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27,4-7; 1코린 15,54-58; 루카 6,39-45
+ 오소서 성령님
지난 한 주간 안녕하셨어요? 교황님이 편찮으셔서 많은 분이 열심히 기도해 주고 계십니다. 감사드립니다. 우리 본당은 한국 천주교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앞으로 매미사 마다 교황님 건강 회복을 위한 지향을 넣고, 매일 밤 9시에 교황님의 건강 회복을 위해 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밤 9시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와 함께 교황님 건강 회복을 위하여 주모경이나 묵주기도를 바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월요일, 비오 수녀님과 제노비아 수녀님께서 이동하시고 이사야 수녀님과 안젤리카 수녀님이 부임해 오셨습니다. 주님 은총 안에서 보람과 기쁨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이번 수요일이 벌써 재의 수요일인데요, 은혜로운 사순시기를 맞이하기 위해 모든 분이 잘 준비하시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말과 행동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말은 금방 드러나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집회서는 세 가지 비유를 통해 ‘말’이 어떻게 사람을 드러내는지 이야기하는데요, 체로 치는 것,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는 것, 그리고 나무 열매입니다.
체로 치면 찌꺼기가 남듯이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나고,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되며, 나무의 열매가 재배 과정을 드러내듯이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냅니다.
그동안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야 당신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2주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라는 말씀을 통하여, 재물이나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제자의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주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통하여, 비유로가 아니라, 실제로 하느님의 아들딸로 살아가라고 초대하셨습니다.
오늘은 누구를 스승으로 모시고 살 것인지 결단하라고 촉구하십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집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으므로 스승을 능가하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와 같은 눈먼 이를 스승으로 모실 것인지, 당신을 스승으로 모실 것인지 묻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요한 성인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아무도 본받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성인이라 하더라도, 그를 본보기로 삼는다면 마귀는 그의 결점까지 본받게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스승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또한 당신의 제자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먼저 보고 빼내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분별하는 기준에 대해 말씀하시는데요,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요?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습니다. 여기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의미합니다.
남을 살리는 말이 있고, 남을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는 말, 용기를 주는 말이 있고, 사람을 속상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둘 중 어떤 말을 더 많이 하고 있을까요? 대개의 경우 내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생각하기보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유다인들은 어릴 때부터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한다고 하는데요, 대표적인 것 몇가지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의 이야기 도중에 끼어들지 않는다.
둘째, 말하기 전에 먼저 생각한다.
셋째, 질문과 대답을 간결하게 한다.
넷째, 처음 할 이야기와 나중에 할 이야기를 구별하여 한다.
다섯째, 잘 알지 못하고 말했거나 잘못 말한 것은 솔직하게 인정한다.’ 등입니다.
여기에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께서 하신 말씀을 추가하고 싶은데요, ‘사소한 것에 우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끝까지 우기다가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내가 상대방에게 상처 준 말보다 상대방이 나에게 한 말만 되뇔 때가 많습니다.
어제는 3.1절 106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연정 국악원에서 ‘유관순, 희망의 별이 되다’라는 공연이 있었는데, 우리 본당 임마누엘 성가대가 공연하였습니다. 오랜만에 3.1절을 3.1절답게 보내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마치 유관순 열사가 살아서 돌아오신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공연이 유관순 열사의 신앙에 대해 조명한 것이 와 닿았는데요, 열심한 개신교 신자였던 유관순 열사는 가톨릭 성녀인 잔 다르크 성녀의 삶에 깊은 감명을 받고, 잔 다르크 성녀처럼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며 매일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독립기념관에는 유관순 열사께서 바치신 기도문 비가 있는데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오 하나님이시여 이제 시간이 임박하였읍니다.
원수 倭를 물리쳐 주시고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소서
내일 거사할 각 대표들에게 더욱 용기와 힘을 주시고
이로 말미암아 이 민족의 행복한 땅이 되게 하소서
주여 같이 하시고 이 소녀에게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열일곱 살, 오늘날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의 나이였던 유관순 열사의 기도입니다.
한편, 어제 밤에는 안중근 의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도 T.V.에서 방영되었는데요, 안중근 의사가 원했던 것은 이토 히로부미의 저격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하여 당신께 이목이 집중된 세상을 향하여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는 해석이 와닿았습니다. 그 말은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 제국의 죄를 고발하고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선포하는 말이었으며, 이토 히로부미로 대표되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이 잘못되었다는 고발이었습니다.
안중근 토마 의사는 당신의 의거가 철저히 신앙에 따른 것이었음을 강조하셨고, 당신께 세례를 주셨던 빌렘 신부에게 청하여 사형당하시기 전 고해성사를 받으셨으며, 큰아들이 사제가 되게 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지만, 안타깝게도 큰아들은 의문의 독살을 당하고 맙니다.
어제의 공연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제게는 그간 얼마나 독립운동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가 하는 반성이 일었습니다. ‘그분들이 하신 말씀을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오늘날 일제 식민 통치를 미화하는 각종 망언이 쏟아져 나오고, 뉴스에서는 자기가 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이야기들만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 12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지껄인 쓸데없는 말을 심판 날에 해명해야 할 것이다.”(마태 12,36)
오늘 우리가 하는 말은 사람을 살리는 말인가요, 심판 날에 해명해야 할 말인가요? 우리가 되뇌고 있는 말들은 어떤 말들인가요?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https://youtu.be/DJysS0tzi_Q?si=dqbY3LYtHFYC-RC2
최성환, 아리랑 환상곡
정치용(지휘), 코리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안중근 토마 의사
출처: 안중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