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堂
国宝。徳川家光の寄進により寛永10年(1633年)に再建されたもの。「清水の舞台」とも呼ばれる。屋根は寄棟造、檜皮葺きで、正面(南面)左右に入母屋造の翼廊が突き出し、外観に変化を与えている。建物の前半部分は山の斜面にせり出すようにして建てられ、多くの長大なケヤキの柱(139本という)が「舞台」と呼ばれるせり出し部分を支えている(釘は使われていない)。このような構造を「懸造(かけづくり)」、あるいは「舞台造」と言い、観音菩薩は補陀洛山(ふだらくさん)に現われるという『妙法蓮華経観世音菩薩普門品第二十五』(観音経)の所説に基づくものである。なお、同じく観音霊場である長谷寺や石山寺の本堂も同様の「懸造」である。
국보. 도쿠가와 이에미쓰(徳川家光)의 기부에 의해 寛永10年(1633)에 재건되었다. ‘기요미즈노 부타이(清水の舞台)’라고도 불린다. 지붕은 요세무네즈쿠리(寄棟造, 우진각지붕), 노송나무 껍질로 이은 지붕 정면 (남면) 좌우로 이리모야즈쿠리(入母屋造, 팔작지붕) 구조의 익랑(翼廊)이 돌출되어 모양에 변화를 주고 있다. 건물의 전반 부분은 산의 경사면에 앞으로 밀어내는 같이 지어진 많은 장대한 느티나무 기둥(139개라고 한다)가 ‘부타이(舞台)’로 불리는 돌출된 부분을 지지하고 있다(못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구조를 ‘가케즈쿠리(懸造)’ 또는 ‘부타이즈쿠리(舞台造)’라 하며 관음보살은 보타락산(補陀落山)에 나타난다는 <妙法蓮華経観世音菩薩普門品第二十五(관음경)>에 담긴 내용에 기반을 두고 있다. 또한, 같은 관음영장(観音霊場)인 하세데라(長谷寺)와 이시야마데라(石山寺)의 본당도 같은 ‘懸造’이다.
平面は、桁行(間口)9間、梁間(奥行)7間の身舎(もや)が主体部となる(ここで言う「間」は長さの単位ではなく、柱間の数を指す。以下も同)。身舎は奥の梁間3間分が内々陣、その手前の梁間1間分が内陣、内陣のさらに手前の梁間3間分が外陣となる。外陣内部は柱の省略がなく、独立柱が等間隔に立つ。内々陣と内陣の部分を正堂(しょうどう)、外陣部分を礼堂(らいどう)とも称する。一般拝観者が立入りできるのは外陣までである。この9間×7間の主体部の東・西・北面には1間幅の裳階(もこし、差し掛け屋根)をめぐらす。正面にあたる南面は、1間幅の庇を設け、その南には東西端にそれぞれ翼廊(楽舎)を設け、両翼廊の間に舞台を設ける。翼廊部分の屋根は入母屋造、妻入とし、外観に変化を与える。堂の西面にも裳階の外側に翼廊を設け、この部分を車寄と称する。裳階には、正堂部分では局(つぼね、参籠所)などが設けられている。外陣は東・西・南面を1間幅の廊下で囲まれ、外陣・廊下境には蔀戸を吊る。構造的には、礼堂の東と西の廊下は裳階、南の廊下は庇にあたる。裳階、翼廊を含めた平面規模は間口36メートル、奥行31メートルとなる。正堂部分は平坦な地面に建っているが、外陣及びそれより手前の部分は傾斜面に建っており、床下にはケヤキ材の長い柱と貫を縦横に組んで建物を支えている。このうち、もっとも手前(南)に位置し、せり出した舞台を支える6本の柱は平面十六角形で、長さ12メートルに及ぶ。これらの柱や貫は寛永再建時のものだが、舞台の床面の板(ヒノキ材)は、耐用年数が25 - 30年ほどで、たびたび張り替えられている。内々陣には、5間幅の須弥壇を設け、その周囲は床を一段低くし、石敷きの土間となる。須弥壇上には3基の厨子(国宝の附指定)が置かれ、中央の厨子には本尊の千手観音立像、左(向かって右)の厨子には毘沙門天立像、右(向かって左)の厨子には地蔵菩薩立像をそれぞれ安置する。三尊とも秘仏である(本尊については後述)。本尊厨子の左右には千手観音の眷属である二十八部衆像を安置し、内々陣左右端には風神・雷神像が安置される。
