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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050 아띠 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해송
바람이 분다. 아랫녘에서 시작된 훈훈한 봄바람이 마음을 부채질한다. 그래서 봄도 아랫동네에서 먼저 느끼게 된다. 겨울엔 무색 무미 무향의 냉냉하고 쌀쌀한 바람은 봄이 되면 유색 유미 유향을 잉태하여 출산할 곳을 찾아 이 곳 저 곳 기웃거린다. 남녘에서 서성대는 춘풍의 유혹에 마음은 아지랭이가 되어 벌써 그 곳에 가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까치발을 딛고서 달려오는 봄을 마중 나간다. 사당역 11시 몇몇 분이 먼저 기다리고 계신다. 그 중에서 쪽빛님이라는 분이 있기에 인원체크를 하라고 했다. 쫓비산과 쪽빛이 무슨 관계인지 풀어야 하겠다. 쪽빛님은 4~5년 전 봄바람이 넘실거리는 이맘때 사량도 가는 출렁이는 배안에서 처음 뵈었다. 처음 뵐 때도 쪽빛 바다와 함께 만난 쪽빛이었다. 이번에는 섬진강의 물빛을 품은 쪽빛에서 지명이 유래된 쫓비산에서 만났으니 쫓비산과 쪽빛과의 인연이 닮은 셈이다. 버스 안 처음 보는 처음 아띠에 참여하시는 님들이 태반이다. 그중에서 거의 모두가 미모의 여성분들이다. 역시 미모의 여성들은 섬세해서 색깔의 유혹에 약하고 향도 잘 맡나보다. 남도의 이 곳 저곳을 섬세하게 쓰다듬으며 흐르는 섬진강은 섬세하다고 진한 유혹을 하는데서 유래한 섬진강이라 했다한다. (믿거나 말거나^^ 해송생각) 그리고보면 섬진강도 여성과 인연이 많은 것 같다. 애칭(닉네임)소개를 한다. 애칭은 좋아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남에게 불려 지기를 원한다면 잘 지어야 듣거나 부르기에 거북하지 않을 것 같다. 가끔씩은 성격도 닉네임과 같이 변한기도 한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도 양지님은 닉네임 소개를 하는데 천상여자라고 소개를 한다. 해송 궁시렁 (천상여자면 걍 천상여자라고 닉을 바꾸지...웬 남자 같은 양지여? 닉네임을 바꾸면 돈이 드남 누가 때리기를 하남^^) 가령 닉네임을 이렇게 지으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것도 같다. "흔들린우동" "운도형밴드" "쾌걸조루" "슈퍼그냥죠" "난앓아요"등등 닉네임의 소개가 끝나고 잠을 자야 하는데 안면방해를 한다. 1.8리터의 매실주와 홍어회무침을 가져왔다고 생각이 있는 분은 모두 뒤로 오라고 광고를 한다. 해송은 원래 차내에서 음주가무를 싫어하는데.... 잠깐 망설여진다. 그런데 주님이 부르시면 무조건 달려가야 하겠다는 소싯적의 다짐이 생각나 날렵하지 못해서 무조건 걸어서 갔다. 느린발님인지 안주발인지 몰라도 많이도 싸오셨다. 예술님은 엄청난 족발을 예술처럼 곱게 포장해 오셔서 돼지발이 아니고 소발인줄 알았다. 또 어느 분은 과매기 무침을 맛깔나게 담아 오셨다. 달리는 차안의 풍경은 술을 나누고 마음을 나눔으로 서먹했던 첫 만남의 어색함이 누그러져간다. 새벽 다섯 시 관동마을 어두운 밤하늘엔 밤새 반짝였던 별님도 노곤해서 일찍 자러갔을까... 여명이 밝을 기미도 없고 컹컹 개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 태고의 고요함을 연상하게 한다. 해드랜턴을 켜니 불빛사이로 희끈거리는 그 무었이 있다. 미동도 않고 고요하고 은은한 향내로 맞아주는 매화양! 예전 월담을 하여 아씨를 만나는 도련님의 마음이 이랬을까... 가슴은 두근 반 세근 반 콩당 거리는 소리가 방아 찧는 소리와 같다. 연이어 들리는 탄성 이곳 저 곳에서 와~ 와~ 이걸 우째 캄캄해서 뵈지도 않고 이넘들을 그냥 두고 지나쳐야 한다니..... 그렇게 산행은 어둠을 뚫고 시작을 하고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길도 역겨운 두엄냄새도 매화 향에 묻혀 정겹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작년에 왔을때는 배댕이재까지 지름길을 따라서 갔는데 오늘은 무박산행이기 때문에 조금 돌아서 능선으로 올라갔다. 쫓비산을 무박으로 가는 산악회는 없을 것이다. 모든 사이트와 산행기 산행 안내 소개 에는 쫓비산이 3~4시간 이라고 되어 있으나 무박이기 때문에 약간은 길어야 제 맛이지^^ 공지와는 다르지만 무박이기 때문에 길게 돌아서 간다. 가다가 힘든 분도 계셨겠지만 산이 그러한데 ㅎㅎㅎㅎ 힘들면 산을 탓하고 자신을 탓해야지 대장을 탓하는 분이 계시다. 뒤에 오시면서 계속 궁시렁이다. 