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乾陀羅, Gandhāra)미술과 간다리어(Gandhari語)
간다라(Gandhāra)는 인도 서북지방과 지금의 파키스탄,
그리고 아프카니스탄 동부에 걸쳐 있던 옛 지역을 말한다.
그 중심지는 지금의 파키스탄 북서부의 페샤와르(Peshawar)지역이었다.
간다라는 원래 간다리족(Gandhari族)이 사는 땅이란 뜻인데,
산스크리트어로 향기로운 땅이라는 뜻이다.
간다리족은 인도 베다시대(BC 15세기~6세기)의 성전인
<리그베다>에 이미 언급돼 있는 것으로 미루어봐서,
인도 아리안족(Aryan)의 일파로 짐작된다.
간다라는 인도의 서북관문이며 문명의 교차 지점으로서
BC 3세기 이래 인도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기는 했었지만
이곳은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적 요소를 고루 지니고 있고,
다양한 민족문화가 섞여 있어서, 여러 면에서 독톡한 지역이었고,
기후 풍토도 인도와는 달랐다.
따라서 인도에서 출발한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미술의 조형형식은 헬레니즘 양식을 적용시켜
일종의 혼합미술로 발전했다.
간다라는 부처님 당시의 인도 지배국 16개국에 거론되기도 했으며,
아소카 왕 때는 불교 전파의 중요한 길목이었고,
그 이후엔 쿠샨제국(대월지국/大月氏國)에 의해 정복돼,
그 중심부를 이루었다. 이후 쿠샨제국 왕들은 헬레니즘 지역과
활발한 교류를 지속했다.
그리고 AD 127년부터 쿠샨제국의 통치자가 된
카니시카(Kanishka)왕은 수도를 간다라(페샤와르)로 옮겼다.
그리고 1~5세기에 걸쳐 간다라는 쿠샨 왕들의 비호 아래
정치, 문화, 예술에 있어서 최고정점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쿠샨제국 이후에도 간다라는 AD 11세기경까지 번성했다.
현장(玄奘) 법사의 기록에 의하면, 동서가 1천여 리,
남북이 8백여 리로서 동쪽은 인더스강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
유식불교를 발전시킨 무착(無着), 세친(世親), 중현(衆賢)과
AD 2세기경 카니시카(Kaniska)왕의 후원으로
제4차 불전결집을 주도했던 협(脇, Parsva/파르스바) 존자 등이
간다라 출신이다. 따라서 대승불교가 간다라지방에서 흥기했다고 한다.
기원후 1~2세기의 불교계에 있어서는 전통적 보수파 불교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한편으로 일반 민중과 더불어 그 지도자였던
설교사(說敎師-法師)의 사이에서는 새로운 종교운동인
대승불교가 일어나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간다라(Gandhāra)미술은 쿠샨왕조시대인
기원 전후부터 4~5세기까지 간다라지방에 유행한 불교미술을 말한다.
간다라미술의 특징은 헬레니즘양식이라 일컫는
그리스⋅로마 풍의 조각위주 불교미술이다.
동서 문화교류에 의해 유입된 서방요소가 짙은 미술로서
전통적인 인도미술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당시 로마세계에서 유행헸던 헬레니즘미술의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이
명백해 그 당시 서방의 공장(工匠)들이 간다라에 들어왔음을 짐작케 한다.
그리하여 간다라에서 처음으로 불상(佛像)이 만들어졌다.
그때까지는 보리수, 스투파(탑), 법륜(法輪), 보좌(寶座) 등으로
불교를 상징적으로 표현했을 뿐이었으나
간다라미술부터 인간적인 모습의 불상이 조각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상이 간다라 불교사원의 중심적인 예배대상은 아니었다.
페샤와르 분지 중심부의 사원들에서는 보통 수십 구의
커다란 불상들이 출토됐지만, 사원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은
역시 붓다의 유골을 안치한 불탑이었다.
사원마다 그러한 불탑이 중심부에 자리 잡았다.
불상은 보통 불탑 둘레에 마련된 감[(龕) : 사당 안에 신주를
모셔 두는 장(欌) ]들에 줄지어 안치됐다.
또 사원 내에는 고승들의 유골을 안치한 작은 크기의
스투파들도 수십 개씩 조성됐다.
비교적 큰 크기의 동아시아 불상이 대부분 한 불당의
유일무이한 주존(主尊)이거나 그와 같이 상당한 공간을
점유하는 존재로서 봉안되고 예배됐던 데 반해,
간다라의 불상은 사원의 중심부에 위치하지는 않았다.
간다라불상에서 특이한 것은 머리카락이 고수머리가 아니고
물결모양의 장발이라는 점과 용모는 눈언저리가 깊고
콧대가 우뚝한 것이 마치 서양 사람과 같다는 점이다.
또 얼굴의 생김새가 인간적이고 개성적이라는 점,
착의(着衣)의 주름이 깊게 새겨지고,
그 모양이 자연스러워 형식화된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즉, 간다라불상 표현은 헬레니즘양식의 자연주의⋅
현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현재 전하고 있는 고행하는 붓다상도 이 지역에서 조성됐었다.
