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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5년 신년 주일입니다. 새해에는 여러분의 가정과 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는 한해가 되길 바랍니다. 작년 2024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습니다. 특히, 년말에는 대통령의 계엄선포로 인해, 여야의 깊은 갈등이 표면에 이름으로 나라가 어수선하였고, 엎친데 겹친 격이라고 무안국제공항의 제주항공 사건으로 나라 전체가 혼란스럽고, 침울해 있습니다.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길 바랍니다. 올 2025년에는 이러한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태양만 빛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 나무에게 저주를 선포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말 시장하셨기에, 무화과나무에게 저주를 하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이 믿음으로 기도할 때, 어떠한 일이 발생하는지를 교훈하기 위해 행하신 겁니다. 곧, 기도의 능력을 가르치기 위해 무화과나무를 시청각 도구로 사용하신 겁니다. 약 1: 6 - 8을 보시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합니다. 그럼, 성도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첫째는,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하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심을 믿어야 하며, 셋째로,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음을 믿고, 내 기도를 듣고 응답하심으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어야 하며, 끝으로, 기도로서 하나님을 찾기만 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으로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정도의 상식은 다 있지만, 믿음으로 기도해도 속히 이루어지지 않고 지체되면 의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불평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24절을 보시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저주로 무화과나무가 뿌리채 말랐다고 베드로가 말하자, 예수님이 본문 22절에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며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는 말씀 속에, 예수님의 모든 사역의 핵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도 여기에 있고,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신 모든 행적이 여기에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과 부활하신 것도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정말로 믿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1 - 22절을 보시면,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하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신구약 성경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능력으로 섭리하시며,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종말에는 세상을 심판하시며,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신다는 것이 성경전체의 흐름이며 가르침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을 믿으라는 겁니다. 성경전체에서 “믿음”, 혹은 “믿는다”는 동사와 명사는 약 550회 정도 나옵니다. 성경이 그토록 강조하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인정하는 겁니다. 즉, 위대하시고, 전능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으며, 모든 사건들을 푸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둘째,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롬 10: 10을 보시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과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셋째,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순종이란 고분고분 따라가고 말을 잘 듣는 겁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구원받은 사람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어린 양은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 제물이 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넷째, 믿음은 모든 것을 맡기는 겁니다. 우리는 은행을 믿기 때문에 그 곳에 돈을 맡기며, 음식점 주방장을 믿기에, 그가 만든 음식을 먹습니다. 또, 병원의 의사를 믿기에 그곳에서 진료를 받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당연히, 하나님께 나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럼, 본문으로 돌아가서 무화과나무가 마른 것이 기도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본문에서 기도가 응답되는 조건으로 하나님을 얼마나 믿는가에 대한 믿음의 문제를 말씀하신 겁니다. 이것은, 성도인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응답을 받기위해 하나님의 능력과 하신 일을 얼마나 믿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본문 21절에서 베드로가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라고 하자, 이어, 본문 22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신 겁니다.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하나님의 무한대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되 우리의 욕심을 앞세워 우리가 중심이 됨으로 믿지 말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의심치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들이 되며, 모든 기도에 응답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3절을 보시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합니다. 믿음을 말로서 선포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매우 힘든 일을 “산”으로 표현합니다. 우리도 힘들고 어려운 일, 해결해야 될 일들이 빼곡히 있을 때, 이를 가리켜, “할 일이 태산같다”는 말을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은 이러한 의미에서의 “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큰 문제라도 믿고 의심치 않고 간구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본문 끝부분을 보면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대로 되리라” 앞에 “의심치 아니하면”이라는 조건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막 7장에서,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에 갔을 때에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딸을 고쳐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며, 엄청난 모욕을 줍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며 멋진 신앙 고백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네 딸에게서 귀신이 나갔다”라고 하셨나요? 아닙니다. 막 7: 29을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네 딸에게서 나갔다”는 것이 아니라, “이 말을 하였으니”입니다. 놓치기 쉬운 말이죠? 이 구절만 우리말 성경역으로 보시면,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했으니 어서 가 보아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다’”입니다. 이제 뜻이 명확하죠?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신의 믿음을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받으신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께로 나올 때, 우리에게서 믿음의 신앙 고백을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 속에서 용솟음치는 믿음을 언제나 입술로 고백해야 합니다. 성도된 우리에게는 말에 힘이 있습니다. 고백한대로 되어지고 선포한대로 이뤄집니다. 그래서, 잠 18: 21을 보시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절대적인 신뢰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대로 역사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겠습니까? 성도된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말로서 선포하며, 굳은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4 - 25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본문 24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의지하여 성도된 우리는, 아무리 절망적이고 고통스러운 상황이라 해도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형편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할 때,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요 14: 13을 보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했고, 본문 24절에서는 “그대로 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대로”라는 것은, “구한대로, 믿은 대로”라는 겁니다. 그래서, 요 14: 14절에서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내가 원하고, 바라고, 구하는 대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소망대로 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은 “그대로 되리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히 11: 1 - 2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놀랍고 놀랍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어, 본문 25절을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카이”로 시작합니다. 이는, “그리고”의 의미입니다. 본문 24절의 시작이 “그러므로”로 시작하는 데, 이는 앞의 23절에 대한 결과라는 겁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터무니없이 본문 25절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본문 24절에 대해, 본문 25절이 이어지기에, 24절에서처럼 기도하되, 기도할 때, 용서하지 못한 것이 생각나거든, 이것을 먼저 풀라는 의미로 말씀하신 겁니다. 그것은, 마음에 맺힌 것이 없어야 기도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즉, 기도함에 있어서, 걸림돌이 없도록 하라는 겁니다. 사 59: 2절을 보시면,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성도된 우리 사이를 가로막음으로, 기도응답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서 문제가 자주 꼬이고,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고, 기도를 하고 싶어도 기도가 되지 않아 답답하지는 않았습니까? 이 때, 성도된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는 주변의 환경을 바라보며, 불만불평을 늘어놓고, 그 속에 빠질 것이 아니라, 성도인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는지 나와 하나님과의 독대관계를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인 독대관계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이로 인해, 올 2025년에는 우리의 믿음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 성도된 우리에게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