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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二代)
박 화 성
밤새도록 시끌덤벙한 꿈에 시달리다가 눈을 뜨니 방 안이 제법 환하다. 버릇대로 머리 맡의 손목시계를 집었다. 일곱시 십분.
유 교수는 미닫이를 드르륵 밀쳤다.
밤새 내린 눈이 새하얗게 뜰을 덮고 전나무랑 향나무에도 소복히 눈이 얹혀 있다.
“원 날씨도 무슨 변덕이야? 어젠 종일 비가 오더니 밤에는 눈이로군.”
하늘을 쳐다보니 반짝 개이지는 않았어도 더 눈을 머금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날씨도 이 모양인데 어제부터 위장 간첩 이수근이가 잡혔다고들 떠들어대니 더욱 술렁거릴 밖에…….”
못난 녀석이지 위장 탈출을 했더라도 여기서 그런 기막힌 대우를 받으면서 반 년쯤 산다면 뼈 속마다에 뉘우침이 번질 텐데 그만큼 오래 자유롭게 살아본 녀석이 목석이 아닌 담에야, 기계가 아닌 담에야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런 것들이 발동을 하고 기후가 이렇게 변덕올 부리니까 요샌 꿈자리마저 어수신한가 보다고 유 교수는 쓴 입맛을 쩍쩍 다시다가 신탄진 한 개를 뽑아 불을 댔다. 한 대를 유유히 태우고 나니까 창에 햇볕이 들었다.
‘밤새 눈이더니 오늘은 또 핸가?’
어쨌든 날이 궂은 것보다는 좋은 일이다. 비록 어제 비를 맞으며 출퇴근을 했더라도 오늘이나 좀 개운하게 쉬어보리라고 방 한쪽에 얌전하게 개켜져 있는 조간 신문을 당겨 한 장씩 펼쳐보는데 전화가 따르르 운다.
“예, 내가 유 교숩니다.”
유 선생님올 찾기에 대답해주니까 저쪽이 잠깐 머뭇하더니,
“나 김 상굽니다.”
하고 자기의 이름을 밝혔다.
“김상규 씨요?”
“네, 김상굽니다.”
“김상규, 상규라? 부산에 사는?”
“네네.”
“아니 상규라면서 갑자기 존대는 웬일인가? 사람 참!”
“하도 오랜 만이라서…….”
“오랜만이고 뭐고. 그래 언제 왔나?”
“어젯밤에 왔습니다.”
“허허 여전히…….”
“꼭 뵈어야 할 덴데 여엉 댁의 방향을 몰라서 실수할까 봐…….”
“그렇다면 내가 나가기로 할까?”
“그랬으면 꼭 좋겠습니다.”
“싱겁긴. 사람이 아주 변했군. 그래 몇 시에나?”
“열두시로 합시다. 여긴 종로 3가 청궁 다방인데요.”
“알았어. 그럼 그때 만나세.”
전화를 끝낸 유 교수는 도깨비에게나 흘린 듯이 한동안 명하니 앉아있었다. 김상규는 중학 때 가장 절친했던 동급생이다. 그런데 지금 십 칠 년 만에야 육성을 듣건만, 더구나 금년이 환갑쯤 된 노인인데도 소리만은 쌩쌩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경어를 쓰며 나올까. 그 동안 너무나 무신해서 면목이 없으니까 얼결에 나타난 주접일까. 하기야 그렇기도 하겠지. 그때는 웬만한 집 한 채쯤은 살 만큼한 거액을 집어삼키코 말았으니까…….
열두시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넉넉하니 천천히 서둘러 나가기로 하겠다는 맘을 정하고 조반 후에 다시 신문을 펴들었으나, 오늘따라 자잘한 신문의 활자보다는 김상규의 그때 그 모습이 화안하게 떠올라 활자를 어지렵혔다.
1952년 11월 하순이었다. 6·25동란에 뒤집혔던 정신적 타격이나 물질적 손해가 아직도 깨끗이 정리되지 못했을 무렵인데 그 해 들어 첫 추위가 맹렬한 아침 일곱 시 반이나 되었을까, 유 교수에게 손님이 온 것이다.
식모가 나가서 누구냐고 물으니까 주인의 동창생이라고 하였다. 유 교수가 대문께로 나가 문 틈으로 내다보니까 김상규여서 반가이 맞아들였다.
