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쇠고 서울로 올라오기전에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길을 가보았습니다.
방송으로만 보았던 곳이지만 어린시절의 기억이 많이도 묻어 있는 곳입니다.
참 많이 바뀌었네요.
방천시장 입구......
초등학교 6학년때 엄마 심부름으로 방천시장 기름집에 갔었습니다.
다른 집에 가지 말고 꼭 그 집에 가야 한다시던 곳이
같은 반 여학생의 어머니께서 운영하시던 기름집이었습니다.
인자하고 아름답게 생기신 그 분은 포근한 엄마의 전형같았습니다.
커다란 빌딩이 대신한 그 자리에 그 집은 이제 흔적조차 없습니다.
저기 저 까만 승용차가 있던 자리쯤이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키가 크고 노래를 잘 하고 착하고 시원스럽게 서구형 미인처럼 생겼던 그 아이가
보고 싶습니다.
성을 따서 "뻔데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친구의 집은
아마 옷수선 저 가게인 듯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놀러 갔던 그 친구의 집 아랫층에
재봉틀에 끼워진 실패가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작은 시장안을 걸어 들어가다가 방천둑으로 올라 섰다가 이내 골목의 끄트머리에 와서
다시금 돌아서 시장 뒷 골목으로 접어 들어 갑니다.
그 곳이 김광석길이네요.
다섯 살에 이사 간 아이의 추억이 있나?
서울 창신동에 김광석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마 김광석의 부모님께서 이리로 정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좀 이상합니다.
역시 40년이 넘은 거리는 많이도 변했네요.
삼덕초교입니다.
모서리로도 문이 났네요.
오른쪽으로 좀 더 가면 정문이 따로 있습니다.
학교앞 캬라멜루라는 덩이진(젤같은 것) 것을 건빵에 발라먹던 기억이 납니다.
녹말가루에 묽은 액을 부으면 캬라멜처럼 달콤하고 덩이진 양념으로 바뀌던 물건.
문방구엔 아이들이 넘쳐났고 담장옆엔 당면만 조금 넣어 왜간장 뿌려 먹던
대구명물 납작만두가 인기 있었고요.
구멍가게에 5원인가 하던 우동도 아련합니다.
연고용기에 든 본드처럼 생긴 풍선껌을 팔던 자리에 동아슈퍼가 생겼네요.
외갓집에 불이 났다고 할아버지께 알리라고 엄마가 말씀하셔서
한달음에 달려 왔던 곳이 동아슈퍼 옆 자리 이층이었덙 것 같은데........
오른쪽 길이 학교담장길인데 제법 넓었었고 그 안쪽 골목에서
경북대병원으로 가는 길에, 지금은 서울의 유명 법대 교수가 된
수재 친구가 살았고
학교 후문 뒤에는 삼총사를 본떠서 세명이 어울려 다니며 삼총사 행세를 했던
내 친구의 집이 아직도 그 자리에 모양만 바뀌어 있네요.
또 그 옆은 자유일기장 이란 것을 나한테 준 회장을 했던 친구의 집도 있네요.
저기 왼쪽 어디메는 전교에서 가장 예뻤던 여학생의 집이 있었습니다.
같이 축구도 했고 라디오청취 숙제도 그 집에 가서 했었지요.
맞은 편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던 친구의 집이 있었고요.
이 곳은 기억에 없네요.
우리집이 있던 골목에 장학사 집은 그대로입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던 짓을 많이 했었지요.
아~ 맞은 편에도 박사 집이 있었고 형제가 장난꾸러기인 집도 있었지.
장학사집옆으로 아주 부잣집이 있었는데 다세대 주택이 들어선 걸 보니
아무래도 가세가 기울어 팔았거나 한 것 같습니다.
마당이 넓은 집이었는데.......
부잣집을 헐고 지은 다세대 두 동 앞의 담은
소나기 내리던 여름날 축구공을 튕겨서 적진을 돌파했던 벽의 모양이 그대로인 집이 아직도 있네요.
왼쪽편에 세워놓은 승용차 있는 곳에는 골목이 없어졌습니다
골목안 집이 세들어 살던 우리집이었는데.
작은 집들이 없어지고 다세대집들로 들어 찼습니다.
그 너머엔 건축사가 지은 아주 멋진 집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네요.
다음에 다시 가 봐야 하겠습니다.
그런 집들이 다 없어지다니?.....
골목끝으로 빠져 나와 방천시장쪽을 바라 보면
양장점을 하던 친구의 집이 있었고 구멍가게를 하던 친구집도 있었지요.
대기업의 임원이 된 친구, 알찬 기업의 사장이 된 친구.
기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젠
시골에서 1학년 2학이가 시직되면서
대구로 이사와 전학했던 동인초등학교로 넘어 갔습니다.
태권도를 하겠다고 졸라 학교에서 도장 사범을 초빙하여 배웠던 강당이 그대로입니다.
두렵기도 하고 경건하기도 했던 공간입니다.
승급시험을 치르던 날. 엄마가 지켜보던 앞에서 상장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잘 한다고 하는데도 상을 주지 않더군요.
사범님은 칭찬을 해오셨는데도 말이죠.
이 날은 확실하게 기억을 합니다.
상이 돌아오지 않자 사범님께서 간청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도 와 계시고 하니 주자고 말이죠.
