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자신의 묘는 시흥시 능곡동 산32번지에 있다. 몇년만에 다시 찾았는데 역시나 양명하고 좋은 자리에 있다. 광해군의 장인이었으나, 광해군의 몰락과 함께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불운이 찾아 들었다. 특히 아들 류희분은 광해군때에 권신으로 병조판서에 올랐던 인물인데, 인조반정후 참형을 당하게 된다. 다른 아들들도 참형이나 유배를 면치 못했다. 이걸 풍수하는 분들은 묘지풍수로 해석하곤 하는데 조금은 억지스럽다. 정치적인 사건 하나하나를 어찌 음택풍수가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인지 같이 풍수하는 입장에서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후손의 불행을 조상이 저 세상에서 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조상이 후손의 불행을 어찌 바랄 수가 있겠는까?
류자신은 6남4녀를 두었는데 3녀가 곧 광해군의 부인이 되었다. 최고 지존의 자리에 있었으나, 왕위에서 쫓겨나면 그 신세는 비참하기 그지 없다. 강화도와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했던 광해군 ...그의 불행이 류자신을 비롯한 장인 집안의 묘가 잘못되어 있었던 사건이 아닐진대, 어찌 풍수가들은 그렇게 억지스러운 해석을 하고 있을까? 21세기의 풍수는 다른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음택풍수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음택 풍수도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해석이 뒷받침되는 수준으로 향상되었으면 한다. 막연한 발복론에 기대서 조금은 억지스러운 주장보다는, 이론과 체계를 갖춘 인문학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