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만 여행기
1일차(3월 18일)
아직도 꽃샘추위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3월 중순에 겨울 복장 옷차림으로 산청에서 인천으로 차를 몰았다. 발목이 부실하여 절뚝거려도 걸을 수 있을 때 여행은 떠나야 한다.
35년 전 첫 해외 여행지가 대만이었으며 더 늙기 전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40대 초반에 경험했던 문화와 1세대를 건너뛴 지금 대만의 모습은 어떻게 변하고 발전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이른 새벽 인천공항으로 가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는 오전 10시에 이륙하였다.
산청에서 버스 타고 서울 가는 시간보다 빠르다.
12시 30분 타이페이 북서쪽에 있는 도원(桃園)공항에 도착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따뜻한 훈풍이 몰려왔다. 흐린 날씨인데 미세먼지도 없고 기분이 상쾌했다. 섭씨 25도 내외의 초여름 같은 날씨라 껴입고 온 내복이 거추장스러워 공항 화장실에 들어가 벗었다.
패키지여행이라 동행할 일행이 20명 모이니 버스로 45분 걸려 타이페이 시내로 이동했다.
※용산사
첫 번째로 간 곳은 시내 한복판에 있는 龍山寺라는 절이다.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타이완 전통사원 건축의 극치를 보여준다.
네모난 뜰을 중심으로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구조가 3번 반복되는 궁전식 건물이다. 벽면에는 생생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지붕의 사방에는 용, 봉황, 기린 등 상서로운 상징물이 있으며 목조 건물에 붉은 채색 기와로 덮여 있다.
중국의 사원은 기둥은 원통기둥, 단청은 황색, 적색으로 채색이 조잡한 느낌이 들고 지붕 위 처마는 날카로운 창을 연상시키며 모신 신들도 자비로움보다는 험상궂은 인상에 위압적이다.
불교. 도교, 유교의 중요한 신을 함께 모시는 종합 사찰로 참배객의 향불이 끊이지 않고 매캐한 향내가 절 안에 가득하였다.
소원을 빌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 사원인데 조용하고 경건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고 향촉에 불붙여 꾸벅꾸벅 절만 하는 모습을 보니 소원을 진솔하게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사원이 복잡한 시내 중심에 있으며 혼란스런 구조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다니니 무엇을 발원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사찰의 아름다움, 자연과의 조화, 예술적인 안목, 순화된 공간으로서의 절을 비교해보며 우리 건축문화의 우월한 가치에 자부심이 생겼다.
※ 고궁박물관
고궁박물관 관람은 여행 일정 중에서 내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다.
옛날 왔을 때는 관광객이 너무 많고 시간이 촉박하여 밀려다니며 제대로 구경을 못 했는데 귀중한 문화재에 대한 해설까지 듣고 보면서 사진 촬영까지 할 수 있으니 이번 대만여행의 목적의 반은 달성한 셈이다.
타이완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인 국립고궁박물관이다. 중국 국민당 장개석이 공산당 모택동에게 쫓겨 대만으로 가면서 중앙은행 금괴와 국민당의 60만 대군, 국보급 보물 70만 점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보물을 배로 싣고 오는 동안 중국 공산당에서 폭격을 하지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보물이 70만 점으로 중국 최고, 최대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나 전시시설의 한계로 인해 한 번에 1만5천 점 밖에는 보여주지 못한다고 한다. 유물은 3개월에 한 번씩 교체 전시되며 1년에 모두 6만 점 정도가 전시된다. 소장품 전체를 다 전시하려면 최소한 12년이 걸린다는 계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대리석으로 되어있는 산속에 지하박물관을 만들고 수장고가 있어 폭격에도 파괴될 염려가 없다.
유물들은 중국 역대 황제들의 개인 소장품이 주류를 이루는데 대부분 옛날 궁중에서 사용하는 용품 등 진귀한 보물들로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대영박물관이나 루불박물관은 다른 나라나 식민지의 약탈문화재라면 타이완 고궁박물관은 중국 최고 최대의 보물만을 소장하고 있다. 중국문명의 고대 문화재와 송, 명, 원, 청 시대의 중국 황실 문화재가 주로 전시되어 있어 의미가 크다. 문화재가 궁중에서 사용하던 것들이라 대국답게 귀족적이고 사치스럽고 섬세한 기교를 자랑한다. 생활 도구, 도자기, 금과 옥, 보석, 조각, 가구, 회화, 서책, 공예품 등 찬란한 문화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나 후래쉬를 터드리지 않으면 찍을 수 있어 많은 문화재의 실물 사진을 스마트폰에 담았다.