이 고행 불상은 간다라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이 불상은 문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모습의 석가모니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몸이 여윌 대로 여위어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있다.
이는 해부학적으로 상당히 정확한 재현으로
조각가는 당시 단식 고행을 하던 수행자들의 모습을
매우 자세히 관찰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상은 허기지고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 이른
단식 고행자의 모습이 아니고, 보기에 너무나 꼿꼿하고
눈빛도 예리하게 살아있다.
그리고 간다라 사원에는 적지 않은
대승의 보살상들이 봉안됐음을 볼 수 있다.
대승불교도들은 스스로 보살이 되기를 서원했을 뿐 아니라,
실천의 이상 상으로서, 또 중생의 구제자로서
신격화된 여러 보살들을 숭배했다.
문수보살, 보현보살, 관음보살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간다라 사원에서 발견된 보살상들 가운데에는
관음이나 문수와 같은 대승 특유의 보살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이 밖에도 대승불교도들의 봉헌물로 볼 수 있는
많은 불교미술 유물들이 전한다.
페샤와르 박물관에 있는 미륵보살상은 현존하는
간다라 미륵보살상 가운데 가장 훌륭한 예라 할 수 있다.
물병을 들고 있는 왼손을 비롯해 양손이 모두 떨어져나갔지만
다른 부분은 깨끗이 남아있다.
유연하게 흘러내리는 머리카락과 힘차게 뻗어 내린
옷 주름도 현란하게 조각돼있다.
그리고 간다라 지역 주민을 간다리족(Gandhari族)이라 하고,
이 지역의 특별한 방언을 간다리어(Gandhari語)라 부르고,
카로슈티(Kharosthi)라는 문자를 썼다.
지금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불교 관련 사본들 대부분이
간다라 지방에서 출토된 것들이다.
이 사본들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간다리어와 카로슈티문자로
기록된 불교 사본들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법구경>이라든가 <코뿔소경> 등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동안 가히 폭발적이라고 할 만큼
다량의 새로운 필사본들이 등장한 것은,
아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났던 정치적 변동의 결과로 생각된다.
이 새로운 사본들은 20세기 초에 발견된 사본들보다
훨씬 오래된 사본들이 많고 그 분량도 상당하기 때문에
불교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새로운 사본에 대한 연구결과를 통해서
불교의 전파나 불전번역의 역사가 다시 이해될 것으로 본다.
간다리어에 대한 정보의 수집이 상당히 진척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지역의 불교가 원래 어느 정도의 규모였으며,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문헌이 존재했었는지에 대한
간다라불교의 구체적인 모습은 아직 베일에 싸여있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사본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우리는 간다라지방의 불교에 서서히 근접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리차드 솔로몬(R.Solomon) 교수는
1970년 미국 콜롬비아 대학에서 동양학으로 학사를 마치고,
1975년 미국 펜실바니아 대학에서 산스크리트어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산스크리트어와 특히 간다라에서 출토된
카로슈티 비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이다.
솔로몬 교수는 “우리가 지금까지 발견한 간다리어로 된
수많은 불전 사본과 그 단편들은
단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으며,
간다리어 불장은 원래는 삼장을 두루 갖춘
완전한 형태의 경전군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솔로몬 교수는 이 지역이 AD 1~3세기경,
인도 불교인들의 종교와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였고,
지금 진행 중인 사본 연구를 통해 산스크리트어에서 파생된 언어이자,
빠알리어의 자매어격인 간다리어에 대한 이해가 크게 향상될 것이며,
그간 알려져 있지 않던 이 언어가 고대 인도불교에서
사용된 중요한 언어적 표현 수단 중 하나였음에 틀림없다고 역설했다.
솔로몬 교수는 또한 대승불교의 기원도
간다라 지방에서 시작됐다고 확신한다.
<현겁경(賢劫經)>은 기원후 2세기 경 제작된 것으로,
간다리어로 보고된 최초의 대승경전이라고 한다.
이 경전의 발견은 대승불교가 AD 2세기 무렵
간다라 지방에서 흥기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여러 비문들과 기타 자료들의 정보내용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기원후 5세기경이 되면 이 지역의 간다리어, 카로슈티 문자,
간다라 미술양식이 다 자취를 감춘다.
대신 인도 본토에서 흥기한 고전 산스크리트어,
인도 특유의 미술양식이 이 지역으로 올라온다.
헤게모니 경쟁에서 서북 인도가 패하고,
드디어 갠지스 강 중류의 인도가 승리해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인도문명을 형성하게 됐기 때문이다.
※현겁경(賢劫經)---현겁(賢劫)은 이 세상이 개벽해서
다시 개벽할 때까지의 기간으로, 현재의 세상을 이른다.
현겁에는 모두 1,000명의 어진 부처들이 출현하는데,
현겁경은 이 천불의 명칭과 경력을 소개한 경전이다.
3세기 말 월지국 출신의 학승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Amisan | 작성자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