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욥기 (32 - 42장)
- 하나님을 만나고 시작된 새로운 삶 -
세 친구에 이어 등장한 엘리후 역시 인과 관계의 법칙을 근거로 욥을 질책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질서와 법칙에 매이지 않는 전능자시다.
하나님과 직접 대면한 욥은 억울함을 내려놓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한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권자 되시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믿음과 삶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1. 욥과 친구들의 논쟁 (3:1 ~ 37:24)
▽ 엘리후의 논증 (32:1~37:24)
세 차례에 걸친 길고 지루한 논쟁을 묵묵히 듣던 엘리후는 시종일과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는 욥의 태도에 실망감을 넘어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
아울러 욥의 잘못된 주장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정죄하기에만
급급했던 세 친구의 무력함을 지적한다.
엘리후는 할 말이 많았음에도 그들보다 나이가 어리기에 여태 함았다면,
무려 여섯 장(32~37장)에 걸쳐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의로우심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으면서 욥에게 회개를 강력히 촉구한다.
엘리후는 세 친구와는 달리 고난 자체보다 하나님의 위엄에 촛점을 맞춘다.
고난의 순기능을 인정하면서 욥에게 당면한 고난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긍휼
하심을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그는 욥의 성품과 인격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단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잘못이라고 지적한다.(33:12~13)
즉 하나님이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욥의 생각이 옳지 않으며,
하나님은 징계와 심판의 자리에서초차 그분 뜻을 드러내시고 계시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엘리후는 욥이 고난 중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원망과 불평만을
잔뜩 늘어놓음으로써 하나님을 발견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고 회복과 은혜를
무효로 만든다고 공격한다.
이어서 엘리후는 천둥소리, 번갯불, 폭풍우, 등을 근거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공의로우심을 조목조목 설명한다.(36:24~37~24)
그러면서 잘못이 있다면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을 뿐,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어떤 문제도 없음을 거듭 강조한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욥이 자나치게 당당하다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이 주신 은총에 감사하라고 충고한다.
고난에 대한 엘리후의 관점은 앞의 세 친구보다 조금 진전된 측면이 있다.
고난을 무조건 죄의 결과로 단정하기보다 연단의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하나님의 긍휼 안에서 구원 얻을 가능성을 일부 열어 놓기도 한다.
그러나 엘리후 역시 고리타분한 도덕률과 인과 관계 법칙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모든 고난의 원인이 전적으로 욥에게 있다고 단정하여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
엘리후 발언은 하나님을 옹호하고 욥을 회개로 이끌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선한 동기와 상관없이 그이 발언은 욥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을 뿐이다.
2. 하나님의 현현 (38:1~41:34)
▽ 창조와 능력에 대한 질문 (38:1~41:34)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등장하셔서 욥의 고난과 친구들의 논쟁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러나 논쟁을 종식하는 명쾌한 답을 주시기보다는, 온 우주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
있음을 질문 형식을 통해 깨닫게 하신다..
지금까지 욥은 하나님이 세상의 불의를 방치하신다고 의심하면서 전능자의 정의로운
다스림에 대한 강한 의문상을 주관하시며 새 한마리와 풀 한 포기까지 돌보시는 자비로운
주권자시다(39:1~30. 마6:26~30)
누구도 길들일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인 베해못(40:15~20) 과 리워야단(41:1~34) 조차
하나님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잠잠해지는 피조물일 뿐이다.피조물은 창조주의 능력을
가늠하지 못한다.
그러기에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 부당하고 부조리한 일을 당할지라도 하나님 백성은
겸손히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며 예수님 처럼 잠잠히 순종하기를 믿음으로 행동해야 한다.
3. 욥의 참회와 회복 (42:1~17)
▽ 욥의 참회 (42:1~6)
하나님을 직접 만난 욥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탈바꿈한다.
지금까지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외면하셔서 억울하게 고통당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에는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5절)
라고 고백한다.하나님의 높으심과 자신의 낮음을 몸소 체험한 욥은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에
무조건적인 신뢰와 확신을 갖게 된다
마치 하나님이 부재하시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실제로는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알려주신 신비한 창조 세계를 통해,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잊으셨다고 생각한
모든 순간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발견한다.
새롭게 변화된 욥은 겸손히 회개하며(6절) 수치스럽고 절망적인 상황에서조차 하나님 은혜와
구원을 무효화할 수 없음을 담대히 선언한다.
▽욥의 회복(42:7~17)
하나님이 엘리바스에게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라며 그들을 책망하신다"(7절)
그리고 세 친구에게 제물을 가지고 욥에게 가서 번제를 드리고 용서를 구하라고 명하신다.
세 친구는 겉으로는 욥을 격려하고 일으켜 세우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실상은 욥을 정죄하고
넘어뜨리며 자신들의 우월함을 드러냈을 뿐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욥의 손을 들어 주시며 긴 논쟁의 종지부를 찍으신다.
욥이 마음을 열어 친구들을 용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 모든 고난과 상처, 슬픔이 사라지고
치유와 회복, 부흥의 역사가 시작된다.
욥은 이전 소유의 2배를 얻었고 (10,12절) 떠났던 형제 자매와 지인들이 되돌아왔으며(11절),
140년을 더 살면서 4대에 걸쳐 자손을 보는 복을 누렸다. 하나님은 그분이 뜻하신 때에 그분의 방법대로
일하신다.
고난과 갈등, 상처와 분열과 혼란도 때로는 하나님 뜻을 이루는데 필요한 과정의 일부가 된다.인간의 믿음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이다.억울함과 비명, 혼돈과 불신 속에서 한층 넓고 깊어진 욥은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위대하심,
그분의 영광과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증인으로 쓰임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