방 안에서 찬찬히 살펴보니 상규의 얼굴이나 몰골이 말이 아니게 초라하였다. 학생 시절에는 집안이 부유하여 친구들에게 인심을 뿌렸고, 대학 졸업 후에는 무슨 회사엔가 봉직하고 있더니 아버지의 광산을 맡아 손수 덕대들을 데리고 광물 채굴 작업을 한다고 한동안 소식조차 끊겼던 사람이었다.
“이 사람아, 그런다고 그렇게나 감감하게 묻혀 있었던가? 그래 동란 땐 어쨌어? 무슨 큰 타격은 없었나?”
“응, 나부다도 서울에 살던 자넨 어쨌던가? 더구나 교수들의 수난이 많던데……늘 맘에 걸렸지만 별수가 있었어야 말이지.”
상규는 말을 하면서도 아래턱을 달달 까불렀다. 한기로 전신이 떨리는 모양이라고, 유 교수는 식모에게 일러 모닝커피를 내오게 하고 조반을 겸상해서 차리라 하였다.
“자네 괜찮겠나? 대학에 말이네.”
“응, 다행히 오늘은 오후에 강의가 있네. 자 뜨거운 차나 우선 마시게.”
학생 때에도 환경의 자유에 비하여 침울하게 보이던 상규가 이 아침에는 그야말로 착 가라앉아서 검은 얼굴에 우수가 덮이고 음성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그래 동란 때 무사했나 말야. 춘부장께서도 강녕하시고?”
“응 크럭 저럭. 자네야말로 어떻게 지났느냐 말이네.”
“나도 그럭저럭이지. 피난지 부산에서의 고생이야 당연한 것이니까……그건 그렇게 자넨 지금 어디 있나?”
유 교수는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그의 본집은 충청도 대전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 가 있었기에 저런 꼴이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에서였다.
“나? 나 산에 있다가 내려왔네.”
“뭐야? 산이라니!”
유 교수의 머리에 퍼뜩퍼뜩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소위 빨치산이라는 이름들의 날뛰는 모양들…… 그래서 저 꼬락서니가 되었단 말인가.
“허허 놀라지 말게. 산은 산이라도 성질이 다르니까.”
상규의 검은 얼굴에 비로소 울상 같은 웃음기가 번졌다. 그는 나머지의 차를 후루룩 마시고 잔을 거칠게 놓았다. 깨어지는가 싶게 딱 소리가 났다.
“나 광산에 미친 줄 알지 않나? 동란 후에도 광산일 그대로 계속하다가…….”
유 교수는 안도의 숨을 가만히 하르르 내뿜었다. 상규는 말 끝을 맺지 못하고 머리칼에 손을 넣어 긁적였다. 손가락의 매듭이 불거져 있었다.
“그래서? 얘기 계속하게.”
“강도를 만났네. 무슨 세상인지 현금은 현금대로 긁어가면서도 목숨마저 죽이려들더군.”
“그래 어쨌나?”
“여길 보게!”
상규는 양복 저고리를 훌떡 벗고 어깨를 보았다. 꽤 깊이 들어갔던 칼자국이 아직도 완쾌하지 못한 듯 불그스름하게 줄쳐 있었다.
“저런 원 큰일날 뻔했군. 무서운 세상이다. 그게 언제적 일인가?”
“시월 초순이었el. 대전에도 못 가고 그냥 시골 병원에서 그럭 저럭.”
“아니 왜 집엘 안 갔던가, 저런 큰 상처를 가지고…….”
유 교수는 상규의 말 중간에 라들면서 진정 걱정스럽게 말했다.
“집안도 동란 때 망하다시피 된 데다가 아버님도 병중이신데 놀라실까 봐 알리지도 않고 다시 내 험으로 어떻게 해볼려니까 어디 맘대로 되나?”
그러는데 조반상이 들어왔다. 상규는 밥과 국을 한 그릇씩 다 먹고 숭늉까지 한 그릇을 다 벌떡벌떡 들이켰다.
‘아마 오래 굶주렸나 보다. 쯧쯧 그렇게나 기개가 좋던 녀석이었는데…….’
유 교수는 동정의 빛이 가득한 눈으로 상규를 다시 한 번 훑어보었다. 밥상이 나가고 사과 접시가 들어와서 상규는 한쪽을 집었다. 자세히 보니까 손 끝이 부르르 떨렸다.
