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창궐한 지 1년이 넘었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도 출현했다. 보편복지와 선별복지를 두고 말들이 많다. 4월이면 재·보궐선거가 시작된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적임자를 두고 여야(與野)할 것 없이 정치적 잇슈를 무분별하게 양산하고 있다. 검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 등 개혁논의가 한창이다. 무너진 공공성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가짜뉴스를 양산하고, 재판을 지연하고, 혐의사실을 흘린다. 누군가의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철학자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정의한다. 공자는 정치[政]를 바름[正]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은 공정하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가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있다. 명심해야 한다.
부끄러운 정치 ‘경제(經濟)’라는 말은 ‘경국제민(經國濟民)’이나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준말이다. “국가를 경영해서 국민을 구제한다.”와 “세상을 경영해서 국민을 구제한다.”로 번역할 수 있다. ‘구제(救濟)’의 목적어는 재해를 입거나 도탄에 빠진 사람들이다. 경국과 경세는 방법이지만 제민은 목적이다. 목적을 망각하고 방법에만 빠져서는 곤란하다.
공감과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을 공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생각은 중요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내 생각만이 국민의 뜻이고 명령이다. 나만이 서울시를, 부산시를 살릴 수 있다. 상대방은 물리쳐야 할 적일 뿐이다.
정치가는 예의를 갖추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타인의 잘못을 미워할 줄 알아야 한다. 맹자가 말한 수오지심(羞惡之心)이 그것이다. 맹자는 수오지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수오지심을 버려두고 정의를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
또 교육의 현실은 어떠한가.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은 국가적 문제이다. 수시와 정시 결과 서울-경기에 소재한 대학과 지방 대학의 희비는 극명하게 나뉘었다. 올해 초까지 진행된 입시에서는 코로나 방역을 어떻게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급선무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이 지난 12월 국회 본회를 통과했다고 한다. 대학과 지자체가 협력의 기반을 둔 지역혁신사업, 일명 ‘지역혁신 플랫폼’사업도 확정되었다고 한다. 지자체는 지방소멸 대비 인구정책을 수립하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헛수고가 아니기를 바란다.
방치된 교육 박근혜 정부 시절 대입 정원이 6만여 명 감축되었는데, 전체 감축 인원의 76%가 지방대학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2019년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의 재정지원사업(BK21플러스)도 서울의 주요 사립대가 지방의 거점 국립대보다 더 많은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교육부는 국립대의 본분과 사립대의 역할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올해 이른바 대학 3주기 평가로 불리는 ‘대학기본역량진단’으로 대학들은 정신이 없다.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평가받지 못할 경우, 대학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된다. 대학의 인원 감소와 재정 제한은 대학의 존립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고등교육은 공공성을 지향해야 한다. 교육의 보편복지가 필요한 이유다. 지방과 중앙은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고 한다. 공염불(空念佛)이다. 교육부 폐지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지역 대학 정원 미달을 ‘충격’이라고 하고, 충격을 넘어 ‘공포’라고 하기도 한다. 충격과 공포라는 표현은 온당한 표현이 아니다. 예견된 일이기 때문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사자성어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국가와 대학은 무엇을 어떻게 예비했는가.
인간의 본질과 사회의 속성, 그리고 세계의 진실을 근본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한다. 대학의 교육은 잘나가는 기업에 취업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국가의 정치는 특정한 집단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현실에서, 인문학에 대한 지원 없이, 그 필요성만을 떠든 것이 이미 영겁(永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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