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5. 삶을 대하는 태도 (정신과 의사 이야기) (글 -연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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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에게는 천상 물질주의자라는 꼬리표를 달 수밖에 없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아주 흔한 부류의 인간으로 여러분에게도 친지 중 그런 사람 한두 명은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아는 이 사람은 친절하고 아주 똑똑하며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옛날 내가 비엔나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독일어를 공부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꽤 쪼들리는 형편이었는데도 그때 벌써 인생살이의 갖가지 쾌락에 입맛을 들이고 있었습니다. 수년 전에 런던에서 찰스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정수리의 털이 드문드문하여 대머리가 되어 가고 있긴 했으나 두툼한 수표책과 어마어마한 검은색 유선형의 자가용을 가진 꽤나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부자나 영화배우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그도 또한 이혼을 했고 줄줄이 쫓아다니는 반 타스 가량의 여자 친구들을 거느리고 희희낙락하고 있었습니다.
뱃속이 허용하는 한 실컷 먹어 제치고 소다수보다 위스키를 더 많이 마시고 두툼한 미제 시거를 피워대고 있었습니다. 내가 불교신자라고 말하자 그는 기겁을 했습니다.
"뭐라고, 불교라니 당치도 않아!"라고 그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아니, 날더러 이 모든 즐거움을 버리라고? 내가 얼마나 뼈 빠지게 애를 써서 이런 것들을 얻어냈는데!"
그래서 나는 "하지만 그 즐거움들을 애써 버리지 않아도 돼요. 그런 것들이 시들해지는 날이 절로 올 테니까." 하고 담담하게 대꾸를 해주었습니다. 찰스는 멍해진 것 같았습니다.
"점점 더 고약한데! 이 돈은 모두 다 어쩌란 말이야!"
그 말에 나는 깔깔 웃었습니다.
"아, 돈이 필요 없어지면 몽땅 어느 불교재단에 다 기부해 버리면 되겠군요!"
그는 몸서리를 쳤습니다. 그 이후 찰스는 다시는 나를 만나려 들지 않았습니다.
찰스는 정말 행복한 사람일까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그 사람이야말로 갈애와 집착이 어떻게 인간의 고통을 증대시킬 따름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표본처럼 느껴집니다. 사실이지 찰스는 우리가 '행복한 기질'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자질을 갖고 있으며 겉으로는 어느 정도 자기 팔자에 은근히 만족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돈은 이제 더 벌어 보았자 대부분 세금 관리들에게 바쳐야 할 판이라 더 이상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있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갖고 있는 모든 소유물을 지키고자 온 힘을 다해서 집착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새끼를 지키는 어미 호랑이와 같다고나 할까요. 그러면서도 그의 내면은 주체 못할 정도로 불안정하며 심각하리만큼 혹독한 쾌락 후유증에 젖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속한 물질적 세계가 제공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에 지나치게 탐닉한 나머지 이젠 물려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자기의 타성적인 감각적 쾌락의 무기력한 노예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에 있어 달리 의미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보이니까요.
찰스는 결코 교양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교양서를 읽기 좋아하는 것을 보아도 그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은 책일 뿐이고, 그의 세계는 엄연히 따로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어떤 것도 자기의 자아를 파고들도록 허용하지 않습니다. 책은 지적 자극을 주기 위해 존재할 뿐으로서 한마디로 말해 또 다른 감각적 쾌락, 즉 정신적 쾌락을 제공해 주는 원천일 뿐입니다. 그런데 정신적 쾌락이란 여느 육체적 쾌락과 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마음은 또 하나의 다른 즐거움을 인지할 줄 아는 감각기관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바히야여, 봄(見)에 있어서는
오직 봄이 있을 뿐이어야 하며
바히야여, 들음에 있어서는
오직 들음이 있을 뿐이어야 하며
바히야여, 느낌에 있어서는
오직 느낌이 있을 뿐이어야 하며
바히야여, 앎에 있어서는
오직 앎이 있을 뿐이어야 한다.
( 삶을 대하는 태도들, 루스 월슈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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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미타재일입니다. 보름법회(도일스님 법문)가 있겠습니다.
# 저녁 7시, '보름 달빛 명상'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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