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오피니언 입력 2020-01-13 03:00
세렝게티의 생존법칙[서광원의 자연과 삶]〈14〉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지금쯤 아프리카 동부 세렝게티 초원에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장관이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수백만 마리의 누와 얼룩말들이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속속 세렝게티 남부 초원에 도착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1년 내내 신선한 풀을 찾아 넓은 초원을 1년에 한 바퀴씩 시계 방향으로 돈다. 무려 1500~2000km에 달하는 대장정인데, 묘하게 우리의 설날 때쯤 남쪽 초원에 집결한다. 물론 설을 지내거나 궐기대회를 하려는 게 아니다. 새끼를 낳기 위해서다.
세렝게티 초원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기에 은폐물 엄폐물이 없다. 출산을 위해서는 포식자들의 눈이 닿지 않는 안전한 곳이 필요한데 그럴 만한 곳이 없으니 다 같이 모여 한꺼번에 새끼를 낳는 것이다.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초원의 순풍 산부인과’가 2주 정도만 문을 여는 이유다.
이 동안 정말이지 다시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진다. 우선, 이 짧은 시간에 무려 50만∼60만 마리의 새끼가 태어난다. 웬만한 도시 하나 정도의 ‘인구’가 2주 만에 생겨나는 것이다. 더 인상적인 건 세상에 나온 지 30분 정도 만에 일어서고 두어 시간 만에 겅중겅중 달리는 새끼들이다. 우리 아기들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녀석들은 별일 아닌 듯 해낸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래야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포식자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예외는 있는 법. 가냘픈 다리로 일어서려고 할 때마다 힘이 약해 쓰러지고 마는 새끼들이 있다. 애써 반복해 보지만 마찬가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갈수록 힘은 빠지고 옆에서 지켜보는 어미는 애가 탄다. 하지만 어미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 어미는 마냥 기다릴 수 없다. 신선한 풀을 먹기 위해 무리가 이동하면 어미도 떠나야 한다. 하지만 모정이라는 게 뭔지, 어미들은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몇 걸음 갔다가 다시 오고, 또 얼마쯤 갔다가 다시 오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한다. 다들 떠나가는데도 어떻게든 새끼를 데려가려 외로운 반복을 계속한다. 묘한 건 바로 이런 시간에 많은 새끼들이 일어선다는 것이다. 어미의 간절함과 녀석들의 삶의 의지가 어떤 강력한 힘을 만드는 듯 말이다. 일단 일어서기만 하면 걷는 건 수월하다. 그렇게 어미와 함께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20년 가까이 수많은 생명체들의 삶을 봐 오면서 느끼는 게 있다. 살아있으려는 힘이야말로 그 어떤 힘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수많은 생명의 기적, 생태계의 풍요로움이 다 여기서 생겨난다. 요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세렝게티 초원처럼 숨을 곳이 없는 평평한 곳이 되어 가고 있다. 초원에서는 주저앉는 순간 위기가 찾아온다. 그러니 일어나 걸어야 한다. 살아있다는 건 지금 나를 누르는 이 상황을 떨치고 일어나 걷는 것이다. 삶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 132cm의 작은 거인 (따뜻한 편지 2329)
미국의 유명한 배우 ‘피터 딘클리지’는 132cm에서 멈추는 왜소증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남들과 다른 자기 모습에 속상하기도 했지만 자신만의 유머러스한 장점을 발견하며 배우의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배우로 성장하기까지 현실의 벽을 통감하게 하는 잔인한 말들과 상황을 수없이 겪어야 했습니다. 왜소증을 가진 배우에겐 언제나 우스꽝스러운 역할이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언젠가는 진중한 주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는 배우에 대한 꿈이 살아있었기에 어떤 배역이든 최선을 다했으며 결국 뛰어난 그의 연기력은 영화계에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눈여겨봤던 어느 감독의 러브콜을 받게 되는데 바로 자신처럼 왜소증을 가진 장애인을 다룬 영화 ‘스테이션 에이전트’에 주연 역할이었습니다.
현대인의 쓸쓸함과 고독함을 보여준 이 영화는 대호평받으며 각종 상을 휩쓸었고 그의 인지도도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2011년 HBO의 메가 히트작이자 블록버스터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가문의 아들임에도 왜소증으로 인해 멸시를 당하지만 결국 최고의 전략가로 우뚝 서는 캐릭터로 연기했습니다.
이 작품 이후 그는 에미상 최우수 남우조연상, 골든글로브 최우수 남우조연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해당 부문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습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 오지만 준비만 하는 사람에겐 찾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맞서 과감하게 도전하세요.
# 오늘의 명언
세상에 “나는 준비 됐어”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보여주세요. 그냥 하세요.
– 피터 딘클리지 –
* 오늘의 묵상 (220731)
어릴 적 천 원만 있으면 꼭 사고 싶은 장난감이 있었습니다. 돈을 열심히 모아서 가게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제 눈이 삼천 원짜리 장난감에 꽂혔습니다. 또다시 돈을 모으기 시작하였고, 돈이 모이자 이번에는 장난감을 사기보다 저금통장을 만들고 싶어졌습니다. 한참 뒤에 보니, 장난감은 구경도 못 하였고 저금통장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조금 더’가 부른 참사였습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지금도 곧잘 그런 행동을 하는 저를 문득문득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탐욕’을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재물 자체가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재물이 모든 것을, 곧 생명마저도 보장해 주리라고 믿은 나머지 그것에 집착하여 우상처럼 대할 수 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재물이라는 우상은 참으로 오랫동안 힘을 발휘하며 사람들을 자신의 자녀로 만들고 있습니다. 큰소리를 내지도 호들갑을 떨지도 않으며 조용히 사람들에게 ‘조금 더’라는 소리만을 흘려보낼 뿐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은 점점 남의 입과 주머니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자신이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재물을 모으기만 하는 어리석은 부자가 됩니다.
내 얼굴과 가정, 그리고 사회에 점점 웃음기가 사라지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조금 더’를 외치며 살아가는 우리입니다. 자신이 지닌 것에 만족해하며 감사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탐욕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필요한 때입니다.
(김인호 루카 신부 대전교구도룡동성당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