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하시라고 올립니다.
책 읽는사자 채널님이 고정함
@sazaground
10일 전
(공유)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대한 오해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왜곡하는 주류 언론사 와 그 언론사를 맹신하는 한국 언론사 생태계의 영향 때문도 있다. 트럼프와 대부분의 공화당 정치인들이 지지하는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고립주의’가 아니다. 미국을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자국민의 관심사를 가장 우선으로 두겠다는 말이다. 즉,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고립주의적인 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파리 기후조약에서 탈퇴한 이유는 해당 조약이 중국 공산당에게 불공평한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던 것을 그가 보았기 때문이었고, 코로나 기간 동안 WHO에 대한 미국의 지원금을 중단하려 한 것도 WHO가 팬데믹을 초래한 중국 편에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의 시작은 글로벌리즘과 초국가주의는 기존의 강대국(즉, 미국)에게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가장 높은 비용을 부과하고, 미국의 영향력과 리더십에 이의를 제기하는 신흥 강대국(중국 등)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준다는 현실적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트럼프 이전까지의 미국 정치인들은 이 진실을 이해하 지 못했고 결국 막대한 비용을 초래했다. 따라서 트럼프는 그의 비평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쳐져야만 했던 더 이상은 효과가 없는 이 진로를 다시 바로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NATO 국들과 모든 미국의 동맹국들이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동맹국’ 다운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트럼프는 국가 안보 보장과 무역에 대한 무임승차를 끝내고 노골적인 위선의 모습으로 쳐들어 오는 중국 공산당과 같은 나라에 함께 도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오랫동안 워싱턴 정계는 동맹국들이 가진 자주적인 의사결정 권한을 동맹국 스스로가 아닌 EU와 같은 반미 미 구 그리고 세계 무역기구에 양보하도록 장려해 왔다. 일부 트럼프 비판론자들은 트럼프의 “모두를 위한 민족 주의” 즉, “미국 우선주의”가 미국의 적국들의 이기심을 부추기는 형편없는 원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적국들은 미국의 입장과 무관하게 이기적인 국가들이다. 즉, 미국을 위해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결국 미국은 스스로와 동맹국들을 약화시키는 셈이 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시아에는 아직 EU과 같은 초국가적 고위관료제가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아시아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며 민족주의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로운 통제권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이나 베트남이 더욱 강해진다면 그것이 결국 보복주의자 중국에 대항하여 아시아 와 미국이 함께 강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그동안은 요구하지 않았던 방위비를 요구하는 것도 이 모든 것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방위비를 내라고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 대해 의아하고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확실한 사실은 트럼프의 외교 정책의 목표는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지금까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부분들을 직시하며 현실적인 변화를 추구해 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트럼프 임기 동안 미국은 강했다. 적국들이 함부로 미국을 얕잡아 보지 못했고, 새로운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다. 즉, 미국이 강경하고 강할 때 항상 전 세계는 경제, 외교,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안정적이었고 안전했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미국을 고립시켜 미국 국민만 잘 살게 하자는 정책이 아니라, 그동안 미국의 호의를 누리며 매너리즘에 빠진 동맹국들과 그 틈을 타고 자라나고 있는 ‘공산주의 세력’에 도전하고자 하는 트럼프의 wake-up call 인 것이다. 그의 목표는 미국만 잘 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민족주의를 회복하여 미국이 다시 번성하고 자유를 회복할 때 전 세계가 그 질서 속에서 안전해질 수 있다는 큰 그림에서 나오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전문 읽기: https://www.allsides.com/blog/what-role-christianity-american-politics-today
첫댓글 정치처럼 변수가 많은것이 있을까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는 자기 신앙을 계시록 칭찬받는 교회 수준까지 올리기 위해 말씀, 기도, 순종의 삶을 먼저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평강, 희락)가 내 심령과 이 땅 가운데 이루지기 위한 개별적, 교회적, 집단적 노력도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시대적 전제가 다르겠지만, 아시다시피 구약 선지자들은 정치 참여를 많이 했습니다. 요셉이나 다니엘은 어떻구요. 신약 교회는 시대적 전제가 또 다르지요. 기도하는 사람도 귀하지만, 누군가 파수꾼이 되어 의롭게 알리며 앞서 싸우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인 영적 영역과 바벨론이라는 영적이자 물리적 세계를 동시에 살고 있으니 말이지요. 다름에 대한 비판보다는, 내가 못하는 것을 대신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중보하는 것도. 각자 주시는 감동과 능력과 영향력대로 기도하며 순종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각자 달란트대로. 기도의 결과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구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 뜻일테고.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협력해서 선을 이루실테니까요. 모두가 '하나님의 의'라는 측면에서 기도하며 선택하며 살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