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미래덩굴
삼천리금수강산, 옛사람들은 산 넘고 물 건너 평평한 땅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오순도순 모여 살았다.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서로 주고받아야 하니 더우나 추우나 산길을 수없이 넘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청미래덩굴은 사람들이 잘 다니는 산속 오솔길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우리 산의 덩굴나무다.
청미래덩굴은 공식적인 이름이고, 경상도에서는 망개나무, 전라도에서는 맹감나무, 혹은 명감나무라 불린다.
이 중에서도 망개나무란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충북 및 경북 일부 지방에서 자라는 희귀수종인 진짜 망개나무와 혼동하기 쉽다.
청미래덩굴의 잎은 젖살 오른 돌잡이 아이의 얼굴처럼 둥글납작하고, 표면에는 윤기가 자르르하다.
기다란 잎자루의 가운데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한 쌍의 덩굴손은
손끝에 닿는 대로 나무며 풀이며 닥치는 대로 붙잡고 ‘성님! 나도 같이 좀 삽시다’ 하고 달라붙는다.
잡을 것이 없으면 끝이 도르르 말린다. 덩굴줄기를 이리저리 뻗기 시작하면 고약한 버릇이 생긴다.
갈고리 같은 작은 가시를 여기저기 내밀어 자기 옆으로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다니는 것을 훼방 놓는다.
나무꾼의 바짓가랑이를 찢어놓고 그도 모자라 속살에 생채기를 만들어놓는가 하면,
친정나들이를 하는 아낙의 치맛자락을 갈기갈기 벌려 놓는 심술을 부리기도 한다.
화가 난 사람들이 낫으로 싹둑싹둑 잘라 놓아도 되돌아서면 ‘약 오르지?’를 외치듯 새 덩굴을 잔뜩 펼쳐놓는다.
청미래덩굴의 가시는 이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산속의 날쌘돌이 원숭이도 꼼짝 못한다는 뜻으로 일본인들은 아예 ‘원숭이 잡는 덩굴’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미래덩굴은 이처럼 몹쓸 식물만은 아니다. 여러 가지 좋은 일도 많이 한다.
어린잎을 따다가 나물로 먹기도 하며, 다 펼쳐진 잎은 특별한 용도가 있다.
잎으로 떡을 싸서 찌면 서로 달라붙지 않고, 오랫동안 쉬지 않으며, 잎의 향기가 배어 독특한 맛이 난다.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시골장터에서 흔히 듣던 떡장수의 ‘망개~ 떠억’ 하는 외침은 지나간 세대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망개떡은 청미래덩굴의 잎으로 싼 떡을 말한다.
줄기는 땅에 닿는 곳에서 바로 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처럼 땅속을 이리저리 뻗쳐 나가는 땅속줄기(地下莖)를 갖는다.
땅속줄기는 굵고 울퉁불퉁하며 오래되면 목질화된다. 마디마다 달려 있는 수염 같은 것이 진짜 뿌리다.
뿌리 부분에는 어떤 원인인지 명확치 않으나 가끔 굵다란 혹이 생기는데, 이것을 ‘토복령(土茯岺)’이라고 한다.
속에는 흰 가루 같은 전분이 들어 있어서 흉년에 대용식으로 먹기도 했다.
그 외에 주요 쓰임새는 약재다. 옛사람들이 문란한 성생활로 매독에 걸리면 먼저 토복령 처방부터 시작했다.
또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피를 맑게 하며 해독작용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봄의 끝자락에 이르면 잎겨드랑이에 있는 덩굴손 옆에 긴 꽃대가 올라와 우산모양의 꽃차례를 펼친다.
노란빛이 들어간 풀색 꽃이 모여 피고 나면 초록색의 동그란 열매가 열렸다가
9~10월에 지름 1cm 정도의 둥근 장과가 달려 빨갛게 익는다.
다 익은 열매는 속에 황갈색의 씨앗과 주위에 퍼석퍼석하게 말라버린 약간 달콤한 육질이 들어 있다.
먹을 것이 없던 옛 시골 아이들은 ‘망개 열매’가 시고 떫은 초록일 때부터 눈독을 들인다.
익은 열매는 달콤한 맛을 보려고 오가며 가끔 입속에 넣어보곤 한다.
<20145.5.3. 청산도 보적산 산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