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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의 성장은 인도사회의 성장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왔었다. 힌두교의 신자를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힌두(Hindu)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인들이 인더스(Indus)강 유역에 거주하는 아리아인(Aryans)들을 신두(Sindhu)라고 부른데서 유래한 것이다. 고대의 페르시아인들은 인더스강을 신두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고대 페르시아어에서는 'S' 를 'H'로 읽었기 때문이다. 'India'라는 명칭은 그리스인들이 'H'의 발음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Sindhu' 또는 'Hindu'에서 'H'를 제거하여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힌두라는 단어가 의미했던 것은 인더스강 유역의 아리아인들이었고 그들의 종교가 힌두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리아인들의 인도아대륙에서의 세력확장이 이루어짐에 의해서 힌두화(Hinduisation) 작업과 아리아문화와 비아리아문화의 결합이 병행하면서 진행되었다. 이 결과, 힌두라는 단어는 본래의 지역적, 인종적 한계성을 초월하여 힌두교의 신자와 그것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권의 구성요소들을 총칭하는 의미를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도사회에서 힌두라는 명칭은 좋은 의미에서든지 나쁜 의미에서든지 한 개인의 소속과 정체를 나타내는 상징이 된다. 힌두들은 매일의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종교를 느끼고 종교의 굴레에서 맴돌며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확인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힌두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힌두교의 신자로서의 자격뿐만 아니라 특정카스트(Caste)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격까지 획득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 공동체내 의 동질성과 결속력에 개인은 쉽게 동화할 수 있는 것이다. 힌두교는 바라문교에서 많은 신관,신화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다신교적이지만, 신들의 배후에 유일한 최고자를 설정하고 그 신들을 최고신의 현현(顯現 ; 權化)이라고 하여 교묘히 통일시키고 있는 점에서 일시교적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푸라나≫문헌 등에 나타나는 트리무르티(삼신일체)는 그 좋은 예이다. 이는 별도의 기원에 속하는 우주창조신 브라흐마, 유지신, 파괴신 시바의 세 신을 일체로 하여 최고의 실재원리로 삼는 것이다. 그 중 비슈누와 시바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힌두교의 대종파를 형성하였다. 비슈누파는 학문적 성격이 강하며, 비교적 사회의 상층부에 세력을 갖고 있다. 비슈느는 인간과 동물의 모습으로 지상에 출현하는 것으로 신앙되며, 비슈누의 10권화(權化) 중의 라마와 크리슈나는 2대 서사시(敍事詩)의 영웅이며, 이에 따라 비슈누파는 라마파와 크리슈나파로 나뉘었다. 비슈뉴파에 대하여 시바파는 사회의 하층부에 세력이 있으며 수행자의 고행,주술,열광적인 제의에 특색이 있다. 또한 인도에서는 예부터 신비(神妃) 숭배가 성하여, 브라흐마에게는 시라스바티, 비슈누에게는 라슈미가 배우여신으로 간주되며, 시바신의 배우여신으로는 두르가, 파르바티, 우마, 칼리 등 많은 이명이 있다. 이들 여신을 샤크티(여성적 창조력)라고 하며, 이들 숭배하는 샤크티파도 있다. 힌두교의 특징적인 사상은 윤회와 업, 해탈의 길, 도덕적 행위의 중시, 경건한 신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윤회,업의 사상은 민간신앙을 채용한 것으로 이미 고(古)우파니샤드에 보이며, ≪마하바라타≫에 이르러 특히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인도인의 도덕관념을 키웠지만, 한편으로는 숙명론을 가져와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인간의 사후운명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이 있었다. 신들도 업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곤란한 일이었다, 그러나 속박에서 해탈하는 방법으로서, 출가 유행(遊行)의 생활과 고행 또는 요가가 교설되었다. 고행은 주로 육체의 수련이며, 요가는 정신의 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힌두교 사회에 있어 도덕관념의 기초는 바라문교의 법전(法典)에 규정되어 있는 달바(법,의무)이다. 4성제도와 4생활기(學生,家住,林住,遊行期)가 중심으로서, 자기가 소속하는 카스트에 따를 의무의 수행이 강조되었다. 최고신에 대한 박티(信愛)와 그 은총의 능력,성별,직업,계급, 여하에 관계없이 일반민중의 구제를 위하여 가르쳐진 것이다. 또한 힌두교는 이슬람교 및 그리스도교와 접촉하여 여러 가지 영향을 받아, 근세에는 브라흐마 시마즈, 아리아 사마즈 등의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다. 특히 비베카난다(1863~1902)에 의한 라마크리슈나 교단은 모든 종교가 하나로 귀일한다고 하여 보편주의적 종교관을 보여주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많은 신자를 가지고 있다. 흰두교의 최고의 신은 우주를 유지하는 신의 명칭. 브라마, 시바와 함께 삼위일체를 이룬다. 비시뉴는 유지, 브라흐마는 창조, 시바는 파괴와 창조로써 이 삼신이 우주를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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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마
