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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역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 이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즉 농사를 짓기 위하여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24 절기는 태양의 운동에 근거한 것으로 춘분점(春分點,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점)으로부터 태양이 움직이는 길인 황도를 따라 동쪽으로 15˚ 간격으로 나누어 24점을 정하였을 때, 태양이 각 점을 지나는 시기를 말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천구상에서 태양의 위치가 황도가 0˚ 일 때 춘분, 15˚ 일 때 청명, ....., 300˚ 일 때 대한으로 한다. (24 × 15 = 360) 이들 24절기가 계절의 특성을 말해주지만 우리 나라의 기후가 정확하게 들어 맞는 것은 아니다. 24절기의 이름은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상상태에 맞춰 붙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날과 같이 생태계가 엄청나게 달라진 상황에서는 더욱이 들어맞기 어렵다. 절기는 이처럼 음력을 쓰는 농경사회에서 필요에 따라 양력과 관계없이 만들었지만, 태양의 운동을 바탕으로 한 탓에 결과적으로 양력의 날짜와 일치하게 된다. 실제로 달력을 놓고보면 24절기는 양력으로 매월 4∼8일사이와 19∼23일사이에 온다. 절기와 절기 사이는 대부분 15일이며, 경우에 따라 14일이나 16일이 되기도 한다. 이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이어서 태양을 15도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절기를 쟀을까? '농경사회에서는 태양, 별의 움직임을 재는 천문학이 아주 중요해 조선시대에는 혼천의, 간의 등으로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이를 증보문헌비고나 칠정산내ㆍ외편에 기록했다'고 한다. |
봄이 시작되는 입춘, 일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는 하지, 낮이 가장 짧은 동지 등 1년은 24개의 절기로 이뤄져 계절의 변화를 나타낸다.
양력으로는 매년 같은 날, 간혹 하루 정도 차이를 두고 돌아온다. 물론 음력은 해마다 다르나 우리 선조들은 양력이 도입되기 훨씬 전부터 절기에 맞춰 농사를 지어왔다. 절기는 이처럼 음력을 쓰는 농경사회에서 필요에 따라 양력과 관계 없이 만들었지만, 태양의 운동을 바탕으로 한 탓에 결과적으로 양력의 날짜와 일치한다.
실제로 달력을 놓고 보면 24절기는 양력으로 매월 4∼8일 사이와 19∼23일 사이에 온다. 24절기는 고대 중국 주나라 때 처음 고안됐다. 음력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일어나는 기후의 변화는 반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천문학 지식을 동원, 지구의 태양 공전 주기를 24등분 했다.
그 다음 지구가 태양을 15도 만큼 돌 때마다 황하유역의 기후를 나타내는 용어를 하나씩 붙여 24개의 절기를 완성했다. 한식, 단오, 초복, 중복, 말복, 추석 등은 24절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봄*
1. 입춘(立春 / 2월 4일)
24절기의 첫 번째. 음력으로는 정월 절기이며 양력으로는 2월 4일경이다. 태양의 황경이 315도일 때.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다.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지만 아직 추위가 강하다.
음력으로 섣달에 들기도 하고 정월에 들기도 하며 섣달과 정월에 거듭 들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입춘 전날이 절분(節分)인데 이것은 철의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이 날 밤을 해넘이라고 부르고, 콩을 방이나 문에 뿌려서 귀신을 쫓고 새해를 맞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입춘을 마치 연초(年初)처럼 본다.
입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① 동풍이 불어서 언땅을 녹이고, ② 동면하던 벌레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③ 물고기가 얼음 밑을 돌아다닌다고 하였다.
아홉 차리 - 지방에 따라 입춘(立春)날이나 대보름 전 날에 베푸는 `아홉 차리'라는 민속이 있다. 가난하지만 근면하게 끈기 있게 살라는 교훈적인 세시민속이다. 이날은 각자 소임에 따라 아홉 번씩 부지런하게 일을 되풀이하면 한 해 동안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받을 줄 알았다. 글방에 다니는 아이면 천자문(天字文)을 아홉 번 읽고 나무꾼은 아홉 짐의 나무를 하며 노인이면 아홉 발의 새끼를 꼰다. 계집아이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를, 아낙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길쌈을 해도 아홉 바디를 삼고 실 꾸리를 감더라도 아홉 꾸리를 감는다. 심지어는 밥을 먹어도 아홉 번, 매를 맞더라도 아홉 번을 맞았다. 굳이 아홉 번이라 함은 많이 했다는 의미이며 우리 조상들의 숫자 개념상 최고의 陽數(양수)이기 때문이다.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 - 또 입춘날이나 대보름날 전야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꼭 해야 연중 액(厄)을 면한다는 적선공덕(積善功德)의 복지(福祉)민속도 있었다. 이를테면 밤중에 몰래 냇물에 가 건너 다닐 징검다리를 놓는다든지 가파른 고갯길을 깎아 놓는다든지 다리 밑 동냥움막 앞에 밥 한 솥 지어 갖다 놓는다든지 행려병자가 누워있는 원(院) 문전에 약탕 끓여 몰래 놓고 온다든지...
상여 나갈 때 상여머리에서 부르는 향도가(香徒歌)에
`입춘날 절기 좋은 철에/ 헐벗은 이 옷을 주어 구난공덕(救難功德) 하였는가/
깊은 물에 다리 놓아 월천공덕(越川功德) 하였는가/
병든 사람 약을 주어 활인공덕(活人功德)하였는가/
부처님께 공양드려 염불공덕(念佛功德)하였는가' 하는 대목이 있다.
죽어서까지도 염라대왕으로부터 입춘공덕(立春功德)을 심판 받았던 것이다. 오늘날에 되살리고 싶은 아름다운 우리의 입춘(立春)민속이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후여서 입춘방(立春榜)·첩(帖) 붙이기, 보리뿌리 점 보기, 입춘 팥죽, 입춘공사(윤수(倫修), 입춘 굿 등 여러 행사가 있다.
입춘방 : 입춘날 입춘시가 들 때 대문, 중문, 곳간문, 방문이나 대들보에 써붙이는 글귀로 대구(對句)와 단구(短句)가 있다.
2. 우수(雨水 / 2월 19,20일)
24절기(節氣)의 둘째. 입춘 후 15일 후인 양력 2월 19일 또는 20일이 된다. 태양이 황경 330°에 올 때, 우수입기일(雨水入氣日)이 되는데, 음력 정월의 중기이다. 입춘과 경칩 사이에 있다.
옛사람은 우수 입기일 이후 15일간의 기간을 3후(三候)로 5일씩 세분하여 ①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②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③ 초목에는 싹이 튼다고 하였다.
수달은 강이 풀리면서 물위로 올라오는 물고기를 잡아 먹이를 마련하고 추운 지방의 새인 기러기는 봄기운을 피하여 다시 추운 북쪽으로 날아간다. 그렇게 되면 봄은 어느새 완연하여 초목에 싹이 튼다.
흔히 양력 3월에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이맘때면 날씨가 많이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시기로서 새싹이 난다. 예로부터 '우수·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고 하였다.
초목에 물이 오르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개구리)들도 벌레들도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뜻에서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한다.
개구리 - 개구리들이 봄을 맞아 물이 괸 곳에 알을 까놓는데, 그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고 몸에 좋다고 해서 경칩날 개구리 알 찾기가 벌어지기도 한다. 지방에 따라선 도룡뇽 알을 건져 먹기도 한다.
토역(土役,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이날 담벽을 바르거나 담장을 쌓는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 빈대가 심한 집에서는 물에 재를 타서 그릇에 담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면 빈대가 없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즙을 마시면 위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약으로 먹는 지방도 있다.
경칩이 지나 살이 찐 봄 미나리를 무쳐 먹으면 싱그러운 봄을 먹는 듯, 청춘을 먹는 듯하다. 봄은 청춘이다.
경칩날에 보리 싹의 성장을 보아 그해 농사의 풍흉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연인의 날 -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라는 노래가 있다. 봄이 오는 시점은 가히 청춘 연인들의 계절이다. 이는 동서고금이 다 그러하다. 고대 로마에는 2월 보름께 `루페르카리아'라는 축제날이 있었는데, 젊은 아가씨의 이름을 적은 종이 쪽지를 상자에 넣고 동수(同數)의 젊은 총각으로 하여금 뽑게 하여 짝지어 주는 신나는 사랑의 날이었다. 지금의 발렌타인 데이(2월 14일)도 봄이 오는 길목에 있다. 우리 나라에도 은밀히나마 연인의 날이 있었다. 벌레들이 겨울 잠에서 놀라 깨어난다는 바로 경칩(驚蟄) 날이었다. 신토불이 발렌타인 데이인 셈이다.