“자네 아직도 한기가 덜 가신 모양이지?”
“괜찮더니만 더운 음식을 먹고 나니까 다시 떨리는구만.”
유 교수는 상규가 윗도리를 벗을 때 내의가 없던 것을 상기하고 대뜸 그의 양복바지 밑으로 손을 넣어보니 맨살이었다.
“이 사람아. 이 추위에 내의가 없다니. 원 그러니 안 떨리겠나.”
유 교수는 가슴이 찌르르 울리면서 목이 콱 메어왔다. 강도를 맞고 상처를 치료하자니 뭐가 남았겠느냐. 양복은 과히 폐물이 안 되어 있지만…….
유 교수는 안으로 들어가 자기의 내의 한 벌과 양말까지 가지고 나왔다.
“이거 입던 것들이네마는 어서 주워 입게. 그리고 뭐 내가 자네 도와줄 만한 일은 없나? 가난한 선비의 입장은 이해하고 말이네.”
상규는 감격한 듯이 입술을 꽉 다물고 한편으로 물러가 내의를 입고 양말은 헌 것 위에 겹쳐 신었다.
“발이 덜 시럽게시리 또 하나 갖다줄까?”
“아니아니, 이거면 대만족이야. 고맙네. 자네의 두터운 우의에 감복했어. 어디 인심이 전과 같던가?”
유 교수는 상규가 다른 친구도 몇 명쯤 찾았을까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워낙 청렴한 사람이긴 하지만 이런 막다른 판국에야 고고한 지조인들 버리지 않고 어쩌랴 싶기도 했다.
“나 생각다 못 해 자네에게 사정하기로 찾아왔네. 교수 생활엔 무리일 줄 알지만 자택도 있고 신임도 있고 하니까 어떻게 나를 좀 구해주게. 광맥은 절대로 희망이 있거든. 이 곤경만 건져주면 금액은 복리로 쳐서 갚겠네.”
본래 허황한 성격이 아니라 그런지 도와달라면서도 장황한 설명이나 구구한 간청도 없이 그 요점만 말하고 더 군말은 하지 않았다.
유 교수는 생각했다. 자택이 있다는 말은 그것을 저당해달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자택이라야 이십 칸도 못 되는 한옥에 중문이 작아서 피아노도 들이지 못하는 집이니 잡힌들 별 도움이 될 수 없고 문제는 피아노에 있다. 처가에서는 부산 피난살이에서도 사업에 성공을 한 셈이어서 딸 형제에게 피아노를 한 대씩 선물하였다. 맏딸에게는 그랜드 피아노를 작은딸에게는 미제라든가 독일제라든가의 밤색의 큰 피아노를 사주었는데 처형은 집이 저택처럼 크니까 그랜드 피아노를 척 들여놓았건만 유 교수네는 중문이 좁고 얕아서 도저히 들일 수가 없었다.
물건은 중고품이라지만 외관은 당당해서 아내나 자녀들의 희망이 부풀대로 부풀었어도 중문을 부셔내기 전에는 어찌 할 도리가 와어서 우선 친구의 집에 보관하고 있는 중이었다.
장모는 중문을 부수고라도 모처럼의 선물이니 대청에(대청은 네 칸이다) 모셔놓으라고 권하지만 당장에 그럴 수도 없어서 주저하고 있는 중이라고 이래저래 얘기 끝에 밝혔더니 상규는,
“됐네, 됐어. 정말 철면피 소리 같네만 그것을 우선 처분해서 나를 도와주게. 자넨 차분히 중문을 고친 다음에 더 좋은 신품으로 사들이면 되지 않겠나? 나 자신이 있네. 이삼 개월이면 반드시 반환할 테니 웅? 자네에게 피아노는 여분의 재산이고 내게는 그 가치가 절대적이 아닌가? 죽느냐 사는냐 생명 이 좌우되는 이 순간이네. 제발 용단을 내주게.”
하고 이때까지와는 딴판으로 열렬하게 나왔다. 사람이 변했나 싶게 말도 유창하고 눈빛도 혁혁하고 태도도 끈질겼다.