힌두교 신들 가운데 하나로 브라마(Brahma)이다. 브라흐마를 살펴본다면 먼저 창조의 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창조라는 개념은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어떤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인도의 신화에는 서양의 기독교적 전통에서 나오는 것과 같은 무(無)로부터의 창조라는 개념이 구체적인 모습이 아닌 가능 적인 씨앗의 형태로 이미 창조주 속에 내재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브라흐마의 창조신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인도의 성전인 베다 속에서 브라흐마는 '자라다, 성장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기도 또는 신성한 말속에 포함된 신비한 힘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는 점차 발전하여 우주 또는 그로부터 만물이 발생하는 절대자 혹은 근원자 또는 절대원리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절대자로서의 브라흐마는 그로 인해 다른 모든 존재들이 생성될 수는 있어도 자신은 결코 무엇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 존재하는 신이다. 그는 또한 모든 신들 중의 신이기도 하다. 모든 신들은 마치 외양간에 있는 소들처럼 브라흐마 신속에 거주한다. 그는 비슈누, 쉬바와 함께 힌두교의 삼위일체 신을 형성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브라흐마 신은 창조의 역할을, 비슈누는 창조된 우주를 유지하는 임무를, 마지막으로 쉬바는 우주의 파괴를 통하여 새로운 창조가 시작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는 또한 브라흐마라는 이름 이외에 스스로 존재하는 자, 희생제를 처음으로 시작한 자 또는 으뜸가는 희생제주, 세계의 신, 황금알에서 태어난 자, 사비트리의 남편, 최초의 시인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태초의 이 우주는 하늘도 땅도, 그리고 빛도 없이 오직 어둠 속에 덮여 있었다. 거기에는 마치 꿈없는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어떠한 지각이나 구별, 그리고 앎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누워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던 스스로 존재하는 자는 저항할 수 없는 어떤 내적인 힘을 통하여 창조를 시작했다. 땅, 물, 불, 바람, 공기의 다섯 가지 요소와 그 밖의 다른 사물들을 이 우주 속에 창조하면서 그 자신도 어둠을 없애고 점차로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감각적 인식을 넘어선 미묘한 존재로서 인간의 앎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으며 또한 영원한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창조된 모든 사물의 본질이기도 하다. 어느 날 절대자는 자신의 몸 속에서 모든 창조물을 만들어 내려는 소망을 갖게 되었다. 제일 먼저 나라흐라고 불리는 물을 창조하여 하나의 씨앗을 그 속에 담아 두었다. 이 씨앗은 점점 자라 태양처럼 빛나는 황금알이 되었다. 그 알속에서 절대자는 모든 세계의 창조자인 브라흐마로 태어났다. 뿐만 아니라 물이 바로 그가 활동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에 그는 나라야나라고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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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쉬누
마하바라따를 보면 33,333 신이 산다. 후에 신들의 수는 천배로 많아졌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힌두의 신들은 33신으로 정의된다. 힌두의 대표적인 삼신은 브라흐마, 비싀누, 시바이며 이들은 각각 창조, 유지, 파괴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비싀누는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권능자로서 자비와 미덕을 갖추고 있으며 스스로 존재한다. 비싀누는 자주 거대한 새 가루다를 타고 다닌다. 비싀누는 우주가 창조되기 이전에 모든 곳에 퍼져있는 우주의 대양(Nara)이면서 또한 물위를 거니는 나라야나이기도 하다. 그는 인간의 형태를 취하며 셰샤라고 하는 뱀의 또아리에서 잠을 자며 물위를 떠돈다. 창조의 신 브라흐마는 때로 비싀누가 잠자고 있는 동안 그의 배꼽에서 자라난 연꽃에서 나왔다고도 말하여진다. 우주가 파괴되면 다시 비싀누는 이 자세를 취한다.