은행씨앗 선물 - 이날 우리 선조의 남녀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써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밀히 은행을 나누어 먹었다한다. 은행나무는 수 나무와 암 나무가 따로 있는데 서로 맞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랑이 오고가서 열매를 맺기에 순결한 사랑을 유감(類感)한 것이며, 또한 비록 맛이 쓰고 껍질이 단단하여도 심어 그 싹을 틔우면 천년을 살아가는 영원한 사랑을 기원한 까닭일 것이다.
순결한 사랑, 영원한 사랑 - 우리 옛 문헌 `사시찬요'에 보면 은행 껍데기에 세모난 것이 수 은행이요, 두모난 것이 암 은행이라 했는데, 대보름날 은행을 구해 두었다가 경칩날 지아비가 세모 은행을, 지어미가 두모 은행을 맞바라보고서 생긋 웃으며 먹는 품은 낭만적이 아닐 수 없었겠다. 처녀 총각들은 이날 날이 어두워지면 그저 동구 밖에 있는 수 나무 암 나무를 도는 것으로 사랑을 증명하고 또 정을 다지기도 했다. 은행나무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에만 자라는 동방(東方)의 나무다.
사랑의 나무 - 두 갈래진 은행 나뭇잎을 처음 본 독일의 문호(文豪) 괴테는 `잎은 하나이면서 둘인가 / 둘이면서 하나인가 / 아! 사랑은 저러해야 하는 것을...'하고 읊었음도 사랑나무로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처럼 사랑을 동물성에서 식물성으로, 구상(具象)에서 추상(抽象)을 승화시켰던 우리 선조들 정말 멋있었다.
4. 춘분(春分 / 3월 20, 21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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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의 넷째, 양력 3월 21일 경이다.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적도를 통과하는 점을 춘분점이라 하며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 위에 이르러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며 밤과 낮의 길이를 같게 한다. 이 날은 밤낮의 길이가 같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진다. 경칩과 청명의 보름 중간이 바로 춘분이다.
피안(彼岸)의 시기 - 불교에서는 춘분 전후 7일간을 봄의 피안이라 하여 극락왕생의 시기로 본다. 옛날 중국에서는 춘분기간을 5일을 1후(候)로 하여 3후로 구분하였는데, ① 제비가 남쪽에서 날아오고, ② 우뢰소리가 들려오며, ③ 그 해에 처음으로 번개가 친다고 하였다.
철 이른 화초는 벌써 춘분에 파종한다. 또한 화단의 흙을 일구어 얼마 남지 않은 식목일(또는 寒食(한식))의 위하여 씨뿌릴 준비를 한다.
농가에서는 농사 준비로 분주해진다. 특히 농사의 시작인 初耕(초경)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해 동안 걱정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꽃샘바람 - 봄이지만 아직 음력 2월이라 이맘때면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감치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죽는다.'라는 속담도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이는 風神(풍신)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꽃샘'이라 한다.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길 가는 배도 차지 않는다 하였다.
5. 청명(淸明 / 4월 5,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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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의 다섯째. 음력 3월 절기이며, 양력 4월 5, 6일경이 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5도에 있을 때이다. 이날은 한식의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일 수도 있다.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다. 이날에 식목일 겹치는 것이 보통인데, 날이 풀리고 화창하여 일년
중 식목에 가장 적당한 시기이기 때문에 식목일을 청명과 같은 날로 잡은 듯하다.
옛 사람은 청명 15일 동안을 5일씩 3후로 세분하여, ① 오동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하고, ② 들쥐 대신 종달새가 나타나며, ③ 무지개가 처음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이날 省墓(성묘)를 간다. 우리 조상들만큼 성묘를 자주 하는 민족도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일년에 네 번, 그러니까 봄에는 淸明(청명), 여름에는 中元(중원, 음7월 15일), 가을에는 秋夕(추석), 겨울에는 冬至(동지)날, 눈길을 밟으며 찾아 뵙고 산소위의 눈을 쓸어 내렸다.
봄 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논 밭둑을 손질하는 가래질을 품앗이로 행한다.
한식과 청명 - 또한 寒食(한식)과도 겹친다. 그래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라는 속담이 생겼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의하면 청명(淸明)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친다.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3백 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 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寒食(한식)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동심일체를 다지고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던 것이다.
꺼지기 쉬운 불인지라 한식 날 온 백성이 한
불을 나누어 갖기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습기나 바람에 강한 불씨통(藏火筒)에 담아 팔도로 불을 보내는데 그 불씨통은
뱀이나 닭껍질로 만든 주머니로 보온력이 강한 은행이나 목화씨앗 태운 재에 묻어 운반했던 것이다.
바로 그 신성한 새 불을 일으키는 날이 청명이요, 이 새 불을 온 백성이 나누어 가짐으로써 동심일체의 한 백성임을 재확인하는 날이 바로 한식날이다. 청명과 한식은 한국적 내셔널리즘의 민속적 구현이랄 수 있다.
청
명주(淸明酒) - 청명절이 든 때에 담근 술. 춘주(春酒)라고도 한다. 찹쌀 석 되로 갈아 죽을 쑤어 식힌 다음, 누룩 세 홉과
밀가루 한 홉을 넣어 술을 빚는다. 다음날 찹쌀 일곱되를 깨끗이 씻어 쪄서 식힌 다음, 물을 섞어 잘 뭉개어서 독 밑에 넣고 찬
곳에 둔다. 7일 후 위에 뜬 것을 버리고 맑게 되면 좋은 술이 된다.
나무 심기 - 청명, 한식이면 나무를 심는데 특히, `내 나무'라 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시집 장가 갈 때 농짝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다한다.
내나무 노래 - `한식 날 심은 내 나무
금강수(金剛水) 물을 주어 육판서(六判書)로 뻗은 가지 각 읍 수령(守令) 꽃이 피고 삼정승(三政丞) 열매 맺어...'하는
<내 나무 노래>를 부르며 내 나무에 인생의 꿈을 실어 애지중지 길렀던 것이다. 연정(戀情)을 품은 아가씨가 있으면 그
아가씨의 내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으로 사랑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니 내 나무는 낭만이 깃든 사랑의 매체(媒體)이기도 했다.
되살리고 싶은 나무의 민속들이 아닐 수 없다.
나무 타령 한 귀절 - `청명(淸明) 한식(寒食) 나무 심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 거짓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아무 데나 아무 나무...
6. 곡우(穀雨 / 4월 20,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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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의 여섯째. 봄의 마지막 절기로, 음력으로는 삼월중(三月中)이며, 양력으로 4월 20, 21일, 태양의 황경(黃經)이 30도일
때이다. 청명과 입하(立夏) 사이에 들며 봄비(雨)가 내려 백곡(穀)을 기름지게 한다하여 붙여진 말이다.
그래서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는 말이 있다.
옛날에는 곡우 무렵에 못자리할 준비로 볍씨를 담근다. 볍씨를 담은 가마니는 솔가지로 덮어두며 밖에 나가 부정한 일을 당했거나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잡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에 집안에 들어오고, 들어와서도 볍씨를 볼 수 없게 하였다. 만일 부정한 사람이 볍씨를 보게되면 싹이 트지 않고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俗信(속신)이 있었다. 이렇듯 우리의 선조들은 농사의 시작부터 경건한 종교성을 갖고 임했다.
곡우물 - 곡우 무렵엔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른다. 명산으로 [곡우물]을 마시러 간다. 곡우 물은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 내서 흘러내리는 수액이다.
몸에 좋다고 해서 전남, 경남·북, 강원도 등에서는 깊은 산 속으로 곡우물을 약수로 마시러 가는 풍속이 있다. 경칩의 고로쇠
물은 여자 물이라 해서 남자에게 좋고, 곡우물은 남자 물이어서 여자들에게 더 좋다고 한다. 거자수(자작나무 수액)는 특히 지리산
아래 구례 등지에서 많이 나며 그곳에서는 곡우 때 약수제까지 지낸다.
곡우살이- 황해에서 조기가 많이 잡힌다. 흑산도
근해에서 겨울을 보낸 조기는 곡우 때면 북상해서 충청도 격렬비열도 쯤에 올라와 있고 이때 잡는 조기를 곡우살이라 부른다.
곡우살이는 아직 크지는 않았지만 연하고 맛이 있어 남해의 어선까지 출어해 잡아 올린다.
雨前茶(우전차) - 곡우전후에 따는 잎으로 만든 차를 우전차 또는 細雀(세작)이라 부르는데 최상품으로 친다. 우전차는 찻물의 온도를 5, 60도쯤으로 하여 우린다. 참고로 곡우를 지나 입하 경에 따는 차를 中雀(중작)이라 하며 물의 온도를 6, 70도 사이에 맞추면 좋다.