그렇지만 늘상 하시는 말씀이니 투정이 아니라 애교로 들린다.ㅎㅎㅎ 산죽나무가 좁은 길을 더욱 좁게 만든다. 산죽나무를 헤치고 가파른 길을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르고.. 아띠님들이 지쳐갈 즈음에 얼굴에 연분홍 단장한 진달래가 수줍게 맞아주니 아띠님들의 얼굴에 반가움이 가득하다. 후미까지 다 와서 이것저것 간식을 먹고 출발이다. 건너편의 백운산의 정상부근은 운무가 오락가락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나쳐가니 동영상을 보는 것 같다. 가파른 오르막이다. 길은 겨우 흔적만 있을 뿐 스치는 산죽과 잔가지들이 얼굴을 때리니 모두들 힘이 들 것이다. 후미에서 오시는 아띠님들이 걱정이 된다. 처음부터 산행을 포기한다는 분도 계셨고 산행은 안하고 그냥 꽃구경만 할 예상으로 오신분도 있는데.. 가파른 오르막에서 쥐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점심시간 각자 담아온 정성을 나눠 먹는다. 처음 산행 하신님들이 많지만 전혀 어색함이 없이 아주 가까운 친구라도 되는 듯 마음을 나눠 먹는다. 부른 배 부여안고 다시 길을 간다. 길!! 누구나 길은 가지만 대신 가줄 수는 없다. 자기가 가야할 길은 자기가 가야만 하는 것이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 까지 각자의 길을 따라 가다보면 희로애락이 누구에게나 기다리고 있다. 산길이든 인생길이든 즐겁다 생각하면 즐거운 것이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생각하면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오르락내리락 봉우리를 수 없이 넘어서 갈미봉에 도착한다. 갈미봉에 오르니 전망이 확 트여 구비구비 흐르는 섬진강과 주위를 감싸고 있는 산자락들이 오밀조밀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쫓비산 가는 길에 이상하게 생긴 바위가 있다. 누에바위라는데 우리방의 야꼴을 닮았는지 익살스럽다. 바위의 모습도 사람의 얼굴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포즈와 표정을 지으니 가끔씩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외감을 갖는다. 드디어 쫓비산이다. 정상에는 작은 팻말이 있을 뿐 별다른 표시가 없다. 호남정맥의 일부분인 쫓비산이라 불리워지는 유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봉우리까 쫑긋 솓았다해서이고 또 하나는 쪽빛의 섬진강물 색깔을 품어서 유래되었다한다. 쫓비산 내려오는 하산 길은 진달래 군락지이다. 조금 늦춰서 왔으면 진달래테마 산행을 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진달래가 가득하다. 하산을 하면서 청매실 농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청매실 농원을 가는 길에는 경사가 급한 곳에는 밤나무가 많은데 수확도 하지 않아 밤송이들이 굴러다닌다. 경사가 완만한 곳에는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 사이에 청보리와 두릅나무가 자라고 있다. 잠깐 이곳 마을이 자리 잡은 유래를 옮겨본다. 청매실농원의 주인 홍쌍리씨(61세)는 65년 밀양에서 시집을 와 매화를 키우며 평생을 살고 있다. 당시 이곳은 산간벽지로 돌투성이 산자락에 밤나무만 심어져 있고, 매화나무는 드물게 있었다. 홍씨는 68년부터 밤나무를 매화나무로 바꿔 심으며, 수많은 날들을 눈물로 지새워야 했다. "이 손이 호미가 되고 괭이가 되었어요. 섬진강 물도 나의 눈물보다 더 많지 않을 거예요." 몇 번이고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3월이 되면 희부옇게 피어나는 매화는 홍씨의 안쓰러움을 치유해주고 붙들었다. 홍씨는 매화가 만발한 산자락에 뿌리를 내리기로 결심하고, 이 세상 사람들을 정성과 사랑으로 그녀의 품 안으로 찾아올 수 있는 매화동산을 만들 결심을 한다. 그렇게 힘들게 가꾼 청매실 농장은 '94년 처음으로 매실의 뛰어난 효능을 상품화하여 그 명성을 전국에 알렸고, 홍쌍리씨는 97년 정부지정 명인(전통식품 명인 14호/식품1호)이 됐다. 그리고 홍씨의 소망대로 청매실 농장은 일 년에 5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유명한 매화동산이 되었다 한다. 