남의 집에 보관해두느니 우선 처분해서 옛친구의 곤경을 구해주는 것이 당연한 의리일 것이라고 생각한 유 교수는 피아노를 팔 결심으로 전문가인 친구에게 부탁했더니 육십오만 원인지 육만 오천 원인지(화폐개혁 이전인치 이후인지 모亘니까) 좌우간 아주 거액이라고 피차가 인정되는 금액을 받아 고스란히 그의 손에 쥐어주었는데 십 이 년 동안 종무소식이다가 오 년 전엔가 부산에서 편지가 한 번 왔다. 내용인즉 그땐 곧 성공할 줄 알았지만 일이 여의치 못하여 본의 아닌 실수를 하게 되었으나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으니 조만간 그 문제는 죽기 전에 해결하겠노라는 사연이었다.
그 김상규가 십칠 년 만에 직접 전화로 만나겠다는 것이어서 피아노 문제로 앙심을 품고 있는 아내에게도 일체 알리지 않고 조용히 먼저 만나리라 했다.
유 교수는 열두시 정각에 청궁 다방에 들어섰다. 지하실이라 아무리 큰 홀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은 북적대고 담배연기는 자욱하여 공기만은 신선하지 못했다.
유 교수는 김상규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렸으나 얼른 눈에 띄지 않아 한쪽에 비어 있는 자리로 가서 차분하게 앉아 다시 좌우를 둘러보았다. 저편에서 김상규의 모습 같긴 하지만 삼십여 세나밖에 보이지 않는 젊은이가 주춤주춤 가까이 오더니 유 교수에게 물었다.
“유 선생님이십니까?”
“그렇소이다.”
“저 김형진이라고 합니다. 김상규 씨의 장남입니다.”
젊은이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유 교수는 엉거주춤 상반신을 일으키며 머리만 숙여 답례했다.
“아침엔 전화로 실례가 많았습니다.”
상규가 아니라 그의 아들이기 때문에 대화에도 경어를 썼던 것이라고 스스로 풀이하면서 유 교수는 부드럽게 말했다.
“거기 앉으시오. 아버지의 모습이 많군.”
“말씀 낮추십시오. 아버지께서 날마다 선생님을 들먹이지 않으실 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뵙지만 꼭 오래 전부터 뵈옵던 부형님을 뵙는 것 같습니다.”
“전화로도 바로 말할 것이지 왜 아버지 이름을 빙자했소?”
“말씀 낮추시라니까요. 제가 찾아가야만 될 텐데 자신은 없고, 선생님을 나오시게 하자니 제 이름으로는 당돌하고 방자해서 그냥 부친의 함자로 통한 겁니다. 깊이 통촉하셔서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러면 어떤가. 그럼 말 내리네. 그래 춘부장께선 기력 좋으신가?”
“그렇지가 못해 걱정입니다. 삼 년 전부터 자유로 몸을 잘 쓰시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제가 올라왔지 않습니까? 이렇게 나오시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형진이라는 젊은이는 똑똑하고도 침착해 보여서 상규가 아들을 잘 두었다는 생각을 하며 담배를 꺼내니까, 그는 얼른 차탁에 있는 성냥을 집어 불을 댔다. 유 교수는 천천히 연기를 내면서 넌지시 담배갑을 형진에게 내밀었더니 그는 깜짝 놀라면서 사양했다.
주문한 커피가 와서 차를 마실 때 유 교수는 십칠 년 전 겨울의 아침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저런 장남이 있으니까…….’
김형진은 차를 다 마시고 정색하여서 유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아버님의 대신으로 선생님께 감사를 올려야 하겠습니다. 여기 아버님의 친서가 있으니까 먼저 읽어보십시오.”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내어 두 손으로 유 교수에게 정중하게 바쳤다.
“정말 감사의 말씀 무어라고 드릴 수 없습니다.”
유 교수의 눈에 먼저 띈 것은 빳빳한 수표 두 장이었다. 그는 돋보기를 내어 찬찬히 살폈다. 수표는 자기앞 수표요 하나가 삼십만 원씩 두 장이었다.
십 칠 년 동안 하나의 도적놈의 입장에서 서신조차 끊어버린 것 오늘에야 용서를 벌겠네. 자네의 태산 같은 은혜를 장담한 보람도 없이 이렇게 본액으로밖에 청산 못해서 꺼림하네마는 내가 죽더라도 자식놈은 있으니까 길이 명심은 할 것일세. 이거나마 내가 몇 년을 두고두고 목잡아 저축한 것이니 그리 알며 이 정도면 외국제 피아노를 구할 수 있으리라고 사료되네. 염치없는 친구라고 욕도 했을 걸세마는 우선 이쯤이라도 죽기 전에 청산한 것을 나와 함께 기뻐해주게. 미구에 한 번 상봉할 기회를 만들어주기 바라며 하해 같은 말을 이만 줄이네.