*여름*
7, 입하(立夏 / 5월 5,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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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일곱 번째. 음력으로는 4월절(四月節), 양력 5월 5~6일경으로, 곡우(穀雨)와 소만(小滿) 사이에 든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45도 때. '여름에 든다.'는 뜻으로 초여름의 날씨를 보인다. 여름은 立夏(입하)에서부터 시작하여
立秋(입추)전까지이다.
옛사람들은 입하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청개구리가 울고, ②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며, ③ 왕과(王瓜: 쥐참외)가 나온다고 하였다.
곡우 때 마련한 모판의 모도 잘 자라고 있어서 농사일은 더 바쁘다. 파릇한 신록(新綠)이 신비한 색상으로 온 누리를 뒤덮는다.
곡우전후에 채다한 세작을 茶(차)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치나, 한국의 茶聖(다성), 초의(艸衣)선사는 '우리의 차(茶)는 곡우 전후보다는 입하(立夏) 전후가 가장 좋다'고 하였다.
8. 소만(小滿 / 5월 21일)
24절기의 여덟 번째. 양력으로는 5월 21일경부터 약 15일 간이며, 음력으로는 4월중이다. 태양 황경은 대략 60도의 위치에
온다.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든다. 만물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가득 찬다(滿)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옛 사람들은 소만을 5일씩 3후(三候)로 등분하여, ① 씀바귀가 뻗어 나오고, ② 냉이가 누렇게 죽어가며, ③ 보리가 익는다고 하였다. 이 시기에 심한 가뭄이 들곤 한다.
여름의 분위기가 본격적이다.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거나 이미 논에 모심기가 끝나 연푸른 들판과 넘실거리는 논물이 볼 만하다. 밭농사의
김매기들이 줄을 이으며, 가을 보리 베기에도 바쁜 시기라서 1년중 가장 바쁠 계절로 접어들 때이다. 이 시기에는 가물 때가
많아서 밭곡식 관리와 모판이 마르지 않도록 물 준비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
모든 산야가 이토록 푸른데 대나무만큼은
푸른 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이는 새롭게 탄생하는 죽순에 자기의 영양분을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미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에게 정성을 다하여 키우는 모습을 본 듯하다. 그래서 봄의 누래진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대나무 가을'라
한다.
초후를 전후하여 죽순(竹筍)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묻혀 먹는다. 시절식으로 참 좋은 별미이다. 또한 즐겨
시식하는 냉잇국도 늦봄 내지는 초여름의 시절식으로 예로부터 유명하다. 보리는 말후를 중심으로 익어 밀과 더불어 여름철 주식을
대표한다.
9. 망종 (芒種 / 6월 6,7일)
24절기의 아홉 번째. 음력 4, 5월, 양력 6월 6, 7일 께가 된다.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들며 태양의 황경(黃經)이 75도일 때이다.
벼, 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芒) 곡식의 종자(種)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옛 사람들은 망종을 5일씩 끊어서 3후(三候)로 나누었는데, 초후(初候)에는 사마귀가 생기고, 중후(中候)에는 왜가리가 울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지빠귀가 울음을 멈춘다 하였다.
농사력에서는 모내기와 보리베기를 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속담에 그래서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오."라는 속담이 있다.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는데, 망종까지는 모두 베어야만 논에 벼를 심고, 또 망종을 넘기면 보릿대가 꺾어지거나 부러질 염려가 있고 바람에도 넘어 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남쪽에서는 '발등에 오줌싼다'고 할만큼 1년 중 제일 바쁜 때였다.
보리 그스름 - 전남지방에서는 망종날 '보리 그스름'이라하여 아직 남아있는 풋보리를 베어다 그스름을 해먹으면 이듬해 보리 농사가 잘 되어 곡물이 잘 여물며 그해 보리밥도 달게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이날 보리를 밤이슬에 맞혔다가 그 다음날 먹는 곳도 있다.
망종보기 -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들음에 따라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음력 4월 내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되어 빨리 거두어들일 수 있으나 5월 망종이 들면 그 해 보리 농사가 늦게 되어 망종내에도 보리 수확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한다.
전남, 충남, 제주도에서는 망종날 하늘에서 천둥이 요란하게 치면 그 해 농사가 시원치 않고 불길하다고 한다. 경남 도서 지방에서는 망종이 늦게 들어도 빨리 들어도 안 좋으며 중간에 들어야 시절이 좋다고 한다. 특히 음력 4월 중순에 들어야 좋다고 한다.
망종날 풋보리 이삭을 뜯어 와서 손으로 비벼 보리알을 모은 후 솥에 볶아서 맷돌에 갈아 채로 쳐 그 보릿 가루로 죽을 끓여 먹으면 여름에 보리밥을 먹고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도 지역에서는 망종이 일찍 들면 그해 보리가 좋고 늦게 들면 보리가 좋지 않다고 하며 또 이날 우박이 내리면 시절이 좋다고 한다.
10. 하지 (夏至 /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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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의 열번째. 음력으로는 5월 중, 양력 6월 21일경이 시작되는 날이며, 망종(芒種)과 소서(小暑) 사이에 있다. 해가 황도의
하지점을 통과하는 날. 태양은 황도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하게 되는데, 그 위치를 하지점(夏至點)이라 한다.
북반부에서는 일년 중 가장 낮이 길며 남중고도라고 하여 정오의 태양 높이도 가장 높고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열을 받는다. 그리고 이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에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
북극지방에서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고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로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동지에 가장 길었던 밤 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여 이날 가장 짧아지는 반면 낮 시간은 14시간 35분으로 1년 중 가장 길다.
옛 사람들은 하지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 ① 사슴의 뿔이 떨어지고, ② 매미가 울기 시작하며, ③ 반하(半夏)의 알이 생긴다고 했다.
남부지방에서는 단오를 전후하여 시작된 모심기가 夏至(하지) 이전이면 모두 끝나며, 장마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파삭한 햇감자를 캐어 쪄먹거나 갈아서 감자전을 부쳐먹는다.
기
우제 - 하지가 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이장(里長)이 제관이 되어 용소(龍沼)에 가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 제물로는 개나
돼지 또는 소를 잡아 그 머리만 물 속에 넣는다. 그러면 용신(龍神)이 그 부정함을 노하여 비를 내려 씻어 내린다고 믿는다.
나머지 몸통 고기는 기우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함께 먹으면서 공동체 의식을 다진다.
11. 소서(小暑 / 7월 7,8일)
24절기의 하나, 열한 번째. 음력으로는 6월절(六月節), 양력으로는 7월 7, 8일께이다. 태양은 대략 황경 105도에 위치하게 된다. 하지와 대서 사이에 있다.
옛 사람들은 소서 15일간을 3후(三侯)로 나누어서, ① 더운 바람이 불어오고, ② 귀뚜라미가 벽에 기어다니며, ③ 매가 비로소 사나워진다고 하였다.
이 시기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이며, 장마전선이라는 불연속전선이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질러 장기간 머물러 습도가 높아지고 많은 비가 내리는 장마철이다.
예전에는 하지 무렵에 모내기 끝내고 모 낸 20일 뒤의 소서 때는 논매기를 한다.
팥, 콩, 조도 가을 보리를 하였던 자리에 하지 때 심고 소서에 김을 매준다. 이 시기엔 퇴비를 장만하기 위하여 밭 두렁의 잡초 깎기도 한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철이므로 채소나 과일들이 풍성해지고 보리와 밀도 먹게 된다. 특히 음력 5월 단오를 전후하여 시절식으로 즐기는 밀가루 음식은 이때 제일 맛이 나서 국수나 수제비 해먹기를 즐긴다.
소채류로는 호박이며, 생선류로는 민어가 제 철이다. 잘생긴 민어를 다량으로 사다가 배를 따고 깨끗이 씻어 밝은 볕에 말려 포를 만들면 그 짭찔하고 쫄깃한 맛으로 해서 찬밥 물말이 해서 먹는데 반찬으로 최고이다.
싱싱한 민어로는 회 떠서 먹고, 따로 매운탕 끓이되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고 고추장 풀고 수제비 건 듯 띄워 먹는 맛도 일품이다.
12. 대서(大暑 / 7월 23일)
24절기의 열두 번 째. 음력으로는 6월중, 양력으로는 7월 23일 께이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120도에 이르는 계절. 일년 중 제일 더운 때(대서(大暑))라서 지어진 이름이다.
옛 사람들은 대서 기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하였는데, 제1후에는 썩은 풀이 화하여 반딧불이 되고, 제2후에는 흙이 습하고 무더워지며, 제3후에는 때때로 큰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대개 중복(中伏) 때이고 장마가 끝나며 더위가 가장 심해지는 때이다. 그러나 때때로 장마전선이 늦게까지 한반도에 동서로 걸쳐 있으면 큰비가 내리기도 한다.
