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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나 마하리쉬(Bhagavan Sri Ramana Maharshi, 1879 ~1950)】
라마나 마하리쉬 - 삼매(Samadhi)에 대하여
삼매三昧(samadhi)라는 말은 명상의 깊은 단계, 즉 진아를 분명한 의식 하에 체험하거나 또는 명상의 대상에 강렬한 집중으로 몰입해 있는 상태를 뜻하는 말로서, 동양의 영적인 문헌들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종교와 유파에 따라 많은 삼매의 단계와 종류들을 제시하고 있으며, 종파마다 그들 특유의 분류법과 용어들을 제시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슈리 라마나가 일반적으로 사용한 분류는, 다양한 삼매들을 다음의 세 가지 단계로 나누는 것이다.
1. 본연무상삼매本然無相三昧(sahaja nirvikalpa samadhi).
이는 자신의 에고를 최종적으로 완전히 소멸시켜 버린 진인의 상태이다.
Sahaja는 '본래적'(natural)이란 뜻이고, nirvikalpa는 '무차별상'無差別相(no differences)이라는 뜻이다.이 상태에 있는 진인은 다른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가 있다. 본연적 진인(sahaja jnani)은 자신이 진아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과 타인들 간에 그리고 자신과 세상간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삼라만상) 일체가 불가분인 진아의 나툼인 것이다.
2. 합일무상삼매合一無相三昧(keval!!!!!a nirvikalpa samadhi).
이는 진아 깨달음의 바로 아래 단계이다. 이 상태에서는 일시적이기는 해도 애씀없이 자연스러운 진아 자각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에고가 최종적으로 제거된 것은 아니다. 이 단계의 특징은 육체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일시적으로 진아를 자각하기는 하나, 감각 기관을 통해 사물을 지각할 수도 없고 세상 속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도 없다. 그리고 육체 의식이 돌아오면 에고가 다시 나타난다.
3. 유상삼매有相三昧(savikalpa samadhi).
이 상태에서는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진아에 대한 자각을 유지할 수 있다.이 삼매의 지속 여부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자기주(Selfattention)가 흔들리면 진아에 대한 자각이 흐려지고 만다. 슈리 라마나가 제시한 다음의 간략한 정의定義들은 초심자들로 하여금 삼매에 관한 용어의 밀림 속을 무난히 헤쳐갈 수 있도록 하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1. 실재를 착파하고 있는 상태가 삼매이다
(Holding on to reality is samadhi).
2. 노력을 통해서 실재를 착파하고 있는 상태가 유상삼매이다.
3. 실재에 빠져(merging in reality) 세계를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합일) 무상삼매이다.
4. 무지에 빠져 세계를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잠이다.
5. 아무런 노력 없이, 원초적이고 순수하며 본래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본연무상삼매이다.
문: 삼매란 무엇입니까?
답: 고요한 마음에 의해 존재-의식(existence-consciousness)의 간단間斷없는 체험을 성취한 상태야말로 삼매입니다. 무한한 지고의 진아를 성취함으로써 아름답게 빛나는 그 고요한 마음이야말로 신의 실체(reality of God)입니다.마음이 어둠 속에서 진아와 합일될 때, 그것을 잠(nidra)이라 합니다. 즉, 마음이 무지에 잠겨 있는 상태입니다.의식이 분명한, 즉 깨어있는 상태에서 (마음이 진아 안에) 잠겨 있는 것을 삼매라 합니다. 삼매는 깨어있는 상태에서 진아 안에 끊임없이 내재하는 것입니다.본연삼매本然三昧(sahaja samadhi)에서는 그 합일(communion)이 지속적입니다.
문: 합일 무상 삼매와 본연 무상 삼매는 어떤 것입니까?
답: 마음이 진아에 잠겨 들었으나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것이 합일무상삼매(keval!!!!!a nirvikalpa samadhi)입니다. 이 상태에 있는 사람은 원습에서 다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해탈을 성취한 것이 아닙니다.원습이 모두 소멸된 뒤에야 해탈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문: 우리는 언제 본연삼매를 수행할 수 있습니까?