편지를 든 유 교수의 손이 가늘게 떨리면서 돋보기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 속에는 육십만 원의 영수증도 동봉해 있었다.
“오래오래 신세 많이 졌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버님께서 인제 눈 감으시고 별세하게 되셨다면서 흐믓해 하셨습니다. 모든 미진한 것은 제가 끝내보답하겠습니다. 여기 영스증에도 도장 찍어주시면 오늘 곧 등기로 보내겠습니다. 아버님 의 지시이니까요.”
유 교수는 영수증에 도장을 찍고 분명히 육십만 원의 수표가 든 상규의 친서를 안주머니에 넣으며 꼭 꿈만 같아서 현실감은 희미하게 느껴졌다. 꿈자리가 요새로 바싹 어수선했는데 그래도 이런 뜻하지 않은 경사인지 횡재(그는 횡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가 생기는 것을 보면 금년의 운수가 과히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이미 과거로 돌린 사실이었는데 춘부장께서 너무 심려를 하신 모양이군. 나도 곧 답장 올리겠네. 자 우리 점심이나 간단히 하세.”
유 교수는 형진을 백궁으로 안내하였다. 부득부득 자기가 내겠다는 것을 억지로 달래서 유 교수가 비용을 담당하고 밖으로 나오니까 형진은 재빨리 택시를 잡아 유 교수를 태우고 자기도 얼른 운전대 옆에 들어 앉았다.
“ 진 군은 내리지그래?”
“아닙니다. 제가 모시고 가서 댁도 알아야지 않겠습니까?”
과연 옳은 말이라고 유 교수는 맘속으로 감탄하며 돈암동 자택으로 향했다.
그 동안 유 교수도 중문 얕은 한옥을 팔고 자그마한 양옥으로 주택을 갈았으나 아직 피아노는 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형진은 유 교수의 대문 밖에서 그냥 차를 돌렸다. 우선 아버지께 영수증을 보내야 하겠다고 하며 떠나기 전에 한 번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유 교수는 그제야 아내에게 편지를 보이고 오늘의 전말을 보고한 후에,
“그거 보. 내가 얼마나 현명한가. 피아노로 사람 하나 살리고 피아노는 그대로 생생하게 돌아온 셈 아니오?”
하고 흰소리를 했다.
말 끝마다는 아니지만 가끔씩 피아노에 대한 불평을 토로하고 남편을 원망하던 아내라,
“참 장하기도 하시우. 그 이자만 친대도 피아노 몇 대 값은 넉넉할 텐데 이십 년이 다 돼서야 본전만 받구두 큰소리시구려.”
하고 부드러운 면박을 하였다.
“아 바른 대로 말해서 당신이나 나나 체념했던 것 아니오? 지금이라도 이만한 금액이 생긴 걸 감사해야지. 내일이라도 십 몇만 원짜리 국산 피아노 한 대 사서 한풀이나 하고 나머진 이용하면 되지 않소?”
“하긴 용처야 조움 많아요? 없어서 한이었지. 어쨌거나 다행이에요.”
부부는 육십만 원의 자기앞 수표를 앞에 놓고 화기애애한 가운데서 은밀한 의논을 주고받았다.
저녁에는 축하의 뜻에서 불고기를 듬뿍 만들어 가족이 모두 포식을 한 후에 석간을 들고 앉았노라니까 부자가 울리고 손님이 들어왔다. 김형진이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귤을 한 상자 들고 온 것이다.
“어쩐 일인가? 내일 아침에라도 곧 떠날 톈가?”
주객이 자리를 정한 후에 유 교수가 나직하게 물었다.
“아닙니다. 이삼 일 후에 떠나겠습니다. 기계도 사야 하고 기술자도 물색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제 아들놈이 이번에 여기 K고둥학교에 입학되었거든요. 그래서 하숙도 구해야 하고요.”
“저런…… 자제가 수재로군. 그 어려운 K고둥학교 시험을 돌파했으니…….”
“뭘요.”
김형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어했다. 그 모습이 천연 그 아버지 김상규 같았다.
“아직은 젊은데 그런 장남이 있었던가?”