박물관 안에서 놓치지 않고 꼭 감상해야 할 전시물 중 세 가지만 소개한다.
’쥐옥백채‘(翠玉白菜)는 고궁박물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청나라 시대 유물의 하나다. 흰색과 녹색의 옥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배추라는 친근한 소재를 표현하였다. 배추 잎에는 여치와 메뚜기가 앉아 있는 모습인데 둘 다 번식력이 뛰어난 곤충이다. 신부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황비에게 자손이 많이 생겨 대대손손 황실의 혈통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육형석‘(肉形石)은 청나라 작품으로 천연 미노륨 재료로 만들었다. 신선하고 육즙이 많은 동파육(살찐 돼지의 삼겹살 그림)과 너무나 똑같아서 보는 이들의 입에서 침이 고이게 하는 작품이다. 실제 삶아놓은 삽겹살처럼 정교하게 모공(숨구멍)과 피부 결까지 표현하여 돌인지 고기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서주(西周) 말기의 모공정(毛公鼎)은 원래 고대에 고기를 삶는 솥이었던 것이 후대에 와서는 권력의 신분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기물이 되었다고 한다. 정(鼎)은 세 발 달린 솥을 뜻한다. 모공정의 솥 안쪽에 499자에 달하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문장이 고아하고 서체도 뛰어나 국보로 칭송받는다. 중국 셔주시대 후기의 명(銘)이 있는 청동기 대표적인 정(鼎)으로 산시성(陜西省) 岐山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 스린 야시장(士林夜市) 투어
우리나라 동대문시장을 연상시키는 야시장으로 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지만 쇼핑과 음식의 쳔국이다. 타이완 사람들에게 야시장은 퇴근길에 잠시 들려 저녁을 해결하는 곳인 동시에 주머니가 가벼운 연인들에게 부담 없는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사장이 깨끗하지 않고 정돈상태도 우리나라 시골 골목시장 느낌이 들었으며 진열된 상품이나 음식 등이 저렴하기는 하지만 구매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오후 4시경이라 퇴근하여 몰려오는 손님이 적어 오픈하지도 않은 가계가 많았다. 스린야시장 입구에서 망고 대추 파인애플 등을 사서 갈증을 해소했다. 옛날 사 먹었던 몽키바나나(미니바나나), 사탕수수, 쥬스 같은 맛이 안 났다. 시장 안에 들어가 “딤섬특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동남아 특유의 향신료를 적게 넣어 맛있게 먹었다.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니 한국인 입맛에 맞춘 듯하다.
※ 101층 빌딩 전망대
타이페이 국제 금융빌딩으로 건물의 높이는 508m에 이르며 지상 101층, 지하 5층의 건물이다. 1분당 1010m의 속도를 자랑하는 엘리베이터는 기네스북 세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48초만에 89층 전망대에 도착했다. 지진과 태풍도 견딜 수 있게 건물 내부 중앙에 진동을 제어해 주는 거대한 추가 가장 인상 깊었고 대나무 마디를 형상화한 건물 외관 벽면이 특이하다. 타이페이 시내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바둑판처럼 정돈된 시가지 도로에 손바닥만한 차들의 불빛만 바쁘게 움직였다. 도시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으나 서울의 남산타워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역동적이고 더 아름다운 것 같다.
마사지로 피곤한 하루의 피로를 풀고 하이원 홀리데이 호텔에 투숙하여 오늘 하루 일정을 끝냈다.
2일차(3월19일)
※ 화련(花蓮) 여행
8시 7분 松山驛으로 이동하여 기차를 타고 10시 40분에 花蓮驛에 도착하였다. 타이완 북동쪽으로 덜컹거리며 달리는 열차로 학창시절 수학여행 갈 때 타고 다니던 기차처럼 낭만적이고 손님도 적어 버스보다 편안하였다. 차창 밖으로 오른쪽은 험준한 산, 왼쪽은 바다를 끼고 여러 개의 좁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였다. 주변 산악지대에 광산이 많은지 중간역의 야적장에는 시커먼 광물들이 작은 동산을 이루고 컨베어벨트들이 산속으로 연결되어 있다. 기찻길 옆 마을들과 농촌풍경이 30년 전이나 비슷하여 발전이 덜 된 것 같이 보였다.