뇌성벽력(雷聲霹靂)이 대단하고 다부지게 소나기가 쏟아지기도 한다. 한 차례 비가 내리면 잠시 더위를 식히기도 하나 다시 뙤약볕의 노염이 뒤통수를 벗긴다.
소나기 한 차례 지나고 난 마당에 난데없는 미꾸라지들이 떨어져 버둥거리기도 한다. 빗줄기 타고 하늘로 치솟았던 녀석들이 비가 그치면서 땅으로 떨어진 것인데 그런 놈으로 지져 먹으면 기운이 난다고 했다.
참외나 수박 등이 풍성하고 햇밀과 보리를 먹게 되고 채소가 풍족하며 녹음이 우거지는 시기로, 과일은 이때 가장 맛이 난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단물이 많이 없어지는 반면 가물었을 때는 과실 맛이 매우 달다.
동양의 역에서는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의 석 달을 가을로 한다.
여름의 토용(土用)막이도 입추 전날까지로서 아침저녁의 바람은 가을 소식을 알려준다.
옛날 사람들은 입추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갈라서, 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②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③ 쓰르라미가 운다고 표현하였다.
기
청제(祈晴祭) - 벼가 한창 익어가는 계절인데 입추가 지나서 비가 닷새 동안만 계속돼도 옛 조정이나 각 고을에서는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던 것이다. 성문제(城門祭)또는 천상제(川上祭)라는 이름도 바로 기청제를 두고 한 말이다.
'
춘추번로(春秋繁露)'라는 중국 옛 문헌에 이 기청제를 영(榮)이라 하고, 제를 지내는 방법을 상세히 적고 있다. 성안으로 통하는
수로(水路)를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게 한다. 그리고 제를 지내는 동안은 모든 성안사람은 물을 써서는 안 되고 또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된다. 비를 유감(類感)하는 일체의 행위는 금지된다. 심지어 방사(房事)까지도 비를 유감한다 해서 기청제 지내는
전야에는 부부가 각방을 써야 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는다. 이날 음(陰)인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일체 금한다. 제장(祭場)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祭主)도 붉은 옷차림이어야 했다.
양(陽)의 기운인 남방(南方), 적색(赤色)을 드리우면서 태양(太陽)의 볕을 갈망했었다.
여름이 지나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여 더위를 식힐 수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옛 사람들은 처서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②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③ 논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에 논두렁, 산소의 풀을 깎아 벌초를 한다.
포쇄 - 아직은 붙어있는 여름 햇살과 선선한 가을 바람에 장마에 습기 찬 옷이나 책을 말리는 포쇄(曝[쬘(쇄) = 日+麗] -햇빛에 말림)도 이 무렵에 한다.
'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속담처럼 선선한 바람에 파리 모기의 성화도 사라져가며 또한 백중(百衆)의 호미씻이[세소연(洗鋤宴)]도 끝나는 무렵이라 그야말로 '어정칠월 건들팔월'로 농촌은 한가한 한 때를 맞이하게 된다.
처서에 비가 오면 장차 뜻하지 않은 재앙으로 흉년이 된다고 해서 매우 꺼려하였다. 그래서 속담에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에 천석 감한다.'고 하였다.
중복에 참외, 말복에 수박, 처서에 복숭아, 백로에 포도가 제 철 과실로 최고의 맛이다.
15. 백로(白露 / 9월 8일)
24절기의 하나로 열 다섯 번 째. 음력으로는 8월절, 양력으로는 9월 8일께이다. 처서(處暑) 다음, 추분(秋分) 앞의 절기로, 태양 황경이 165도 때이다.
이 시기에는 밤 동안 기온이 크게 떨어지며 대기 중의 수증기는 엉겨서 이슬이 된다. 흰 이슬이 내리며 가을 분위기가 완연해진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추석 무렵으로 만곡이 무르익는 시기이다. 옛 사람들은 이 시기를 5일씩 3후(候)로 나눠서, ① 기러기가 날아오고, ② 제비가 돌아가며, ③ 뭇 새들이 먹이를 저장한다고 하였다.
이 즈음에는 건조하고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나, 간혹 남쪽에서 불어오는 태풍이 곡식을 넘어뜨리고 해일(海溢)을 일으켜 피해를 주는 수가 있다.
그러나 백로에 비가 오면 풍년의 징조로써, 속담에 "백로에 비오면 십리 천석(天錫)을 늘린다."고 하였다.
'흰 이슬' - 백로에 내린 콩잎의 이슬을 새벽에 손으로 훑어 먹으면 속병이 낫는다한다.
백
로와 포도 - 참외는 중복(中伏)까지 맛있고 수박은 말복(末伏)까지 맛있다. 처서(處署) 복숭아, 백로(白露) 포도 하듯이 철따라
과실의 시식(時食)이 정해져 있어 과실 맛으로 절기를 느끼곤 했던 것이다. 옛 편지 첫머리에 `포도순절(葡萄旬節)에
기체만강하시고...' 하는 구절을 잘 썼는데, 바로 백로에서 추석까지 시절을 포도순절이라 했다. 지금이 바로 그 포도의 계절이다.
다산(多産)의 상징 - 그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그 집 맏며느리가 한 송이를 통째로 먹어야 하는 민속이 있었다.
주렁주렁 포도알로서 다산(多産)을 유감(類感)시키기 위한 기자주술(祈子呪術)이었을 것이다. 조선 백자(朝鮮 白磁)에 포도 문양의
백자가 많은데 이 역시 다산을 유감시키고자 내방(內房)에 두는 주술 단지였다. 지금도 연만한 분들은 처녀가 공개적으로 포도를
먹고 있으면 망측하다고 호통을 치는데 포도에는 다산을 상징하는 전통적 이미지가 도사려 있기 때문이다.
포도지정 - 부모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를 했을 때 포도지정(葡萄之情)을 잊었다고 개탄을 했는데, 포도의 정이란 어릴 때 어머니가 포도 한 알 입에 넣어 껍데기와 씨를 가려낸 다음 입물림으로 먹여주던 그 정이 일컫는다.
허수아비 - 만곡이 익어가니 백로(白鷺)아닌 새들이 한창이고 이를 쫓으려는 허수아비의 수고로움도 향수(鄕愁)처럼 그립기만 하다.
16. 추분(秋分 / 9월 23일)
24절기의 열 여섯 번 째, 음력으로는 8월 중이며 양력으로는 9월 23일 께이다. 천문학에서는 태양이 북에서 남으로 천구의 적도와
황도가 만나는 곳(秋分點)을 지나는 9월 23일경을 말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지만, 실제로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어느
정도의 시간까지는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낮의 길이가 상대적으로 길게 느껴진다. 이 시기부터 낮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며, 밤의
길이가 길어진다. 백로와 한로사이에 든다.
옛
사람들은 추분기간을 5일을 1후(候)로 하여 3후로 구분하였는데, ① 우레 소리가 비로소 그치게 되고, ② 동면할 벌레가 흙으로
창을 막으며, ③ 땅 위의 물이 마르기 시작한다고 하였다. 농사력에서는 이 시기가 추수기이므로, 백곡이 풍성한 때이다.
추분도 다른 24절기나 마찬가지로 특별한 절일(節日)로 치지 않는다. 다만 춘분과 더불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으므로 계절이
나뉘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의 길이가 길어지므로 비로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는 점을 실감한다.
시절 요리로는 버섯이 가장 맛있는 철이다. 호박고지, 박고지, 호박순, 깻잎, 고구마순도 이맘때 먹을 수 있으며 산채를 말려 묵은 나물로 준비하기도 한다.
또한 추분 즈음이면 논밭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목화를 따고 고추도 따서 말리는 등 잡다한 가을걷이 일이 있다.
17. 한로(寒露 / 10월 8일)
24절기의 열일곱 번째, 음력으로는 9월절. 양력으로는 10월 8일 께이다. 이때 태양은 황경 195도의 위치에 온다.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든다.
공기가 차츰 선선해지면서 이슬(한로)이 찬 공기를 만나서 서리로 변하기 직전이다.
옛 사람들은 한로 15일간을 5일씩 끊어서 3후(候)로 나눠서, ① 기러기가 초대를 받은 듯 모여들고, ② 참새가 줄고 조개가 나돌며, ③ 국화가 노랗게 핀다고 하였다.
이 시기는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시기로, 농촌은 타작이 한창인 시기이다.
또한 여름철의 꽃보다도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짙어지고, 제비 등 여름새와 기러기 등 겨울새가 교체되는 시기이다.
