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 형제봉(兄弟峯,704m)

[山竹 박종규]

[경북] 영덕 형제봉(兄弟峯,704m)

 

두 마리 용이 머리를 맞댄 영덕의 청정 산행지

 

우리나라 산 이름 중에 형제봉만큼이나 흔한 산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경북 영덕의 창수면과 영해면을 가르며 솟은 형제봉(703.8m)은 아직도 산꾼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숨겨진 산이다. 낙동정맥이 지나는 맹동산 동쪽에 위치한 이 산은 산세가 웅장하면서도 광활하다. 특히 산자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위정골, 육종골, 독자골 등은 깊고 험한 만큼 때묻지 않은 비경을 감추고 있다.

높고 낮은 두 개의 봉우리가 형제와 같이 나란히 솟아 있다 하여 이름 붙여진 형제봉(兄弟峯). 영덕의 옛 향토지인 <단양부지(丹陽府誌)>에는 “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흡사 형제(兄弟)가 서로 절을 하는 것 같다(在府西二十里似兄弟相揖也)”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이 산은 남봉과 북봉 두 봉우리가 있는데 상봉은 북봉이다.

그러나 <단양부지> 이전에 편찬된 <경상도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편에는 형제봉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용두산(龍頭山)에 대한 기록이 있다. 용두산은 이곳 산자락에 있었다는 위장사(葦長寺), 위정사(葦井寺) 또는 우장사(雨長寺)라는 절집과 관련된 기록이다.

▲ 1 산행은 신기2리 버스정류장에서 신기6교 다리를 건넌다. 다리 옆에는 우장골, 형제봉 16km라는 팻말이 있다. 2 울령천(蔚嶺川)은 깨끗한 물과 깎아 세워놓은 듯한 벼랑 아래로 맑은 소(沼)와 담(潭)을 감추고 있다. 3 산길로 접어드는 초입에 볼 수 있는 대리 14.5km라는 푯말과 국유임도표석의 빗돌. 4 산정에 서면 낙동정맥이 뻗어가는 산릉 주변에 솟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5 하얗게 꽃을 피운 사과밭 너머로 우장골이 시작되고, 골짜기 위로 멀리 아슴푸레하게 형제봉 정상부가 보인다.

그렇지만 위장사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의 태종 7년(1407년) 12월에 “천태종인 영해의 우장사를 그 고을의 복을 빌던 절간으로 쓰게 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천태종이 유행한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현재 이웃 갈천리에 있는 장육사 건칠보살좌상(보물 제993호)은 본래 위장사에 봉안되어 있던 것이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용두산은 부의 서쪽 20리에 있다. 그 산정에 우물이 있는데 장마와 가뭄에도 물의 증감이 없다. 세상에 전해지는 말은, 처음 산정에 갈대(葦) 하나가 있었는데 길이가 하늘에 닿고 있었다. 이에 그곳에다 우물을 팠더니 물이 썩 맑고 깨끗하였으나 간사한 사람이 비치면 진흙 빛으로 변했다고 한다. 위장사는 용두산 우물곁에 있다”고 했다. 이런 기록으로 미루어 본다면 형제봉은 용두산 또는 용두봉으로도 불렸던 듯싶다. 20리는 8km로 거리상으로나 방향(부의 서쪽) 모두가 일치하고 있다.

이곳 신기리에서 위정관광농원을 운영하는 김낙동(66)씨는 “지금의 형제봉이 영해 도성터에서 직선거리로 8km이고 영해도성에서 바라보면 산봉우리 형상이 마치 용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일러준다. 

 한편 형제봉은 최초의 동학농민운동과 관련된 곳으로 최근 천도교 관계자들이 가끔 찾고 있다. 1871년 4월 29일(음력 3월 10일) 전국의 동학인들 500여 명이 형제봉 아래 병풍바위에 집결해 소를 잡아 천제(天帝)를 지냈다고 한다. 이들은 교조신원운동과 부정부패의 척결을 기치로 내걸고 영해부(寧海府) 관아를 공격해 영해부사를 처단한 후 영해읍내 5개 동의 빈곤한 주민들에게 공전을 나누어 주고 자진철수했다는 것이다.

산행에 앞서 잠시 위정관광농원 김낙동씨의 안내를 받았다. 김씨는 아직까지 등산로라 하기에는 뭔가 많이 부족하단다. 산길로 접어드는 초입은 물론이거니와 정상까지 오르는 등로에도 아무런 표지가 없다고 한다. 이는 아직까지 이 산에 등산을 목적으로 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외지에 나가 살고 있는 이곳 출신들이 간혹 친목산행을 한다든지 또는 가을철에 마을사람들이 송이버섯 채취를 위해 오를 정도라는 것.

어쨌든 김씨는 이 산을 오르는 초입까지 안내를 하겠다고 나섰다. 918번 지방도가 지나는 신기2리 버스정류장에서 신기6교 다리를 건넌다. 다리 옆에는 우장골, 형제봉 16km라는 팻말이 보이고, 다리 건너 마을 입구에는 기와를 얹은 정자와 아름드리 소나무숲 아래 비각이 있다. 마을로 들어서면 하얗게 꽃을 피운 사과밭 너머로 우장골이 시작된다. 골짜기 위로 멀리 아슴푸레하게 형제봉이 정상부만 살짝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상봉에 설치된 산불감시 무인카메라가 설치된 철탑으로 구별된다.