평면은 도리칸(폭) 9칸, 보칸(깊이) 7칸의 몸채(母屋)가 주체부가 된다(여기서 말하는 ‘間’은 길이의 단위가 아니라 기둥 사이의 수를 가리킨다. 이하 같음). 몸채는 안쪽의 보칸 3칸 분이 내진(內陳), 그 앞의 보칸 1칸 분이 내진, 내진 앞의 보칸 3칸 분이 외진이 된다. 외진 내부는 기둥의 생략 없이 독립주가 등간격으로 서 있다. 내밀한 안쪽 陳과 내진 부분을 정당(正堂), 외진 부분을 예당(禮堂)이라고 칭한다. 일반 관람자가 출입할 수 있는 것은 외진까지이다. 이 9칸×7칸이 주체부의 동․서․북면에는 1칸 폭의 모코시(裳階(상계), 눈썹지붕)를 둘러싸여 있다. 정면에 해당하는 남면은 1칸 폭의 차양을 설치하고, 그 남쪽에는 동서쪽에 각각 익랑(楽舎)을 마련하고, 양측 현관 사이에 무대를 마련한다. 익랑 부분의 지붕은 이리모야즈쿠리(팔작지붕) 구조인데 박공(牔栱)으로 외관에 변화를 주었다. 堂의 서면 裳階 외부에 익랑을 마련하고, 이 부분을 구루마요세(車寄)라고 부른다. 裳階에는 正堂 부분에서는 局(칸막이, 坪根, 参籠所) 등이 설치되어 있다. 외진은 동․서․남면을 1칸 폭의 복도로 둘러싸인 외진 복도 쪽에 시토미도((蔀戸, 덧문)을 달았다. 구조적으로는 예당의 동쪽과 서쪽의 복도는 裳階 남쪽 복도 차양에 해당한다. 裳階, 翼廊을 포함한 평면 규모는 폭 36m, 깊이 31m가 된다. 正堂 부분은 평지에 세워져 있지만, 외진 및 앞으로 나온 부분은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으며, 바닥에는 느티나무의 긴 기둥을 관통하여 종횡으로 짜 건물을 지지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앞(남쪽)에 위치하여 앞으로 돌출된 무대를 지원하는 6개의 기둥은 평면 16각형, 길이 12m에 이른다. 이러한 기둥이나 관통하여 걸치는 나무는 寛永 재건 때(1633년)의 것이지만, 무대 바닥판(노송나무)은 수명이 25~30년 정도로 자주 교체되고 있다. 내밀한 안쪽에는 5칸 폭의 수미단을 만들어 그 주위 바닥을 한 층 낮추어 돌을 깐 토방이다. 수미단에는 3개의 즈시(廚子(주자), 불상을 보시는 작은 집. 国宝에 붙여 指定)가 놓이고 중앙의 즈시에는 본존 천수관음입상, 왼쪽(우측)의 즈시에는 비사문천입상, 오른쪽(좌측)의 즈시에는 지장보살입상을 각각 안치하였다. 삼존 모두 秘佛(공개하지 않는 불상)이다. 본존 즈시의 좌우에는 천수관음의 권속인 28部衆像을 안치하고 내밀한 내진 좌우 가장자리에는 풍신․뇌신상이 안치되었다.
思い切って物事を決断することを「清水の舞台から飛び降りるつもりで」と言うが、清水寺の古文書調査によれば、実際に飛び降りた人が1694年から1864年の間に234件 に上り、生存率は85.4パーセントであった。明治5年(1872年)に政府が飛び降り禁止令を出し、柵を張るなど対策を施したことで(これは写真に残っている)、下火になったという。
과감히 일을 결정하는 것을 ‘기요미즈노 부타이에서 뛰어내릴 각오로’ 라고 말하지만, 기요미즈데라의 고문서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뛰어 내린 사람이 1694년에서 1864년 사이에 234건에 생존율은 85.4퍼센트였다. 明治5年(1872)에 정부가 뛰어내리기(자살) 금지령을 내고 울타리를 치는 등 대책을 마련함으로써(이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시들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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