답: 바로 처음부터 할 수 있습니다. 비록 합일무상삼매가 수년간 지속되도록 수행한다 해도 원습을 뿌리뽑지 않았으면 해탈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
문:유상삼매(savikalpa)와 무상삼매(nirvikalpa)의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도록 말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답: 지고의 상태를 착파하고 있는 것이 삼매입니다. 마음의 번뇌(mental disturbances)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으로 그렇게 할 때,그것이 유상삼매입니다.이러한 번뇌가 없을 때, 그것이 무상삼매입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원초적 상태에 영구히 머무르는 것이 본연삼매(sahaja)입니다.
문: 무상삼매는 본연삼매를 성취하기 전에 절대적으로 거쳐야 합니까?
답: 유상삼매든 무상삼매든 이러한 삼매들 중 어느 하나 안에 영원히 안주하는 것이 본연의 상태(sahaja)입니다.육체 의식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지각 능력 없는 육체에 의식이 더해진 것입니다.이 둘(육체와 육체 의식) 다, 절대적이고 불변이며 육체 의식이 있든 없든 항상 있는 그대로 남아 있는, 다른 하나의 의식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그렇다면 우리가 그 순수 의식을 착파하고 있는 한, 육체 의식이 사라졌든 남아 있든 무슨 상관 있겠습니까? 육체 의식이 전혀 없으면 삼매가 더욱 강렬해진다는 이점이 있지만, 지고의 실재(the supreme)에 대한 지知에는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문: 삼매와 뚜리야(turiya)[네 번째 상태]는 같은 것입니까?
답: 삼매, 뚜리야 그리고 무상삼매는 같은 하나의 의미, 즉 진아에 대한 자각(awareness of theSelf)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뚜리야는 말 그대로 네 번째 상태, 즉 생시, 꿈 그리고 꿈 없는 잠의 세 가지 상태와 구별되는 지고의 의식입니다. 네 번째 상태는 영원하며, 다른 세 가지 상태는 그 안에서 나타나고 사라집니다.
뚜리야에서는, 비록 얼마간의 생각들이 여전히 마음에 일어나며 감각들(senses)도 어느 정도 살아 움직이기는 해도, 마음이 그 근원인 심장 속에 합일되어 거기서 조용히 머무르고 있다는 자각이 있습니다. 무상삼매에서는 감각들이 작용하지 않으며 생각들도 완전히 사라지고 없습니다.따라서 이 상태에서의 순수 의식의 체험은 강렬하며 지복에 넘칩니다. 뚜리야는 유상삼매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문: 잠잘 때 경험하는 지복과 뚜리야에서 경험하는 지복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답: 지복은 어느 것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생시의 상태에서 느끼는 지복을 포함하여, 가장 낮은 하등 동물에서부터 가장 높은 브라마(Brahma)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들이 느끼는 지복은 오직 하나의 지복입니다. 그 지복은 바로 진아의 지복입니다. 잠잘 때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지복을 뚜리야에서는 분명한 의식 하에 느끼며, 차이는 그것뿐입니다.생시의 상태에서 느끼는 지복은 2차적이며, 진정한 지복의 곁가지(upadhi ananda-일정한 조건하에서만 생기는 지복)입니다.
문: 라자 요가의 여덟 번째 단계인 삼매가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삼매와 같은 것입니까?
답: 요가에서 삼매라는 말은 어떤 종류의 무아경無我境(trance)을 가리키며, 여러 종류의 삼매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는 삼매는 다릅니다. 이것은 본연삼매입니다. 자, 지금부터 그대가 마음의 안정(samadhana)을 얻어 조용히 있으며 그대가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차분하다고 합시다. 그대는 보다 깊은 내면의 진아에 의해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대는 아무 근심도, 아무 걱정도, 아무 신경 쓸 일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느 것도 그대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모든 일이 지금 그대가 분명한 의식 하에 합일되어 있는 그 무엇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문: 만약 이러한 본연삼매가 가장 바람직한 상태라면, 무상삼매無相三昧(nirvikalpa samadhi)는 필요가 없습니까?
