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 나라의 말을 놓아먹이는 괴태장이라는 이름의 목장이 있었고, 우물이 멀기 때문에 먼 우물, 또는 원정이라고 하였던 원정리에 한국불교의 큰 발자취가 남아 있는 수도사가 있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기 전까지진위군 관할이었던 평택시 포승면 원정리의 수도사는 창건연대가 분명하지 않다. 이 절에 신라 시대의 고승 원효와 의상스님에 대한 전설이 서려 있다. 신라 제28대 임금인 진덕여왕 4년(650)에 원효와 의상 두 스님이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당나라로 가는 길에 배를 기다리며 이 절에 하룻밤을 머물렀다. 원효대사가 밤중에 목이 말라 절 뒤로 가서 구멍에 담겨진 물을 마시니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아침에 깨어보니 그 물이 담겨 있던 곳이 해골바가지였다. 그 해골과 해골에 남아 있는 물을 바라보자 메스꺼움이 밀려와 토하다 생각하니,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물이 바라보자마자 구역질이 나는 것으로 변하는, 그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깨달음을 얻은 원효대사가 지은 <오도송悟道頌>은 다음과 같다.
마음이 생겨나니, 온갖 법이 생겨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감실과 무덤이 다르지 않네. 삼계가 오직 마음일 뿐이요, 오직 앎(識)일 뿐이로다. 마음 밖에 형상(法 )이 달리 없거늘, 어찌 따로 구하리오.“ 원효대사는 곧 바로 집으로 돌아왔고, 의상대사만 당나라로 들어가 공부를 계속한 뒤 영주 부석사를 비롯한 화엄십찰을 세웠다.
원효 스님이 요석공주와 파계해서 나은 아들이 설총이고, 그 설총은 이두문자를 만들었으며, 향교에 모셔진 우리나라 18현 중 제일 먼저 모시는 분이 설총이다. 아버지 원효 스님과 아들 설총을 떠올리며 서해랑 길의 여정을 이어갔으니,
수도사를 다녀온 뒤 유튜브에 동영상 <신정일의 세상풍경>이 1천여회를 올렸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답사를 다니는 것도 동영상을 올리는 것도 성실성 이외에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서툴고 모자라지만 많이 구독해 주시고, 시청해주시면서 ‘좋아요’도 눌러 주십시오, 열심히 온 나라를 돌아다니겠습니다. 2025년 2월 4일, 평택 수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