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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과 7일은 춘천 풍물장이요,4일과 9일이 춘천 샘밭장이다.
워낙 장구경 하는걸 좋아 하다보니 가끔씩 찿곤 한다.
2일과 7일. 4일과 9일-. 천치같이 워낙 숫자놀음에 둔한 내가 그 장날을 어김없이 기억하는 것은 5의 배수니 얼마나 쉬운가! 그래서 어제도 장날을 잊지 않고 샘밭장 구경을 갔었다.
물론 나뿐만 아니다.오후면 너 나 할 것 없이 잠깐씩 장을 들린다.
생필품이 없어 산다고는 하나 대개는 그 장에서 삶의 맛을 더불어 느껴보기 위함이 아닐까?
얼마나 신선한가! 여러 사람들이 저마다의 개성 있는 얼굴처럼 시장 양쪽 옆으로 쪼그리고 앉아 두부면 두부,생선이면 생선, 노오란 병아리면 병아리들을 앞에 놓고 자기 물건만이 최고라고 설명하는 모습은 너무 재미있고 신선하다.
물건값 역시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차이가 난다. 대개는 깎아주는 편이다.
철새나 어류들이 기류를 따라 이동하는 것처럼 장을 따라 다니는 장돌뱅이들의 익살스런 모습들은 장터를 돌면서 이골이 나 있다.
어제 샘밭장에서 만난 찐빵, 감자떡, 튀김을 차에서 파는 아줌마도 장터에서 가끔씩 만난 아줌마였다.
어머니 드리려고 5 천원씩 사가면서 늘 다툼이 벌어졌던 아줌마! 몇 개씩 더 넣어주어 내 깐에는 무엇이 그리도 많이 이윤이 남는다고 그러느냐고 안 된다고 하면 굳이 넣어주던 아줌마-.훈훈한 이야기가 내게 양식처럼 남아있다.
오늘도 어디서 장을 보러 오시느냐고 궁금증을 털어놓았더니 동해안 거진이란다. 그곳이면 예전 군대 생활 하던 곳인데 아직도 바다가 푸르냐고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시장을 가면 그곳을 들려오는 게 습관처럼 되었다.
심지어 어느 장날에 그 자리가 텅 비어 있으면 장을 보고와도 마음이 허전하고 여러가지 걱정들이 불순물처럼 나를 괴롭혔다. 어디가 아프신가? 아니면 한바탕 아저씨와 다투셨나? 그 아저씨가 차에 앉아서 반죽을 계속 해대고 아줌마는 핫도그를 신기하게 만들어 낸다. 너무 반가운 날이었다.
어느 날 색깔 있는 감자떡을 먹어보라고 해 간이의자에 앉도록 하질 않나, 어느 날은 텔레비젼에 나와 딸 가정교육을 한 아버지의 모습이 천연 댁 같다고 혹 어린 딸이 미국에 유학 가지 않았느냐고 분에 넘치는 질문을 하던 장돌뱅이 아줌마는 늘 작은 키에 웃으며 나를 반겼다.
그 아줌마를 오늘도 장에서 만났다. 작달막한 키에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은 아줌마를 본 것은 내 측이었다.
워낙 기대를 크게 먹고 와서 그런지 실망 또한 컸다.
장터에서 먹은 순대국이 실미지근한게 비계며 순대가 알토란같지 않았다. 국물 또한 멀개서 한참을 막국수처럼 이것저것을 넣었지만 끓이지 않으니 깊은 맛이 울겨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춘천 팔호광장 동부시장 지하의 순대국 맛을 보라! 가히 일품이다. 오지 뚝배기에 단 한 그릇이라도 가득 넣고 끓여주는 맛에 비견하면 너무 떨어진다. 또 장터라는 특유의 제품이 없다.
시골 아낙네들이 산에서 캐 온 상품들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장을 따라 헤엄치는 자들의 물건이 아닌가! 오미자차를 파는 한약재료 아저씨도 그렇고, 골동품 파는 아저씨도 서울 인사동에서 오신 분이다. 그래도 환한 감색 침 담근 감이나 홍시가 장을 장식해 다행이었다.
마치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젖무덤처럼 아주 품종이 유별나게 큰 감들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아내가 사온 것은 인삼 벤저민이었다. 그 화초가 워낙 비싸 늘 사고 싶었던 것인데 유별나게 싸게 주어 샀다.
샘밭 장을 돌면서 주민들을 유심히 접근해 예전부터 맨발로 십리를 뛴다는 샘밭 사람의 근성을 엿보려고, 이 사람 저 사람과 이야기를 했지만 좀처럼 발견할 아무것도 없었다.
국거리를 산다고 하니까 배추 파는 아줌마가 비싼 배추가 아닌 통배추를 천원에 주고 무우도 단단한 놈을 세 개에 2천원을 받아 어찌나 미안한지-.아줌마! 배추 한 서너폭 정도는 사드려야 하는데 죄송해요!! 저희도 농사를 짓는터라..아니예요. 다음에 또 오세요 하는 수줍음에 냉한 추위가 마냥 포근했다.
홍시 만 원어치를 파는 아저씨에게 아내가 먼 춘천 시골에서 장 구경 왔다고 많이 달라고 하자 두개를 더 넣어주면서 우린 서울에서 왔는데 누가 머냐고 반박해 박장대소를 금치 못했다.
이런 훈훈한 손길과 다듬어지지 않은 대화, 그리고 저마다 색다른 미소가 있는 장이기에 나귀가 없어도 늘 장날하면 딸랑딸랑 방울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주머니가 비어있는 사람도 들리고 싶은 곳이 아닐까?
마지막 공터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상품이 있었다. 아니 농협에서도 느꼈다. 보리가루로 만든 건빵이 세 봉에 천원이니 얼마나 저렴한가! 늘 그것을 많이 사와 동네 노인정에 나누어 드리던 메뉴였다.
그 건빵이 이곳에서 한푸대에 오천 원이라니 -.무엇이 남을까? 신발도 말표 겨울 슬리퍼가 단돈 만원이란다. 그것을 또 빼달라고 하자 중국산들이 밀려와 이 정도 다운해 판다며 단돈 십원도 뺄 수 없다고 해 머쓱해서 산 아내가 이날 따라 날 웃겼다.
네시가 넘자 벌써 어둠이 서성거려 귀향하면서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보지 않던 소양강 댐으로 해서 청평사 경내를 돌아보았다.
여기저기 온통 단풍으로 나무들은 붉은 옷을 입고 팔 벌려 있었다. 장에서 사온 잡동사니들이 승용차 뒷좌석을 넓게 쓰며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다고 모과를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나보다.
멀리 동네 솔밭이 원시림처럼 반긴다.
아직까진 정말 때묻지 않은 솔밭-. 소양댐 관광지처럼 어설프게 서 있는 호말도 없고, 번쩍거리는 네온사인에 현란한 간판도 없다.
들어오시라고 정말 귀찮게 말을 거는 호객행위도 없는 우리 동네가 어둠 속에서 마치 조선시대 규수 댁이 외출할 때 장옷을 쓰고 빼꼼히 내다보는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끝)
첫댓글 아! 정겨운 시장풍경입니다.
요즘 재래시장도 현대식으로 수리하여 그 옛날 재래시장의 재미도 없고
정감도 없는데 넘 정경워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사진 올려주셔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