마을을 지나면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도로를 따라 이어지던 전봇대가 끝나는 길 오른편에 블록을 쌓아 만든 조그마한 시설물이 있다. 이곳에는 지하에서 약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모터펌프가 설치돼 있다. 김낙동씨는 이 약수를 끌어올려 1km정도 떨어진 자신의 관광농원으로 연결하는 공사를 직접 했다고 한다. 톡 쏘는 맛에 철분 함량이 많은 위정약수다.

김씨는 오른편 계곡 건너의 산골짜기를 가리키며 본래 위장사가 있던 절터라고 일러주었다. 그래서 이 약수가 위장사의 우물과 수맥을 같이 한다는 것. 이 물은 일명 장군수(將軍水)라고도 하는데 이에 얽힌 설화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 김제군수로 웅치를 방어하다 장렬히 전사한 정담(鄭湛) 장군과 위정사의 스님에 관한 얘기다. 창수면에는 이곳 외에도 인근의 방가골약수를 비롯해 마당두들약수, 가산약수 등 유명한 약수터가 많다.

약수를 끌어올리는 시설물에서 얼마 못 가면 길가의 진성 이씨 묘를 지나 임도는 한굽이 왼편으로 꺾어진다. 이곳 길옆에 대리 14.5km라는 푯말과 국유임도표석이라는 빗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임도를 버리고 물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 맞은편 사과나무 밭으로 오른다. 밭 왼편에서 산으로 접어드는 확실한 길을 찾을 수 있다. 김씨는 이곳까지만 안내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다른 볼일이 있어 헤어져야만 했다. 

일단 이 산길만 찾았다면 정상까지 오르는 것은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산길로 접어들어 5분쯤이면 갈림길이 있는 묘지를 만난다. 여기서 묘지 뒤편 능선 길만 놓치지 않고 이어가면 된다. 소나무가 울창한 숲속의 산길은 제법 경사가 가파르다. 오른편 나뭇가지 사이로 신기리 마을만 보일 뿐 아무것도 조망되지 않는 숲속이다.

첫 묘지에서 다시 10분이 지날 무렵 가선대부 무안 박씨 묘다. 길은 왼편으로 비스듬히 이어지다가 경사가 다소 누그러질 즈음, 능선을 따라 자리잡은 서너 개의 묘지를 차례로 지나 송이막터에 이른다. 452m봉으로 추정되는 이곳은 송이 채취 때 송이를 지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람이 기거했던 곳인 듯하다. 불을 피운 흔적이며, 불에 그을려 뒹구는 양은냄비로 추측할 수가 있다. 여기서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11시 방향에 형제봉 정상이 보인다. 산불감시 무인카메라가 설치된 시설물이 서 있는 곳이다.

산길은 때때로 도랑처럼 패인 곳도 있지만 본래는 제법 넓었던 흔적이 역력하다. 안내를 해준 김씨에 의하면 형제봉의 기슭은 준평원으로 30여 년 전만 해도 인가가 있었으며 논농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그래서 수확한 농산물을 소 등에 싣고 이 산길로 운반했다고 하니 짐작이 간다. 특히 북쪽 기슭의 쉰섬지기라는 곳은 옛날 논농사 쉰섬을 능히 수확했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또 동북쪽 낮은 골짜기에 있는 갈밭골 역시 토질이 비옥해 논농사가 이뤄졌다는 곳이다.

아무튼 이 산속에 아직도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은 곧 사람의 흔적을 만난 것과 같은 느낌이다. 잠시 후면 나뭇가지에 매달린 색 바랜 리본을 만난다. 물금산악회라 적혀 있는 이 표지기는 이후 한 차례 더 만나게 되는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여느 산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리본이지만 여기서는 정말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송이막터에서 30분이면 통정대부 안동 김씨 묘를 만난다. 널찍하게 터를 잡은 이 묘지 뒤편으로 10분이면 형제봉 정상에 다다른다.

상봉은 넓은 헬기장으로 정상 표석은 없고 삼각점(병곡 309, 2004 재설)이 대신한다. 산불감시 무인카메라 탑이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시원한 조망이 상쾌함을 안겨준다. 동쪽으로 영덕면 소재지가 저만치 눈아래에 보인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동해의 해안선과 그 너머로 펼쳐지는 푸른 물결은 하늘과 맞닿아 구분이 어렵다.

낙엽이 무릎까지 쌓인 오지의 산, 믿을 건 독도뿐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등운산, 칠보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멀리 북쪽으로는 검마산, 백암산이 한눈에 잡히고, 낙동정맥이 뻗어가는 산릉 주변에 솟은 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쪽 맹동산 풍력발전단지가 코앞이다. 산등성이에 줄지어 세워진 풍력발전 시설물은 자연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바람을 타고 돌아가는 바람개비 같은 구조물이 신기하기만 하다.