세 시명절인 중양절(중구(重九), 음력 9월 9일)과 같은 시기에 해당한다. 중양절에는 특별한 민속이 있으나 한로는 다만 절기로 칠 따름이다. 이 시기에 국화전(菊花煎)을 지지고 국화술을 담그는 풍습이 있다. 국화는 그 둥근 모양과 밝은 색이 태양을 상징하며 양(陽)의 숫자 중 가장 큰 수인 9가 겹치는 중양(重陽, 9월 9일)이 바로 이즈음이기 때문이다.
이 무렵 높은 산에 올라가 머리에 수유(茱萸)를 꽂으면 잡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는데, 이는 수유열매가 붉은 자줏빛으로 붉은 색은 양(陽)색으로 벽사(邪)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로와 상강철의 서민들은 시식(時食)으로 추어탕(鰍魚湯)을 즐겼다. [본초강목]에는 미꾸라지가 양기(陽氣)를 돋우는데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을[추(秋)]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 했는가 보다.
저녁이면 붉게 익어간 감을 까치 밥으로 남겨 둔 고향집이 그리울 때이다.
18. 상강(霜降 / 10월 23,24일)
24
절기의 열 여덟 번째, 음력으로는 9월 중이며, 양력 10월 23일, 24일 께이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210도 되는 때.
한로와 입동 사이에 들며, 대체로 이 시기는 말고 상쾌한 날씨가 계속되며 밤에는 기운이 뚝 떨어지면서 서리(霜)가 내리기(降)
시작한다.
옛 사람들은 상강을 5일씩 3후(候)로 나누어, ① 승냥이가 산짐승을 잡고, ② 초목이 누렇게 되며, ③ 동면(冬眠)하는 벌레가 모두 땅에 숨는다고 하였다.
서서히 겨울잠에 들어갈 동물들은 동면을 준비한다.
봄부터의 바빴던 농사일도 추수의 가을걷이가 마무리되면서 상강 때쯤이면 거의 끝이 난다. 다음해 농사에 대비하는 잔손질만이 남았다.
<농가월령가.도 9월령에서는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침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행사들이 농사 기술 개량으로 인해 모두 한 절기 정도 빨라지고 있다.
*겨울*
19. 입동(立冬 / 11월 7,8일)
24절기의 열 아홉 번째, 음력으로 10월 절기, 양력 11월 7일, 8일 께이며, 상강(霜降)과 소설(小雪) 사이에 든다. 태양의 황경이 225도일 때. 이 날부터 '겨울(冬)에 들어선다(立)'이라는 뜻에서 입동이라 부른다.
옛 사람들은 입동기간을 5일씩 3후(候)를 정하여, ① 물이 비로소 얼고, ② 땅이 처음으로 얼어붙으며, ③ 꿩은 드물어지고 조개가 잡힌다고 하였다. 특별히 절일(節日)로 여기지는 않지만 우리의 겨울채비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김 장 - 무수히 쌓인 낙엽 위에 서리가 내려 쉬고 찬바람이 옷깃을 올려준다. 입동엔 벌써 겨울채비가 한창이다. 입동 전후해서 김장을 담근다. 이 시기를 놓치면 김치의 상큼한 맛이 줄어든다. 옛날에는 우물가 냇가에서 부녀자들이 무·배추 씻는 풍결이 장관을 이루기도 하였다. 입동날 날씨가 추우면 그 해 겨울은 추울 것으로 덤을 친다.
경남 여러 섬에서는 입동에 갈가마귀가 날아온다 하고, 밀양 지방에서는 갈가마귀 흰 뱃바닥이 보이면 목화가 잘 될 것이라 말한다. 제주도에서는 입동날 날씨가 따뜻하지 않으면 그해 바람이 지독하게 분다고 점을 쳤다.
고 사 - 이 시기에 고사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10월 10일에서 30일 사이에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쪄서 토광, 터줏간지, 씨나락섬이나 외양간에도 고사 지낸후, 농사에 애쓴 소에게도 가져다주며, 이웃집과도 나누어 먹는다. 한해의 노고와 집안의 무사하였음을 감사드리며 이웃과의 일체감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치 계미(雉鷄米) - 또한 옛날 향약(鄕約을 보면 춘추(春秋)로 양로잔치를 베풀었는데, 특히 입동(立冬), 동지(冬至), 제석(除夕)날에 일정 연령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치계미(雉鷄米)라 하여 선물을 드리는 관례가 보편화돼 있었다. 비단 논 한 뙈기 밭 한 뙈기 없는 가난한 집에서도 일년에 한 번은 마을 노인들을 위해 응분의 출연(出捐)을 했다.
이 시기에는 첫겨울의 증후(症候)가 보이는데, 옛사람은 이 기간을 5일씩 3후(三侯)로 구분하여, ① 무지개가 걷혀서 나타나지 않고, ② 천기(天氣)가 올라가고 지기(地氣)가 내리며, ③ 폐색되어 겨울이 된다고 하였다.
살얼음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제법 춥지만 그래도 낮엔 아직 따뜻하여 아늑하기도 해서 소춘(小春)이라 부르기도 한다.
소설 무렵, 대개 음력 10월 20일께는 관례적으로 심한 바람이 불면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기도 하는데 이날은 손돌(孫乭)이 죽던 날이라 하고, 이때의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해서 외출을 삼가고 배를 바다에 띄우지 않는다.
손 돌(孫乭)의 전설 - 고려 때 전란이 일어나 왕이 강화도로 파천(播遷)을 가게 되었는데, 배가 통진(通津)·강화 사이(후에 손돌목이라 하였다)에 이르렀을 때 풍랑이 일어 위험하게 되었다. 뱃사공 손돌이 왕에게 일단 안전한 곳에 쉬었다가는 것이 좋겠다고 아뢰었다. 그러자 왕은 파천하는 처지라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터에 그런 말을 고하므로 그를 반역죄로 몰아 참살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광풍이 불어 뱃길이 매우 위태롭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싣고 가던 왕의 말을 목베어 죽은 손돌의 넋을 제사하니, 비로소 바다가 잔잔해져 무사히 강화에 도착하였다 한다.
그 뒤 매년 이 날이 되면 날이 몹시 추워지고 광풍이 인다고 하는데, 이는 손돌의 억울하게 죽은 원혼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의 추위를 손돌추위, 그 바람을 손돌이 바람(손돌풍, 손석풍(孫石風))이라고 한다.
21. 대설(大雪 / 12월 7일)
24절기의 스물 한 번째. 음력으로는 10월 중, 양력으로는 12월 7일경이다. 태양이 대략 황경(黃經) 255도에 도달하며, 소설과 동지 가운데에 있는 절기이다.
눈(雪)이 많이(大) 내린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는데, 이는 중국 화북지방의 기상(氣象)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도 이 시기에 반드시 적설량이 많다고 볼 수는 없다.
옛
사람들은 대설 기간을 5일씩 3후(三候)로 나눴는데, ① 제1후는 산박쥐가 울지 않고, ② 범이 교미하여 새끼를 치며, ③
여지(枝)가 돋아난다고 하였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입동 이후, 소설·대설·동지·소한·대한까지를 겨울이라 보지만, 서양에서는
추분 이후 대설까지를 가을이라고 본다.
이날 눈이 많이 오면 풍년이 들고 푸근한 겨울을 난다고 한다
가장 긴 밤 - 태양이 남회귀선, 적도 이남 23.5도인 동지선에 도달한 시절로 밤이 제일 길다. 반대로 남반부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짧다.