우주는 선과 악이 균형을 갖고 있으며 때로 악이 우세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비싀누가 인간으로 태어남으로써 이 균형을 잡는다고 한다. 현재의 마하유가(大時代)에서 비쉬누는 열 번에 걸쳐 화신으로 지상에 내려온다고 전해진다. 첫 번째 화신은 마뜨샤(Matsya)로서 마누이야기에 나오는 물고기이며 일곱 번째 화신 라마, 여덟 번째 화신 끄리싀나, 아홉 번째 화신 붓다 등이 잘 알려진 화신들이다. 열 번째 화신은 깔끼(Kalki)로서 아직 오지 않았다. 세상이 사악함으로 뒤덮인 말세가 되었을 때 깔끼는 흰말을 타고 지상에 사람으로 올 것이다. 유성처럼 번득이는 칼을 휘둘러 모든 악을 베면서 온 누리를 휩쓸어 다음 마하유가의 재창조시 선과 덕이 부활되도록 길을 예비할 것이다.
비싀누의 화신으로 알려진 라마는 인도의 대중적인 신이며 마하뜨마 간디가 암살당했을 때 임종 전에 외친 ??헤 람!(오 신이여)도 바로 이 신을 뜻한다. 현대 인도어에서는 람이라고 불린다. 라마는 비싀누신의 일곱 번째 화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라마가 실제로 현존했던 역사적인 인물로서 후에 신격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라마에 대한 이야기는 마하바라따에서도 간략히 언급되고 있다. 라마는 기원후 11세기경에 들어서야 신앙의 대상으로 언급되기 시작하였으며 14-15세기 경에는 절대신으로 숭배되기 시작하였다. 라마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16세기에 뚤시다스가 산스끄리뜨어로 된 라마야나를 힌디어로 개작한 람짜리뜨마나스(Ramcharitmanas)가 발표된 이후이다. 14-15세기에 인도 전역에 걸쳐 신애운동이 전개되었을 때 라마는 끄리싀나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으로 숭배의 대상이 된 신이다. 끄리싀나는 그의 짓궂음과 호색적인 면으로 인기가 있었지만 라마는 철저히 이성적이고 정의로운 행실, 이상적인 미덕 등으로 대중들의 존경을 받았다. 라마 사원과 하누만(원숭이 형상을 한 라마의 충복)을 모시는 사당은 인도의 전역에 널리 자리잡고 있다. 라마는 친구들간의 인사말로 사용되기도 하며(람! 람!) 인도인들이 임종시 가장 자주 찾는 이름이다. 라마의 조각상을 보면 오른손에는 화살 왼손에는 활이 들려 있으며 라마의 사원에는 언제나 그의 부인 씨따(Sita)와 충실한 이복동생 락싀마나(Lakshmana) 그리고 하누만이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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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리쉬나
끄리싀나는 라마와 더불어 대중적인 신으로서 비싀누의 여덟 번째 화신으로 숭배된다. 끄리싀나는 중세 박띠운동(신애운동)의 주된 대상으로서 이를 찬양하는 다수의 종교적인 시, 음악, 회화가 발전하였다. 끄리싀나 신화의 기본 출처는 마하바라따 서사시와 뿌라나의 10권과 11권이다. 끄리싀나는 현재의 우따르 쁘라데시 주에 해당하는 마투라 지역에서 사악한 왕인 깜사 시대에 야다브(Yadava)족의 아이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바수데브와 데바끼로서 데바끼는 깐사의 자매이다. 깐사 왕은 자신이 데바끼의 아들에 의해 파멸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데바끼가 낳는 아이들을 죽인다. 그러나 끄리싀나가 태어났을 때 그의 아버지는 깐사 왕의 눈을 피해 야무나 강을 건너 고꿀 마을의 소치기 부부에게 맡기고 그후 끄리싀나는 소치기 부부의 아들로 양육된다.
끄리싀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짓궂고 못된 짓들로 점철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많은 기적을 행하기도 했고 악귀들을 물리치기도 했다. 젊은이로서의 끄리싀나는 고삐(소를치는 여인네들)의 연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피리를 불면 여인들은 유부녀든 처녀든 마을을 빠져나와 숲으로 들어와 그와 더불어 열정적인 사랑의 춤을 추었다. 여인들 중에서 그가 가장 맘에 들어한 여인은 라다(Radha)였다. 힌두교에서는 끄리싀나와 고삐들간의 관계를 신과 인간의 영혼과의 상징적 관계로 풀이한다. 후에 끄리싀나는 그의 동생 발라라마와 함께 마투라로 돌아와 사악한 깜사를 살해한다. 이후로 왕국이 안전하지 않은 것을 느끼고 그는 야다브족을 이끌고 서부로 이동하여 현재 구자라뜨 주의 드바라끄에서 왕궁을 짓는다. 그는 여러 여인들과 결혼을 하였다.
