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내를 둘러보며 한국불교 전통의 향훈을 맘껏 들이키는 조지아대학생들. 맨 앞 한국인이 이향순 교수.
벽안(碧眼)의 대학생들이 ‘안심법문(安心法門)’을 찾아 물을 건넜다. 한국불교를 배우기 위해 미국 조지아대학생 14명이 3월 15~17일 300여 비구니와 사미니들의 수행도량 청도 운문사로 찾아온 것이다.
멀리 서역 땅에서 고비사막과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조사들의 손을 통해 면면이 전해진 진리의 ‘법등(法燈).’ 그 진면목을 두 눈으로 확인하려는 듯 그들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스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폈다.
세계문명 탐구해 미래 미국사회 청사진으로
이들은 모두 주정부가 대학 단위마다 선발하는 조지아대 4년 국비(國費) 장학생으로 14일 불국사 등 경주 불교유적, 18일 미황사 등을 둘러본다. 미국 정부는 장래 미국사회의 지도자가 될 ‘떡잎’들의 안목을 키워주기 위해 이런 프로그램을 대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철저히 미국 밖에서 사고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젊은 지성들에게 제공해, 그들로 하여금 미래 조국의 청사진을 그려 보게 하는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새벽예불. 운문사 대웅전에서 봉행된 새벽예불에 참가안 조지아대학생들.
조지아대학에서는 매해 이런 장학생을 20명씩 선발한다. 그들은 장학프로그램에 따라 매해 세계 4곳의 명소를 방문하는데, 한국불교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그중 14명이 운문사 템플스테이에 지원했다.
2003년도 조지아대학 운문사 템플스테이 참가단을 인솔한 데 이어 다시 이곳을 찾은 스티브(조지아대 장학재단 Foundation Fellowship 부소장) 박사는 “특별히 가치가 있는 곳을 방문한 후, 그곳에 대한 모든 정보가 보고서로 작성된다. 따라서 같은 곳을 두 번 방문하는 경우는 없다. 올해는 인종차별의 현장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인감옥 등 4곳이 선정됐다. 한국불교와 운문사만은 특별하다고 판단했기에 다시 방문키로 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운문사에서의 2박 3일 동안 학생들의 시선은 유난히 날카롭고 진지했다.
“한국은 강력한 승가의 전통이 살아남은 세계 유일의 국가라고 들었다. 이렇게 비구니 스님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책을 통해서 배웠던 사실들을 오늘 직접 목격했다.” (타이, 생화학 전공)
“나는 영화를 통해 불교를 배웠기 때문에 한국불교도 영화 속 한 요소에 불과했다. 그러나 운문사 대웅전 앞에 서는 순간 한국불교가 스크린 밖으로 걸어 나오는 줄 알았다.”(사이먼, 영화학ㆍ철학 전공)
“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소임을 맡아 유기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놀랐다. 모두가 즐겁게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인상에 남는다.” (비제이, 비영리경영학 전공)
그들은 왜 한국불교를 찾았나?
조지아대 학생들에게 특히 운문사는 한 권의 ‘한국불교학 개론서’, 영화 ‘만다라’ 속 장면과 같았다. 산과 안개에 둘러싸인 풍경, 천년의 향기가 풍기는 도량 앞을 흐르는 개울물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스님과 스님을 통해 이어진 한국불교의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인들은 대부분 물질적이고 개인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극도의 경쟁 속에서 그들은 쉽게 혼자인 자신을 발견한다. 그들은 한국불교를 통해 ‘함께 살아감’의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내일의 미국 지도자감인 학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도록 하고 있다.”
요가를 따라해보는 조지아대학생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하다.
9ㆍ11 사태를 겪은 미국인들은 혼란스럽다. 평화의 상징이라 믿었던 종교가 갈등의 원인이 됐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전파자라고 믿었던 자신들의 국가는 어느새 ‘덩치만 큰 말썽쟁이’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벌써 거대한 제국의 몰락을 감지하는지 모른다. 한국불교와 운문사에서 미래의 대안을 발견하고자 하는걸까?
그들은 무엇을 보았나?
조지아대에서 영화학과 철학을 전공하는 사이먼은 운문사를 가기 직전 방문한 경주에서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했다. 불국사 탱화들을 디지털카메라에 담는 작업이 그것.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을 그리고 봄>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의 의미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패트릭(세포생물학 전공)도 석굴암에서 법당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법당과 석등 사이에서 강력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런 구도와 배치는 의도적인 것 같은데 제대로 본 것인가?”고 묻는다. 타이는 운문사에서 제공한 사찰 음식을 먹은 후 “김치의 차가움과 밥의 따뜻함이 묘한 대조를 이루는 것 같다. 이런 스타일의 메뉴는 다른 나라에서 찾을 수 없다. 단순하면서도 깔끔하다”고 평했다.
그들은 진짜 무엇을 보았을까? 그들이 본 것은 얼핏 한국불교의 외양이다. 조석 예불, 발우공양, 다도 체험, 요가, 경전강독 참관, 연등 만들기, 산행 등 스님들의 일상은 대부분 체험했다. 그러나 스님의 지도로 참선을 배운 후 “다리가 뻣뻣해짐을 느끼는 순간 다리를 약 10도 정도 펴니 훨씬 나았다”라고 느낌을 말하는 그들이 간화선의 심원한 원리를 이해한 것은 아니다. “108배는 좋은 운동이 될 수 있다”는 반응이나, 발우공양의 독특한 정신보다 “젓가락보다 포크의 사용이 더 편리한 것 아니냐?”는 의견에서 미국불교가 꽃 피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우공양을 체험하는 조지아대학생들.
그러나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불교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대웅전의 어간문은 어른스님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주의사항을 듣고, 대니(음악학, 역사학 전공)는 “불교의 평등사상에 위배된 것이다. 붓다가 그렇게 하라고 했느냐?”고 되묻는다. 대웅전을 구석구석 뜯어본 제이크(스페인어, 생물학 전공)는 “나무를 사용해 완벽하게 조립한 이 건물을 만든 사람들은 대단한 지성을 지녔을 게 분명하다”고 불교의 미적 감각을 높게 평가했다. 그들은 이미 한국불교의 정수를 조금씩 파악해가는 듯 했다. 작지만 오랜 전통을 이어온 독특한 한국 승가의 모습이, 세계 최강국 미국의 미래 지도자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 자못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