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한(鄭奎漢)-馬江煙雨(마강연우)(백마강의 안개비)
百濟江山空復空(백제강산공부공) 백제의 강산엔 아무것도 남지 않고
夕陽惟有一蓑翁(석양유유일사옹) 석양에 삿갓 쓴 늙은이 하나 뿐
浮家不管滄桑事(부가불관창상사) 강호에 떠도는 몸 세상사와 무관한데
數曲漁歌細雨中(수곡어가세우중) 뱃노래 서너 가락 이슬비 속에 들리네
*위 시는 “한시 감상 景경, 자연을 노래하다(한국고전번역원 엮음)”(화산집華山集)에 실려 있는 것을 옮겨 본 것입니다.
*김성애님은 “정규한의 자는 맹문(孟文), 호는 화산(華山)이다. 공주 출신으로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의 문인이다. 1780년(정조4)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그후 과거 공부보다는 학문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후에도 노론 유생들의 연명 상소에 꾸준히 참가하고 대신 상소를 짓기도 한 것을 보면 위 시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사와 무관하게 지내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는 성담의 문하 500인 중에서 문장으로 첫 번째로 손꼽힐 정도로 이름을 떨쳤다.
위 시는 부여의 백마강 가에 있는 수북정에서 지은 것으로 상촌(象村) 신흠(申欽)의 ‘수북정의 여덟 경치 水北亭八景(수북정팔경)’에 차운한 것이다. ‘상촌집(象村集)’에 실린 원시(原詩)는 다음과 같다.
오백년 그 세월이 한바탕 꿈이런가 五百年間一夢空(오백년간일몽공)
강가 낚시터 지금은 고기 낚는 영감 것이네 苔磯今屬釣魚翁(태기금속조어옹)
제멋대로 오고 가는 외로운 돛단배가 孤帆隨意往來穩(고범수의왕래온)
푸른 물결 안개비 속을 뚫고서 들어가네 穿入碧波煙雨中(천입벽파연우중)
원시와 차운시 모두 백제의 흥망성쇠를 안고 유구한 세월을 흘러온 백마강 가에서 느끼는 허망한 심정을 읊고 있다. 기승전결이 비슷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드러나는 미묘한 시상의 차이가 시를 감상하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멸망한 지 천년도 넘는 백제의 강산에는 당시의 영화를 살펴볼 어떤 유적도 남아 있지 않다. 그저 비 오는 석양 강가에 삿갓 쓴 늙은이만 보일 뿐이다. 그는 저자 자신을 투사한 듯하다.
이슬지 속에 들려오는 뱃노래는 무슨 내용이었을까? 백제 멸망의 비극을 읊은 노래일까, 아니면 그저 백성들의 평범한 생활을 읊은 노래일까? 아마 세상일과 무관하다며 강호를 떠도는 몸인데도 그 노랫가락이 귓가를 맴돌고 있다.”라고 감상평을 하셨습니다.
*정규한[鄭奎漢, 1750년(영조 26) ~ 1824년(순조 24), 자 맹문(孟文), 호 화산(華山), 운수산인(雲水山人), 본관 장기(長鬐, 경상북도 연일군)]-조선 후기의 학자. 아버지는 정광흠(鄭光欽)이다.
성리학자로 이름있는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원래 벼슬길에는 뜻이 없었는데 주변 사람들의 강요로 1780년(정조 4)에 사마시에 응시하여 합격은 하였으나, 세속적인 부귀영달에는 전혀 뜻이 없어 그 이상의 과거준비는 걷어치우고 오로지 성리학 연구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아울러 그는 산수를 좋아하여 자연을 벗삼아 시문에도 정진한 결과 문명을 떨쳤다. 저서로는 『화산집』이 있다.
첫댓글 인생무상인가요....
백제의 그 영화는 어디 가고 늙은 나그네만 보일 뿐...
뱃노래 소리에 마음은 심란해지고.......
ㅎ, 인생무상이 절절이 느껴지네요,
댓글에 깊이 감사드리고,
오늘도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