마하바라따 서사시의 두 가문인 까우라바와 빤다바가 전쟁을 하게 되었을 때 그는 두 가문에게 자신의 두 가지 제안 중 하나씩을 선택할 것을 말하였다. 그 하나는 끄리싀나가 무기없이 시중드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끄리싀나의 무기를 빌려쓰는 것이다. 빤다브족은 전자를 택하여 끄리싀나는 용사 아르주나의 전차를 모는 마부가 되었다. 마하바라따의 대 전투에 앞서 아르주나는 자신들의 사촌 친족 그리고 친구들과의 잔인한 살육전을 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고민을 하게 된다. 차라리 무기를 버리고 살해당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 때 끄리싀나는 그 유명한 인생에 관한 담론, 다르마(의무)와 까르마요가의 중요성에 대하여 이야기하여 준다. 끄리싀나의 인생론은 힌두철학의 정수로서 바가바드기따(Bhagavadgita)를 통하여 전해 내려온다.
그가 드바라끄에 돌아왔을 때 야다브족장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고 그의 동생과 아들이 살해를 당한다. 이를 슬퍼하여 숲에서 울고 있을 때 사냥꾼이 그를 사슴으로 착각하여 화살을 쏘았다. 신으로서 완벽한 존재였지만 끄리싀나는 그의 단하나 약점에 해당하는 발뒤꿈치를 맞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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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시바는 '상서로운 존재'라는 뜻이다. 시바는 일반적으로 파괴의 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존재로서 일면 상충되는 성격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그는 파괴자인 동시에 재건자이며, 고행자인 동시에 관능의 상징이기도 하며, 자비로운 영혼의 목자인 동시에 분노의 복수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바의 양면성은 이전의 신화적인 성격들이 복합적으로 축적된 데 연유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힌두의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 흐름의 결과이기도 하다. 시바의 배우자는 여러 이름으로 나타나는데 이에는 우마(Uma), 사띠(Sati), 빠르와띠(Parvati), 두르가(Durga), 깔리(Kali) 등이 있다. 시바의 자손으로는 여섯 개의 머리를 가진 스깐다(Skanda), 코끼리 머리를 가진 가네싀(Ganesha)가 있으며 이들은 히말라야의 깰라싀(Kailash) 산에서 산다고 한다.
시바는 난디(Nandi)라고 하는 숫소를 타고 다니며 시바의 사원에서 난디는 지성소의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시바사원에서 시바의 이미지는 링감(남성의 성기)으로 표현된다. 시바는 여러 가지의 신체적인 특징들을 갖고 있다. 그의 머리는 계단식으로 매트를 쌓은 것처럼 틀어 올려져 있으며 초생달과 갠지스강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의 피부는 잿빛 또는 흰색이며 목에는 푸른 점이 있다. 따라서 닐깐트(푸른 목)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들여 마심으로 생긴 것이다. 한때 신들은 생명이 유한하였다. 이들은 불멸의 감로를 얻기 위해 우유의 대양에 약재를 넣고 거대한 산을 뱀으로 감아 저었는데 이 과정에서 뱀으로부터 뿜어 나온 독이 신들을 모두 위험에 처하게 하였다. 시바는 이 독을 자신이 들여마신 후 목에 저장하였기 때문에 목의 색이 변하였다.
시바는 세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데 세 번째 눈은 내면을 투시하는 눈으로서 밖을 주시할 때는 물질을 태우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 그는 두개골을 꿴 목걸이를 걸치고 있으며 목에는 뱀을 두르고 있다. 두 손 때로 네 손에는 사슴가죽과 삼지창, 작은 북, 해골로 된 타봉을 지니고 있다.
