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스겔 37장 1-14절
제목 : 너희가 살아나리라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이나 민족이나 어느 누구나 할 것 없이 뼈만 있는 에스겔 골짜기 같은 곳에서 일어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서는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모든 저주는 물러가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죽음입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를 살리신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살리십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자 같은 사람들마저도 그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새생명으로 살려내는 능력을 행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희망과 용기를 잃은채 아무런 소망도 없이 살아가는 무기력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른뼈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도 희망을 잃어버리고 절망가운데에서 마른 뼈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이러한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십니다. 마른뼈와 같이 절망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너희가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1. 이스라엘의 회복을 보여주는 마른뼈들의 환상입니다.
에스겔의 나이가 서른살 되던 해 4월 5일에 에스겔은 바벨론 그발강가 델아빕에 있었습니다.(겔1:1-2,3:15) 이 때 유다인들은 바벨론 포로민의 한을 머금은 채 쓰라린 고통의 날을 계수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긴 슬픔을 두고 시편 기자는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시137:1)라고 그때의 애환을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에스겔을 데리고 골짜기로 가셨습니다. 그 골짜기에는 마른뼈가 가득했습니다. 에스겔은 시체가 썩어 다 말라버려서 해골로 변한 골짜기에 서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에스겔을 해골 골짜기로 인도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려고 하는 아주 중요하고 큰 일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①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환상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의외의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답하는 자유마저 포기한채 주님만을 믿고 의지했습니다. “주께서 아시나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나라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이었습니다. 죽어 말라버린 뼈들처럼 아무 소용이 없어보이는 소망이 없는 현실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킬 큰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마른뼈들과 같은 그들을 다시 살리시고 그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놀라운 뜻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들로 하나님의 큰 군대를 만들어 큰 승리를 경험하며 세상을 놀라게 할 비전을 갖고 계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죽은 자들을 살리기를 원하는 소원과 질문이 사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에스겔은 마른뼈들이 살아난다는 것을 생각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부흥은 죽은자들과 죽어가는 자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② 다시 살아나려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에스겔 골짜기에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거의 회복이 불가능했던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른 뼈와 같이 소망이 없었으나 말씀을 통해서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능력입니다. 마른뼈를 살아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의 말들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살립니다. 말씀을 들을 때 용기가 생깁니다. 결단력이 생깁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인생이 살아납니다. 가정이 살아납니다. 교회와 나라가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 말씀은 우리를 범죄치 않게 합니다. 말씀은 위로와 희락과 소망을 줍니다. 환난 많은 세상에서 슬피 울 때 말씀이 위로해줍니다. 즐거움을 줍니다. 소망을 줍니다.(시119:50)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면 죽은 것이 살아납니다. 질서가 생깁니다. 하나님 알기 전에는 사는 것이 공허와 어두움 뿐이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죽음 이후에도 기대가 되는 소망의 삶을 살게 됩니다.
③ 생기가 들어가야 합니다.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가게 하라 하셨다 하라” 생기가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오면 죽은 자가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처럼 절망에 사로잡힌 자, 침체에 눌린 자, 사망권세에 매여 무기력한 자들을 살리려면 성령의 생기가 불어오도록 기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기인 성령께서 들어가시기만 하면 누구든지 살아나게 됩니다.(요6:63) 말씀과 성령이 조화될 때 생명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말씀에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할 때 놀라운 능력이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위해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성령은 능력있게 합니다. 성령은 마른 뼈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을 강한 군사로 만듭니다. 살아있는 성도가 되려면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 결코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고 말할 때에도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심으로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기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얼마나 성공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서 또 나를 통해서 얼마나 크게 역사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생기인 성령으로 충만한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예마본 가족 여러분 큰 소리로 외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기이신 성령님이시여, 마른 뼈같은 나에게 불어오소서 생명력으로 충만케 하시고 주를 위해 일어난 하나님의 군대가 되게 하소서!” 아멘! 할렐루야!
2. 지금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지금 우리나라 상황을 표현할 적당한 수사는 없습니다. 백척간두(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누란지세(계란을 포개 놓은 듯 불안한), 내우외환(나라 안 근심, 나라 밖 근심)이란 표현이 부족할 뿐입니다. 이러다가 이 나라가 고립무원(도와줄 사람이 없는 상황)이 되어서 왕따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우리의 앞서간 선조들은 국운이 기울 때마다 항상 성경에서 그 답을 얻기에 주저하지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이 대부활의 메시지를 받기 원합니다. 이것은 저 개인의 소원과 기다림에 그치지 않고 한국교회 전체의 소원과 기다림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모습이 마른 뼈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모습이 죽은 자의 모습이거나 죽어가는 자의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 지금 새로운 부흥이 필요합니다. 새로 살아나는 일이 필요합니다. 기도가 살아나야 하고 회개가 살아나야 하고 눈물이 살아나야 하고 용서가 살아나야 하고 사랑이 살아나야 합니다. 온유와 겸손이 살아나야 하고 삶이 살아나야 하고 거룩한 삶이 살아나야 합니다. 주님을 사모하고 천국을 사모하는 간절함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대언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하고 생기를 향하여 대언할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저와 여러분 자신들이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듣고 하나님의 성령을 영혼에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죽은자들도 들을 수가 있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 했을 때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나왔기 때문입니다.(요11:43-44)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과 같이 된 배신자 제자들을 향해서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요20:22) 그래서 바울사도는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엡5:14)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죽은자들을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사9:2)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사데교회를 향해서 주님께서는 들으라고 분부하셨습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3:1-6) 우리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애를 써야 하고 생기를 받으려고 사모하며 애를 써야 합니다.
사랑하는 예마본 가족 여러분
지금 우리들의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생명의 기가 막혀 있어서 살았으나 죽어있는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신앙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교육적으로 생기가 막혀있다 하겠습니다. 모든 곳에 생기가 들어가서 해결되게 할 때인데 내가 생기를 불어 넣는 일에 쓰임받게 하소서 라고 기도할 때입니다. 특별히 나의 심령에 가정에 직장에 생업터에 나의 중보기도 대상자에게 그리고 우리 예마본 교회에 들어오소서. 오늘 우리 예마본 교회에 생기인 성령님이 오셔서 역사하시길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 가정에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셔야 살아납니다. 우리의 심령에 성령님이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 절망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이 나라가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시면 경제 위기 극복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만이 살리는 영입니다. 성령님의 생기가 마른 뼈에 임했을 때 마른 뼈들이 힘을 얻어 살아나서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우리 예마본 가족 모두에게 성령님 충만하심으로 인생의 마른 뼈가 큰 군대로 변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