태 양의 부활과 크리스마스 - 그러나 이로부터 태양은 하루하루 북으로 올라와 옛날에는 이를 태양이 복원(復元)한다 하여 동짓날을 축일로 삼았으며, 특히 태양신을 숭상하던 페르시아의 미드라교에서는 동지, 12월 25일 <태양탄생일>로 정해서 태양의 부활을 축하하였으며, 고대 로마력(曆)에서 12월 25일은 동지(冬至)날이었고 유럽이나 중근동 지방에서는 이 동지날이 설날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날은 신약성서에 명기돼 있지 않으며 그 옛날에는 1월 6일로 성탄일을 삼기도 하고 3월 21일을 성탄일로 잡기도 했다. 로마 교황청이 성탄일을 이 동지설날로 통일시킨 것은 4세기 중엽이다. 그래서 옛 설날 풍습이 성탄 풍습으로 혼합된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작 은 설, 동지 - 11월을 동짓달이라고 할만큼 11월은 동지가 대표한다. 옛날엔 동지를 설이라 했는데 이는 태양의 부활과 새로운 시작의 의미이다. 설날이 바뀌면서 '작은 설', 다음해가 되는 날의 의미로 '아세(亞歲)'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축
귀(逐鬼)와 팥죽 - 동짓날에는 어느 집에서나 팥죽을 쑨다. 팥죽은 팥을 후루루 삶아 첫물을 버리고 새물을 부어 삶아야 쓴 맛이
없다. 푹 삶은 팥을 굵은 체에 걸러서 오래도록 달이다가 쌀을 넣고 잘 퍼졌을 때 새알심[옹시래미라도도 함]을 넣는다. 새알심은
찹쌀 가루를 익반죽하여 작은 새알 만한 크기로 동글동글 빚어 둔다. 소금 간을 하여 그릇에 담고 식성에 따라 꿀로 단 맛을
더한다. 이렇게 쑨 팥죽을 먼저 사당에 올려 차례를 지내고 다음에 방과 마루 부엌과 광 등에 한 그릇씩 떠다 놓고 대문이나 벽에다
죽을 뿌린다. 팥죽의 붉은 색은 양(陽)의 색으로써 귀신(음귀(陰鬼))을 쫓는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그런 연후에야 식구들이
팥죽을 먹는다. 먹음으로써 마음속의 사악함도 깨끗이 없애고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옹시래미(새알
심) - 자기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어 먹었다고도 한다. 이 새알심은 맛을 좋게 하기 위해 꿀에 재기도 하였고 새알심 속에
땅콩이나 아주 작은 동전을 넣어 그것을 씹는 아이에게 따로 선물을 주기도 하였다. 가난하고 추운 어린 시절에 그래도 참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 있는 시절이다.
동짓날 팥죽을 쑨 유래는,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역신(疫神, 전염병귀신)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것이다. 전염병이 유행할 때에 우물에 팥을 넣으면 물이 맑아지고 질병이 없어진다고 여겼으며,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에 보내는 관습이 있는데 이는 상가에서 악귀를 쫓기 위한 것이다.
절에서도 죽을 쑤어 대중들에게 공양(供養)한다. 팥죽을 먹어야 겨울에 추위를 타지 않고 공부를 방해하는 마구니(마귀)들을 멀리 내쫓을 수 있다고 여긴다.
어
쩌면 붉은 색의 연지·곤지, 입술루즈, 봉선화 매니큐어 등의 화장은 아름답게 꾸미기 위함 보다 붉은 색이 귀신을 쫓는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견강부회일까마는 성탄전야 산타클로스는 붉은 색(양(陽))의 옷을 입고 불(양(陽))을
지피는 부엌 아궁이로 들어온다. 성탄절 = 동지날 = 설날 = 태양의 부활이라는 등식에서 나온 풍속이고 보면 설날 풍속이 동서양이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동지가 초승(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하순)에 들면
노동지라 하며,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고 대신 팥 시루떡을 쪄서 먹었다 한다. 팥죽이든 시루떡이든 시원한 동치미를 곁들이면 그
맛이 더욱 일품일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고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했다고 전해진다. 속담에도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의 속담에 '동지 때 개딸기'란 말도 있다. 이말은 추운 동지 때에 개딸기가 있을 리 없으니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는 뜻이다.
동지받이 - 동짓달 보름쯤에 함경도 앞 바다에 몰려드는 명태의 떼, 볼이 묽고 등이 넓고 알배기가 많다. 평안도 함경도에서는 메밀국수로 냉면을 하여 먹고, 청어를 종묘에 천신하였다고 한다.
하
선동력(夏扇冬曆) - 옛날 왕실에서는 동짓날에 새해 달력을 나누어주었다. 궁중에서는 관상감에서 만들어 올린 달력을
‘동문지보(同文之寶)’란 어새(御璽)를 찍어서 모든 관원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이 달력은 황장력(黃粧曆)·청장력·백력 등의 구분이
있었고, 관원들은 이를 다시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러한 풍속은 여름(단오)에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아울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였다.
또 한, 내의원(內醫院)에서는 전약(煎藥)이라 하여 쇠가죽을 진하게 고아 관계(官桂)·생강· 정향(丁香)·후추·꿀 등을 섞어 기름에 엉기게 하여 굳힌 후 임금에게 진상하여 별미로 들게 하였다. 그 밖에 고려·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귤
- 또한 제주목사는 동지 무렵이 되면 특산물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상감은 멀리 섬사람에게 그 공로를 위로하는 선물을
하사하였으며 기쁘게 여겨 임시로 과거를 실시하여 사람을 등용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황감제(黃柑製)라 하였다.
동지부적
- 동짓날 부적으로 뱀 '사(蛇)'자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동짓날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해에 질병이 많아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고 여겼으며, 눈이 많이 오고 날씨가 추우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전한다.
또 동지사(冬至使)라는 외교 사절을 파견하였다.
동 지헌말 -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부터 섣달 그믐까지는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진다. 시할머니나 시어머니 시누이 시고모 등 시집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 바치기 위함이다. 이를 동지헌말 또는 풍년을 빌고 다산을 드린다는 뜻인 풍정(豊呈)이라고도 했다. 18 세기의 실학자 이익(李瀷)은 동지헌말에 대해 새 버선 신고 이 날부터 길어지는 해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 하여 장수를 비는 뜻이라 했는데 그것은 미화된 이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옛사람들은 소한 15일간을 5일씩 3후(候)로 세분하여, ① 기러기가 북(北)으로 돌아가고, ② 까치가 집을 짓기 시작하고, ③ 꿩이 운다라고 하였다.
절 후의 이름으로 보아 대한(大寒) 때가 가장 추운 것 같으나 실은 소한(小寒) 때가 우리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춥다. 그래서 속담에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죽는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춥다. 그러나 추위를 이겨냄으로써 어떤 역경도 감내하고자 했던 까닭으로 '소한(小寒)의 추위는 꾸어다가라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한이 지나면서 추위는 수그러들기 시작하여 속담에 '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 '대한이 소한의 집에 가서 얼어죽는다.' '소한 얼음, 대한에 녹는다'는 이야기가 생겼다 할만큼 푸근한 것이 보통이다.
절분(節分) -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서는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으로 연말일(年末日)로 여겼다.
해넘이 - 풍속에서는 이 날 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다.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의 시작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연초가 된다.
집 안 손질 - 제주도에서는 이사나 집수리 따위를 비롯한 집안 손질은 언제나 신구(新舊)간에 하는 것이 관습화 되어있다. 이때의 신구간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간(1월 25일∼2월 1일)의 보통 1주일을 말한다.잘못 알기 쉬운 천문학 상식은?
1. 춘, 추분날 낮의 길이는 정확히 12시간이다.
천문학적인 춘, 추분날은 엄밀히 말해 태양의 황도상의 위치가 적도와 일치하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지 낮과 밤의 길이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서울 지방(37.5°N)의 경우 이 날의 낮의 길이는 대략 12시간 8분 정도이다.
이것은 지구에 대기가 있어 태양빛이 굴절률이 더 큰 매질 쪽으로 굴절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낮의 길이가 조금 더 길어지며, 그 차이는 고위도로 갈수록 커진다. 진공의 굴절률은 0이므로 공기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빛은 안쪽으로 조금이라도 더 기울게 되어 있다. 또한 해가 수평선 위로 조금이라도 나와있으면 낮으로 간주되므로 해의
크기만큼 낮이 길게 계산된다.
2. 1년중 해가 가장 빨리 지는 날은 동지이다.
동지는 1년중 해가 가장 짧은 날, 태양의 고도가
가장 짧은 날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날 해가 가장 빨리 지는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균시차 때문이다. 이것은 시태양일의
길이가 연중 일정치 않아 시태양시와 평균 태양시 사이에 차이가 생기는 현상이다. 하지, 동지 무렵에는 시태양일의 길이가 평균보다
길므로 1년중 해가 가장 빨리 지는 날은 동지보다 약간 빨라진다. 반면 가장 해가 늦게 뜨는 날은 동지보다 조금 늦어진다.
반면 춘분, 추분 무렵에는 시태양일의 길이가 평균보다 짧다. 북위 37.5° 인 서울 지방의 경우 가장 빠른 일출은 6월
15일경, 가장 늦은 일출은 1월 8일경이며 가장 빠른 일몰은 12월 7일경, 가장 늦은 일몰은 6월 29일경이다. 이 일자는
고위도로 갈수록 하지, 동지날에 가까워진다. 균시차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에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3. 해가 뜨는 곳은 정확한 동쪽이다.