답: 라자 요가의 무상삼매는 그 나름의 효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知 요가(jnana yoga)에서는 이 사하자 스티띠(sahaja sthiti)[본연의 상태] 또는 사하자 니쉬타(sahaja nishtha)[본연의 상태에 안주함]그 자체가 무상삼매의 상태입니다. 이 본연의 상태에서 마음은 의문들로부터 벗어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가능성과 개연성의 대안代案들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 마음은 어떤 종류의 차별상(vikalpas)도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실재의 현존(presence of the real)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활동하고 있을 때에도, 그것은 자신이 실재, 즉 지고의 존재인 진아 안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압니다.
문: 깊은 수면(deep sleep)인 의식침전(laya)[마음이 일시적으로 정지한 무아지경의 상태]과 삼매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답: 깊은 수면(요가 수면) 속에서는 마음이 가라앉아 있으나 소멸된 것은 아닙니다. 가라앉은 것은 다시 나타납니다. 그것은 명상 중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소멸해 버린 마음은 다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요기(yogi)의 목표는 마음을 소멸하는 것이어야지 의식침전에 빠져드는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명상의 평안 속에서 의식침전이 때때로 일어나지만, 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마음을 소멸하기 위한 다른 수행법들에 의해 보완되어야 합니다.어떤 사람들은 하찮은 생각을 하다가 요가적 삼매(yogic samadhi)에 들어가서 오랜 시간 후에 깨어날 때 그 생각을 여전히 달고 나옵니다.그 사이에 세상에서는 수십 수백 년이 흘러가 버립니다. 그러한 요기는 그의 마음을 소멸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의 진정한 소멸은 그것을 진아와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입니다.바로 지금도 마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인식하십시오. 자동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일상의 행위들 속에서 하지 않으면 언제 그대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 행위들을 일으키는 마음이란 실재하지 않으며, 진아로부터 일어나는 하나의 허깨비(phantom)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십시오.이것이 마음을 소멸하는 방법입니다.
문: 무상삼매에 들어가 있는 명상자도 물리적 방해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까?제 친구와 제가 이 점에서 의견이 다릅니다.
답: 두 사람 다 맞습니다.한 사람은 합일무상삼매를, 그리고 한 사람은 본연삼매를 말하고 있습니다.두 상태 모두 마음은 진아의 지복 안에 잠겨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물리적 움직임이 명상자에게 방해가 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마음이 완전히 사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그것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마치 깊은 수면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언제든지 다시 활동하게 됩니다. 그것은 물 속에 완전히 잠기기는 했지만 끈이 아직 달려 있어서,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두레박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연삼매(sahaja)에서는, 끈과 함께 우물 속 깊이 가라앉아 버린 두레박과 같이, 마음이 진아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아 버려 다시는 살아나지 않습니다. 본연삼매에서는 방해를 받거나, 세상으로 다시 끌려 나올 것이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이때 그 사람의 행위들은, 잠을 자면서 엄마 젖을 빠는 아이가 젖먹이는 줄도 모르고 젖을 먹는 것과 흡사합니다.
문: 그런 상태로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 나갈 수 있습니까?
답: 선정禪定(meditation)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선정의 지복을 즐기는 사람은, 어떤 외부적 일을 하건, 그에게 어떤 생각이 떠오르건, 그의 삼매 상태를 잃지 않습니다. 이것이 본연무상삼매(sahaja nirvikalpa)입니다.본연무상삼매는 의식소멸(nasa)[마음의 완전한 소멸]이며, 반면에 유상삼매는 의식침전(laya)[마음의 일시적 정지]입니다. 의식침전 삼매(laya samadhi)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마음을 다시 거두어 제어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연삼매에서와 같이 마음이 소멸되고 나면 그것은 다시는 싹트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나 그저 우연적이며, 이들은 그 드높은 상태에서 절대로 미끄러져 내려오지 않습니다.
합일무상삼매에 있는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 것이며, 그들은 아직 공부인들입니다.본연무상삼매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바람 없는 곳의 등불, 혹은 파도 하나 없는 바다와 같습니다.즉, 그들에게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다른 것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합니다.그러나 그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들 자신과는 다른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문: 합일무상삼매의 경우, 비록 그 사람이 상대적인 세계로 다시 내려오기는 하지만, 그 체험은 본연삼매의 그것과 같은 것입니까?
