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네 번째 예고(2)
- 유월절이 예표 해 온 속죄할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 -
마태복음 26장 1-2절 / 1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2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 (막 14:1; 눅 22:1)
예수님께서는 곧 자신에게 있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림을 받게 될 것을 예고해 주시는 것에서 이틀을 지나면 맞게 될 유월절을 언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유월절을 말씀하신 것은 유월절 양으로 정해진 제물이 희생되는 것에서 있게 되는 어린 양의 피가 곧 자신에게 있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함에서 흘리게 되는 피와 관련하고 있어서 유월절이 예표 해 온 유월절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죄 사함을 주는 속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임을 미리 알게 해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세례요한이 증거한 것에서 알 수 있게 해 주었으니,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라고 증거하여 유월절을 대속주로서 세상 죄를 지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려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자신을 증거하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10:28; 막 10:45) 라고 하였으며, 사도 바울도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6) 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유월절과 관련하고 있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속죄양이신 예수님께서 예수님께서 이제 유월절과 함께 무교절이 시작되는 시점인 이틀을 앞두고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예고하여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그때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릴 것이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예고하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하실 것은 이번으로 네 번째입니다. (1) 첫 번째 예고(마 16:21)에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습니다. (2) 두 번째 예고(마 17:22-23)에서는 산헤드린 공회원인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의해서 사형이 결의된 예수께서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날 것을 알려주십니다. (3) 세 번째 예고(마 20:18-19)에서는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는데, 예수님을 죽일 계획된 음모의 진행에 의해서 되어져 마침내 이방의 손에 넘겨져 능욕과 침 뱉음과 채찍질 당한 후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할 것이나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실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4) 그리고 이제 이곳 네 번째 예고(마 26:1-2)에서는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릴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6:14-16에 의하면,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은 예수님의 제자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와 결탁하여서 예수님을 자신들에게 넘겨주는 조건으로 은 삼십(은 30세겔)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그에 따라서 가룟 유다는 그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길 마음을 가졌으니,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았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방문 길인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도록 넘겨져 죽음의 고난을 당하는 시점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왔을 때 자신의 죽음을 세상 끝 날에 있을 심판과 연결하여 그 날이 사람들에게는 다시는 없을 환난을 당하는 재앙의 날이지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으로 예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그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므로 깨어 있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틀을 앞두고서 다시 이제 자신이 언제 어떻게 십자가에 달리실 것인지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잔치가 시작되는 유월절 그날에 사랑하는 제자의 한 사람인 가룟 유다에게 은 삼십에 팔리는 배반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리게 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인자라고 말씀하심으로 앞서 종말론 강화에서 말씀하신 ‘그 인자’에게 있을 일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배반당할 것과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신의 임박한 죽음과 부활을 예고해 주시고 있는 것으로 이번이 네 번째로 마지막 예고가 됩니다. 이 네 번째 예고는 그동안에 주신 예고의 최종적인 것으로 그 내용이 가장 구체적이며 따라서 명확합니다. 그동안의 예고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음으로 그들로부터 버림을 당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 넘겨지고 그들은 또한 로마 정부에 넘겨주어 그들의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할 것인데 그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것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반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가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마26:2) 라고 말하고 있는 ‘팔리우리라’는 말은 가룟인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여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대제사장들과 유대 지도자들이 보낸 많은 무리들의 손에 팔아넘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에게서 배반을 당하여 팔림으로 악한 자들의 손에 넘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팔린다는 것은 사랑하는 제자에게서 배반을 당한다는 것을 말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이번의 예고에서는 자신이 배반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리게 될 시기까지 정확히 알려주셨습니다. 그날은 이제 이틀만 있으면 있게 될 유월절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자신이 배반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음의 고난을 당하는 날이 유월절 음식을 먹는 잔치가 시작되는 그날인 것을 알고 계셨는가 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 예고가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그 예언의 성취로 있는 것임에 따라서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의 고난을 당하는 것이 유월절 어린 양의 도살과 연결되어 있는 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정하심에 의하여서 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신이 유월절에 배반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은 그 절기의 날에 예수님이 그렇게 배반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리게 되는 고난을 당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이 무슨 일을 행할 것인지를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세상 죄를 속죄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보냄을 받은데 따라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의 성육신에서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라고 밝히신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저들의 죄로부터 구원하는 구속주의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자신이 팔림을 당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시는 피를 ‘죄 사함의 언약’으로 약정(마 26:28; 막 14:24; 눅 22:20)하여 죄로부터 구원하는 보배로운 피가 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벧전 1:18-19).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죄 사함의 구원을 언약하신대로 받음에 있는 은혜를 입음에 있는 신자들이 함께 연합함에 있는 공동체인 까닭에 출애굽 때의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죽음의 재앙을 넘어가게 하는 ‘보배로운 피’ 안에 있으면서 이를 의존하여 있습니다. 교회는 그렇게 오직 믿음으로 산데 따라 그대로 죽음의 재앙을 넘어섬에 있는 죄 사함이 주는 생명의 구원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기쁨에 있은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내게 주신 맡은 일을 다하며 주님을 위해 오랫동안 어려운 싸움을 치러 오면서 주께 한결같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졌으며, 그러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하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내게 줄 면류관입니다. 아, 얼마나 큰 영광스러운 복인지요! 이것은 내게만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열심히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딤후 4:7-8). 이 달려갈 길에 우리 또한 달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푯대를 향하여서 말입니다. 우리 속에서 그리스도께로부터 공급되어 끊임없이 흘러넘침에 있는 죄 사함의 구원을 주신 보배로운 피가 믿음의 경주에 믿음의 형제와 함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감에 있는 완주에 있게 합니다. 하여, 사람 스스로, 사람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영생하는 주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