대만은 북부는 아열대기후, 남부는 열대기후로 비가 자주 내리고 여름은 무척 더우며 2~3월이 여행하기 좋은 성수기다.
화련역에서 내려 가까이 있는 칠성담(七星潭) 해변을 산책했다. 망망대해가 펼처진 해수욕장으로 여름철에는 피서객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태펑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과 철렁거리는 파도 소리도 잠깐 운무가 끼고 큰 파도가 밀려오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타이완은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우산을 꼭 챙겨야 한다. 관광버스 안에도 우산이 몇 개씩 준비 되어 있는 이유를 알만 하다. 환태평양 불의 고리에 있어 지진도 자주 발생하고 한 해에 20여 개의 대형 태풍이 타이완을 강타하며 여름에는 태풍도 지나가는 길목이라 자연재해도 많다고 한다. 길가에 부러진 야자나무 가로수가 많이 보이고 건물의 유리창은 쇠창살로 얽어매어 태풍에 대비하고 있었다.
인구 10만의 관광도시 화련 시내 ’花蓮天地‘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길 가 과수원의 노랗게 익은 망고 열매가 탐스럽다.
※ 화련국립공원
타이루거(太魯閣) 國家公園은 화련에서 약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중앙산맥에서 태평양으로 흐르는 격류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대리석 대협곡으로 유명하다. 해발 고도 2000m 이상의 험준한 산들로 둘러싸인 대리석 협곡은 타이완에서 가장 경이로운 자연의 산물이다.
타이루거 국가공원 여행안내소에서 투어버스를 내려 中部橫貫公路를 도보로 이동하며 트레킹을 즐긴다. 사카당步道라 불리는 이 계곡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로 절벽을 깎아 만들어진 길이다.
눈 앞에 펼쳐지는 대리석 무늬의 변화는 마치 예술가의 벽화를 보는 듯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면 깎아지른 대협곡이 보이고, 내려다보면 굽이굽이 흐르는 옥빛 맑은 물과 괴암괴석이 있으며, 머리 위에는 바위를 뚫어 햇볕과 비도 피할 수 있는 절경이다.
장마에 산사태로 산이 무너지고 낙석이 떨어진 곳도 여기저기 보인다.
燕子口에는 절벽에 큰 구명이 숭숭 뚫려 제비들과 산새들의 보급자리가 되어 날아다녔다.
대리석 협곡은 굽이치는 계곡마다 무한한 세월 동안 내리치는 물과 바위끼리 부딪쳐 너럭바위의 모양도 천태만상이다. 고개를 위로 올려다보고 다니려니 고개가 뻣뻣하다. 자연이 빚은 경이로움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태로각 입구에서 사카당보도, 장춘사, 연자구, 구곡동, 자모교, 텐샹까지 2시간 정도 걷는다.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아름다운 장춘사(長春祠)를 다리를 건너고 굴을 통과하여 갔다. 장춘사는 타이루거의 주요 도로인 中橫道路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당나라 건축양식으로 지은 사원이다. 바위굴 속에서 지하수가 쏟아져나와 협곡으로 내리꽂혀 큰 폭포를 이루는 것도 신비롭다.
도로공사 중에 지하수가 터져 길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타이루거 지역은 지질이 약해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삽과 곡괭이만으로 길을 만들다 보니 사고가 나기 쉬웠다. 퇴역군인과 죄수가 동원되어 3년 남짓 되는 공사기간 동안 225명이 사망하고 700여 명이 부상을 당해야 했던 안타까운 역사를 품고 있다. 장개석 아를 장경국이 지휘하여 만든 동서를 관통하는 이 공정은 오늘날 가장 큰 관광 유산자원으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국립공워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를 생각하니 오늘따라 협곡의 물이 흐린 것도 그들의 아픔이 씻겨내려 울부짖는 아우성 같다.