답: 내려옴도 없고 올라감도 없습니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자는 실재하지 않습니다. 합일무상삼매에서는 마음의 두레박이 물 속에 들어간 채 그대로 달려 있어서,언제라도 다시 끌려나올 수 있습니다.본연삼매는 바다로 들어간 강과 같아서 다시 돌아올 수 없습니다. 그대는 왜 이런 질문들을 합니까? 대 자신이 그 체험을 얻을 때까지 계속 수행하십시오.
문: 삼매가 왜 필요하며, 그때에도 생각이 지속됩니까?
답: 삼매만이 진리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생각들이 실재 위에 하나의 막(veil)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에, 삼매가 아닌 다른 상태에서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삼매 속에서는 '내가 있다'(I am)하는 느낌 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내가 있다'의 체험이 '고요히 있음'이라는 것입니다.
문: 어떻게 하면 삼매의 체험, 즉 이곳 당신의 친존親存에서 얻는 이 고요함을 제가 다시 가질 수 있겠습니까?
답: 그대의 지금 체험은 그대를 에워싸고 있는 이 분위기의 감화력(influence) 때문입니다.이 분위기를 벗어나서 그대가 그 체험을 지닐 수 있습니까? 그 체험은 우발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영속적인 것이 될 때까지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문: 삼매란 고요함이나 평안을 체험하는 것입니까?
답: 마음의 번뇌(mental turmoil) 없이 고요하면서도 또렷한 상태야말로 해탈의 확고한 기초인 삼매입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그 기만적인 마음의 번뇌를 소멸시키고,내적인 또렷함이며 평화로운 의식인 삼매를 체험하십시오.
문: 내적인 삼매와 외적인 삼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답: 외적인 삼매(external samadhi)란, 세계를 바라보면서도 것에 내면으로부터 반응함이 없이 실재를 착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파도 없는 바다 같은 고요함이 있습니다. 내적인 삼매(internal samadhi)는 육체 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문: 제 마음은 그런 상태에 한 순간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답: '나는 마음과 세계를 초월한 진아다'하는 강한 확신이 필요합니다.
문: 그렇게 해도 마음은 여전히, 진아 속으로 몰입하려는 저의 온갖 노력을 가로 막는 집요한 장애물입니다.
답: 마음이 활동하고 있다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진아의 바탕 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마음이 활동하고 있을 때에도 진아를 꽉 붙잡으십시오.
문: 저는 라마끄리슈나에 대해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이 쓴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데, 거기서는 무상삼매가 끔찍하고 무서운 체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무상삼매가 그렇게 끔찍합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그러한 공포의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 모든 명상, 정화(purification) 그리고 수련의 지루한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러다가 우리는 산송장이 되는 것 아닙니까?
답: 사람들은 무상삼매에 대해 별별 생각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왜 로맹 롤랑을 들먹입니까? 우빠니샤드와 베단따의 전통을 손끝에 꿰고 있는 사람들도 무상삼매에 대해 온갖 환상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데, 서양인이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누가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요기들은 호흡 수련에 의해 꿈 없는 잠보다 훨씬 깊은 어떤 강직剛直 상태(cataleptic state-몸이 시체나 목석같이 된 상태)에 빠져드는데, 거기서 그들은 아무것도, 전혀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무상삼매라고 찬양하는 것입니다.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무상삼매에 들어가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무상삼매가, 사람이 기절했을 때와 같이 세계에 대한 의식이 완전히 지워져 버린 일종의 무아경(trance)을 통해서만 얻어진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이런 생각들은 모두 그들이 무상삼매를 지적으로(머리로 이해해서) 보기 때문입니다.무상삼매는 식識(chit), 즉 애씀없이 자연스럽고 형상 없는 의식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함에 있어서, 어디서 공포가 찾아오며, 어디에 신비가 있단 말입니까? 과거(전생)의 오랜 수행에 의해 마음이 충분히 성숙한 사람들에게는 무상삼매가 물밀듯이 갑자기 찾아오기도 하지만,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꾸준한 수행으로 장애되던 생각들이 점차 소멸되어 '나-나'의 순수한 자각의 화막이 드러나는 때가 되면 그것이 찾아옵니다. 여기서 더 수행해 나가면 그 화막이 영구히 드러나서 다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이것이 진아 깨달음이고, 해탈이며, 자연스럽고 애씀없는 상태인 본연삼매(sahaja samadhi)입니다.바깥의 차별상(vikalpas)을 단지 지각하지 못하는 것은 확고한 무상삼매의 진정한 본질이 아닙니다. 죽은 마음(dead mind) 속에서 차별상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만이 진정한 무상삼매라는 것을 아십시오.