“제가 꼭 사십인데요. 불혹이 아닙니까. 그런데 큰일났습니다.”
차와 케이크와 실과가 들어왔다. 아내의 환대의 표시였다.
유 교수는 형진에게 차와 과실을 권하며 물었다.
“왜 무슨 일이 있나? 아까 기계도 사고 기술자도 물색하고 한다는 것 보니 무슨 공장을 하는 모양인데…….”
“아버지가 소규모의 피복 공장을 하셨어요. 그 광산에서 손을 떼시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를 도왔습니다마는 워낙 경쟁이 심해서요. 겨우 연명할 정도밖에 안 되니까 제가 이번엔 혁명을 좀 하자는 겁니다. 아버진 몸도 부자유하시니까 제게 맡기시면 되는데 어디 그러십니까? 남들보다 앞서려면 새로운 기계도 마련해야 하고 또 거긴 기술자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실력 있는 기술자를 데려가야 하거든요. 그런데 아버진 그대로 현상유지만 하시겠다니 그러다간 앉아서 실패를 당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겠군. 그렇구말구. 그러면 자네가 그대로 추진하면 되지 않나?”
“빈손으로 어떻게 추진합니까? 맘만으로는 안 되거든요. 그것을 버언히 눈앞에 보면서 힘이 없으니까 정말 기막혀 죽을 지경입니다.”
김형진은 곡개를 푹 떨어뜨리고 한참이나 있더니 머리를 번쩍 들고 유 교수를 똑바로 보았다. 그 눈에 광채가 돈다고 생각했다.
“선생님! 이런 말씀 드리면 철면피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이 난국을 타개해주실 분은 부형 같으신 선생님밖에 안 계시다고 단언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선 오늘 그 금액도 이미 과거로 돌려버리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선생님껜 그게 예산 외의 수입이시고 저는 성패의 기로에 서 있지 않습니까? 또 한 번 속는다 하시고 제게로 돌려주시면 전 삼 개월 내에 꼭 반환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진 무이자로 계셨지만 전 오부의 이자로 꼭꼭 신용을 지키겠습니다. 생각하다 못 해서 아버지 같으신 선생님께 하소해 올리는 겁니다.”
김형진은 단정하게 꿇어앉아서 정중하게 큰절을 하며 간청 했다. 그리고 앉음새를 다시 고치며,
“선생님께선 철학 전공이시니까 더구나 저 같은 이런 심경을 잘 이해 해주실 줄 믿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유 교수는 역시 수표를 돌리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하고 아직도 안주머니에 있는 김상규의 편지봉투에서 수표 두 장을 꺼내어 김형진에게 주었다.
“자 여기 있네. 모쪼록 잘 이용해서 성공하기 바라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오늘이 이월 십사일인데 삼월 십사일에는 반드시 이자가 도착할 것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김형진은 수표를 받들어 보이며 그런 말을 했다. 말투에는 진실과 힘이 있다고도 느껴졌다.
김형진이 돌아간 후에 아내가 서재로 나왔다.
“나 다 들었어요. 당신은 정말 부처님이 되다가 말았나 봐요. 원 그런다구 모처럼 들어온 돈을 몽땅 다 내주세요 그래?”
“그럼 어쩌겠소? 오늘의 이 일이 없었던 걸루만 돌리면 되치 않겠소? 십칠 년 만의 청산도 있는데 삼 개월이라고 시퍼런 장담을 했으니 어디 기다려봅시다그려.”
“흥 자알 기다려보시구려. 또 한 십 년만 기다림 되겠군요.”
“여보, 이왕 저질러놓은 일 너무 그러지 말아요.·상규의 광산과 형진의 공장은 성격이 다르지 않소? 덮어놓고 들여박는 광산의 자금과 숫자 상으로 빠안히 결과가 나오는 공장 증설의 자금은 천양의 차이가 있단 말이오.”
아내는 수긍하는 듯도 하고 부정하는 듯도 한 기묘한 표정을 하더니,
“모르겠소. 당신은 이십 년쯤 내다보는 선견지명이 있는가 보죠? 그저 오래오래만 살으시구려.”
하고 도어를 왈칵 열고 나가버렸다.
유 교수는 뒷짐을 지고 서서히 방 안을 왔다갔다 하다가 형진이 가져온 귤상자가 발에 걸려서 하마터면 엎으러질 뻔하였다.
(l969년)
2016년 12월 14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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