시바는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이미지 중에서 그는 배우자 빠르와띠, 아들 스깐다와 더불어 평화로운 모습으로, 우주의 댄서(Nataraja)로서, 벌거벗은 고행자로서, 탁발승으로 나타나는 모습을 대표적으로 상기할 수 있다. 각각의 이미지는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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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리
시바신을 밟고있는 깔리 여신
깔리는 힌두교의 삼신 중에 하나인 시바 신의 아내이며 검은 피부를 가지고, 피가 뚝뚝 흐르는 사람들의 손목을 앞치마로, 사람들의 목을 다발로 걸고, 늘 피비린내를 풍기는 무시무시한 여신이다. 깔리의 어원을 살펴보면 인도 유럽언어의 원형인 삼스크리탐의 카라, 즉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출발했다. 흐르는 강물에 시간의 상징하는 여신의 이름을 주었으니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고대 母神의 잔 인한 계승자인 검푸른 깔리Kali여신. 깔리여신은 여기서 많은 머리를 갖고있으며, 예외적으로 웃는 모습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균형적인 모습으로 내민 혓바닥, 잘린 손과 해골로 만든 장식을 하고 있다. 한편 시바교적인 권속의 여신으로서 이마의 제삼의눈. 장식 머리띠의 초생달. 삼지창. 잘라진 머리등으로 치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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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쉬
간빠띠 또는 가네샤라고도 불리는 코끼리 머리를 한 힌두의 신이다. 시바와 빠르와띠의 아들로서 장애물을 제거해 주는 자로 여겨져 사업을 시작할 때 복을 비는 대상이며 제례의식의 서두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경배의 대상이다. 그의 신상은 사원이나 가정집 입구에 자주 보인다. 그는 또한 문자와 학습의 후원자이며 성자 뱌사(Vyasa)가 불러준 마하바라따를 받아적었다고 믿어진다. 그의 배는 볼록하고 상아는 한쪽이 부러졌으며 네 팔에는 각각 올가미, 몰이막대기, 쌀단지 그리고 부러진 상아를 들고 있다. 그가 타고 다니는 짐승은 쥐이다. 이러한 묘사의 이면에는 각각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깔려 있다. 그의 탄생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대표적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빠르와띠는 목욕을 하면서 욕실을 지켜줄 아이를 때를 밀어 만든다. 시바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 아이가 부인에게로 못가게 가로막고 있자 그는 화가 나서 부하들을 시켜 아이의 목을 자르게 한다. 빠르와띠가 슬퍼하자 시바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생명체의 머리를 떼어다 아이의 목에 달아 줄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그 생명체가 바로 코끼리이다.
이 결과에 대한 빠르와띠의 서운함을 달래기 위해 시바는 그 보상으로 인간들이 제사나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가네싀의 축복을 받아야만 일이 원만하게 되도록 하는 권한을 가네싀에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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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마가 전통 힌두사회 조직의 근간이 되었던 것처럼 담마는 불교 사회의 뿌리이다. 부처의 가르침은 때때로 기존의 사회질서의 전면적인 부정을 나타내기도 한다. 보다 엄밀히 말한다면 부처는 타락한 생활방식을 버리고 원시시대의 순수한 생활방식을 회복하려고 시도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따라서 브라만이나 불가촉천민이 출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는 외양적인 권위, 그것이 초인적인 창조자이건 베다의 형태를 취했건 간에, 에 의문을 나타냈고 기계적인 의식주의와 극단적인 수행방식에 반대했던 것이다. 부처는 방종한 기쁨이나 극단적인 고통을 추구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것이고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마디야마 쁘라띠빠다(Madhyama Pratipada)을 창안하여 속인은 물론 승려들의 사회생활의 기본으로 삼았다. 모든 악은 무지에서 나온다. 진실한 지식이야말로 좋은 사회의 기초가 된다. 이것을 위해 2500년 전 부처는 정의의 바퀴(Dhamma Cakka)',를 설정했고 영원한 길(Akaliko)을 설명했다.
진정한 지식은 다음 네 가지의 숭고한 진리에 기반한다. 첫 번째 진리는 인생이 고통이라는 것이다. 두 번 째는 고통은 존재를 위한 욕망, 즉 형이상학적인 진리와 경험적인 진리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데 실패함에 의해 발생한다. 전자는 절대자에 대한 참여를 의미하고 후자는 단순히 가능성에 관계가 있을 뿐이다. 세 번째 진리는 욕망을 없애는 니바나(Nibbana)를 통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 진리는 해방과 평정은 팔정도(八正道)에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얻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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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
불교에서 염마(염라대왕)라고도 하는 야마(Yama) 베다에서 죽음을 겪은 최초의 인간으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들이 지상에서 수명이 다한 후 걷게되는 죽음의 길을 최초로 닦은 인간이다. 그는 땅속에 있는 죽음의 지역인 남방의 수호자로서 베다에서는 사자(死者)들의 왕으로 등장했으나 후에 죄를 심판하는 다르마라자로 발전하였다. 그는 대단한 외관을 갖고 있는데 특히 붉은 눈과 붉은 옷 해골장식 그리고 갈고리 달린 철퇴를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승의 입구는 네 개의 눈을 가진 두 마리의 개가 지키고 있으며 까마귀와 비둘기가 그의 전령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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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십시오-()-
좋은 자료 잘보았습니다...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