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세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김모(47) 씨. 올해 초부터 어머니의 이상한 행동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을 끓이려고 주전자나 냄비를 올려놓고 깜박 하기를 여러 번, 급기야 최근에는 외출 수 현관의 번호키 조작을 몰라 집 앞에 우두커니 앉아 계시기도 했다. 잠을 잘 때도 큰소리로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통에 남편과 함께 방문을 열어보는 횟수도 늘었다.
흔히 ‘치매’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기억력 저하입니다. 치매환자는 뇌에 특정한 단백질(아밀로이드)이 쌓이거나 혈액 공급에 문제가 생겨 뇌가 손상되는데요, 이 영향으로 기억력 등 인지기능장애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때 감정·언어·운동장애도 함께 나타나죠.
그렇다고 단순히 기억력으로 치매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치매환자의 인지기능장애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는 아침에 했던 일을 기억 못하는 등 단기기억력입니다. 이유는 뇌에 새로운 기억을 입력시키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반대로 몇 년 전이나 수십 년 전 일은 잘 기억합니다.
따라서 기억력이 감소한 것만으로 치매환자라고 진단하지 않습니다. 평소 혼자서도 잘하던 전화 걸기, 대중교통 이용하기, 씻기 등 일상생활 수행능력이 함께 떨어져야 치매로 진단할 수 있습니다.
단기기억력 저하·심한 잠꼬대, 치매 전조증상 가능성
우리가 무심코 넘기기 쉬운 잠꼬대도 치매의 전조증상일 수 있습니다.잠꼬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면 중 행동인데요, 잠을 자면서 웅얼웅얼 혼잣말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합니다. 또 잠꼬대와 함께 몸을 뒤척이다가 팔과 다리를 허우적대며 몸을 심하게 움직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함께 자던 사람은 깜짝 놀라기도 하고, 대화를 시도하며 재밌어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자주 나타나는 심한 잠꼬대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특히 노인에게는 파킨슨병이나 치매 같은 퇴행성 뇌질환의 위험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노인성 잠꼬대는 치매나 파킨슨병 같은 퇴행성 뇌질환 때문에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면서 거친말, 욕설, 소리지름 등 잠꼬대를 심하게 한다거나, 심한 잠꼬대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반복되고, 손을 허우적대고 발길질을 하는 등 심한 행동을 한다면 노인성 잠꼬대(렘수면 행동장애) 여부를 확인해봐야 합니다.
우리가 꿈을 꿀 때 뇌는 활성화되지만, 팔다리 근육은 일시적으로 마비돼 우리 몸을 보호합니다. 하지만 렘수면 행동장애가 있으면 꿈을 꿀 때 근육이 마비되지 않아 팔다리를 움직이게 됩니다. 이는 근육을 마비시키는 뇌 부위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뜻하고, 퇴행성 뇌질환의 전조 증상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치매, 조기치료하면 중증 진행 예방
치매는 뇌세포가 파괴돼 생기는데요, 원인과 증상 등에 따라 알츠하이머·혈관성·전두측두엽 퇴행 치매 등으로 나뉩니다. 보통 치매하면 알츠하이머를 말하는데 전체의 절반 정도 됩니다.
치매는 대개 65세 이후에 나타나는데 늙어서 생기는 치매는 대부분 알츠하이머(퇴행성치매)형이고 젊은 치매는 알츠하이머와 전측두엽 퇴행이 절반 정도입니다. 둘 다 비정상적으로 생긴 단백질(아밀로이드)이 쌓여 뇌세포를 파괴하는데, 알츠하이머는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의 뒷부분 세포(해마)가, 전측두엽 퇴행 치매는 뇌의 앞과 옆 세포가 먼저 파괴됩니다.
치매도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중증 진행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습니다. 경증이나 치매 전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인지재활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일부 치매는 원인을 치료하면 이전 상태로 회복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조기 치매환자에게 효과적인 인지재활프로그램도 많이 개발됐습니다.
치매는 병이 악화할수록 부담해야 할 의료비와 부대비용 역시 늘어납니다. 경증일 때와 비교해 중증의 경우 9배나 더 많이 비용이 든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조기치료가 그만큼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쉽게도 치매 완치법은 아직 없습니다. 다만 진행 속도를 늦추는 약을 처방 받아 관리합니다.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양을 증가시켜 기억력 감퇴를 늦추게 되는데, 약을 복용하면 망상·수면장애와 각종 문제행동을 줄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