만약 해가 뜨거나 지는 위치만 보고 정확한 방위를 찾으려고 했다가는 틀림없이 낭패를 볼 것이다. 왜냐하면 해가 뜨는 위치는 계절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 때에는 가장 북쪽으로 치우친 위치에서 뜨고 지며, 동지 때에는 가장 남쪽으로 치우친 위치에서 뜨고
진다. 이 차이는 고위도로 갈수록 커진다. 예를 들어 동지날 북위 60°정도에서는 거의 남쪽에서 해가 뜨고 지며, 북위
70°정도가 되면 해뜨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정확한 동쪽에서 해가 뜨고 지는 때는 춘분 및 추분 정도이다.
4. 한낮에는 해가 어느 곳이든지 남쪽에 있다.
한낮에 해가 남쪽에 있는 것은 북반구의 얘기다. 열대 지방에서는 거의 머리 위에 있어 태양의 황도상의 위치에 따라 남쪽에도 있을 수
있고 북쪽에도 있을 수 있다. 반면 남반구의 중위도 지방에서는 한낮에는 해가 북쪽에 위치한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해의 위치는
북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한 북반구의 중위도 지방에서는 대부분 집을 남향으로 짓는다.
겨울철 일조권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저위도 지방에서는 보통 집을 짓는 데 있어서 방위를 가리지 않는다. 또한 남반구의 중위도 지방, 예를 들어 아르헨티나 혹은 뉴질랜드 등지에서는 필히 북향집을 지어야한다.
5. 열대 지방은 낮이 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마도 한국의 경우를 생각해서 여름에 낮이 기니까 일년 내내 여름 날씨인 열대 지방은 낮시간이 길겠거니하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열대 지방의 낮의 길이는 일년 내내 큰 차이가 없다. 대략 12시간 전후에서 왔다갔다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히려 진짜 여름일 때는 북쪽으로 갈수록 낮이 길어진다.
그러나 낮이 24시간 계속되는 극 지방의 여름 기온은 기껏해야 한국의 초겨울 기온밖에는 되지 않으며, 그보다 훨씬 추운 곳도
많다. 왜냐하면 이 지방에서는 태양의 겉보기 경로가 지평선과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어 하루 종일 저녁때 같은 낮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방에서 하루 종일 받는 태양 복사 에너지량은 열대 지방에서 12시간 동안 받는 에너지량보다 훨씬 적다.
6. 태양의 고도가 하루 중 가장 높은 시각은 정확히 12시이다.
흔히 낮 12시에 태양은 머리 위로 온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정확한 표현일까? 그렇지 않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균시차가있어 그 시간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며, 또한 경도가 다른 여러 지역에서 같은 표준시를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태양의
남중 시각은 곳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난다. 빠른 곳은 오전 11시에서 늦은 곳은 3시까지 되는 곳도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서울은 동경 127°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서울의 시간은 GMT보다 9시간 빠른 동경 135°의 시간을 쓴다.
이 경선은 일본 효고현의 아카시(고베와 아주 가깝다)를 지나는 경선으로 그보다 8°서쪽에 있는 서울은 남중 시각이 32분(경도
1°는 4분의 차이가 난다)늦어진 12시 32분이 된다. 이것도 균시차에 의해 차이가 있으므로 균시차가 (+)값으로 가장
큰(+값의 균시차는 아침 해가 저녁 해보다 길다는 것을 뜻한다) 11월 4일경에는 이 시각보다 16분 30초 정도 빠른 12시
15분경이 되며, (-)값으로 가장 큰 2월 11일경에는 14분 30초 정도 늦은 12시 46분경이 된다.
한편 서경 74°에 위치한 미국의 뉴욕시는 서경 75°의 표준시(미국 동부 표준시임)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평균 남중 시각이 11시
56분이 되며, 동경 139.5°에 위치한 일본의 도쿄는 11시 42분이 된다. 여기서 한 마디 여담을 하도록 하겠다.
한국에서는 87, 88년에 서머타임(일광 절약 시간제, DST)을 시행한 바 있다. 그런데 서울올림픽이 끝난 후 이 제도를 더
이상 시행하지 않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바로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당초이 제도의 시행 명분은 길어진 낮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데 그 뜻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울올림픽 때 중계료를 가장 많이 내는 미국과의 중계료협상 과정에서 계획되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에서 서머타임을 실시할 때(4월 첫 일요일 - 10월 마지막 일요일)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동부시간대(1억이 조금
넘는다)와의 시차는 한국이 13시간 빠르다. 그러나 체감 시차는 12시간 차이가 가장 크므로 한국보다 11시간 빠른 꼴이 된다.
따라서 이 시차를 1시간 축소하여야 그만큼 중계료 협상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결국 생활리듬
파괴,근무시간 연장 등의 부작용만 초래, 올림픽 후 폐지되어 버렸다. 또한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서울의 경우 이미 저녁 해가
32 분이나 길어져 있는데 굳이 더 늘릴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굳이 실시하자면 한국의 표준시를
30분 늦추고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물론 이보다 더한 곳에서도 서머타임 하려면 한다.
그러나 그런나라의 대부분은 우리와는 사회적 환경이 크게 다르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과 우리를 단순비교 하기는 곤란하다. 현재
서머타임은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권(중위도 지방)에서 실시되고 있다. 천문학적인 조건에서 보았을 때 일본은 우리보다
서머타임을 실시하기에 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일본의 도쿄는 서울보다 아침해가 50분이나 더 길다. 그런 상황에서도
서머타임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과연 그들은 이것을 실시할 줄 몰라서 안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 제도가 자기네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본인의 생각이다. 하물며 여건이 더욱 나쁜
한국에서 이 제도를 굳이 시행할 필요가 있을까? 그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기로 한다.
7. 하루의 길이는 항상 일정하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시계는 왜 시간이 일정할까? 그것은
사람들의 생활에 편하도록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표준시가 제정된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좁은 지역 안에 여러 종류의 시간을
쓰고 있다면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옛날 영국에서는 지방마다 다른 시간을 쓰고 있어서 재판에서의 판결이 번복되는
일이있었으며 그것이 그리니치 표준시를 제정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밝혀 두자면 현재 신문에 나오는 일출, 일몰, 월출, 월몰 시각은 서울 지방(정확히 말하자면 서울타워 부근의
한국경위도원점)을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 점에 유의하여 일출, 일몰, 월출, 월몰 시각을
확인하도록 한다.
8. 해가 정확히 머리 위에 오는 경우는 없다.
한국에서는 옳은 얘기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을까? 바로 회귀선 안쪽이다. 회귀선(Tropic)이란 태양의
황도상의 위치가 적도에서 가장 이격되었을 때 적위에 해당하는 선으로남, 북위 각각 23.5°이다. 태양이 정확히 머리 위에 오려면
태양의 적위와 그 지방의 위도가 같아야 한다. 태양의 적위는 항상 ±23.5°이내이므로 이러한 현상은 회귀선 내의 지역에서만
가능하다.
9. 극지방에서는 6개월마다 밤낮이 바뀐다.
실제로 이 말이 정확히 맞는 곳은 양 극점 뿐이다. 그렇다면 다른 지점은? 그렇다. 위도에 따라 낮 또는 밤이 계속되는 일수가
다르다. 이론상으로 낮 또는 밤이 24시간 지속되는 날이 생기는 점은 바로 북극권, 남극권이다. 북회귀선, 남회귀선은 적도로부터
23.5°이격된 지점에 있지만, 북극권, 남극권은 반대로 극점으로부터 23.5°이격된 지점에 있다. 즉, 북, 남위
66.5°지점을 말한다.
실제로는 굴절현상으로 인해 낮 또는 밤이 24시간 지속되는 날이 생기기 시작하는 지점은 조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낮 또는 밤만이 지속되는 일수는 극점으로 갈수록 증가하며 극점에서는 반년마다 낮과 밤이바뀌게 된다.
10.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은 정확한 북쪽이다.
사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은 자북극(North magnetic Pole)이다. 지구의 내부 활동으로 인해 S극의 성질을 띤
자장이 이 곳에 형성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이 위치는 대략 북극점에서 11°정도 떨어진 캐나다의 북부 지방으로 나침반의
바늘은 북극점이 아닌 이 곳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서울 지방의 경우 약 8°정도 편차가 생긴다고 한다.
따라서 보통 나침반은 극 지방에서는 거의 쓸모가 없다. 일반적으로 극 지방에서는 자이로 컴퍼스 등의 특수한 나침반을 쓴다. 자남극
역시 남극점과 일치하지 않으며 극점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방향으로 1000km 이상 떨어진 지점에 있다.
11. 여름에는 태양이 더 가깝다.
사실은 그것과는 정 반대다. 근일점(perihelion, 태양이 지구에 가장 가까운 점)의 위치는 대략 1월 1일로 겨울철이다.