산정에서의 하산은 남서쪽 능선을 타는 것과 북쪽 안부에서 육종골이나 독자골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그러나 확신이 서지 않아 일단 북쪽의 664m봉을 거쳐 북동쪽 능선을 하산로로  잡았다. 풍력단지를 쳐다보고 산정을 벗어나 북쪽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낙엽이 쌓여 무릎까지 빠지는 참나무 숲으로 길은 찾을 수가 없다. 지형도와 컴퍼스로 독도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맞은편 664m봉만 쳐다보고 나아가면 안부에 이르면서 희미한 산길을 만난다. 왼편에는 낙엽송 숲이 있고, 희미한 산길은 오른편 계곡으로 이어지면서 육종골로 내려서는 듯싶다. 초행길에 계곡으로 들어서면 시야 확보가 어려워 희미한 산길을 버리고 일단 능선으로 올라붙는다. 10분이면 664m봉에 닿지만 봉우리라고는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숲속에 싸여 있다. 이제부터 주능선만 놓치지 않는다면 큰 어려움은 없다.

능선만 따르면 있다가 없다가를 반복하는 산길의 흔적을 더듬을 수가 있고 맞은편에는 우뚝 솟은 등운산이 보이기도 한다. 산릉을 중심으로 오른편은 참나무가 빽빽하고, 왼편 음지에는 경북 내륙지역답게 하늘로 향해 쭉쭉 뻗은 적송이 숲을 이루고 있다. 488m봉에 닿으면 왼편 아래로 마을과 918번 지방도가 내려다보인다.

664m봉에서 488m봉을 지나 30여 분이면 능선에서 왼편 계곡으로 연결되는 확실한 산길을 만난다. 능선을 벗어나 말라버린 계곡을 따라 20분이면 한가한 산촌마을이 나온다. 곧이어 마을을 빠져나오면 개울가에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고 마루보기교라는 다리를 건너 신리2리 버스정류장이다. 이 마을은 지형이 말처럼 생겼다고 해서 마리배기(馬峴洞)라 한다.

918번 지방도를 따라 흐르는 울령천(蔚嶺川) 주변은 사람의 발길이 드문 덕분에 청정의 자연이 원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고스란히 살아 있다.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깨끗한 물과 깎아 세워놓은 듯한 벼랑 아래로 맑은 소(沼)와 담(潭)을 감추고 있어 여름이면 더위를 식힐 수 있는 피서지로도 좋을 듯하다.

>> 산행코스

○신기2리(신기6교)~대리 14.5km 푯말 및 국유임도표석~425m봉(송이막터)~무안 박씨 묘와 안동 김씨 묘~정상~664m봉~488m봉~신리2리 버스정류장 <4시간 소요>

현재 형제봉은 확실한 등산로가 없다. 이번에 답사한 코스도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그런대로 찾을 수 있지만 하산 길은 독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정상에 올랐다가 남릉을 따를 경우 임도까지는 소요시간이 짧지만 임도를 따라 마을까지는 상당한 거리다. 정상에서 육종골로는 그런대로 산길이 있다고 한다. 

>> 교통

대중교통편을 이용해 형제봉을 찾으려면 영해면에서 군내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서울에서는 영덕을 경유, 영덕 시외버스터미널(054-732-7673)에서 10~20분 간격(05:47~20:40)으로 운행하는 영해행 버스(15분소요)로 갈아타야 한다. 영해(버스정류장 054-732-1563~4)에서는 1시간 간격으로 왕복 운행하는 영양이나 원창수행 군내버스를 이용, 신기2리에 하차한다. 산행 후 돌아올 버스 시간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서울→영덕  동서울종합터미널(ARS 02-1688-5979)에서 1일 9회(07:00~18:00) 운행.

부산→영해 노포동종합터미널(051-508-9966)에서 1일 16회(05:56~17:29) 운행.

포항→영해  시외버스터미널(ARS 054-274-2313)에서 15~20분 간격(05:25~21:30) 운행.

대구→영해  동부시외버스터미널((ARS 053-756-0017)에서 1일 11회(09:00~16:30) 운행.

>> 숙식 (지역번호 054)

형제봉 산행의 들머리인 신기리에는 위정관광농원(732-6663)이 있어 미리 연락을 취하면 유일하게 숙식이 가능하다. 농원 안에는 위정약수로 불리는 약수터가 있다. 탄산수로 철분 함유량이 많아 위장병, 천식 등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전설을 안고 있는 이 약수는 영덕군지에 기록된 장군수라는 것이다. 특히 이 약수로 끓여내는 닭백숙이 유명하다.

영해면 소재지에는 숙박과 식사가 가능한 곳이 많다. 카프리모텔(732-0251), 오성모텔(732-1291), 반도여관(732-0522), 명성장여관(734-1393), 귀빈여관(733-7785) 등이 있다. 일월식당(734-6853)·가마솥밥집(734-0974)에서는 한정식을, 제일횟집(733-0301)·털보네대게회식당(733-3410)에서는 회와 대게를 맛볼 수 있다.

/ 글·사진 황계복 전 부산산악연맹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