이며, 전에는 비로봉이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중봉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대구시의 공무원 생활을 할 때 팔공산을 관리하는 부서에 근무하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팔공산을 사랑하신 분이다. 더욱이 팔공산 유적지를 일일이 발로 누비면서 한 곳, 한 곳을 눈으로 확인한 향토 사학자이다. 우리가 접근하지 못하였던 중봉을 다녀와서 쓴 글을 읽었다. 팔공산 정상의 생태계를 조사하러 가는 연구단의 초청을 받고 동행하였던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었다.
“동봉에서 본 정상은 뾰족하게 보였는데 이곳에 와 보니 펑퍼짐하였고, 초원이었다. 지난 번 휴가 때 올랐던 광주의 무등산 정상을 연상시켰다. 부대장님으로부터 따뜻한 차를 대접받고 이어 조사가 실시되었다. 산이 높아 구름 속에 가려져 있었는데 오늘따라 날씨가 무척 청명하다는 부대장님의 말에 우리는 모두 웃었다.(초행에 이런 행운을 만난다는 것은 무슨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이다.)
모 회장님과 홍 교수님, 김 교수님은 표본채집과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으나 내 관심은 사실 딴 데 있었다.
하나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한 후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평안을 위해 제를 올렸다는 제천단(祭天壇)과, 다른 하나는 임란 3개월 후 서사원, 이주, 손처놀 등이 중심이 되어 의병 활동을 전개했다는 공산성을 찾는 일이었다.“
나는 사전에 동봉에 관한 아무런 지식이 없이 MBC차를 타고 올라갔다. 중봉의 정상에 돌로 쌓은 단이 있었나 보다. 이것을 모씨가 일방적으로 하늘에 제사지낸 제천단이라고 발표해버렸다. 제천단이라고? 믿기 어려웠지만 ‘아니다’라는 근거 지료도 준비하지 못하였으니 아니라고 주장할 처지도 못되었다. 나의 중봉답사기는 이처럼 산봉에 돌로 쌓은 의문의 단(壇)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산 위에 단이 쌓여있다고 근거도 없이 제천단이라고 하는 것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정상에 있는 의문의 돌 무더기는 앞에 올린,, 제 책의 표지 사진입니다.)
첫댓글 팔공산 정상 중봉에서
찍은 사진들
민간인 신분으로 갈 수가
없었는데 아름다운 추억을
보고있습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