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청사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고속터미널에 내리자 7시가 다 되었다. 지하철로 수서역에 하차한 후 빵으로 부족한 식사를 보충하고 광평교로 향했다. 놀랍게도 8시가 다 되었는데도 행사준비가 안 되었는지 부랴부랴 마이크 설치하고 물품 배치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이미 주자들은 꽤 많이 나와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짐을 맡길 즈음에야 어느 정도 행사준비를 갖춘 모양새다. 영상 3도의 쌀쌀한 날씨에 탄천변을 달리며 몸을 풀었다. 한국산악마라톤연맹에서 주최하는 풀코스 대회라 행사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참가비가 워낙 싸서(25000원), 싼 맛에 신청한 대회다. 몇 년 전 지리산 화대종주 트레일런대회에 참가한 적 있었다. 그때도 박모 회장이라는 분이 주자들과 원활하지 못한 행사진행 때문에 심하게 다툰 적이 있었다.
주자 대부분이 코스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듯 했다. 방송으로 안내를 한다고 하지만 세 바퀴를 어떻게 도는 것인지, 그 후에 모자라는 거리를 어떻게 뛸 지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선에 섰다. 9시 정각 아무도 출발선에 나서지 않자 얼떨결에 앞에 서게 되었다. 워낙에 좁은 주로라 2~3명이 함께 움직이면 추월은 엄두도 낼 수 없기 때문에 선두에 선 것은 잘한 일이었다.
출발하자마자 시계 버튼을 잘못 눌렀는지 거리와 시간 표시가 엉뚱하게 나타났다. 초반 페이스를 잘 잡아야 하는데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선두에 서 있기 때문에 오버페이스할 위험이 높았다. 2km 쯤 지나자 1km 단위로 소요시간이 정확하게 나타났다. 거리는 2.5km를 빼야 했지만 주행 중 얼마의 속도로 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휴대폰도 시계도 아직 모르는 기능이 너무 많다. 나의 경우 한두가지 기능을 빼고는 아예 모르는 컴맹이나 마찬가지다. 탄천변 보행로에 내려선 후 얼마지나지 않아 급수를 하고 탄천을 건너자 평탄한 보행로가 길게 이어졌다. 5km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광평교 앞 삼거리에서 공사현장을 옆에 두고 직진으로 진행했다. 약간 굴곡이 있지만 이를 벗어나자 중간 위치에 있는 보행로를 따라가야 했다. 10km와 하프 반환점을 넘어서자 이번에는 탄천1교를 건너야 했다. 다리를 넘어가려면 원을 그리듯 빙그르르 돌아 나와야 했다. 동부간선도로 바로 앞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서자 탄천 보행로에 이르렀다. 이제 출발선까지 가면 한 바퀴를 도는 셈이다. 탄천서로는 여러번 왔기 때문에 익숙한 길이다.
다 도착한 후에는 중간 보행로에 올라서야 하는데, 출발선 패드를 터치해야 하는지 몰라 주자들 모두 우왕좌왕이다. 누군가 그냥 가라고 했다. 한 바퀴는 12.3km 정도 나왔다. 2회전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컨디션이 괜찮았다. 탄천1교를 넘어서자 하프지점이다. 정확한 시간계산은 안 되었지만 1시간 55분 정도였다. 3회전을 시작하자마자 햄스트링이 뻣뻣하고 쥐가 올라오려는 듯했다. 오른쪽 골반 통증도 강하게 압박을 했다. 일주일 내내 운동하지 못한 결과라 생각되었다.
탄천1교를 지나자 주최 측에서 이번에는 중간 보행로를 달리도록 했다. 처음부터 이렇게 안내를 했으면 훨씬 편했을 텐데 3회전 때 안내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주행속도는 6분주로 내려앉은 상태였다. 앞뒤로 주자가 아예 보이질 않았다. 중간 보행로를 달린 덕에 3회를 완주할 때는 패드를 정확하게 밟을 수 있었다. 4회전째 나무테크 보행로를 내려선 후 나타나는 CP에서 어떤 분이 광평교 직전 삼거리에서 보행로 따라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따뜻해지는 낮시간 대 광평교를 향해 가는 방향의 보행로는 산책 나온 사람들로 빈틈이 없을 정도다. 좌우로 방향 전환을 해가면서 달려 나갔다. 그래도 서브4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피니쉬라인 급경사를 총총걸음으로 뛰어 올라갔다. 3시간 54분 06초로 골인했다. 그런데 풀코스거리가 41.5km밖에 나오질 않았다. 비슷하게 들어온 주자들에게 측정한 거리를 물어보니 거의 전부가 41.5km다.
1회전때 패드를 밟지 않았다고 했더니 주최 측은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기록이 들어오질 않았다. 대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엉터리 대회 운영을 성토하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기록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