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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리 지석묘(전남 문화재자료 116호)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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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도 읍리 지석묘 전경 |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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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도 3코스 중간 도로 변에 위치한 읍리 지석묘 전경 |
▲ 때마침 지나 가시던 동네 주민분이 설명을 해 주시고... |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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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에 있는 고인돌 2기가 큽니다. |
전라남도 지방은 전국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이 분포하는 지역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해도 약 2만여 기가 넘는다. 완도군에도 많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데 청산도에는 23기가 2개의 무리를 지어 분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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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에서 바라 본 지석묘군 모습 |
읍리고인돌은 읍리 마을 동쪽 도로변에 남방식 고인돌 16기가 있는데, 20여 년전 도로공사 때 흐트러져 현재는 16기 중 3기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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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면에서 바라 본 지석묘군 모습 |
1호는 4장의 받침돌이 덮개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약간 기울어진 상태이고, 2호는 덮개돌과 받침돌 사이에 높이를 맞추기 위해 작은 돌을 끼워 넣었다. 3호는 덮개돌의 표면이 다른 것들과 달리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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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면에 위치한 지석묘 |
읍리 하마비(전남 문화재자료 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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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 지석묘 앞에 푯말처럼 생긴 돌이 읍리 하마비입니다. |
하마비란 조선시대 종묘 및 대궐 문 앞에 세워놓던 비로, 누구든지 그 앞을 지날 때에는 말에서 내리라는 뜻의 글을 비에 새겨 두었다. 민간신앙에 기초를 둔 것으로, 이 비의 주변에는 10여기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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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지에서 보는 하마비와는 많이 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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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비 앞면에 보살상과 하마비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잘 판독이 안됩니다. |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비는 앞면에 보살상을 새겨두고, 그 아래 ‘하마비’라는 글자는 시멘트로 만든 하단에 새겼다. 불상의 머리위에 보관(寶冠)이 표현된 것으로 미루어 보살상으로 짐작되며, 고려말·조선초 세운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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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측면에서 바라 본 지석묘군과 하마비 측면 모습 |
청산도 읍리 지석묘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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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중앙의 A 지점에 읍리 지석묘가 위치. 서편제 촬영지에서 800여 미터 거리입니다. 소재지 : 전남 완도군 청산면 읍리 8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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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중앙의 A 지점에 읍리 지석묘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청산여객터미널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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