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면순씨는 일흔한 살이면서 며느리이고, 윤효덕씨는 여든아홉 살의 시어머니다. 강명순씨 택호는 자푸실댁이고, 윤효덕씨는 깊은골댁이다. 자푸실댁은 깊은골댁의 큰 며느리인데, 딸 하나와 아들 셋을 낳아 기른 보통 여성이다. 깊은골댁은 온동마을 한씨 가문의 맏며느리로 시집왔다. 처녀일적 친정의 부친으로부터 한글과 한문을 가르침받았으며 한문은 천자문을 넘어 소학까지도 읽었다. 막내 딸이라 하여 친정 부친은 늘 가까이 두고 딸한테 이런저런 것을 가르치며 귀여움을 보셨다.
윤씨댁 막내 딸이 한씨 가문 맏며느리로 들어와서 일흔두 해를 살았다. 시집온 이듬 해에 낳은 아들을 열여섯 살에 장가를 들였다. 아들보다 한 살이 많은 며느리를 볼 때 깊은골댁 나이 서른다섯 살이었다. 그 후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함께 아이를 낳아 길렀다.
자푸실댁 남편은 군인이었다. 대령 계급으로 제대할 때까지 줄곧 집 밖에서 지냈다. 자푸실댁은 큰 며느리여서 남편과 떨어져 시부모를 모셨다. 남편은 일찍부터 첩을 두고 자식까지 낳아 기르면서 본처보다는 첩실과의 생활이 더 본질적인 것으로 되어갔다. 남편이 이따금씩 다녀갔는데, 자식 다섯 중 네 명을 온전히 기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자푸실댁의 남모르는 한의 힘이었다.
시어머니는 첩실 둔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며느리를 몹시 싫어하면서 구박했다. 더구나 며느리는 한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데다 생김새도 그냥 그랬다. 아무리 먹어도 쉽사리 배탈나는 일이 없었고, 웬만큼 들일을 심하게 해도 몸살을 앓아 눕는 일도 없었다. 일년 가도 감기몸살로 약 한첩 먹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 자푸실댁이 첫 아이를 낳아서 친정 나들이에 나섰다가 아이를 물웅덩이에 빠뜨려 잃어버리는 불행이 있고나서부터 시어머니의 눈 밖에 나고 말았다.
그때부터 고부 사이에는 기다리기라도 했던 듯이 갈등을 키우는 일이 더 많아졌다. 비슷하게 나이 들어가면서 고부 관계는 점점 나빠졌다. 큰 아들과 관계되는 일 중에서도, 첩실 몸에서 난 아이들이 방학 때 할머니를 뵈러 왔다가 돌아간 뒤에는 어김없이 된소리가 나고, 자푸실댁의 울음소리가 들리곤 했다.
그리고 첩실이 낳은 아들 둘과 딸 둘 모두 서울의 유명대학에 입학하여 장학금을 받는데, 자푸실댁이 낳은 자식 넷은 모두 공부를 싫어하여 고등학교를 마치는 데도 온갖 사연을 만들어냈다. 첩실 자식들은 출세도 빨랐다. 외국 유학하는 아이도 있었고, 딸 한 명은 의학박사까지 되었지만 자푸실댁 자식 중에는 소년원에 다녀온 큰 아들과 폭력배와 어울려 다니다가 교도소 생활까지 한 아이도 있었다. 참으로 안풀리는 자푸실댁의 삶이었다.
그런 중에 자푸실댁은 골다공증과 만성위염, 자궁경부암까지 겹쳤다. 남편은 아내를 찾지 않았다. 자푸실댁은 우울증까지 앓다가 치매에 걸렸다. 집안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깊은골댁도 영감을 먼저 보내고 이제는 기갈도 꺾이고 식은데다 허리가 굽어 바깥 나들이가 쉽지 않았다.
자푸실댁 큰 아들은 나이들어 마음을 잡고 조부께서 물려주신 농토를 착실히 돌보아 아직도 부자소리를 들었지만, 그의 어머니가 치매를 앓기 시작하자 착잡한 심정이었다. 자푸실댁은 중풍까지 겹쳐서 매일같이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일년 가까이 돌보다가 치매 전문병원에 입원을 시켰다. 그런데 치료비가 문제였다. 2년 남짓 병원생활하는 동안 논 두 마지기를 처분했다. 엎친데 덮친 일이 또 생겼다. 깊은골댁까지 치매에 걸린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깊은골댁이 중풍을 앓지 않아서 대소변 처리와 하루 세끼 끼니를 스스로 떠먹을 수 있는 점이었다. 결국 한 병원에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함께 지내게 되었다.
그날부터 두 사람에 대한 소문이 병원 안은 물론 바깥에까지 퍼졌다. 두 사람은 침대를 나란히 놓고 지냈다. 깊은골댁이 자푸실댁을 아주머니라고 부르면서 며느리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씻어주고, 닦아주는 것은 물론, 끼니 때마다 죽을 떠먹여주면서 입가에 묻은 음식을 손으로 닦아서 자기 입으로 빨아 먹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목욕실에 며느리를 데려가서 머리도 감겨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머리를 빗겨서 곱게 단장시키기도 했다. 한사코 아주머니라고 불렀다.
식구들이 면회를 가면 아주머니 자랑을 했다. 식구들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지우곤 한다.
지난 일요일 깊은골댁 따님들이 병문안을 가면서 과일을 가져갔더니, 깊은골댁은 과일을 깎아서 며느리 입에다 넣어주면서, 아주머니가 좋아졌다는 자랑을 했다. 그렇게 겨울은 오고 있다. [국제신문.]
/ 작품 = 허경혜 / 사진 = 김탁돈 |
첫댓글 지난 번엔 텃골댁 이야기를 잘 읽었었는데 오늘은 깊은 골, 자푸실댁 이야기에 젖었다 갑니다. 좋은날 되세요. 나누고 싶은 글이라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