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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기업으로
전기장비 만들어 팔던 회사가
에너지 관리업체 '깜짝 인수'
취임 6년만에 매출 90% 증가
직원의 잠재력을 깨워라
2년간 해외근무 시켜 '산교육'
여성인재엔 글로벌 임원이 멘토링
아시아에 집중하라
주로 홍콩사무소에서 근무
중국 이름 '자오궈화'로 지어
출장은 늘 수행원 없이 혼자 다녀
2006년 10월 프랑스의 슈나이더일렉트릭은 미국 로드아일랜드의 데이터센터에 에너지 관리 장비를 공급한 아메리칸파워컨버전(APC)을 61억달러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차단기 등 전기장비를 팔던 회사가 전력 배전 등 에너지를 관리하는 운영사를 인수하자 시장은 차갑게 반응했다. 관계없는 분야에 진출한다는 평가와 함께 슈나이더일렉트릭의 주가는 이틀 만에 8% 넘게 급락했다. 보수적인 주주들은 새로 온 최고경영자(CEO)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산업의 회사를 사려 한다며 반발했다.
새로운 CEO는 뚝심 있게 의견을 관철해 나갔다. 잇따라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공시켰다. 오래지 않아 성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CEO가 취임한 뒤 6년 만에 슈나이더일렉트릭의 매출은 90% 이상 증가했고, 수익은 2배 이상 늘었다. 이 같은 변화를 이끈 것은 2006년 5월 CEO에 오른 장 파스칼 트리쿠아였다. 슈나이더일렉트릭은 지난해 기준으로 235억유로(약 31조8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세계적인 에너지 관리 회사로 변신에 성공했다.
전자 장비 회사를 에너지 관리 전문업체로
196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장 파스칼 트리쿠아는 프랑스 서부전자대학(ESEO)에서 전자공학 석사학위를 받고 프랑스 리옹 경영전문대학원(MBA)에서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1985년 프랑스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알카텔에서 일을 시작하며 전기 장비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듬해 경영 컨설팅 회사와 건축회사를 거쳐 전력배전 제품 회사인 머린저린으로 옮겼다.
그와 슈나이더일렉트릭의 인연은 1988년 머린저린이 슈나이더일렉트릭에 인수되면서 시작됐다. 트리쿠아는 새로운 회사에서 글로벌 전문가로 커리어를 쌓았다. 이탈리아, 중국, 남아프리카 등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전 세계 시장을 보는 안목을 키웠다. 1999년 프랑스로 복귀한 뒤에는 슈나이더일렉트릭 글로벌 전략 총괄, 국제운영 부문 수석부사장, 최고운영책임자(COO) 등을 거쳐 회사 사업 전반을 경험했고, 2006년 5월 사상 최연소 CEO로 임명됐다.
부임 후 그는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먼저 그는 회사의 주요 사업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바꿨다. 1836년 세워진 슈나이더는 전기 엔지니어링과 철강사업에 집중하던 회사였다. 이후 1999년 슈나이더 그룹은 슈나이더일렉트릭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기 장비 분야에 주력해왔다. 트리쿠아는 또 한번의 변화를 주창했다.
그는 에너지 관리, 빌딩 보안 시스템 등을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는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빠른 성장을 위한 방법으로 그는 M&A를 선택했다. 그는 CEO로 부임한 뒤 교통 통제 시스템과 수처리, 기상 모니터링을 위한 에너지 절감 프로그램을 만드는 텔벤트, 비상발전기와 전력배전을 다루는 아메리칸 파워 컨버전(APC), 영상보안 업체인 펠코, 전력 송배전 회사인 아레바 T&D, 엔지니어링·정보기술(IT)기업인 인벤시스 등 130개 이상의 회사를 인수했다.
잠재력 있는 직원 2년간 해외 근무
직원들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마르코 폴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잠재력을 가진 직원들에게 최대 2년간 해외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경험을 쌓고 혁신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파견 중 다양한 교육 및 자기 개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프로그램 매니저, 스폰서, 멘토 등과의 만남을 통해 현지 적응에 도움을 준다. 지금까지 56개국 800여명의 직원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여성 인재 육성에도 적극적이다. 멘토링 프로그램을 도입해 여성 인재 중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에게 글로벌 최고 임원들이 멘토링하고 있다. 2012년 이후 110여명의 여성 인재가 멘토링을 받았다. 전 세계 다양한 여성 인재들이 한자리에 모여 리더십 역량을 키우고 커리어 플랜에 대한 교육을 받는 리더십 워크숍도 진행한다.
트리쿠아는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와 유엔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개발한 글로벌 아젠다인 여성권한강화원칙(Women’s Empowerment Principles)에 서약하기도 했다. 여성권한강화원칙은 양성 평등을 위한 기업 고위급의 리더십 구축 필요성과 ‘직장 내 양성평등’ 실현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슈나이더일렉트릭은 영업, 엔지니어 등 전통적으로 여성이 많지 않은 분야에 대해 여성 직원의 비율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며 관리하고 있다.
새로운 가능성의 땅, 아시아로
그의 관심은 세계, 특히 아시아에 향해 있다. 슈나이더일렉트릭 본사는 프랑스 파리 근처 뤼에유말메종에 있지만 그는 주로 홍콩 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 자오궈화라는 중국 이름을 짓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2010년 후진타오 전 중국 국가주석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슈나이더일렉트릭 본사만 방문할 만큼 중국 내에서 입지를 강화했다. 슈나이더일렉트릭은 지난달 중국 경제지인 경제관찰보가 선정한 2013~2014년 가장 존경받는 3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직원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그는 출장갈 때 수행직원 없이 혼자 간다. 현지 임직원과의 사이에 어떤 장애물이나 통역과 같은 ‘보호장치’ 없이 함께 지내는 것이다. 이렇게 며칠을 함께 보내면 현지 직원들은 좋은 점, 나쁜 점, 듣기 싫은 점을 모두 CEO에게 직접 말할 수 있게 된다. 나쁜 것과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개선하고, 현지 직원들이 좋은 점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CEO의 일이라고 트리쿠아는 말했다.
그는 “대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직원들이 진실이 아닌 말을 한다는 것”이라며 “대기업 임원들은 상아탑에 갇혀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직원들에게 둘러싸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