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연정과 우정
막사로 돌아오면서 한준은 고민한다.
향기보다 자신이 중부를 먼저 만날 방도 方道를 강구 해 본다.
그래야만 무슨 해결책이라도 나올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향기의 표정을 슬그머니 엿보니 내일 아침에도 또 수련장으로 갈 태도다.
오는 길에 마침 아주 큰 두꺼비를 한 마리 잡아 왔었다.
두꺼비를 잡을 때는 별생각 없이 답답한 마음에 장난삼아 잡았는데, 그걸 이용할 생각이 든 것이다.
큰 뱀을 한 마리 잡아 두꺼비와 같이 넣어 두었다.
그러면 두꺼비는 자신을 보호하고자 몸집을 부풀리고, 등의 피부 숨구멍에서는 극독 성분의 흰 독액이 스며 나온다.
그때,
두꺼비의 껍질을 벗겨 그 껍질을 잘게 찢어서, 두꺼비의 피와 함께 향기의 말이 먹는 건초에 묻혀 두었다.
과연,
아침에 보니 말은 설사하고 입에는 흰 거품을 물고 있다.
말이 설사한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향기는 안절부절못한다.
먼저 애마의 건강이 걱정되고, 또 수련장에 가봐야 하는데 자신의 애마를 놔두고, 다른 말을 타고 가기가 남의 시선도 있고 그렇다.
잠시 망설이다가 하는 수 없이, 수련장 방문은 일단 포기하고 애마를 치료하는 데 집중하기로 결정하였다.
옆에서 그 과정을 지켜 본 한준은 속으로 쾌재 快哉를 불렀다.
안타까워하는 동방향기를 ‘내 몰라’라 하며,
한준은 얼른 말을 몰아 사정 수련원으로 출발한다.
수련장에서 중부와 박지형을 만났다.
3년 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들이다.
산동성 봉래 포구에서 만나 다투었던 우문 청아와도 인사했다.
“햐~ 살아있었네”
“하하, 오랜만이네, 건강하지?”
“그래, 그동안 고생 많았지?”
“하하 그래, 자네 역시 만만찮겠지”
“그럼, 모두 먼 길을 이동하였는데, 다들 고생했지”
“어쨌던 간에 건강한 모습으로 이렇게 만나니 반갑다”
“그래, 좋아”
“참, 금성부 김청예 소공자 소식은 들었냐?”
“아니, 오지 奧地에 갇혀 있으니, 외부 소식은 깜깜이지”
“그렇구나”
“근데, 청예는 왜?”
“청예가 사로국 옆의 김해에서 금관가야를 건국하고, 수로왕으로 불리고 있으며, 단단한 쇠를 잘 만들어 백성들의 신임을 받아 영토를 계속 늘리며,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지”
“햐~ 그래, 반가운 소식이군”
“만나고 싶지만 길이 너무 멀어, 힘들겠지?”
“그러게, 건국 建國 초기라 사람들도 많이 필요할 텐데”
“그래, 가까우면 힘을 보탤 수도 있겠지만 아쉽군”
“살다보며 만날 기회가 올 수도 있겠지”
“그래, 기대해 보자”
“그런데, 만난다 하더라도 이제는 대왕인데, 함부로 말을 건네기도 어렵겠군”
“하하하, 그렇겠지”
“어찌 되었던간에 축하할 일이네”
“맞아, 멀리서나마 축하해주자”
‘가야 건국’ 축하주 祝賀酒의 술잔을 서로 부딪친다.
서로가 반기며 정답게 인사를 하고, 지내온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우문청아가 수태차를 내어온다.
우문청아는 한준에게 차를 따르며,
“사제 오랜만이네, 요즘 실력 많이 늘었어요?”하며 당당하게 사저 행세를 한다.
“응, 많이 늘었지, 사저라는 분도 실력이 많이 향상되었겠지?”
“험, 선배에게 그런 말투로 대꾸하면 불경죄 不敬罪 아닌가?”
“선배도 선배 나름이지, 하하하”
“오늘은 사부님이 곁에 계시니까 내가 참는다. 다음부턴 조심해요. 호호호”
역시, 만만찮은 적수들이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한준은 씩씩한 성격의 우문청아가 중부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일반 사람을 대하는 것과는 많이 다름을 느꼈다.
중부를 보는 눈빛이나 말투가 상당한 애정을 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하는 도중에 자연스레 혈창루 모용 사부와 동방 향기의 이야기도 나왔다.
“혈창루 사부님과 향기 그리고 늑대가리도 설걸우 천 부장과 같이 있다”라고 한준이 이야기하니,
중부는
“수일 내에 모용 사부님을 뵈러 가겠다”라고 한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우문청아도
“저도 같이 갈 거예요” 한다.
한준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그럼요, 사저께서 당연히 동행하셔야지요”
갑자기 한준의 말투가 친한 척, 부드럽게 바뀌어 간다.
“험~, 이제 뭔가 질서가 잡혀가는 분위기네, 호호호”
“그럼요, 사저께서 오시는데, 사제가 정성껏 모셔야죠”
돌연, 한준 스스로 사제로 자칭한다.
“어머, 고마워요. 사부님 우리 조만간에 빨리 가봐요?”
“으 응, 그러자”
“사저께서 오실 때, 하루 전에 통보를 주세요”
한준의 언행이 아주 공손하다.
한준은 이제, 죽마고우 이중부는 뒷전이고, 사저라는 우문청아에게 지극 정성으로 예를 갖추어 작별 인사를 하고서는 말 안장에 오른다.
돌아오는 한준.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한시름 놓은 기분이다.
‘여우 같은 우문청아가 중부 옆에 붙어 있어 다행이긴 한데’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긴다.
우문청아를 보고 향기가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고,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볼 문제지’
한준은 이제 큰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다른 것은 부차적 副次的인 사소한 것이라 여겨진다.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을 느낀다.
말을 마구 몰아 초원을 맘껏 달린다. 세상의 반을 얻은 기분이다.
‘역시 인생은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야’
새로운 희망이 생기더니 그 희망이 급속도로 팽창되는 느낌이다.
우문청아를 앞으로 평생을 사저로, 선배로 극진히 대접해 줄 생각이다.
‘단, 동방향기가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을 받아 줄 경우에만 그렇다’라는 조건을 스스로 만들고 또,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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