어쨌든 저는 그 날 승급에서 상장을 받았었습니다.
동인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도 많이 보고 싶습니다.
고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야 지금도 가끔씩 연락을 하지만
영수, 상돈, 명희, 은옥, 성재, 재훈, 영완, 석, 순철, 동해, 미옥, 감찬
그리고 인향이.
고등학교때 등교시간 버스안에서 무심히 밖을 보다가
교련복을 입고 골목길을 나서던 눈부셨던 인향이.
하춘화의 "잘했군 잘했어"를 나하고 수없이 연습하고 정작 발표회때는
반장하고 해서 저도 나도 속상해 했었는데.......
동인초등학교 앞에는 옛날의 육교가 건재합니다.
어느 날 육교가 생겨서 선생님께서 좋아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육교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었습니다.
모습은 못 보고 죽음이라는 것이 여전히 무엇인지 모르던 그 때.
약간 쓸쓸했던 느낌은 남아 있습니다.
주차금지 푯말이 있는 자리의 회색건물도 그대로인데
식당이 있었는지
저 건물만 보면 외식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숙제로 받았던 아이디어 제출 때문에
"아이디어"라는 말도 생각나고요.
육교를 넘어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오래된 주택골목입니다.
동인아파트는 5층이었던 것 같은데 5개 동이 있어서 꽤 크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고등학교때까지도 대구에는 대단위단지가 거의 없어서 작은 아파트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 초반에 서울 잠실의 아파트 동호수를 보고 깜짝 놀랐었습니다.
아파트가 어째 백단위로 나가지? 그렇게 큰 단지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으니까요.
골목끝에 작은 집에 살았었는데.......
삼덕초교로 전학하기전 동인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배운 거울로 햇빛반사하는 장난을 우리집 옆방의 새댁한테 했다가
아버지와 엄마의 근심어린 시선을 받았던 기억도 납니다.
"여자를 희롱"하는 버릇이 생기면 안된다고 생각을 하셨나 봅니다.
절대로 그런 장난을 하지 말라는 신신당부를 하셨었습니다.
을지사 자리는 만화방이 있던 곳입니다.
5원짜리 가지고 가서 만화 보다가 오줌이 마렵거나 밥을 먹으러 집에 갔다가
다시 가서는 좀 전에 만화책을 다 못 보고 갔으니 마저 볼 거라고 하면서
계속해서 책을 보았던 곳입니다.
만화방 주인 아줌마가 "너도 참 무리다" 라고 하셔서
엄마한테 그게 뭔 뜻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누가 그러더냐고 하셨지요.
그 것도 어머니한테는 아들이 어디가서 그런 소리를 듣고 다니나 걱정이셨던 게지요.
을지사 맞은 편 전봇대 자리에는 대구에서는 "포또"라고 부르는 "뽑기"를 하던 곳입니다.
포도당 굳은 걸 녹여서 소다 넣어 먹던 것도 있고
설탕녹여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만화와 포또에 빠져서 저금통 다 털어 먹고 아버지한테 아주 크게 혼났었습니다.
사실은 처음엔 혼이 나지 않고 오히려 50원짜리 지폐를 주셨었지요.
얼마나 돈을 안 줬으면 도둑질을 했겠냐는 자책이셨겠지요.
그런데 그 50원 지폐를 주머니에 넣고 자전거를 빌려서 타다가 잃어 버렸습니다.
페달을 밟다 보니 주머니에서 지폐가 자꾸 빠져 나오는데
한번 다시 집어 넣고는 계속 타고 다니다가 집에 와서 보니 없어졌지 뭡니까?
저금통을 다 털어버린 전력이 있는데 50원 지폐 잃어 버렸다고 하니
가중처벌을 받았던 셈입니다.
골목 오른쪽 하얀색 건물자리 1층에 외가쪽 친척이 가게를 했었는데
그 집 아이를 봐주러 갔다가 동전바구니에 들어 있던 5원짜리를 몇 번 슬쩍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제가 도벽이 좀 있었네요.
그 후에 누나 시집갈 때에 우리집에도 오셨었는데 아마 고백을 못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지?......
기차시간이 촉박해서 서둘러 돌아 나왔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두 군데 초등학교골목을 차분하게 걸어보고 싶습니다.
삼덕동의 골목집을 찾아 보고 밧데리 상사도 궁금하고
동인동 텍사스 골목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친구들의 집은 어디쯤이었는지
고등학교 형들이 당구치던 만화방과 담화문이 붙어 있던 담벼락은 흔적이나 있는지........
설렘가득한 추석연휴가 아련한
오늘도 바람처럼.
첫댓글 추억이 많기도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다 기억하셔요?저는 애 낳느라 전신마취 두번해서기억력이 나뻐진건지 친구 이름도 기억 안나는데..아무래도 바람처럼님 천재신가봐요~~대단하십니다
과거지향적 별로래요.
친구 참 많으셨네요~
미인형 전교형 예쁜형...중 어느 분이 젤 끌리셨나요?^^
학년따라 학교따라 한 사람씩
@바람처럼 바람둥이
@설렁설렁 바람처럼이지요.
한번에 하나의 사랑이니 양다리도 아니고
짝사랑이에야랴?ㅡㅡ
@바람처럼 그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