3일차 (3월 20일)
※ 지우펀관광
원래 매우 한적한 산골 마을이었던 지우펀은 청나라 시대에 금광으로 유명해지면서 화려하게 발전했으나 광산업이 시들해지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급속하게 몰락을 맞게 된 마을이다. 그러다 현대에 와서 영화 ’非情城市‘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타이완에서 손꼽히는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산을 끼고 바다를 바라보며 옛 정취가 흠신 풍기는 산비탈 마을이다. 좁은 골목에 길이 구불구불하고 돌계단으로 되어있고 그 계단을 따라 200여년 된 오래된 집, 상점, 음식점이 빼곡하게 지붕을 맞대고 있다. 한류열풍을 따고 한국 일본 동남아 관광객들이 밀려다니고 음식 냄새, 기름 냄새와 잡화상과 관광상품 가게마다 시골장터를 연상시키며 문전성시 하니 젊은이들의 여행 천국이다. 투어버스와 승용차들이 구불구불한 산골마을에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며 오르내린다.
※ 소원을 실어나르는 스편(十分) 천등 체험
스펀(十分)은 평시선(平溪線) 철도의 지선이다. 과거에 탄광업이 발달했던 곳이라고하나 탄광업이 몰락하고 지금은 기찻길이 거리를 통과하고 있는 곳에 옛거리가 있으며 천등을 날려 소원을 날리는 관광지가 되었다, 마을 전체 사람들이 공동작업을 하고 수익금은 공동 분배를 하며 천등 수거 작업(화재예방 밀 쓰레기)은 노인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고 한다.
소원을 기름 먹인 종이등에 붓으로 써 주면 등 안에 불을 켜서 날린다.
’國泰民安‘, ’家族健康‘, ’大學合格‘(孫子). ’學不厭而 敎不倦也‘라고 나도 소원을 一筆揮之 하였다. 관광객들이 모두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이어서 천등 안에 불을 켜고 집사람과 함께 하늘로 훨훨 날려 보냈다. 대낮인데도 수많은 붉은 천등이 까마득하게 오르고 모두가 자기의 소원을 빈다. 부디 소원성취 되기를 바라며......
※ 예류(野柳) 지질공원
예류는 타이완 완리(萬里) 북쪽 해안에 돌출되어있는 좁고 긴 곶(串)에 자리하고 있다.
지질공원 안내판의 내용을 읽어보니 1000~2500만 년 전에 생성된 두꺼운 사암층으로 수만 년간 침식, 풍화작용, 지각활동(海浪, 風沙, 雨水, 陽光, 地震)으로 희귀한 지형과 지질 경관이 만들어졌다고 쓰여있다.
푸른 바다와 기이한 모양의 암석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풍광은 마치 해변 조각 미술관을 연출한 것 같다. 해식동(海蝕洞), 해식구(海蝕丘) 등의 지질을 눈으로 직접 보니 마치 우주의 어느 혹성에 온 둣한 착각이 들었다.
1구역은 버섯 모양의 바위와 생강 모양의 바위가 밀집되어 있고 2구역에서는 유명한 여왕머리 바위와 용머리, 금강바위, 코끼리, 선녀신발, 땅콩바위로 불리는 기이한 암석들을 볼 수 있다.
신기한 조각품들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단연 여왕머리 바위다.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여왕을 닮았다고 해서 ’여왕머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바위는 지각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해수의 침식작용으로 점차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어 왔으며 가장 높은 곳이 해발 8m이다. 오랜 세월 동안 햇빛 비바람에 깎여 여왕머리 바위의 목 부분이 점점 가늘어져 현재의 목둘레는 158cm 정도에 불과하고 직경은 50cm이다. 연약한 암석층은 떨어져 나가고 단단한 부분만 남아있다. 여왕의 목이 부러지지 않도록 만지지 말고 사진 찍을 때도 조심하라고 줄로 둘러쳐져 있다.
3구역은 해식평대(침식에 의한 평탄한 지형)이며 좁고 길게 큰 용이 바다를 향해 헤엄쳐 가는 형상이다. 바닷속은 검은 바위와 푸른 물결, 녹색 해조류들이 투명하게 비친다. 특이한 형상의 해식평대는 태평양을 향해 헤엄쳐 가려는 듯 용의 발톱을 치켜 세운다. 자연경관과 생태보존 구역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다. 좀 더 보고 싶었으나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타이페이로 돌아와 쇼핑을 한 다음 저녁은 몽고리안 바비큐 샤브샤브로 배를 채웠다.
첫댓글 멎진여행 이였구려~~~~~ 사진 몇장 올려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