원일점(aphelion)은 대략 7월 1일로 여름철이 된다. 그러나 이 근일점과 원일점의 차는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의 3%
정도에 불과하므로 지구의 온도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4계절이 생기는 원인은 황도와 적도가 23.5°기울어져 있어 연중 태양의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이지 태양과의 거리차 때문이 아니다.
한편 남반구에서는 여름에 근일점이 되지만 연교차는 북반구가 훨씬 크다. 남반구에는 바다가 많아 이 바다가 기온차를 감소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2. 24절기는 음력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달력을 유심히 본 사람이면 24절기가 양력이 기준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24절기는 중국력인 태음 태양력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황도를 15°씩 분할하여 각 지점마다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태음 태양력은 삭망월과 태양력의
양쪽을 다 같이 고려하여 만들어지므로 1년이 13개월이나 되는 해도있으며, 날짜가 한 달 가까이 계절과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24절기의 각각의 명칭은 영어로 해석하기 어렵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이상 전인 시이저 때부터 양력만 써온 서양
사람들어게 그런 것이 있을 턱이 있겠는가? 굳이 영어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있다면 춘분(Vernal equinox),
하지(Summer solstice), 추분(Autumnal equinox), 동지(Winter solstice) 정도이다.
이러한 지점은 천문학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지므로 서양에서도 명칭을 부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태양력은 각각의 달이 삭망월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서양에서는 중국력과는 반대로 양력 달력에 신월(New moon), 상현(First
quarter), 만월(Full moon),하현(Last quarter) 등의 문구를 해당되는 날짜에 적어 넣고 있다.
13. 위도 계산은 지구 중심에서 잰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이러한 내용이 실려 있다. "지구의 각각의 위도 사이의 길이는 일정하지 않고 고위도로 갈수록 길어진다. 이것은
지구가 완전한 원이 아니고 적도 쪽이 부푼 타원체임을 말해준다." 그러나 실제로 가로로 부푼 타원을 그려 놓고 중심에서부터
각도를 재 본 사람들은 그 반대의 결과가 나온 것을 보고 이상해 할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교과서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위도를 재는방법이 잘못된 것이다.위도를 재는 정확한 방법은 어느 특정한 한 지점에 지축의 연장선과 만나는 접선을 그은 뒤, 그
접선과 지축의 연장선이 이루는각도를 재는 것이다. 즉, 특정한 지표면상에서의 북극성(정확히는 하늘의 북극)의 고도, 다시 말해
실제로 사람에게 보이는 북극성의 고도가 그 지방의 위도인 것이다.
전자의 방법으로 잰 위도를 지심 위도, 후자의 방법으로 잰 위도를 지리 위도라 한다.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위도는 바로 이 지리 위도이다. 적도 쪽이 부푼 지구 타원체에서는 지심 위도간의 거리는 저위도일수록 길지만, 지리 위
도간의 거리는 고위도일수록 길다.
14. 일식은 월식보다 발생 빈도가 크게 적다.
일식보다 월식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어느 특정한 지구상의 지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얘기이며, 지구 전체를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지구 전체적으로는 일식이 월식보다 발생 빈도가 조금 많다. 그러나 월식은 월식이 일어날 때가 밤이면 어디서 든지
볼 수 있으나(물론 날씨가 좋아야 한다), 일식은 달의 그림자 (본그림자, 반그림자)가 닿는 곳에서만 볼 수 있으므로 마치
월식이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특히 개기 일식 및 금환 일식은 특정한 장소에서는 몇백년에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드물다. 태양 및 달의 겉보기
크기는 약 0.5°정도이므로 일식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태양 및 달의 적위 및 적경차가 0.5°이내여야 하는데 지구에서 본 달의
적경 및 적위는 위치에 따라 최고 2°까지 차이가 있으므로 적경 및 적위차가 다 같이 1.25°이내에서는 지구상 어느 곳에선가
일식이 일어나게 된다. 한편 지구의 본그림자의 크기는 약 1.5°정도이며 월식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달이 지구 본그림자(태양의 적경, 적위와 180°차이가
난다)와 1°이내의 적경 및 적위차를 가져야 한다(달은 신월 때 태양과 최고 5°정도의 적위차를 갖는다). 이 정도만 설명하면
여기에 대한 의문은
거의 다 풀렸을 것이라 본다.
15. 달은 항상 밤에 떠 있다.
밤에 항상 떠 있는 달은 보름달 뿐이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그모양에 따라 달라진다. 달은 통상적으로 매일 50분 정도 늦게 뜨고
늦게 진다. 먼저 음력 30-1일 경에는 달이 태양과 거의 같은 방향에 있으므로 달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또한 달은 태양과
거의 같은시간에 뜨고 진다. 여기서 며칠 지난 후에는 오른쪽이 약간 찬 초승달을 볼 수 있는데 오전 중에 떠서 저녁때까지 떠
있다.
따라서 초저녁에 서쪽 하늘에서 볼 수 있다. 음력 7-8일경의 상현달은 오른쪽 반이 차 있으며 한낮에 떠서 저녁때 남중하여
한밤중에 진다. 음력 15-16일경의 달은 태양과 거의 정 반대편에 위치하므로 거의 둥근 달을 볼 수 있다. 또한 해질 무렵에
떠서 해뜰 무렵에 진다. 음력 22-23일 경의 달은 왼쪽 반이 찬 달로 한밤중에 떠서 아침에 남중하여 한낮에 진다.
여기서 며칠 지나면 왼쪽이 약간 찬 그믐달을 볼 수 있는데 새벽에 뜨므로 일출 조금 전에 동쪽 하늘에서 잠시 볼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은 오른쪽이 찬 달을 볼 기회가 훨씬 많았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왼쪽만이 찬 달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시간이기 때문이다.
16. 음력 15일은 정확한 보름달이다.
달의
근지점과 원지점의 차가 10% 정도나 되기 때문에 달의 공전 속도에 따라 정확한 보름달의 위치는 약간 달라질 수 있으며, 날짜
차이도 조금은(하루 이내) 있을 수 있다. 또한 지구상의 각 지점마다 시차가 있어 그 기준점에 따라 날짜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자면 1996년 추석의 경우 정확한 보름달(태양의 적경과 달의 적경이 정확히 180°차이나는 지점)이 된 시각은
추석날이 아닌 추석 다음날 오전 11시 30분경(한국시간)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 사람들은 약간 덜 찬 추석 보름달을 본 셈이
됐다. 반면 미국, 캐나다 등지에 사는 교포들은 현지 시간으로 추석당일 저녁에 정확한 위치에 해당되는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육안으로는 거의 식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까지 굳이 따져가며 날짜를 계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17. 추석 보름달은 다른 때보다 더 크다.
이것은 사람들이 더 클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보기 때문이지 사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추석 때라도 달은 근지점에 올 수도 있고
원지점에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추석이나 정월 대보름 등의 달이 더 크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믿음에서 내려온 전설이지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18. 낮에는 별이 떠 있지 않다.
물론 별은 24시간 떠 있다. 다만 태양빛이 너무 강하고, 그 빛이 산란되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 뿐이다. 어느 특정한 빛이
워낙 강할 경우 그 주변의 빛은 잘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지만 낮이라도 별이 보이는 경우가 있기는 있다. 개기 일식
때처럼 산란될 빛이 가려진 경우나 공기가 없는 달, 대기권 밖에서는 낮이라도 별을 볼 수 있다.
19. 북극성은 정확히 하늘의 북극에있다.
엄밀히 말하면 하늘의 북극에서 1°정도 이격되어 있다. 따라서 북극성도 작은 원을 그리며 맴돈다. 다만 육안으로 그것을 감지할수
없을 뿐이다. 사람들 눈엔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세한 오차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그렇다면 북극성이
있다면 하늘의 남극에는 남극성이란 것이 있을까? 하늘의 남극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기는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빛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이것을 눈으로 본다는 것은 거의불가능하다. 따라서 남극성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편이 좋다. 다만 하늘의 남극은 대강 찾을 수 있다. 남십자성에서 장축을 찾아 안쪽으로 5배 정도 늘린 곳이 하늘의 남극이라
한다. 물론 이 별자리는 적위가 -60°정도이므로 한국에서는 볼 수 없으며 필리핀 정도에나 가서야 특정한 계절에 찾아볼 수
있으며, 호주 정도에 가서야 항상 찾아볼 수 있는 별자리다.
20. 북극성의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지구에는 세차 운동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마치 팽이의 축이 이동하는 것과 같이 지축이 이동하는 현상이다. 다만 그 속도가
매우느려 짧은 시간 내에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1항성년과 1태양년의 길이는 각각 365.2564일과 365.2422일로
차이가 있다. 따라서 하늘의 북극은 황도의 북극을 중심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이주기는 수만 년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약 1-2만년 뒤에는 직녀성이 북극성의 위치에 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