문: 마음이 진아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할 때 종종 두려운 느낌이 있습니다.
답: 삼매 속으로 들어갈 때 두려움을 느끼고 몸이 떨리기도 하는 것은 미세한 에고 의식(ego-consciousness)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러나 이것이 완전히,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을 때, 우리는 지복만이 넘쳐흐르는 순전한 의식의 광대한 공간으로서 안주하게 되며, 몸이 떨리던 것도 그칩니다.
문: 삼매는 지복에 넘치거나 황홀한 상태입니까?
답: 삼매 자체에는 완전한 평안만이 있습니다. 황홀경(ecstasy)은 삼매가 끝나면서 마음이 되살아날 때, 삼매의 평안함을 기억하면서 나타납니다. 헌신의 과정에서는 황홀경이 먼저 옵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 쏟아지고, 머리칼이 곤두서며,말을 더듬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그러나 에고가 완전히 죽고 본연삼매가 성취되면, 이러한 징후들과 황홀경은 사라집니다.
문: 삼매를 성취할 때, 우리는 초능력(siddhis)도 함께 얻지 않습니까?
답: 초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인지認知하는 타인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말은, 초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에게는 진지(jnana)가 없다는 뜻입니다.따라서 초능력이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진지만을 목표하고 진지만을 성취해야 합니다.
문: 만두꺄 우빠니샤드(Mandukyopanishad)에서는, 아무리 많은 명상이나 신체적 고행(tapas)을 한다 하더라도, 요가의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인 삼매를 아울러 체험하지 못하면, 해탈(moksha)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답: 올바르게만 이해하면, 그것들은 모두 같은 것입니다.그것을 명상이라 하든, 고행(austerities)이라 하든, 몰입沒入이라 하든, 아니면 뭐라 하든,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번뇌 없이) 안정되어 있고, (기름병에서 따르는) 기름 줄기같이 끊임없는 것이 고행이요, 명상이며, 몰입입니다. 자기 자신의 진아가 되는 것이 삼매입니다.
문: 그러나 만두꺄 우빠니샤드에서는 반드시 삼매를 체험해야만 해탈을 성취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답: 그런데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합니까? 만두꺄 우빠니샤드뿐 아니라 모든 고서古書에서는 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자신의 진아를 알아야만 진정한 삼매입니다.생명 없는 물건처럼 한 동안 가만히 앉아 있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가령 그대가 손에 종기가 나서 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는다 합시다. 이때 그대는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대가 삼매에 들어 있었습니까? 이것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삼매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대가 자기 자신(진아)을 모르고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진아를 알면 삼매는 자동적으로 알게 됩니다. 삼매는 우리의 본래적 상태(natural state)입니다. 그것은 생시, 꿈 그리고 잠의 세 가지 상태 모두의 저변의 흐름(undercurrent)입니다. 진아가 이 세 가지 상태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상태들이 진아 안에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생시의 상태에서 삼매를 얻으면, 그것은 깊은 잠 속에서도 지속됩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구별은 마음의 영역에 속하며, 이 마음은 진아의 상태(삼매)에 의해 초월됩니다.
문: 그래서 우리는 항상 삼매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군요?
답: 진인들은 에고가 없는 평형平衡의 상태야말로 지知의 정점인, 침묵삼매(mouna-samadhi)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거기서 에고 없는 실재로 존재하는 이 침묵삼매를 성취할 때까지는, "나'의 절멸絶滅(annihilation)만을 그대의 목표로서 추구하십시오.
주)
1) 외적인 삼매와 내적인 삼매는 무상삼매에 있어서의 구분이다.
외적인 무상삼매의 '파도 없는 바다' 같은 고요함과, 내적인 무상삼매의 '바람 없는 곳의 등불' 같은 밝음(또렷함)이 동일한 것임을 깨달으면 본연 무상삼매를 성취했다고 말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