산행을 하면서는 등산객을 한 사람도 볼 수 없어 아띠식구들만의 오붓한 산행을 할 수 있었는데 내려오니 전혀 딴판이다. 평일인데도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버스 승용차가 가득하여 주차할 공간도 부족하고 이곳 저 곳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이 축제기간임을 실감 나게 한다. 영화세트장도 있고 수많은 매실을 담은 항아리 그리고 청매 홍매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산행이 끝나고 근처의 해돋이 식당으로 가서 제첩 국을 먹었다. 맛은 약간 비릿하여 입맛에 안 맞을지도 모르나 그 지역의 특성 있는 음식 맛은 봐야 하기에 제첩 메뉴를 택했다. 어떤 분들은 궁물을 남기고 오신분도 계시는데 제첩은 궁물맛이라나 뭐라나.... 제첩 제첩 제첩 남의첩이 아닌 제첩 궁물만 맛봐야 한다^^ 점심을 먹고 화개장터로 이동을 한다. 지리산의 쌍계사입구인 화개장은 예전에는 장날이 따로 있었으나 요즘에는 그 부근이 온통 축제기간이라서 날마다 장날이다. 들어가자마자 갖가지 말린 한약제들이 날 잡아 잡수믄 날마다 좋은날이 이어질 것이라고 알몸으로 광고를 한다. 한켠에는 대장간에서 갓 만들어 낸 것 같은 농기구들이 날을 세우고 팔려나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대장간의 불을 피우고 있는 시늉만 하고 있는 대장 +장이는 글쎄 장이는 빼고 걍 가게의 대장만 하는 것 같다. 전시용으로 손이나 녹이려고 피는 듯 불도 약하고 그저 가끔씩 전시용으로 풀무질이나 한 번씩하며 물건을 파는데 온 정신을 팔고 있다. 그 옆의 초가집에는 음식간판 전시장 같이 없는 것 뺀 음식 메뉴가 빼곡하다. 그 중에서 참게장이 가장 맛있을 것 같고 강된장비빔밥을 먹으면 강한 남자가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아참 동동주도 침을 삼키게 하였지만 시간이 읍당^^ 남도의 강기슭엔 봄이 깊어간다. 사철 푸른 녹차와 갑자기 녹색 옷을 갈아입은 버드나무 사이로 점잖은 매화도 봄바람에 춘심을 감추지 않고 손잡고 납시었다. 이런 곳에 딱 한 달만 머물 수 있다면 도시에서 살아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무장해제를 시키고 자연의 순수함을 가득 충전하여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쉬움 뒤로하고 산수유 마을로 이동을 한다. 지리산 온천단지에서부터 상위마을까지 10여리가 온통 산수유 천지다. 3월이면 산에도 들에도 개울에도 나무까지 노란 물이 들 지경이다. 개울가에 늘어진 가지마다 바위틈에 힘겹게 자라며 노랑꽃을 피워내고 있다. 10여리의 산수유 단지에는 마을 전체가 산수유로 덮여 있고, 마을중간을 흐르는 넓은 계곡 주위에 물빛마저 노랗게 물이 들 정도다. 우리가 갔을 때는 산수유 축제기간이라 행사가 한창이다. 갓 피어난 산수유 고운자태와 함께 아우러져 맘껏 뛰놀며 즐기고 있다. 이곳 산수유 마을에는 산수유에 얽힌 애처로운 사연 하나가 전해 온다. 여순 반란 때 이곳의 백부전이라는 19살 처녀가 국군에 끌려가며 불렀다는 산동애가는 지금도 이곳사람들에게 구전되고 있다고 한다. " 잘 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 봉우리 피어보지도 못한 채..." 이곳의 산수유는 중국에서 들여왔다고 전해진다. 중국 최대의 산수유 산지인 산둥성의 여자가 이곳으로 시집오면서 가져다 심은 것이 지금까지 있다고 한다. 산동이라는 지명도 중국의 산둥에서 연유했다는 설이다. 귀경시간에 맞추느라 짧은 시간밖에 못 드려서 죄송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멋진 포즈로 산수유를 하나씩 담아 오신다. 광양과, 구례는 모두 지리산 자락에 인접한 고을이다. 그런데 말씨와 색깔이 조금 다르다. 구례의 말씨는 전형적인 전라도 말씨이고 광양은 경상도 발음이 섞인 말씨이다. 광양의 색깔은 매화가 많아 온통 하얀색 일색 구례의 색깔은 산수유를 닮아 온통 노란색 금을 긋지 않았는데도 광양엔 매화로 구례엔 산수유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함께 하셨던 님들 먼 길 다녀오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특히 처음 아띠에 오신님들 감사드리고 자주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첫댓글 꽃구경하고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